Object Lessons 1 _ «호텔»

속단은 금물, 이 책은 호텔 안내서가 아닙니다. 파경에 이른 결혼 탓에 한동안 호텔 리뷰어로 지냈던 시간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 문학적 논픽션에서 정작 주연은 호텔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 있는 것들, 즉 결혼 생활, 집, 집일, 집일하며 기다리는 여자, 그리고 무엇보다 욕망과 사랑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속단은 금물, 주목받는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지은이는 이 익숙한 이야기를 정말이지 ‘뜻밖의’ 스타일로 풀어 나가고 있습니다. 쓸쓸함과 유머, 세심한 관찰과 자유로운 연상, 단순하지만 모호하고 그럼에도 가슴에 깊이 박히는 문장, 다시 말해 글의 맛을 음미하고픈 독자라면 이 매혹적인 «호텔»의 환영받는 투숙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시리즈 중 가장 먼저 알게 된 책이요 가장 먼저 결정한 책이며 옮긴이도 가장 먼저 정해진 책이에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1권이 되었습니다. 물론 내용/형식으로도 첫 자리에 들어갈 가치가 있는 책이기도 하고요.

원서의 출판사 소개글 일부는 대강 이렇습니다. “불행했던 결혼이 파경에 이른 시기에 작가 조애너 월시는 호텔 리뷰어 일자리를 구하게 된다. 그러고는 집을 대신하도록 설계된 장소들에 이끌린다. 호의호식, 섹스, 권력, 익명성, 프라이버시… 호텔들은 우리의 욕망이 휴가를 떠나는 곳,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우리의 욕망이 시장이라는 강고한 리얼리티에 따라 형성되기도 하는 곳이다.” 이 소개에 더해 호텔보다는 모텔 간판처럼 보이는 원서 표지. 어떤 스토리일지 대강 감이 왔습니다. 미저러블한 이야기. 이런 내용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이 책은 이런 문장으로 시작됩니다. “한동안 호텔을 전전하며 살던 때가 내 삶에 있었다.”

이렇게 책을 읽기 전 정황을 길게 얘기하는 이유는 이 추측과 기대와 예상이 모두 완전히 틀렸기 때문입니다. 지은이 자신이 밝히듯 창의적 픽션이라 부를 만한 이 책은 흔한 소재를 기본 뼈대로 삼고 있지만 이를 축조하는 형식은 정말이지 ‘뜻밖’의 연속이었습니다. 자 이제 이제 무엇이 그렇게 뜻밖인지 설명…해야 마땅하겠으나, 여러분 죄송합니다. ‘뜻밖’이라고 말하는 것 외엔 이 책을 설명할 수가 없어요. 요약이 불가능하거나 불필요하며 지은이의 언어(와 옮긴이의 연금술)에 직접 데이는 수밖에 없는 종류의 책입니다. 이렇게밖에 소개할 수 없는 현실이 원망스럽지만 그래서 더 보석 같은 책이니 기대하셔도 좋습니다.^^

* * *

지은이 /   조애너 월시
픽션과 논픽션의 경계를 흐리는 글과 건조하되 유머러스하며 예사롭지 않은 언어 활용으로 일상의 틈새와 언어의 미끄러짐에서 불거져 나오는 욕망과 증상, 의미와 혼란을 탐구하는 작가. 단편소설과 에세이라는 느슨한 분류로 묶어 낸 저서로는 «Break.Up»(근간), «말의 끝 지점에 남은 세계들»(근간), «현기증»(2015/16), «호텔»(2015), «처녀 불알»(2015)과 «프랙털»(2013)이 있으며 최근 디지털 소설 「씨앗」을 발표하기도 했다. 2014년 여성 작가와 그들 작품에 대한 기성 출판계의 편파성을 바로잡고자 #readwomen2014 해시태그 운동(트위터 ID: @read_women)을 시작했으며 2017년 영국 예술재단으로부터 ‘크리에이티브 논픽션 부문’ 펠로십을 수여받았다. 같은 해 영어로 번역된 작품의 여성 작가 및 해당 작품의 번역가에게 공동 수상하는 ‘워릭 번역 여성 작가상’을 공동 설립했다.

옮긴이 /   이예원
캐나다 토론토에서 태어났으며 서울에서 문학 번역가로 활동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주나 반스의 «나이트우드»(근간), 앨리 스미스의 «호텔 월드», 제니 페이건의 «파놉티콘», 그래픽 노블 «반 고흐», «바늘땀», «늑대 인간» 등 다수가 있다. 현재 황정은의 소설 «계속해보겠습니다»를 영어로 옮기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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