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bject Lessons 3 _ «패스워드»

‘패스워드’의 역사란 곧 인간이 비밀을 만들고 타인의 비밀을 알고 싶어한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릅니다. 미노타우르스의 미궁, 앨런 튜링의 에니그마,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 홍채 인식, 스마트폰의 ‘잠금 해제’ 매커니즘… 이 책은 이 모든 것이 패스워드에 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패스워드는 단순히 몇 자리의 문자 조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알맞게 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억과 해독, 탈취와 방어. 패스워드는 거의 항상 이런 팽팽한 긴장의 무대에 놓여 있었습니다. 더구나 오늘날 프라이버시의 부상은 패스워드의 중요성을 전면화하고 있죠. 지은이는 패스워드의 역사와 의미, 문화적 재현의 변천 양상을 더듬어 가며 이 유서 깊은 암투의 무대 뒤편으로 향합니다. 앗, 빨리 따라오지 않고 뭐하냐고 신호하는 것 안 보이시나요?

우리가 타이틀들을 고를 당시 «패스워드» 원서는 출간되기 전이었고, 그래서 블룸스버리 출판사에 요청해 원고만 먼저 받아볼 수 있었습니다. 출간 전이라 본토 반응을 알 수 없어 고민이 많이 됐던 책이에요. 하지만 우리는 시리즈에 ‘비물질’ 대상을 꼭 하나 넣고 싶었고, 뭣보다 패스워드야말로 매우 가까이에 있지만 성찰의 대상이 되는 일은 드문 오브젝트의 전형인 듯해 매력적으로 느꼈습니다. 그런 고민과 기대 과정을 거쳐 출간을 결정한 책. 제 생각엔 «패스워드»가 ‘오브젝트 레슨스’라는 시리즈와 가장 잘 어울리는 구성과 내용을 갖춘 책인 것 같습니다. 지식과 성찰이 적절히 어우러진 글쓰기의 전형이라고나 할까..🤔 이 책은 패스워드와 무관해보이는 여러 역사/문학 사례가 사실 오늘날 패스워드와 비슷한 목적과 구조를 갖추고 있다고 알려 줍니다. 미노타우로스의 미궁, «햄릿» 첫머리에 나오는 구호, «해리포터» 속 마법, «알리바바» 이야기의 ‘참깨야 열려라'(!)까지. 물론 이 책의 백미는 패스워드라는 오브젝트가 던지는 사회적이고 철학적인 질문이에요. 점점 더 중요해지는 ‘신원 절도'(?) 같은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또 개인을 완전히 식별하고자 하는 패스워드 시스템의 욕망은 우리를 어디로 이끄는 걸까? 유용한 기술 정도로만 이해하곤 하는 패스워드에 담긴 이런 ‘의미’들을 밝히는 게 이 책의 미덕이며, ‘익숙한 대상들의 숨겨진 삶’을 드러낸다는 오브젝트 ‘레슨스’의 취지와도 연결되는 지점입니다.

‘오브젝트 레슨스’ 원서 표지는 책들이 주제삼고 있는 대상을 직접적으로 보여주는 방식을 택해 간명하면서도 매력적인 결과물을 만들어 냈다는 생각이 듭니다. 우리는 이 원서 표지들이 굉장히 마음에 들었지만(정말로!) 플레이타임의 첫 책들인 만큼 우리만의 표지를 만들고 싶은 마음에 한국어판 표지를 새롭게 디자인하기로 결정했습니다. 표지로 그 대상만을 묘사하기보단 대상이 놓여있는 하나의 공간을 만들어내면 어떨까 싶었어요(일종의 미장센?). 처음부터 그렇게 마음먹은 건 아니고 시행 착오를 겪으며 마음을 굳혔는데, 이 컨셉으로 결정하는 데 큰 영향을 미친 게 «패스워드» 시안입니다. «패스워드» 표지에는 패스워드를 요구하는 화면이 보이는 어느 개인적인 공간을 담았는데, 열린 문틈으로 그곳을 들여다보는 듯한 느낌이 들도록 구성했습니다. 신원 확인을 위한 사적인 질문인 패스워드와 그것의 역설적인(?) 노출 가능성을 묘하게 겹쳐놓은 듯 말이에요. 패스워드라고 하면 어쩐지 뻔한 장면만 계속 떠올라서 표지 구상이 쉽지만은 않았는데 결과적으로 나름대로는 뻔하지 않는 장면 연출했다고 자평하고 싶..습니다.. 그..그렇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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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은이 /   마틴 폴 이브
서식스 대학에서 토머스 핀천에 관한 논문으로 박사학위를 받았으며 현재 런던 대학 버크벡 칼리지의 교수로 문학, 기술 그리고 출판을 가르치고 있다. 미국 현대 문학에서 최신 정보 기술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방면에 능통한 그의 글에는 현상의 이면을 꿰뚫고 서로 무관해 보이는 주제들을 연결 짓는 통찰과 위트가 넘친다. 대표적 저서로 «비평을 거부하는 문학: 영문학과 현대 소설의 충돌», «오픈액세스와 인문학: 맥락, 논란 그리고 미래», «토머스 핀천과 철학: 비트겐슈타인, 푸코, 아도르노»가 있다.

옮긴이 /   최원희
컴퓨터공학을 전공했고 호주 멜버른으로 건너가 금융 및 통신, 정부 영역에서 데이터매니지먼트 컨설턴트로 활동하고 있다. 기업의 이윤과 효율성 추구 일변도로 고도화되는 기술 발전의 흐름에 회의를 품고 있으며, 적정기술과 오픈소스를 비롯한 대안적 소프트웨어에 관심이 있다. 그레고리 스미스의 «PostgreSQL 9.0 성능 최적화»를 우리말로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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