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구, 자본주의 리얼리즘, 유토피아

마크 피셔가 블로그에 쓴 글 한 편을 번역해 공유합니다. “축구, 자본주의 리얼리즘, 유토피아”라는 제목을 붙인 이 글은 2010년 7월 6일에 그의 블로그 k-punk에 올라왔고(https://goo.gl/pNJEZQ), 사후 출간된 선집 «K-PUNK» 483~485쪽에 재수록되었습니다. 이 글에서 피셔는 영국의 축구 리그가 포스트포드주의적 자본에 포섭된 후의 이데올로기적 풍경을 묘사합니다. 그는 한 천재 감독의 생애를 통해 축구가 보여 줄 수 있었던 유토피아적 순간과 그것이 몰락해 가는 과정을 짧지만 강렬하게 반추합니다. 그리고 이와 더불어 자본주의에 물든 프로 축구의 세계에서도 유토피아의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음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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축구, 자본주의 리얼리즘, 유토피아

2010년 7월 6일 | 마크 피셔
박진철, 리시올 편집부 옮김

축구와 신자유주의적 반유토피아주의

작가 로빈 카모디는 자신의 라이브저널 페이지에서 다음과 같이 주장했다. “영국 축구는 정확히 신자유주의가 영국 국가에 실행해 왔던 것을 보여 주는 은유다.” 아니 그것은 은유 이상이다. 축구는 신자유주의가 지난 30년 동안 영국의 문화‧사회‧경제에 초래한 전반전인 재구조화 과정의 최전선에 있었다. 신자유주의는 자신이 가장 현실주의적이며 또 유일하게 가능한 현실주의라고 주장했다. 신자유주의는 사회 같은 것은 없고 오직 각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만이 존재할 뿐이기 때문에 유토피아는 불가능하다고 우리에게 말했다. 프리미어 리그보다 이 반유토피아주의를 더 잘 보여 주는 것이 있을까? 가령 여기서 우리는 전제적이며 손댈 수 없는 구단의 최상류층 사람들, 다국적 미디어 복합 기업과 결합된 시너지 효과, 특별히 마음을 사로잡으며 소비되는 선수들, 새 요트를 사듯이 성공을 사들이고 있는 극도로 약탈적인 구단주들 등을 만나게 된다. 경쟁, 착취, 약자들에 대한 절대적인 군림, 엄청나게 부유하며 전 세계에 알려진 유명 선수들이 나이트클럽을 빠져나오는 장면을 담은 파파라치 사진들, 새로 벌어들인 돈에 대한 과시 등은 축구가 이제 반평등을 내세우는 니체주의적 전투가 되어 버렸음을 보여 준다. 유토피아는 잊어라. 대신 (아직 젊다면) 당신도 나중에 이처럼 될 수 있다고, 휘황찬란한 저택을 소유하고 멋진 아내나 애인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고 꿈꿔라. 만약 저 유명한 명품 부츠를 신기에 너무 늙었다면 열등하고 무능한 삶에 익숙해져라. 그리고 리얼리티 텔레비전 프로그램이 알려 주는 변신이나 복권 당첨이나 꿈꿔라……

그런데 프리미어 리그는 종종 결과가 아니라 원인처럼 간주된다. 자본주의에 대한 포괄적이고 일관된 비판을 결여한 채 선수들의 연봉 폭등에 대해 푸념해 봐야 아무 의미도 없다. 어쨌거나 선수들의 연봉은 재분배에 쓰이는 공적 자금과는 다른 것이다. 폭증하고 있는 선수들의 연봉은 지난해 은행 위기가 있기 전까지 신성불가침의 영역으로 간주된 바로 그 시장 동학의 결과다. 어떤 축구 선수가 ‘그만큼 받을 자격이 없는’ 연봉을 받고 있다고 공격하는 말을 들을 때 우리는 노동 계급에 적대적인 원한 감정─노동 계급 자신의 자기 증오적인 요소들에 의해 공유되는─을 감지할 수 있다. 그러나 선수들의 높은 연봉과 값비싼 관람료 등의 이 모든 것은 축구가 포스트포드주의적 자본에 완전히 포섭된 결과다. 그런데 사태가 이와 다를 수도 있었을까? 또 다른 길이 있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축구의 잃어버린 유토피아 (노팅엄 포스레스의 경우)

던컨 해밀턴이 쓴 브라이언 클러프[1]의 전기에는 가슴 아린 순간이 등장한다(이는 데이비드 피스의 전기 소설인 «댐드 유나이티드»[2]에서도 이야기되고 있다). 클러프와 (“선박 제조 노동자들이 선박 소유주만큼 돈을 벌기를 소망했던”) 피터 테일러가 해럴드 윌슨[3]의 연설을 들으러 갔다가, 프롤레타리아트를 위한 새로운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으로 흥분한 구노동당의 낙관주의 열기에 잔뜩 고무되어 돌아오는 장면이다. 클러프는 해밀턴에게 이렇게 회고한다. “당신도 아마 윌슨의 말에서 변화에 대한 열정을 느낄 수 있었을 겁니다. 우리는 불타는 마음을 간직한 채 테일러의 집으로 돌아왔어요.” 이는 드라마 <북부의 우리 친구들: 미들랜드 편>[4]에 등장하는 장면과 비슷하다. 클러프와 테일러가 고대하던 미래는 물론 도착하지 않았다. 해밀턴의 책에는 이와 짝을 이루는 또 다른 마음 아픈 장면이 등장한다. 노팅엄 포레스트 팀이 유러피언 컵 대회에서 두 번째로 우승한 후 피터 테일러가 이것은 단지 시작일 뿐이라고 선언하는 장면이다. 사실 이후에 팀이 맞이한 것은 성적 부진과 지나치게 비싼 선수들의 몸값, 쇠퇴와 평범함, 클러프와 테일러 간 불안한 파트너십의 최종적인 와해, 테일러가 죽을 때까지 적대적으로 남은 두 사람의 분열 등이었다. 누가 우리의 가장 위대한 승리의 순간이 이미 지나갔음을 받아들일 수 있겠는가? 또 받아들인다 한들 삶이 얼마나 견딜 만해지겠는가?

멋진 신세계가 노동 계급을 기다리지는 않았을지라도 클러프 개인에게는 도달했다. 클러프의 가장 위대한 성공 시기는 전후 프롤레타리아의 집단주의가 노동 계급의 새로운 자기 확신을 이끄는 전위의 역할로 이어지지 않고 퇴조한 시기와 일치했다. 클러프는 때때로 ‘샴페인 사회주의자’라는 조롱을 받았는데 좌파가 되는 것과 성공 사이에서 아무런 모순도 보지 못했기 때문이다. 가난하게 태어난 많은 사람처럼 클러프 역시 자기가 빈곤에서 완전히 벗어났다고는 믿지 못했다. 저 모든 텔레비전 출연, 대필代筆 칼럼과 거짓 소문 등은 여기서 유래했다. «가디언»에서 «댐드 유나이티드»를 논평한 크리스 페티트는 클러프가 “대처의 영국에 도래할 곤경의 상당수를 구현하고 있었으며, 그의 생애는 자기 주장과 파트너십 사이, 청렴함과 술 사이, 금융적 불안정성과 축구가 기업 인수 이상의 것이라는 믿음 사이의 항상적인 갈등으로 가득했다”고 주장했다. 프리미어 리그는 이를 끝장냈는데, 무너져 가던 클러프의 세계─노동 계급 출신 감독들이 거드름 피우는 귀족 원로들보다 한 수 앞서고 그들을 능가할 수 있는 세계, 성공할 것 같지 않은 지역 구단들이 인정받는 거대 구단들을 능가할 수 있는 세계─를 최종적으로 파괴했던 것이다. 클러프의 최종 몰락은 정확히 제 시간에 도착했다. 클러프, 책임자였던 이 병든 리어 왕과 더불어 포레스트 팀은 프리미어 리그 첫 시즌이었던 1993년 말미에 강등되었다.

 

한 시대의 종언

2009년 5월 유럽 챔피언스 리그 결승에서 화려한 바르셀로나 팀이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를 물리쳤다. 맨체스터 유나이티드는 현대 축구의 냉혹한 자본주의 현실 원칙을 대표하는 구단이 되었다. 이미 성공한 자와 부유한 자만이 이길 수 있다는 것이다. 팬들은 이제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브라이언 클러프 같은 천재 감독에 의해 부활하는 것보다, 따분해진 부호들이 지갑을 열어 팀을 구원하기를 꿈꾼다. 잘 알려져 있듯이 바르셀로나는 유니폼 스폰서를 받는 대신 자신들의 셔츠에 ‘유니세프’ 로고를 새겨 놓고 있다.[5] 맨체스터 유나이티드의 유니폼 스폰서는 금융 위기의 핵심에 있는 보험 회사인 AIG(«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AIG의 “촉수는 경제의 모든 부분에 뻗어 있다”)다. 신자유주의의 반유토피아는 은행 긴급 구제와 더불어 와해되었다. 비록 그것이 계속해서 사회 현실을 지배하는 기초적인 요소로서 언데드 형태로 살아남는다고 할지라도 말이다.

회원들이 소유하고 통제하는 비영리 협회를 표방하는 바르셀로나의 슬로건은 ‘클럽 그 이상’이다. 바르셀로나는 재단 및 교육 활동을 통해 축구가 유토피아 사회에서 어떻게 작용할지를 보여 주는 힌트를 주고 있는가? 프롤레타리아의 예술성과 팀워크의 아름다움, 그리고 경쟁까지. 물론 서로를 잡아먹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전투와는 다른 방식의 경쟁. 확실히 이와 같은 무언가를 포함하지 않는 유토피아는 있을 수 없다.

 

[1]  1935~2004, 영국 축구 선수 출신으로 60년대부터 피터 테일러와 파트너를 이루며 여러 클럽의 감독을 맡았다. 특히 더비 카운티와 노팅엄 포레스트(1975~1993)에서 큰 성공을 거두며 영국 축구의 가장 위대한 감독으로 여겨지고 있다. 평생 사회주의자를 자처하며 사회 문제에 대해서도 거침없이 발언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2]  브라이언 클러프가 짧은 기간 리즈 유나이티드의 감독을 맡았던 시기를 다룬 소설.
[3] 영국 노동당 정치인. 1964~1970년과 1974~1976년에 총리를 지냈다]
[4]  1996년에 방영된 BBC 텔레비전 드라마. 90년대의 가장 뛰어난 드라마로 평가받고 있다. 1964년부터 1995년에 이르기까지 영국 사회의 시대와 정치를 배경으로 뉴캐슬 출신의 친구 네 명의 이야기를 보여 준다.
[5]  바르셀로나는 계속되는 적자로 2013년에 100년이 넘는 전통을 깨고 유니폼 광고 계약을 체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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