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장소의 인류학자, 노년을 말하다

«나이 없는 시간» 옮긴이 후기
비장소의 인류학자, 노년을 말하다

<꽃보다 할배> 시리즈는 2013년 첫 방송 이래 지난 2018년까지도 시즌을 이어 가며 방송 중인 인기 예능 프로그램이다. 평균 연령이 70대인 ‘할배’들의 해외 배낭여행이라는 독특한 포맷과 더불어, 인생의 정점을 한참 지난 노년의 배우들이 보여 준 삶에 대한 긍정적인 태도로 많은 시청자의 호응을 얻었다. 이를테면 첫 여행지였던 프랑스에서 배우 신구는 혼자 유럽을 여행 중인 젊은 학생을 만나 “존경스럽습니다”라는 인사로 진심을 전했고, 팔순을 훌쩍 넘긴 배우 이순재는 방문하는 여행지마다 학구열을 불태우며 하나라도 더 보고 배우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행지의 문화와 사람을 존중하고 여행 도중 만난 젊은이를 친근하게 반기는 이들의 모습에 동년배인 노년층뿐 아니라 젊은 시청자 역시 호평을 보냈다. 이처럼 세대를 아우르는 좋은 반응에는, 젊은 세대와 소통이 불가능한 존재로까지 여겨지기에 이른 최근 한국 사회의 일부 노인과 상반되는 면모를 텔레비전 속 등장인물들이 보여 주었다는 사실도 한몫했을 것이다. 많은 면에서 이들의 행동은 우리가 현실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이 든 꼰대’가 아닌, ‘나도 저렇게 나이가 들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게끔 만드는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시청자들이 긍정적으로 본 건, 시간이라는 거역할 수 없는 흐름을 거스르려 하기보다는, 자신의 나이에 순응하며 여행지에서 보고 듣는 것들을 통해 자신의 지나간 인생을 반추하는 그들의 태도였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자연스러운 모습으로 노년에 도달하는 건 사실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현대 사회에서는 일부러 노력하지 않는 이상 자신보다 나이 어린 이들로부터 기피 대상이 되기 십상인 것이 노년의 삶이다. 젊은 시절과는 다를 수밖에 없는 현재의 신체와 정신에 대한 끊임없는 자기 성찰의 끝에야 도달할 수 있는 게 그런 이상적인 노년 아닐까. 이 책 «나이 없는 시간: 나이 듦과 자기의 민족지»Une ethnologie de soi: Le temps sans âge는 이처럼 나이 든다는 사실의 의미, 즉 노화와 노년의 본질에 관한 노老학자의 성찰을 담고 있다.
인문·사회과학 분야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인류학자 마르크 오제의 이름은 들어보지 못했어도 ‘비장소’라는 개념은 접한 적이 있을 것이다. ‘비장소’는 최근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비장소: 초근대성의 인류학 입문»Non-lieux: Introduction à une anthropologie de la surmodernité, 1992[1]에서 오제가 제안한 용어로, 전통적인 장소성의 변화 혹은 상실로 등장한 새로운 형태의 공간성을 설명하기 위한 개념이다. 오제에 따르면 사람들 사이의 관계성, 장소에 깃든 역사성, 준거를 제공하는 고유한 정체성 등의 성질을 지닌 ‘인류학적 장소’anthropological place와 대비되는 새로운 공간 논리가 작동하는 곳이 바로 ‘비장소’다. 해당 공간의 이용자들이 공유하는 익명성을 바탕으로 이미지와 기호 등의 매개가 지배하는 비장소는 현대 사회에서 점차 그 비중이 증가하고 있는 소비와 이동을 위한 공간을 주로 지칭한다. 대표적인 예에 해당하는 것이 국제선 공항과 고속도로, 대형 쇼핑몰, 호텔, 미디어 네트워크 등이다. 비장소 개념을 활용한 이 같은 분석은 인류학을 넘어 다양한 학문 분야에 영향을 주며 오제에게 세계적인 명성을 안겼다.
얼핏 보기에 공간성의 범주에 속하는 비장소에 대한 논의로 유명한 인류학자가 시간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노년에 대해 논한다는 게 다소 어색할 수도 있을 듯하다. 하지만 우리의 생활 세계에 관한 경험에서 공간과 시간을 분리해 생각할 수 없음을 떠올리면 이 조합이 그렇게 이상한 것만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을 수 있다. 실제로 이 책의 내용은 노년을 드러내는 지표인 ‘나이’보다는 노년에 도달하는 과정에 해당하는 ‘시간’에 더 초점을 맞춘다. 프랑스어판 원서 제목의 부제이자 한국어판 제목으로 정한 ‘나이 없는 시간’Le temps sans âge은 이 같은 책의 내용을 잘 드러내는 표현이다. 책의 첫 장에서 오제는 “시간은 자유를 뜻하지만 나이는 제약을 뜻한다”고 강조하는데, 이와 관련해 그가 드는 사례는 다름 아닌 ‘고양이’다. 고양이는 나이에 구속되지 않는, 인간과 다른 시간 감각을 지니고서 살아간다는 것이다. 얼마 전 한국에서도 한 텔레비전 드라마와 인터넷 등을 통해 고양이에게는 세월의 흐름에 관한 인식을 관장하는 뇌 부위인 신피질neocortex이 없기에 시간성에 대한 관념도 없다는 이야기가 나돈 적이 있다. 진화 과정에서 신피질이 발달해 과거와 미래에 대한 관념에 사로잡히게 된 인간과 달리, 고양이는 오직 현재라는 시간대에 갇힌 것과 같은 삶을 살아간다는 것이다.
사실 이는 잘못된 과학적 사실이 대중적으로 널리 알려져 소비된 또 하나의 사례다. 비록 인간보다 비중이 작긴 하지만 고양이 역시 신피질을 가지고 있으며, 신피질의 기능은 시간 감각뿐 아니라 지각과 인식, 공간 감각 등과 관련되어 있다고 한다.[2] 여기서 흥미로운 건 고양이가 실제로 신피질을 가지고 있느냐 여부보다도 고양이가 시간 관념이 없다는 언설에 의외로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는 사실 자체다. 특정한 뇌 부위가 없기에 지나간 삶에 대한 회한도 느끼지 않고 미래에 대한 걱정과 두려움도 겪지 않는다는 아이러니가 공감을 얻은 현상은 사람들이 시간의 흐름이 가하는 압박에 그만큼 시달리고 있다는 반증이기도 할 것이다. 여기에 더해 실제로 고양이를 키우는 ‘집사’들의 눈에는 자신의 고양이가 과거와 미래에 얽매이지 않고 살아가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도 한몫했을 터이지만 말이다.
이 책의 첫 장 제목이기도 한 ‘고양이의 지혜’는 바로 그런 고양이의 시간 감각이 우리 인간의 노년에 어떤 메시지를 전할 수 있는지에 관한 은유다. 오제에 따르면 인간의 삶에서 상상력의 원료가 되는 시간과 달리, 나이는 세월의 흐름을 한 방향으로만 보게 만들면서 우리에게 제약을 가한다. 그러니까 나이에 관한 인식은 추상적 관념인 시간을 시간 그 자체로가 아니라 과거로부터 미래에 이르는 선형적인 흐름 안에서만 이해하게 만들어 인간을 그 속 어딘가로 밀어 넣는다. 이런 인식하에 우리는 각각의 연령대에 맞추어 특정한 사회적 의무나 역할을 스스로에게 부과하면서 계속 나이에 얽매일 수밖에 없다. 반면 세월의 흐름과 그에 따른 자연스러운 노화에 적응하면서 나이의 제약으로부터 벗어나 시간이 주는 자유를 받아들이는 것이 고양이의 삶이라는 은유를 통해 배울 수 있는 지혜라는 것이다.

책 전반을 통틀어 오제는 고대 로마의 문필가 키케로부터 현대 일본의 소설가 무라카미 하루키에 이르기까지 서로 다른 시대와 문화를 넘나드는 폭넓은 독서 경험에 근거해 노년과 시간성에 관한 성찰을 제시한다. 2000년 전 키케로가 남긴 노년론에서 시간의 비가역성을 거슬러 정신적·신체적 쇠락을 부정하고자 하는 시도가 지닌 모순을 간파해 내는가 하면,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로부터는 평온한 일상에 균열을 초래하는 향수鄕愁의 힘을 읽어 낸다. 책에서 가장 많은 분량을 차지하는 장인 <자서전과 자기의 민족지>에서는 미셸 레리스와 시몬 드 보부아르, 슈테판 츠바이크, 장-자크 루소 등의 작가가 남긴 작품에 등장하는 시간과 나이의 굴절과 경합을 세밀하게 살핀다. 그는 문학 장르인 동시에 인류학적 탐구 대상으로서의 자서전을 검토해 나이가 삶에 부과하는 수동성에 맞서 시간을 향유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삶의 능동성을 대조시킨다. 그 핵심에는 자서전이라는 장르에서 시간과 나이 두 요소가 자아내는 ‘이중의 템포’가 거시적인 역사와 미시적인 개인의 경험이라는 또 다른 이중의 층위에서 반복되고, 그로 인해 독자들이 타인의 서사인 자서전을 읽으며 스스로의 인생을 재발견하게 된다는 통찰이 놓여 있다.
이렇듯 본문에서 활용하는 다양한 저작이 그의 간접 경험에서 비롯한 자료라면, 그와 함께 본문의 주요 자료로 등장하는 것이 바로 오제 자신의 직접 경험이다. 앞서 언급한 ‘고양이 집사’로서의 경험뿐 아니라 인류학자로서 코트디부아르에서 진행한 현장 연구, 그리고 프랑스 지하철에서 자리를 양보받은 경험이 안긴 실망감까지 그가 직접 겪은 사례들이 책 속에서 다양한 형태로 제시된다. 이처럼 지은이 본인의 직·간접 경험을 넘나들며 노년이라는 사회문화적 현상에 관한 성찰을 제공하는 서술은 이 책의 원제에서도 드러나는 연구 방법론인 ‘자기의 민족학’une ethnologie de soi 혹은 ‘자기 민족지’autoethnographie를 바탕으로 한 기법이다. 제목에 쓰인 용어인 ethnologie(영어로는 ethnology), 즉 ‘민족학’은 넓은 의미에서 인류학의 하위 분야 중 하나로, 근대적인 분과 학문으로서 인류학이 태동하던 19세기 이래 서로 다른 민족 집단이 지닌 문화적 속성 등에 관한 연구를 가리키는 데 사용되어 왔다. 이에 따라 프랑스어판 원제를 옮긴다면 ‘자기의 민족학’이라 해야겠지만 한국어판에서는 ‘자기의 민족지’로 옮겨 부제로 삼았다. 책의 실제 내용이 담은 의미를 전달하기에는 한국어로 옮겼을 때 다소 딱딱한 어감을 주는 ‘학’學보다 결과물로서의 글에 해당하는 ‘민족지’라는 표현이 더 낫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민족지’民族誌라고 옮긴 ethnography는 국내 학계에서 다양한 번역어가 쓰이는 용어다. 본래 ethnography는 ‘민족’이나 ‘종족’을 뜻하는 그리스어 ethnos와 ‘기록’을 가리키는 그리스어 graphia가 합쳐져 탄생한 단어로, “민족을 비롯한 특정 인간 집단의 삶을 생생하게 기술한 글”을 가리킨다. 그런데 인류학의 연구 대상이 전통적인 의미의 ‘민족’에 국한되는 건 아니라는 지적에 따라 기존의 ‘민족지’ 외에도 ‘민속지’나 ‘문화기술지’ 등 다른 번역어가 사용되는 경우도 많다. 하지만 이런 대안들 역시 각각 또 다른 오해를 불러일으킬 수 있기에 번역어로서 한계를 갖고 있는 게 사실이다.[3] 그리하여 이 책에서는 기존의 번역어 중 가장 널리 쓰여 온 동시에 오제가 다룬 폭넓은 분석과 주제를 아우르기에 적합하다고 판단한 ‘민족지’라는 용어를 사용하기로 했다.
‘자기의 민족학’의 결과물에 해당하는 자기 민족지는 “연구자 개인의 경험을 여러 실험적 양식을 통해 생생하게 기술함으로써 일정한 자기 성찰과 이론적・문화적 해석에 도달하려는 방법론적 시도”[4]를 가리킨다. 오제의 대표작인 «비장소»를 한국어로 옮긴 이상길에 의하면 연구자의 개인적 경험을 강조하는 자기 민족지는 특히 자문화 연구에서 인류학의 주요 연구 대상인 타자에 다가서는 효율적인 수단으로 여겨진다. 인류학자 자신을 연구 대상으로서의 타자, 즉 자문화의 토착민이자 핵심 정보원으로 간주함으로써 연구 대상의 인류학적 차원을 그것이 위치 지어지는 집합적 체계 및 연구자의 개인적 경험과의 관련 속에서 심층적으로 규명하고 해석할 수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5] 하지만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되는 것이 자기 민족지 기법의 한계와 위험성이다. 이에 이상길은 인류학자 자신이 연구 대상 및 독자층과 동일한 문화를 공유하며 해당 문화에 대한 최적의 정보원을 자처하며 민족지를 쓸 때 미묘한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음을 지적한다. 인류학 연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연구 대상과의 복합적인 상호작용이 생략되거나 연구자 자신을 중심으로 압축됨으로써 민족지 쓰기가 인류학자 개인의 경험을 쉽게 일반화하거나 타자들에 투사하는 수준에 머물 위험성이 커진다는 것이다.[6]
나 역시 인류학의 연구 결과물이자 핵심에 해당하는 민족지의 현재와 미래, 그리고 민족지가 제공하는 분석의 정확도와 효율성에 대해 고민 중인 인류학자로서 이러한 지적에 깊이 공감한다. 특히 점차 많은 인류학자가 스스로 익숙하고 그에 대한 사전 지식 또한 충분히 갖추고 있는 자기 자신의 문화에 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현실에서, 자기 민족지의 강점과 효용 그리고 한계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많은 고민과 논의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그 점에서 이 책을 노년을 다룬 한 편의 글을 넘어 자기 민족지의 한 전범으로 재해석하고 분석할 필요도 있다. 노년과 시간성에 관한 자기 민족지로서 이 책이 저자의 목적을 얼마만큼 충실히 이루었는지는 독자 여러분께서도 판단해 보셨으면 한다.

이 같은 학술적 함의를 지니고 있기도 하고 오제의 글쓰기 스타일이 유려한 동시에 암시적이기도 해서 쉽게 읽을 수 있는 종류의 책은 아니다. 가볍게 읽고 넘어가기보다는 한 문장 한 문장 찬찬히 읽어 가면서(때로는 다시 앞으로 돌아가 이미 읽은 부분을 되돌아보기도 하면서) 한참을 곱씹어야 지은이의 의중을 파악하게 되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오제가 쓰는 문장을 봐도 직관적으로 내용을 전달하기보다는 독자의 자기 성찰을 유도해 자신이 제시하고자 하는 노년과 시간이라는 철학적 주제로 이끄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한국에는 다소 낯선, 프랑스 사회의 맥락에서 이해 가능한 인용과 비유가 다수라는 점도 국내 독자가 읽기에 다소 걸림돌이 될 듯하다. 프랑스를 비롯한 서구와 달리 국내에서는 지명도가 그렇게까지 높지 않은 작품들의 인용 역시 상당히 많다. 이런저런 이유로 짧은 분량임에도 이 책의 내용을 한국어로 옮기는 과정이 쉽지 않았음을 고백해 두어야 할 듯싶다. 솔직한 심정으로는 한국 사회의 내부자인 옮긴이 입장에서 오제의 자기 민족지 기법을 재전유해 한국 독자들에게 더 익숙한 사례나 작품 인용을 함께 소개하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몇 번이나 들 정도였다. 대신 필요하다고 판단한 부분에는 최대한 옮긴이 주를 넣어 부연했는데, 독자 여러분의 독서 흐름에 방해가 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번역은 프랑스어판을 중심으로 하되 옮긴이에게 조금 더 익숙한 언어인 영어판을 참고해 가며 진행했다. 처음 번역을 제안받은 뒤, 비장소 개념에 관한 논문과 해설서를 한 편씩 냈다는 자신감만 믿고 호기롭게 번역을 맡았다가 시간만 너무 많이 걸려 출판사에 누가 된 듯하다. 번역 과정과 출간에 이르기까지 인내를 갖고 기다려 주고, 특히 번역이라는 지난한 작업을 처음 맡은 옮긴이의 부족함을 꼼꼼한 검토와 교정으로 채워 준 플레이타임 출판사에 감사드린다. 아울러 번역이 막힐 때마다 옆에서 도움을 준 파트너 이인혜 님에게도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물론 번역상의 오류는 전적으로 옮긴이의 책임이다.
전체 열한 개 장으로 이루어진 내용을 한국어로 옮기며 개인적으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구절이 있다. <사물의 나이와 타인의 나이>라는 장의 말미에 “나이가 들지 않는 책이란 독자로 하여금 항상 새로운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다는 기대를 품게 만드는 책이다”라는 문장이 등장한다. 책이라는 사물의 가치가 예전 같지 않아진 요즘, 책이 지녀야 할 가치를 잘 보여 주는 내용이라 생각한다. 노년이라는, 인간이라면 피할 수 없는 보편적 주제에 관한 사유를 전개하는 이 저작이 그런 책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1]  마르크 오제, «비장소: 초근대성의 인류학 입문», 이상길·이윤영 옮김, 아카넷, 2017.
[2]  반려동물 뉴스 «노트펫»(www.notepet.co.kr) 2018년 9월 12일 기사, <[양쌤의 수의학 이야기] 고양이에겐 오늘이 어제와 똑같다고?>, https://www.notepet.co.kr/news/article/article_view/?groupCode=AB400&idx=13219.
[3]  이용숙·이수정·정진웅·한경구·황익주, «인류학 민족지 연구 어떻게 할 것인가», 일조각, 2012, 16~17쪽.
[4]  오제, «비장소», 54쪽 옮긴이 주 25번.
[5]  이상길, <옮긴이 해제: 따로 또 같이, 비장소에서 살아가기>, «비장소», 198쪽.
[6]  같은 글, 같은 책, 203~20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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