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흥 문화론: 일본적 창조의 계보»를 읽고

독립연구자 김정복 선생님의 «부흥 문화론: 일본적 창조의 계보» 서평을 공개합니다.

김정복 선생님은 후쿠시마 료타의 첫 단행본 «신화가 생각한다: 네트워크 사회의 문화론» 한국어판의 옮긴이로, 저희 역시 이 한국어판을 통해 후쿠시마 료타라는 비평가를 처음 알게 되었기 때문에 이 글이 한층 각별하게 느껴집니다.

이 글은 2000년대 이후 일본 비평계의 전개 속에서 후쿠시마 료타라는 비평가가 차지하는 위상을 압축적으로 해설해 주며, 전작인 «신화가 생각한다»와 «부흥 문화론» 사이에 존재하는 단층(그리고 공유된 문제의식), 제2차 세계대전을 중심 축으로 전개된 일본 문화론의 흐름에 비춘 이 책의 의미를 간명히 짚습니다.

나아가 이 글은 2011년 3·11이라는 대재난 이후 일본 문화계에서 대두된 ‘부흥’의 과제에 이 영민한 비평가가 어떤 의도와 전략으로 개입하고자 했는지를 상상해 보게 만들기도 합니다. 코로나(COVID-19)로 촉발된 전 세계적 규모의 재난 속에서 «부흥 문화론»이 우리에게 어떤 시사점을 줄 수 있을지, 이 서평과 함께 생각해 보시길 권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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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흥 문화론: 일본적 창조의 계보»를 읽고

김정복(독립연구자)

2010년 «신화가 생각한다: 네트워크 사회의 문화론»을 통해, 신화를 ‘시스템’의 작동 원리로 파악하는 사유 방식으로 네트워크 시대의 새로운 신화론을 제시했던 후쿠시마 료타(1981~)의 두 번째 역작, «부흥 문화론: 일본적 창조의 계보»(2013) 한국어판이 2020년 2월 출간되었다. 일본 인문학계의 대표적 신화 연구 이론가인 나카자와 신이치中沢新一(1950~)가 예술인류학, 신화인류학 등 융합적 상상력을 주창했다면, 2000년대 네트워크 문화를 기반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한 후쿠시마 료타는 인터넷 커뮤니티, 창작 콘텐츠를 사회학적 분석 방법론으로 해석한 디지털 세대의 신화사회학으로 2000년대 신화 연구 방법론의 인식론적 전회를 보여 줬다. 2013년 산토리학예상을 수상하는 등 비평가와 학술적 저자로서의 역량을 갱신하고 있는 그의 두 번째 저작인 «부흥 문화론»이 2020년 초 COVID-19 팬데믹 시국에 도착한 것은 출판 마케팅 관점에서는 좋은 타이밍이 아닌 듯싶다.
그러나 다른 한편 역병 이후 우리의 삶과 상상력의 변화를 생각할 때, 하나의 참조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 독자들에게 권하고 싶은 책이기도 하다.

2000년대 일본 비평계는 인터넷을 기반으로 정보환경론과 서브컬처 비평을 주도한 1975~1980년대생 논자들이 대거 등장해, 1980~1990년대 논단의 아카데믹한 논제와는 달리, 서브컬처를 비평 담론의 주요 주제로 부상시켰다. 그리고 2010년대 접어들어 매체 환경의 변화와 함께 신진 논자들의 비평적 입지가 달라지거나 활동이 침체되는 등 활동 양상이 변화된 사례가 적지 않다. 가령 정보환경론과 미디어론으로 활발한 비평 활동을 했던 하마노 사토시濱野智史(1980~)는 아이돌 그룹 프로듀서 활동에 전념하며 서브컬처 평단에서 사라졌다. 국내에는 «중국화하는 일본»으로 소개된 요나하 준與那覇潤(1979~)은 아카데믹한 강단에서 활동했지만 2018년 ‘역사학자 폐업’을 선언하고서 독립연구자로 활동 방식을 바꿨다. 한데 2004년 비평 활동을 시작한 후쿠시마 료타는 마치 제로년대를 지렛대 삼아 2020년대로 건너올 채비를 한 듯, 서브컬처 비평과 중국 문학사, 일본 문학사를 통섭적으로 주파하며 독자적인 영역을 한층 확장하는 행보를 보여 주고 있다. 교토에서 태어나 박사 과정까지 교토에서 마친 후쿠시마는 2015년부터 릿쿄 대학에 자리를 잡으면서 교토에서 도쿄로 활동 근거지를 옮겼다. 대학에 자리를 잡고 나면 더 학술적인 논고나 저술에 집중하기 마련인데, 이후로도 후쿠시마는 비평 플랫폼 ‘플래닛’PLANETS에 서브컬처 비평을 연재하며 «울트라맨과 전후 서브컬처의 풍경»(2018)을 출간했다. 자신의 전문 영역인 중국 문학, 일본 문학과 서브컬처 비평을 가로지르는 영역 횡단은 물론, 중국과 타이완, 일본 사이의 문화 커넥터로서 외부의 시선으로 일본을 바라볼 수 있는 논자의 위치를 확보하고 있는 후쿠시마의 시각이 2020년대 들어 어떠한 방향으로 전개될지 흥미로운 이유다.

«부흥 문화론»은 2011년 3.11 이후 일본 사회, 문화계를 휘감은 ‘부흥’, ‘재건’이라는 사회적 공론과 연동되어 있다. 3.11 대지진과 후쿠시마 제1원자력발전소 사고 이후, 일본 사회와 문화예술계는 재해로부터의 ‘부흥’을 당면 과제로 삼아 창작과 저작, 공연 예술 등 여러 방면에서 다양한 노력을 전개했다. 해외 미술계에 저팬팝을 발신해 온 무라카미 다카시村上隆(1962~)는 에도 시대 후기 대지진 직후에 그려진 가노 가즈노부狩野一信(1816~1863)의 <오백나한도>에 착상해 총 100m에 달하는 거대 벽화 <오백나한도>를 집단 창작하며 재난을 잊지 말자는 메멘토 모리(Memento mori)의 의미를 담았다. 아즈마 히로키東浩紀(1971~)는 2012년 잡지 «사상지도β» 특집으로 ‘일본 2.0’ 프로젝트를 제안하며 신일본국헌법 개정안에 대해 각계 각층 지식인들의 견해를 모았고, «후쿠시마 제1원전 관광지화 계획»을 출간했다. 사와라기 노이椹木野衣(1962~)는 일본 열도의 지질학적인 조건을 바탕으로 일본의 미술을 재고하는 연재 평론을 2014년부터 2016년까지 «미술 수첩»美術手帳에 연재했으며, 이를 보완해 2017년 출간한 «진미술론»震美術論으로 2018년 예술선장 문무과학대신상을 수상했다.
이 책에서 그는 서구 미술사가 무언가를 쌓아올리는 건축적인 사유의 산물이라면, 일본미술사는 그 지정학적 조건에 입각해 보았을 때 재난 위에 중첩된 순환적이고 반복적인 재생의 결과물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지진이나 재난을 다룬 일본 작가와 작품들에 미술사적인 맥락에서 고유한 가치를 부여하였다. 일본의 재난 미술 작품들을 일본 미술사의 맥락 안에 위치시킴으로써 서구 미술사와는 다른, 일본 현대 미술사의 특수성을 자리매김한 것이다.

첫 번째 저작 «신화가 생각한다»와 두 번째 저작 «부흥 문화론» 사이에, 3.11 대지진을 기점으로 큰 단층이 생겼다. 하지만 두 저작은 ‘우리가 살아가는 오늘의 시공간을 인식하는 데 기존의 세계관이 여전히 유효한가’라는 세계관에 대한 통렬한 질문을 공유한다. «부흥 문화론»의 「서장」에서 후쿠시마는 선행 부흥 문화론으로서 야마자키 마사카즈山崎正和(1934~, 평론가/극작가), 일본사가 하야시야 다쓰사부로林屋辰三郎(1914~1998, 역사학자/문화사가)의 견해를 주로 참조했음을 밝힌다. 야마자키의 관점이 전쟁이나 재액 후의 부흥을 강조했다면 하야시야의 관점은 고대의 문화, 예술, 정치 시스템의 부흥을 주장했는데, 후쿠시마는 전자의 입장에 무게를 두고서 고대 문학부터 현대 서브컬처까지의 영역을 아우른다. 그는 전쟁이나 재난 체험의 역사적 패턴을 추출해, 재난으로부터 다시 일어서는 부흥기에 등장했던 창조적인 인물과 그 창작품이 재난 이전과 이후를 어떻게 재배치했는지의 문제의식을 중심으로 문화 환경 시스템의 변화를 추적한다. 풍토적 조건 탓에 일본에서는 고대부터 현재까지 끊임없이 크고 작은 지진이 발생했지만, 통상적으로 일본 문화를 표상하는 것은 ‘와비사비’わびさび, ‘무상관’無常觀 같은 전통적인 미의식이다. 후쿠시마는 복잡한 오늘의 세계가 던지는 새로운 과제와 대면할 수 있게 해 주는 새로운 가치 체계를 설계하고자 ‘부흥 문화’를 주축으로 일본 문학사를 고쳐 쓴다. 이 점에서 사와라기 노이가 «진미술론»으로 일본 미술사를 다시 쓴 입장과 비교해 볼 만하다.

일본 문화론은 크게 제2차 세계대전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다. 전전戰前, 즉 외래 문화의 영향을 받기 이전에는 민속학국학/민속학의 입장에서 일본 문화를 정의하려는 시도가 주를 이뤘다. 대표적인 예로 국학자 모토오리 노리나가本居宣長(1730~1801)의 모노노아와레もののあわれ론과 야마토고코로大和心, 민속학자 야나기다 구니오柳田國男(1875~1962)의 민속학 등이 있다. 철학자 구키 슈조九鬼周造가 쓴 «이키いき의 구조»(1930)는 요염함(교태), 의기(기개), 체념 등을 일본인의 정신적인 구조로 파악했다. 소설가 다니자키 준이치로谷崎潤一郞(1886~1965)는 «음예예찬»陰翳礼讃(1933)에서 미국과 비교해 일본적인 ‘음예’ 문화, 즉 일본 미학에 흐르는 어두운 음영을 일본적인 정서로 예찬했다.

한편 전후 일본 문화론의 선구적 계기를 제공한 와쓰지 데쓰로和辻哲朗(1889~1960)의 «풍토: 인간학적 고찰»(1937/1967)에서는 인간의 정신 구조에 새겨진 자기 이해 방식을 몬순, 사막, 목장 세 유형으로 분류하고, 세계 각국의 민족, 문화, 사회의 특질을 다루면서 일본인은 몬순형 풍토에 적응하는 수동적이고 참을성이 내면화된 국민성을 갖게 되었다고 분석했다. 또한 민속학자 우메사와 다다오梅棹忠夫(1920~2010)는 «문명의 생태사관 서설»(1967/1998)에서 일본을 포함한 선진국을 ‘제1지역’, 사회주의 국가와 개발 도상국을 ‘제2지역’으로 구분하며 메이지기 이후 일본 근대 문명과 서구 근대 문명의 관계를 평행 진화로 보는 견해를 주장했다. 그런가 하면 일본 문화를 인도, 유럽, 중국 등 다른 문화권의 영향을 받은 입장에서 분석한 문화론도 있다. 대표적인 예로 우치다 다쓰루内田樹(1950~)는 «일본 변경론»에서 와쓰지 데쓰로의 ‘풍토’론과 우메사오 다다오의 ‘생태사관’을 참조해 일본 고대 문명이 유라시아의 변방이라는 지역성 특성으로 인해 주변의 좋은 모델을 재빨리 수용해 고도의 문명을 이룰 수 있었다고 주장했다. 이후 환경 결정론적 사고방식에 기반한 일본 문화론을 비판하는 이론들이 다양하게 전개되었다. 문화인류학자 아오키 다모쓰青木保(1938~)의 «‘일본 문화론’의 변용: 전후 일본의 문화와 정체성»(1990/1999)에서는 1945년 이후 1990년대까지 일본 문화론의 변모 과정을 부정적 특수성의 시대, 역사적 상대성의 시대, 긍정적 특수성의 시대, 보편주의의 시대라는 네 시기로 구분한 바 있다. 첫 번째 시기에 속하는 1948년 미국의 인류학자 루스 베네딕트Ruth Fulton Benedict(1887~1948)의 «국화와 칼»(1946년 영문 초판) 일본어판이 출간되었는데, 일본인들의 수치심과 죄책감 의식을 문화론으로 해석한 이 책의 관점은 해외에 널리 알려진 일본 문화론을 대표한다.

후쿠시마의 ‘부흥 문화론’은 일본이라는 국토의 장소성을 철저히 인식한다는 점에서 풍토론, 환경결정론적 사고에 기반한 일본 문화론과 공통점을 지닌다. 그러나 그의 부흥 문화론은 재난에 취약한 국토, 서구적 의미의 역사 구축이 어려운 환경이라는 현실 조건을 부정적으로만 인식하지 않고 창조적 조건으로 바라보는 점에서 새롭다. 그는 부서지고 망가진 뒤 생성된 새로운 것들을 ‘웅덩이의 문화’로 정의하며, 상실이나 실패가 일본만의 문제가 아니라 복잡한 현대 문명에서는 오류나 실패가 상존할 수밖에 없고, 그런고로 상처의 ‘웅덩이’ 속에서 어떻게 다시 일어설 것인가라는 문제가 문명론적인 과제라고 주장한다. 제로화된 지점에서 과거의 흔적에 새로운 소재나 방법론을 끌어들여 시스템에 활기를 불어넣는 것이 바로 문화나 예술의 임무라고 역설한다.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상실할 수밖에 없지만, 그 상실 후에 다시 일어서는 힘, 다시 생산하는 역사 쓰기가 웅덩이의 문화 체험에서 길러질 수 있고, 이 웅덩이 속에 기존의 문화적 자산을 산산이 부서지도록 뒤섞고 그로부터 새로운 무엇인가 생성시키는 것이 섬나라 일본의 운명이자 문화 그 자체라고 후쿠시마는 말한다.

이 책은 일본의 고대 문학부터 현대의 서브컬처, 중국 문학 등을 망라하는 방대한 정보와 고유명사들이 첫 장부터 열거되기 때문에, 일본 문화사에 익숙하지 않은 독자가 가볍게 넘겨 보기에는 부담이 된다. 그러나 방대한 정보량에 짓눌리지 않고 일본 문학사에 등장하는 ‘부흥-창조’의 과정을 따라가면, 일본의 부흥 문화사, 중국의 부흥 문화사에서 한반도의 부흥 문화사를 연상할 만한 요소가 적지 않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조건을 보면, 전쟁이나 재난 체험은 일본의 그것 못지않게 유구한 역사를 지니고 있다. 후쿠시마의 ‘웅덩이의 문화’론을 읽고 나서 부서지고 망가진 뒤 새롭게 나타난 창조적인 흐름이 한반도의 문화사를 어떻게 변모시켰는지 역사적 패턴을 추출하는 또 다른 문화론이 등장하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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