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의 철학» 들어가며, 옮긴이 후기

들어가며

이 책은 철학서다. 나는 비평가지만 철학을 한다. 1993년 출간된 내 첫 글은 소련의 반체제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을 다룬 평론이었다. 그 이래 사반세기에 걸쳐 다양한 주제를 사고했다. 특히 인터넷, 테러 그리고 증오로 뒤덮인 21세기 세계에 진정 필요한 철학은 어떤 것일지 생각해 왔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 내가 내린 결론을 이 책에 담았다.
이 사반세기 동안의 내 작업은 철학 및 사회 분석부터 서브컬처 평론 및 소설 집필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그러다 보니 수용되는 방식도 다양했고, 무의미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바꾸려는 것도 이 책을 쓴 이유 중 하나다. 그러므로 이 책은 지금까지의 내 작업을 연결시키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이 책을 «존재론적, 우편적»의 속편으로도,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속편으로도, «일반 의지 2.0»의 속편으로도, 그리고 «약한 연결»의 속편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퀀텀 패밀리즈»의 속편으로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근 20년 만에 처음으로 내 ‘비평’ 스타일을 아무런 거북함 없이 순수하게 긍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비평가라는 사실에 부채감을 안고 있었다. 비평 따위를 써 봤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누구도 기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망설임이 사라졌다. 이 책의 집필을 마친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글쓰기의 자유를 실감하고 있다.

이 책의 완성 경위는 복잡하다. 원래는 이 책을 «사상 지도 β» 5호로 2013년에 간행해 겐론 회원(4기)에게 배포할 계획이었다. 그때는 여러 필자가 쓰는 무크지 형식으로 기획했고 이렇게 단독 저서로 만들 생각이 전혀 없었다.
그런데 이 책의 간행이 여러 사정으로 불가능해졌다. 하지만 이미 회비를 받았으니 같은 가치의 서적이나 잡지를 배포해야 했다. 그래서 나는 «겐론»의 창간에 맞추어 특별히 내가 구술한 내용으로 구성된 준비호를 간행하기로 했다. 이 기획이 지금 여러분이 읽고 있는 이 책의 출발점이 되었다. 이 책의 제작은 빠르면 2015년 가을, 늦어도 2015년 내에 간행하는 것을 목표로 진행되었다. 여름에는 구술 수록을 마치고 편집 작업에 들어갔다. 구성 원고는 곧 완성되었고 내 수정도 반 이상이 끝났다.
그러나 정말 험난했던 것은 그 후부터다. 2015년 12월, 창간 준비호가 될 터였던 이 책 출판에 앞서 『겐론』이 창간되었고 호평과 함께 환영을 받았다. 또한 겐론 카페와 스쿨 등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회사의 인지도도 높아졌다. 이런 변화 속에서 나 자신이 이 책의 기획에 의문을 품기 시작했다. 무엇보다 구술한 내용이라는 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내 평론과 논픽션 가운데 상당 부분이 구술을 바탕으로 한 것이었고, 그런 흐름이 바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러나 «겐론»을 창간한 지금 내가 이 흐름을 따라야 할 이유는 없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2016년 겨울에 기존의 원고를 전부 버리고 새로운 책을 처음부터 쓰기로 마음먹었다. 이 책의 원고는 그로부터 3개월간 쓴 것이다.

이 책은 ‘오배’誤配를 핵심 개념으로 한다. 이 개념을 선취해 말하자면 이 책 자체가 오배의 산물이다.
만약 우리 회사에서 «사상 지도 β» 최종호를 위해 미리 회비를 걷은 후 출판할 수 없게 되는 사고가 일어나지 않았다면 결코 이 책을 구상하지 않았을 것이다. 또한 지금으로부터 7년 전에 뜬금없이 창업을 결의해 그 전과는 전혀 다른 인생을 살기 시작하지 않았다면 역시 이런 책을 쓰는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아마 나는 지금쯤 비평의 자유를 다시 느끼는 일 없이 책 쓰는 것 자체를 그만두고 말았을 것이다. 실제로 나는 최근 10년간 더는 책을 쓸 생각이 없다고 거듭 말해 왔다. 처음부터 책을 쓰려고 했다면 결코 다 쓰지 못했을 것이다.
오배야말로 사회를 만들고 연대를 형성한다. 따라서 우리는 적극적으로 오배에 자신을 노출해야 한다. 이는 4장에서 주장하는 테제인데, 이 책의 존재 자체가 바로 그 사례기도 하다.

그러나 당연히 전제해야 할 사실은 오배가 큰 민폐라는 점이다. 이 책의 제작 과정에서 많은 사람이 부담을 떠안아야 했다. 출판까지 1년 넘게 기다려야 했던 4~5기 회원 여러분, 그리고 거듭되는 계획 변경과 무리한 일정 탓에 고생했을 인쇄 회사 및 서점 관계자 여러분에게 이 자리를 빌려 진심으로 사과의 말씀을 드린다. 사원들도 고생을 많이 했다. 이 책으로 그 부채를 조금이나마 갚을 수 있기를 바란다.
비평은 아직 큰일을 할 수 있다. 적어도 큰 이야기를 제시할 수 있다. 이런 메시지가 될 수 있는 한 많은 독자에게 오배되었으면 한다.

2017년 3월 1일
아즈마 히로키

옮긴이 후기

1

«관광객의 철학»은 사유의 스케일이 굉장히 큰 책이다. 제목에서도 알 수 있듯 ‘철학’을 전면에 내세운 아즈마 히로키의 저작으로 일본에서 2017년에 간행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옮긴이는 «존재론적, 우편적»을 처음 읽었을 때와 비슷한 지적 스릴과 강렬함을 느꼈다. «존재론적, 우편적»은 일본에서 1998년에 간행된 아즈마 히로키의 데뷔작으로, 후기구조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 철학자 자크 데리다를 비평적으로 논한 책이다. 당시 일본 비평계에서도 큰 화제가 되었고, 1980년대에 뉴아카데미즘으로 일세를 풍미한 아사다 아키라는 ‘이 책으로 말미암아 이제 내가 전에 쓴 책(«구조와 힘»)은 완전히 과거가 되었다’며 높이 평가하기도 했다.
«존재론적, 우편적»은 난해한 철학 용어를 구사해 언어 행위론과 후기구조주의, 하이데거와 가라타니 고진 등 정통 철학을 다뤘다. 기존 현대 철학이 ‘존재론적’ 사유에 치우친 것을 비판하고 후기 자크 데리다에게서 ‘우편적’ 가능성을 읽어 낸 책이었다. 옮긴이는 2002년에 이 책을 읽고 ‘복잡하고 다양한 현대 철학의 흐름을 이렇게 정리해 낼 수 있구나!’ 하고 감탄했고 그때부터 아즈마 히로키에게 큰 관심을 갖게 되었다. 그때 받은 충격의 강렬함은 가라타니 고진의 『일본 근대 문학의 기원』에 버금가는 것이었는데, «관광객의 철학»을 읽고 모처럼 비슷한 충격을 받았다.
한편 «존재론적, 우편적»과 «관광객의 철학» 사이에 존재하는 큰 차이 또한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마찬가지로 ‘철학’을 논하는 책이지만 전자는 전문 철학 용어로 가득한 반면 «관광객의 철학»은 훨씬 평이한 용어와 문체로 쓰였다. «존재론적, 우편적»은 원래 가라타니가 주도했던 «비평공간»이라는 사상 잡지에 연재되었던 글로, 현대 철학의 용어에 익숙한 사람들을 독자로 상정하고 있었다. 달리 말해 특정한 독자 공동체 내부에서 읽히는 것을 전제한 책으로 문맥 의존적인 요소가 강했다. 따라서 정통 인문학에 친숙한 독자라면 «존재론적, 우편적»이 얼마나 큰 주제를 다루고 있고 얼마나 흥미진진한 논점을 제시하고 있는지 알 수 있을 테지만, 현대 철학의 용어나 핵심 주제에 친숙하지 않은 독자에게는 큰 매력이 없을 책이기도 하다. 비유하자면 전문 서적 읽기는 그 분야 내부에 공유된 코드를 통한 일종의 암호 해독과 다를 바 없는데 «존재론적, 우편적»은 그런 독해를 요구하는 책이다.
반면 «관광객의 철학»은 문맥 의존적인 측면이 약하고 쓰는 용어도 평이하다. 즉 독해 코드의 공유를 전제하지 않는다. 한정된 분야의 특정 독자를 상정하고 쓴 책이 아니라 다양한 분야의 불특정 독자를 향해 쓴 책이기 때문이다. 이는 제목에서도 잘 드러난다. ‘존재론’은 중후한 철학 용어지만 ‘관광객’은 누구나 일정 기간 동안 가질 수 있는 특성이다. 대중을 위한 철학이라고도 할 수 있겠다. 이는 «관광객의 철학»의 일본어판 제목이 «겐론 0: 관광객의 철학»인 것과 깊이 관련된다. «존재론적, 우편적»은 사상 잡지에 기고했던 글이지만 «관광객의 철학»은 아즈마 본인이 대표를 맡고 있던 독립 출판사 겐론에서 일반 대중을 향해 내놓은 책이다. 겐론과 «관광객의 철학»의 관계 등에 대해서는 이 책의 <들어가며> 외에도 옮긴이가 아즈마를 인터뷰한 책 «철학의 태도»(북노마드, 2020)를 참고하기 바란다. 현재 아즈마는 겐론 대표직에서 물러나 편집장을 맡고 있다.
볼테르, 칸트, 헤겔 등의 근대 철학자를 평하고 슈미트, 아렌트를 거쳐 네그리와 하트를 논하며 때로는 프로이트, 라캉, 푸코, 들뢰즈, 가라타니까지 언급하지만 결코 독자에게 철학적인 사전 지식을 요구하지 않는 책이라는 점이 놀랍다. 마찬가지로 인문학 독자에게는 익숙지 않을 와츠, 바라바시 등의 네트워크 이론가를 다루지만 아즈마 특유의 논리정연함 덕에 어렵지 않게 이해할 수 있다. 나아가 SF 소설가 필립 K. 딕과 근대 문학의 대가 도스토옙스키에 대한 독해를 제시하는 2부에서는 소설 비평과 사회 철학의 새로운 결합 가능성까지 엿볼 수 있다. 아즈마가 도스토옙스키를 다루는 것이 의외로 느껴지는 독자가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그가 처음 세상에 내놓은 논고가 <솔제니친 시론>이었다는 사실을 상기하면 달리 보일 것이다. «관광객의 철학»의 내용에 대해 더 이야기하는 것은 사족이 될 것 같으니 이 정도로 해 두겠다.

2

아즈마의 이력을 다시 살펴보면 데뷔작 «존재론적, 우편적» 다음에 서브컬처 비평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을 펴냈고, 이 또한 서브컬처 비평 분야에 강렬한 인상을 남긴 책이 되었다. 그와 함께 2000년대에 아즈마는 인터넷을 비롯한 새로운 정보 기술이 인간과 사회에 미치는 영향에 꾸준히 큰 관심을 보이고 이를 주제로 다양한 글을 집필했는데 안타깝게도 그런 글들은 한국에 소개되지 못한 것 같다.
정보 기술과 사회에 대한 그의 관심이 결실을 맺어 나온 결과물 중 하나가 2011년 일본에서 간행된 «일반 의지 2.0»인데, 한국어판은 옮긴이의 번역으로 2012년에 간행되었다. 아즈마가 2000년대에 정보 기술과 사회에 관해 어떤 생각을 했는지에 대해서는 한국어판 «일반 의지 2.0»의 <옮긴이 해제>를 통해 논한 바 있다. 한마디만 덧붙이자면 아즈마가 «관광객의 철학»에서 말한 것처럼 그의 “오타쿠론은 원래 정보 사회론의 일부로 구상되었다”. 즉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은 서브컬처를 논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 책이 아니라 서브컬처 분석을 통해 ‘정보 환경의 변화’와 ‘현대를 살아가는 인간과 사회’의 관계에 새로이 접근하려 했던 책이다.
아즈마는 철학, 서브컬처, 정보 기술, 문학 등 다양한 분야를 횡단하며 활동해 온 비평가이기 때문에 그 사상의 전모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으며 그만큼 사람들의 오해를 받기 쉬운 비평가이기도 하다. 옮긴이는 2004년 일본으로 건너온 이후 계속 일본에 살고 있어서 아즈마가 한국에서 어떻게 수용되었는지 자세히는 알지 못하지만, 번역된 책들로 미루어 아무래도 서브컬처 중심으로 읽혀 온 것이 아닌가 싶다. 하지만 옮긴이 생각에 아즈마 사유의 뼈대는 «존재론적, 우편적»에서 갖춰졌고, 2000년대에 그가 쓴 정보 기술과 사회에 관한 글들(앞서 말한 것처럼 «일반 의지 2.0»은 그 성과 중 하나일 뿐이다)도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는다. 그런 의미에서 «존재론적, 우편적»과 2000년대 정보 기술론의 핵심을 최근 시점에서 다시 음미해 새로운 철학으로 제시한 «관광객의 철학»은 아즈마 히로키의 현시점 ‘총결산’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가라타니는 어느 책에서 ‘마르크스는 «독일 이데올로기»를 쓰고 나서 «자본»을 썼지만, 우리는 «자본»이 있기에 «독일 이데올로기»를 읽는다’는 취지의 말을 했는데, 아즈마의 경우는 아예 데뷔작인 «존재론적, 우편적»이 «자본»의 위치를 점해 왔다. 그러나 이제는 아니다. 가라타니의 비유를 빌리자면 «관광객의 철학»이 있기에 아즈마의 다른 저작을 읽게 된다고 평해도 될 것이다. 특히 그가 특정 분야의 독해 코드를 전제하지 않는 깊이 있는 철학서를 내놓은 것의 의의는 여러 번 곱씹어 볼 가치가 있다.

3

옮긴이는 학부에서 정치학을 전공했고 대학원에서는 현대 일본 문학과 비평을 전공했지만 읽은 책으로 보면 마르크스주의, 역사학, 인류학, 사회과학 분야가 많았고 그중에서도 철학의 비중이 컸다. 인간의 의식이란 무엇이고 앎이란 무엇인가? 어떻게 사는 것이 옳고(적어도 그릇되지 않고), 앎의 한계는 어디에 설정해야 하는가? 이런 질문들에 대한 답을 찾고자 했다. 물론 그 답은 찾지 못했지만 이런 질문들을 어떻게 체계적으로 구체화할지에 대해 좀 더 뚜렷한 방향성을 갖게 되었다.
옳고 그름을 섣불리 판단하지 않는 것, 자신의 판단은 항상 결여를 내포하고 있음을 겸허히 인정하는 것, 즉 지금의 자신을 절대화하지 않고 변화할 여지를 남겨 두는 것—이것이 지금 옮긴이가 믿고 있는 ‘바른 삶’을 위한 절대적인 조건이자 최소한의 조건이다. 그렇기에 «관광객의 철학»을 옮기면서 그 내용에 공감하는 바가 컸다. 철학은 자신의 신념을 굳건하고 예리하게 하기 위해서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자신의 껍질을 깨고 나오기 위해 존재해야 할 것이다. 아즈마가 관광객이라는 말로 논한 ‘오배’는 이 껍질을 깨는 계기에 붙여진 이름이다.

4

이 책을 번역할 기회를 얻은 것은 옮긴이로서 굉장한 기쁨이었고 옮기며 큰 보람을 느꼈다. «관광객의 철학»에서 아즈마가 제시하고 있는 사유의 씨앗 역할을 한 «약한 연결»의 번역을 맡았고, 또한 아즈마를 직접 만나 «일반 의지 2.0»과 «관광객의 철학»에 대한 인터뷰를 했던지라 더욱 그러하다. 이 지면을 빌려 리시올 출판사의 관계자 여러분과 리시올에 «관광객의 철학» 번역자로 옮긴이를 추천한 선정우 씨에게 깊은 감사의 뜻을 전하고 싶다.
한편 번역에 문제가 있다면 이는 옮긴이의 불찰과 역량 부족 때문이다. 혹시 문제점을 발견한 독자가 있다면 기탄 없는 의견을 보내 주시기 바란다(트위터 @aniooo). 소중한 가르침을 받는 자세로 경청할 것이고, 지금까지 옮긴이가 번역한 과거의 책과 마찬가지로 개인 블로그(https://aniooo.wordpress.com)를 통해 바로잡아 가겠다.

2020년 7월 30일
안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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