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의 철학» 배경 소개

이 글에서는 «관광객의 철학» 일본어판이 출간되었을 때(2017년) 아즈마가 다른 지면에 발표한 두 편의 글(2019년 단행본 «테마파크화하는 지구»에 재수록)로부터 ‘후기’ 성격을 가진 내용을 추려 정리해 보려 합니다. 배경 설명으로서 읽어 주셔도 좋을 것 같아요.

«관광객의 철학» 일본어판은 «겐론0: 관광객의 철학» 이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습니다.

문예지 «군조»群像에 발표한 <비평가가 쓰는 철학서>는 «관광객의 철학»에 대한 직접적인 후기 성격의 글입니다(«관광객의 철학» 책에는 따로 후기가 포함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글에서 그는 “오로지 단행본을 위해 처음부터 써 내려간 첫 책”에 대한 자신감과 애정을 피력하는 동시에, 한동안 책을 쓰지 못했던 이유에 대해 솔직히 토로하고 있습니다.

아즈마의 저술가 경력은 가라타니 고진 등이 주도한 잡지 «비평 공간»에서 시작되었습니다. 1993년 아직 대학생이었던 그의 <솔제니친 시론>이 이 잡지에 실렸고 젊은 재능의 등장에 비평계의 이목이 모였습니다. 가라타니의 후계자가 등장했다는 평가도 뒤따랐다고 하네요.

아즈마 히로키의 데뷔 무대가 되었던
잡지 «비평 공간»(9호)

아즈마는 고등학생 시절 가라타니의 글을 읽고 학자가 아닌 비평가의 글쓰기가 가진 자유로움에 동경을 품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대학원에서는 철학을 전공하기도 했지만, 첫 단행본인 «존재론적, 우편적»을 펴낸 1999년에는 이미 그런 자유를 가능하게 한 분위기가 사라졌다고도 평가합니다.

그래서 그는 줄곧 ‘정말 쓰고 싶은 것’을 쓰지 못했다고 합니다. 그런 글을 읽을 독자가 이제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출세작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도 더 큰 기획의 일부였던 것을 (그 기획을 단념하고) 단행본화한 것이라 하고요(이 이야기는 «관광객의 철학»에도 나옵니다).

그러다 마침내 ‘정말 쓰고 싶은 것’을 쓴 책이 «관광객의 철학»이라 밝히고 있습니다. 이젠 아무도 찾지 않는 ‘비평가가 쓰는 철학서’지만, 더는 ‘현재’의 독자에 연연하지 않게 되었기 때문에 쓸 수 있었다고 합니다. 점점 더 압축되는 현재=지금이 아니라 미래를 향해 쓰겠다는 선언으로도 읽힙니다.

수개월, 수년을 들인 작품의 평가가 찰나의 판매 순위로 결정되는 세계에서 글을 쓰는 사람이 대체 뭘 할 수 있을까. 정치가의 거취가 와이드쇼 코멘트와 SNS 여론으로 결정되는 세계에서 비평가의 분석에 어떤 가치가 있을까. 나는 그런 세계에 등을 돌리고 하고 싶은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현재에 등 돌려야 얻을 수 있는 현재성, 비공공적이 되는 것을 감수해야 도달할 수 있는 공공성. 그는 «관광객의 철학»이 이런 역설적 도전의 산물이라고 말합니다. 책을 읽어 보시면 그가 말하는 미래를 향한 철학의 윤곽이 한층 또렷하게 떠오를 것이라 생각합니다.

잡지 «시시시시»(しししし)에 발표했던 에세이 <지불하는 입장>은 이 시기 ‘우파로 전향했다’는 비판에 직면했던 아즈마가 자신의 ‘전향’(!)에 대해 솔직히 토로한 글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잡지 «시시시시»)(1호)

아즈마는 비평계에 등장했을 때부터 스타 대우를 받았습니다. 스스로도 그런 지명도를 바탕으로 대학에서 강의를 하거나 집필 활동을 하고 또 때로는 미디어 출연도 해 생활비를 벌 수 있었다고 회고합니다. 그러다 2010년에 ‘겐론’(정확히는 그 전신인 ‘컨텍처즈’)을 창업하게 됩니다.

비평가에서 경영자로. ‘지불하는 입장’은 과거 가라타니 고진이 비평가란 ‘가르치는 입장’이자 ‘파는 입장’이라 말했던 것에 대응하는 말입니다. 아즈마는 가라타니의 말을 받아 비평이란 혼자 고독하게 행하는 지식 노동의 결과물이고 그런 면에서 “비평가는 본질적으로 프롤레타리아”라고 말합니다.

아즈마는 자신이 비평가에 머물렀던 시기에는 지식 노동이 그대로 상품이 된다는 사실을 자명하게 여겼다고 합니다. 그러나 7년의 경영자 생활을 거쳐 그 사실이 결코 자명한 것이 아님을, 그리고 이 자명하지 않음이 비평가의 ‘존재론적 불안’을 규정한다는 것을 이해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혼자 고독하게 생산한 비평이 그대로 상품이 된다는 것을 의심하는 지금은 비평이 만들어지고 유통되는 장을 일구는 데 더 관심을 두게 되었다고 합니다. 그리고 비평이라는 제도를 가능하게 만드는 수면 아래의 무수한 지불을 의식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경영자가 된 후 상품 하나(책일 수도 이벤트일 수도 강의일 수도 있다)를 만들 때도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고 다양한 지불이 이루어지는지 알게 되었다. 그리고 남을 고용해 어떤 일을 진행하는 게 얼마나 성가시고 리스크를 동반하는 일인지를 알게 되었다.”

지불하는 입장에 대한 자각을 자본가로서의 자각이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니며, 이것이 자신의 ‘전향’이라고 (다분히 도발적으로) 말합니다. «관광객의 철학»은 그런 점에서 전향의 논리를 구체화한 책이라 해도 무방할 겁니다(뒤집어 말하면 비판에 대한 반박이기도 할 테고요).

비평가이자 경영자라는 두 가지 정체성을 공존시키며 갖게 된 시각, 그리고 그 시각이 «관광객의 철학»에 어떻게 녹아들어 있는지는 최근 한국과 일본에서 동시 출간된 인터뷰집 «철학의 태도»(일본어판은 «철학의 오배»)에서도 자세히 다뤄진 바 있으니 함께 읽어 보셔도 좋을 듯합니다. 🙂

‘자본가’라는 말이 거북할 수도 있지만, 그의 고민이 한국의 많은 지식인이나 창작자가 벌이고 있는 고투와 멀리 떨어져 있는 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또 소규모 출판사인 저희도 ‘수면 아래의 무수한 지불’을 해결할 수 있도록 장을 넓혀 가야 한다고 의식하고 있어 그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습니다.

«관광객의 철학»에서 아즈마는 관광객의 철학이 겐론의 실천과 한 쌍이라고 여러 차례 강조합니다. 그리고 “지적인 관광으로서의 출판”도 그 실천의 일부라고 말합니다. 저희에겐 이 말이 무척 인상적이었고, 우리의 실천도 자립해 유지할 수 있어야 의미가 있다는 사실을 다시 한번 실감했습니다.

«관광객의 철학»은 2010년대부터 이어져 온 아즈마의 문제 의식 및 실천과 떼어 놓고 생각할 수 없는 저작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관광객의 철학»의 내용을 다루기에 앞서 다소 주변적으로 보일 수도 있을 이야기들을 나눠 보았습니다. 이 이야기들이 책을 더욱 풍부하게 읽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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