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로 존재하는 수고로움

«살림 비용»은 «알고 싶지 않은 것들»처럼 한국 작가가 리비의 글에 응답하는 ‘후기’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전작의 박민정 선생님에 이어 이번엔 여성들 삶의 다양한 모습을 차분하고 촘촘한 문장으로 직조해 왔을 뿐 아니라 번역 활동도 이어 오고 있는 백수린 선생님이 흔쾌히 후기를 맡아 주셨어요.

백수린 선생님의 후기 <나로 존재하는 수고로움>은 옥상 수도 동파라는 일상의 한 사건을 계기 삼아 ‘가부장제 바깥에서 홀로 삶을 살아가는 여성’에게 세상이 보이는 무례함을, 또한 골목에 쭈그려 앉아 혼자 얼음을 깨고 있을 때 다가온 살가운 손길을 들려주는 글입니다.

«살림 비용»의 축도처럼 느껴지는 이 글은 “누구누구의 아내나 엄마가 아니라 내 이름으로 존재할 자유”를 위해 치러야 할 비용과 그 분투의 과정에서 일궈 나가게 될 연대를 되새기게 만들어 줍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여성들이 이 글에서 용기를 얻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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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로 존재하는 수고로움

백수린

오늘 아침 창밖엔 사늘한 빛이 설핏하다. 나는 느지막이 일어나 전기 포트에 뜨거운 물을 끓인다. 집 안 여기저기에 놓인 사물들에는 아직 겨울의 흔적이 남아 있다. 나는 밤새 차가워진 공기를 데우기 위해 전기 난로를 켜고 식탁 겸 책상에 앉아 뜨거운 차를 한 잔 마신다. 조금 있으면 소란을 떨며 만물이 생동하는 봄이 오겠지만, 아직은 조금 더 부드럽게 게을러도 괜찮은 겨울의 끄트머리다.

언덕 꼭대기의 낡은 단독 주택에서 살기 시작한 이래 월동 준비라는 말을 실감하게 됐다. 한파와 폭설을 대비해 염화 칼슘과 보온용 비닐을 챙겨 두고, 상상을 초월하는 난방비를 내기 위해 돈을 따로 비축해 놓아야 했다.
유난히 춥고 눈이 많이 내린 이번 겨울, 이따금 눈을 치우러 나가는 것 외에는 대부분의 시간을 집에서 보냈다. 일어나면 유튜브를 틀어 초급자용 요가를 간단히 따라 하고, 식탁 겸 책상에서 아침 겸 점심을 먹은 후 같은 자리에서 작업을 하다가 또 밥을 챙겨 먹고, 다시 작업을 하다가 잠자리에 드는 단조롭고 고요한 날들이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누군가가 초인종을 눌러 나가 보니 문 앞에 옆집 아주머니가 서 있었다.
“이 집 옥상 수도 터졌나 봐. 난리 났어.”
무슨 소리인가 집 밖에 나가 보니 우리 집 옥상에 연결된 배수관에서부터 흘러나온 상당량의 물이 골목을 따라 얼어 있었다. 너무 놀라, 알려 주셔서 감사하다고 말한 다음 집 안으로 들어왔다. 옥상 수도가 정말로 터졌나, 그럼 어떻게 해야 하지? 얼른 고쳐야 물이 더 흐르지 않을 텐데. 당황한 마음을 애써 진정시키며 인터넷을 검색하고 있는데 또다시 초인종이 울렸다. 이웃이라 자신을 소개한 60~70대 정도의 남자는 우리 집에서 흘러나온 물 때문에 집 앞 골목이 얼었으니 해결해야 하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안 그래도 옆집 아주머니에게 듣고 지금 옥상 수도에 대해 알아보고 있노라 설명하려는데 그가 내 말을 자르더니 당장 나와 치운다고 말해야지 사람이 다칠 수도 있는데 옥상 이야기는 왜 하느냐며 소리를 지르기 시작했다. 갑자기 소리를 지르는 것만으로도 적잖이 당황스러웠는데 그가 기어이 한마디를 덧붙였다. “젊은 여자가 이사를 와서.”

그날 나는 집 앞 골목에 쭈그려 앉아 망치로 얼음을 깼다. 그냥 깨는 건 쉽지 않아 전기 포트로 끓인 물을 조금씩 부어 녹인 얼음을 망치로 깬 후 삽으로 깨진 조각들을 퍼서 버렸다. 만약 그날 내가 마지막으로 마주친 이가 그 남자였다면 추운 골목에서 얼음을 깨던 그 오후는 괴로운 기억으로 남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날은 오히려 따뜻한 기억으로 남아 있다. 얼음을 깨고 있던 내게 이웃 아주머니들이 베풀어 준 호의 덕분에. “아니, 뭐 하러 이런 걸 깨고 있어. 어차피 곧 녹을 텐데. 내가 소금 뿌려 두었으니 그냥 들어가, 추워”라고 말하며 내 삽을 가져가 깨트린 얼음을 대신 퍼 날라 준 다정한 중년 여성들. “이사 오고 몇 년간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얼마나 놀랐어? 올해가 유난히 추웠지?”라고 말하며 옥상 수도를 살펴봐 줄 수리 업자 전화 번호를 알려 주던 내 이웃들.

어쩌면 이 일은 이웃 간에 흔히 벌어지는 작은 소동, 그냥 잊고 지나가기 마련인 하나의 일화에 불과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날 일은 내 마음에 남아 쉽게 움직이지 않는다. 그건 그날 겪은 무례와 내가 “젊은—이젠 그다지 젊지도 않지만—여자”란 사실이 무관하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데버라 리비처럼 결혼해 두 딸을 키우다 이혼을 계기로 가부장제 바깥으로 나와 홀로 삶을 살아가게 된 여성이나 나처럼 자발적으로 결혼 제도 바깥에 머물고 있는 여성에게 세상은 조금 더 쉽게 무례해진다.

허름한 산동네의 낡고 작은 단독 주택에서 살기 시작했을 때는 주변으로부터 위험하지 않겠느냐는 말을 많이 들었다. 주변 사람들의 걱정은 대부분 내가 여자라는 사실과 관련되어 있었다. 하지만 나는 단독 주택에 살아 보고 싶었고, 여자라는 이유로 마음에 품은 걸 포기하고 싶지는 않았다. 관리인이 따로 있는 공동 주택보다 불편한 점이 전혀 없다면 거짓말이지만, 언젠가는 떠날 것이 분명하지만, 나는 이 집을 무척 좋아한다. 책상 앞에 앉아 있으면 창문 너머로 들려오는 새들의 지저귐, 유난히 활달한 고양이들의 울음소리, 일정한 간격을 두고 떨어지는 빗소리. 집에 유리창이 많은 덕분에, 나는 집 안에 가만히 앉아서도 짙어지는 우듬지의 색깔과 석양의 농도로 계절이 깊어 가는 것을 알 수 있다. 때로는 혼자, 때로는 둘이서 사랑하는 강아지와 함께 6년째 이 집에서 살고 있는 이유다.
내가 이 집을 사랑하는 이유는 여럿이지만 가장 중요한 건 이곳이 내 (제대로 된) 첫 집이라는 사실이다. 이 집으로 이사 들어온 해, 동생은 결혼을 했고 나는 결혼이란 제도 안에 들어가지 않은 채로 본가를 떠났다. 언제 결혼할 거냐고 노래를 부르던 부모님은 내게 (적어도 당분간은) 그럴 계획이 없다는 것을 동생이 결혼 준비를 시작할 즈음에야 겨우 받아들였다.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도 글을 쓰고 온전히 자기 자신으로 존재하는 사람도 있겠지만 내게는 그럴 능력이 없음을 나는 일찌감치 알아 버렸다.
엄마는 동생에게 신혼 살림으로 그릇 세트를 장만해 주며 내게도 필요한 것이 없느냐고 물었다. 나는 새로운 그릇 세트나 냄비 세트 같은 건 원하지 않았고, 엄마가 혼수로 가져온 그릇들—갈색 유리 그릇 세트였는데 엄마는 몇십 년째 찬장에 쟁여 두기만 하고 좀처럼 쓰지 않았다—이면 족하다고 했다. 엄마는 (엄마가 원한 형태는 아니었지만) 어쨌든 독립하는 딸에게 새 그릇을 사 주지 못해 미안한 기색이었지만 나는 새로운 그릇 세트보다 엄마의 혼수가 더 좋았다.
이사하고 얼마 후 난생 처음 베트남으로 여행을 떠났고, 다낭의 해변을 걸었다. 휴양지 여행을 그다지 선호하지 않는 내게 풀 빌라에서 며칠을 보내는 건 낯선 여행 방식이었지만, 그저 좋았다. 이제부터는 새로운 삶이 펼쳐지리라는 것을 알았다. 나의 집. 나의 삶. 나의 미래. 온전히 내가 선택한 것들. 나는 내가 먹고 자고 글 쓰는, 나의 공간을 쓸고 닦는다. 비가 새거나 벽의 페인트가 벗겨질 때를 대비해 글을 쓰고 강의를 해 번 돈을 모아 둔다.

여성 작가에 대한 편견 중 하나는 남편 수입에 의존해 살기 때문에 예술을 쉽게 할 수 있으리라는 것이다. 창작 활동만으로 먹고살기 어려운 건 여성이나 남성이나 마찬가지고 경제적 능력이 있는 파트너의 조력을 받아 나쁠 게 없는 것도 둘 다 같을 텐데, 유독 여성 작가들에게 그런 편견이 덧씌워진다. 여성이 자유로워지기 위해선 경제적 독립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했던 보부아르가 일찍이 “여자가 자립의 길을 선택하려면 남성보다 더 큰 정신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말한 것도 이 때문이다.

내 할머니는 내겐 누구보다 다정했지만 다른 사람들에게는 구두쇠처럼 인색하다는 평을 종종 듣는 분이었다. 내겐 할머니를 떠올리게 하는 사물이 하나 있는데 그건 할머니가 노트 위에 30센티미터 유리 자를 대고 직접 세로줄을 그어 만든 가계부다. 할머니는 돋보기를 낀 채 자그마한 상 위에 스탠드를 켜 놓고 가계부를 썼다. 성경책을 읽을 때와 더불어 내가 기억하는 할머니의 가장 진지한 모습이다. 할머니는 날마다 통장 잔고를 헤아렸고, 허투루 돈을 쓰는 법이 없었다. 하지만 내 생일이나 졸업식같이 특별한 날에는 봉투에 돈을 담아 건네곤 했다. “수린아, 생일 축카한다, 할머니가” 같은 짤막한 문구를 정성껏 봉투 위에 적어서. 할머니 생의 마지막 무렵 우리 가족이 살던 동네에는 할머니가 걸어갈 만한 거리에 재래 시장이나 화장품 가게 같은 것이 없어서 무엇인가가 필요하면 할머니는 내게 사다 달라고 부탁해야만 했다. 할머니는 그때마다 내게 돈을 주었고 물건을 사 가지고 가면 심부름값이라며 거스름돈은 가지라고 했다. 손주들이 놀러 왔을 때 용돈이라며 주머니에 돈을 찔러 넣어 주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할머니는 나름의 방식으로 돈을 운용했고 할머니의 기준에서 필요하다고 생각하는 곳에 돈을 썼다.
할머니가 내 아버지와 그 형제들을 교육시킬 수 있었던 것은 삯바느질과 계 모임으로 번 돈을 할아버지의 부족한 월급에 보탠 덕이었다. 혼자 힘으로 한글을 깨우칠 만큼 똑똑했고, 아름다운 것을 사랑했고, 자존심이 무척이나 셌던 할머니는 초등 교육도 받지 못하고, 재능을 펼칠 제대로 된 직업을 가져 본 적도 없이 부모의 뜻에 따라 결혼해 아이들을 건사하는 삶을 평생 살아야만 했다. 당신이 얼마나 반짝일 수 있는 사람인지 미처 알기도 전에 빛을 낼 가능성을 단념해야만 했던 할머니. 그런 할머니에게는 스스로 돈을 벌고 아껴 자녀를 뒷바라지한 것이 처음으로 주체성을 경험해 본 일이 아니었을까? 더 이상 어떤 수입도 벌어들이지 못하고 로션이나 스킨을 사는 간단한 일조차 손녀딸에게 의지해야만 했던 할머니로서는 얼마 되지도 않는 통장 잔고를 스스로 통제하는 일이, 약간의 이자를 확인하고 가계부를 쓰는 일이, 자신의 계획에 따라 쓸 수 있는 최소한의 돈을 어떻게든 유지하려 애쓰는 일이 어쩌면 당신의 자유와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유일한 방편으로 여겨졌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면 나는 어김없이 슬퍼지고 만다.

손재주가 아주 좋았고, 집 안을 누구보다 깨끗하게 정리했고, 식혜나 고추장 같은 음식을 맛있게 만들었지만 할머니는 내겐 그런 것들을 조금도 가르쳐 주지 않았다. 작가가 된 후 새벽까지 거실에서 노트북을 펼쳐 놓고 앉아 있을 때가 많았는데, 잠에서 깨 화장실에 가려고 거실로 나온 할머니는 그런 나를 볼 때마다 “아직도 그러고 있냐” 하며 안쓰러워했다. “얼른 가서 자라, 병날라.” 하지만 졸음 섞인 할머니의 목소리에 당신이 감히 꿈꿔 볼 수 없었던 어떤 고귀한 일을 하는 손녀딸을 기특해하는 마음이 한밤의 꽃향기처럼 비밀스럽게 배어 있다는 걸 나는 알았다. 아이와 남편을 위해 헌신하는 것밖에 몰랐던 사람에게 유일하게 허락된 ‘물질적인 삶’과는 다른, 할머니의 눈에 보다 숭고해 보이는 정신적 세계를 향해 한 발 한 발 나아가는 삶.
데버라 리비는 «살림 비용»에서 이혼을 “남자와 아이의 안위와 행복을 우선 순위로 두어 오던 가정집이라는 동화의 벽지를 뜯어” 내는 일에 빗댄 다음 자신이 자아를 찾아 가는 과정이 동화 벽지 “뒤에 고마움도 사랑도 받지 못한 채 무시되거나 방치되어 있던 기진한 여자를 찾는”(21) 것이라고 말한다. 남편의 아내, 자녀들의 엄마, 손주들의 할머니로 평생을 살았으나 자신의 이름을 되찾을 엄두조차 내 본 적 없던 할머니가 내게 살림을 결코 배우지 못하게 했던 건 내가 당신과 달리 자유를 누리며 살기를 바랐기 때문이리라.

여성으로서, 작가로서, 한 인간으로서 “자유를 누릴 ‘자기’”(12)를 되찾기 위해 남편과 정상 핵가족이 주는 안락함을 대가로 지불하고 고군분투하는 리비의 모습을 기록한 «살림 비용»을 읽는 내내 나는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그를 조용히 응원하는 마음이었다. 새로운 집 침실 벽의 사면을 노란색으로 칠할 때는 ‘너무 정신없지 않을까요’ 걱정하고, 언덕 위 집을 수월히 오르내리기 위해 전기 자전거를 구입하는 대목에서는 ‘나도 하나 사면 좋겠는데’ 생각하면서. 책으로 빼곡하던 서재 대신 타인의 헛간을 빌려 작업하느라 중요한 미팅 자리에 진흙 묻은 나뭇잎 세 개를 머리에 붙이고 들어설 수밖에 없었던 데버라. 퍼붓는 비를 맞아 가며 자전거를 타고 언덕을 오르던 길에 그만 가방이 열려 장 봐 온 닭이 ‘로드킬’되는 걸 목격해야만 했던 데버라. 비에 쫄딱 젖은 채 집으로 돌아온 그는 그토록 피곤한 날에도 자신을 돌봐 줄 사람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다소 자조적으로 말한다. “나는 혼자였고 나는 자유였다. 관리되는 것도 거의 없고 수도나 전기 같은 기본 시설마저 수시로 끊기는 집에 따라붙는 막대한 관리비를 지불할 자유가 내게 있었다. 식구를 부양하기 위해 목숨을 다해 가는 컴퓨터에 글을 쓸 자유가 내게 있었다”(82).
리비식으로 말하자면, 내게도 자유가 있다. 다 낡은 집의 수도가 터진 게 아닐까 걱정할 자유가 있고 임박한 마감 날짜를 지키지 못하더라도 골목에 나가 얼음을 망치로 깨부술 자유가 있다. 솔직히 고백하면 때로 그런 것들은 나를 고단하게 만들고 “여자를 위해 마련된, 그가 원하기만 하면 언제든 손에 쥘 수 있는 가부장제의 왕관에 박힌 보석들”을 향해 손을 뻗고 싶게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날에 나는 “그럼에도 아무런 가치도 없는 그 보석들에 손을 뻗느니 검고 푸르스름한 어둠을 두 발로 통과해 지나는 편이 낫다”(161)는 걸 안다. 그것들이 내가 지금 누리고 있는 글을 쓸 자유, 가부장제 바깥에서 다른 형태의 공동체를 꿈꿀 자유, 누구누구의 아내나 엄마가 아니라 내 이름으로 존재할 자유를 쟁취하기 위해 내가 기꺼이 지불해야 하는 비용이라는 걸 알고 있기 때문에.

데버라 리비는 «살림 비용»을 이런 문장으로 끝낸다.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이 글은 삶의 비용으로 만든 글이며 디지털 잉크로 만들어졌다”(161). 이 문장을 패러디해 이렇게 이 글을 마무리하면 어떨까?
나는 여성이고, 작가다. 그리고 당신이 지금 읽고 있는 이 글의 원고료를 받으면 난방비를 낼 예정이다.
수리 업자를 불러 얘기를 들어 보니 옥상 수도는 파열된 게 아니었고, 시키는 대로 화장실의 밸브를 열어 놓자 더 이상 배수관으로 물이 새지 않았다. 기온이 영상으로 올라가자 폭설이 내리는 동안 자취를 감추었던 고양이들이 다시 골목 위를 거닐었다. 사뿐사뿐 춤추듯 가볍게. 골목의 얼음은 모두 녹아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나는 일상으로 돌아와 내 집에서 오늘도 쓰고 또 산다. 나로 존재하기 위해 날마다 분투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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