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맘대로 베란다 원예» 디자인 후기

나도 몇 종류의 식물과 함께 살고 있다. 함께 살고 있다는 말이 어울리게 된 건(식물이 죽어가고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하지만 죽어가고 있는 식물도 있다……) 최근 몇 년의 짧은 기간뿐이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15년 전쯤부터 간간이 식물을 구입해 온 것 같다. 봄이 되면 대개 꽃집 앞 인도에 넘쳐흐르듯 꽃 화분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광경을 보면 늘 주변에서 발길이 멈췄고, 주머니를 뒤적이면 나오는 이삼천 원으로 뿌리까지 달린 꽃이나 좋아하는 모양의 이파리를 가진 관엽 식물을 살 수 있다는 건 신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뽐내던 식물들은 언제나 우리 집에만 데려오면 곧장 안색이 어두워지며 죽고 말았다. 꽃집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일주일에 한 번만 물을 듬뿍 줬더니 시들었고 해가 잘 드는 창가에 뒀더니 흙에서 웬 버섯이 올라왔다. 죽으면 버렸고 이듬해 예쁜 화분이 보이면 또 샀다…….

한참 뒤 몇 가지 아주 간단한 요령을 터득하며 이전에 비해 식물을 좀 더 잘 돌보는 사람이 되었고 그러면서 식물에 더 애정을 가지게 됐는데, 이 책을 작업하던 시기와도 겹친다. 이 책 때문에 식물을 잘 기르게 된 건 아니지만 알게 모르게 영향을 받아 식물을 더 사랑하게 됐나 싶다. «내 맘대로 베란다 원예»에는 지은이 이토 세이코가 식물과 함께 살며 일희일비하는 에피소드가 한가득 담겨 있는데, 예전처럼 식물을 마구잡이로 죽이고 있지는 않지만 여전히 그늘에서도 잘 자란다고 소문난 식물들을 데려와 죽일까 봐 마음 졸이는 초보 베란더로서 그런 소소한 마음들을 함께 느끼는 게 참 좋았다. 결과적으론 이 책이 식물을 잘 기르는 법을 알려 주는 책이 아니어서 나는 예전보다 식물을 더 잘 기르고 있는 것 같다.

이 책을 작업하는 중간에 서울에서 경기도로 이사를 왔다. 아주 오랫동안 홍대 근처에서 도심 of 도심 생활을 하다 이곳으로 오니 여러 불편함도 생겨났지만 베란다는 훨씬 커졌다. 넓은 베란다에서 식물들을 키우고 싶다는 욕심이 이곳으로의 이사를 결심한 결정적인 계기 중 하나이기도 하다. 아침에 베란다의 커다란 창으로 내리쬐는 햇살을 보면 식물을 많이 들여놓아야 한다는 의무감에 사로잡히기도 한다. 베란다를 비워 두면 볕이 너무 아깝잖아……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키우는 식물이 많아졌다. 개중 연약한 식물은 한없이 감싸주고 싶고 별것 없이 늘 씩씩한 식물에게는 마음 한편을 기대기도 한다. 베란다에 나가 식물들을 바라보고 있으면 그냥 이렇게 살면 되겠구나 싶기도 하다.

식물들과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모습들을 기록으로 남기고 싶은 마음도 생겼다. 서향의 한 뼘 만한 베란다에서 남동향의 널찍한 베란다로 옮겨지니 식물들 자라는 속도도 눈에 띄게 빨라지고 훨씬 건강해지는 걸 절감하게 된다. 매일매일 변화를 놓치지 않고 눈으로 확인하고 또 기록한 다음 한참 뒤 예전의 모습과 비교해 보는 일은 또 어찌나 흥미진진한지! 나는 주로 사진을 찍어 트위터에 올리는 정도지만 이토 세이코가 느끼는 기록 욕구도 충분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가 기록해 놓은 식물 얘기들을 읽다 말고 베란다를 무수히 들락거렸다. ‘맞다 나도 물 줘야지!’, ‘헉 우리 집 수국에도 혹시 꽃대가 올라오진 않았을까?’ 하면서 원고를 냅다 던져두고 베란다로 뛰어가기 일쑤였다.

부족하지만 그래도 어엿한 베란더의 베란다

아무튼 디자인 후기니까 뒤늦게라도 디자인 얘기를 해 보자면(…) 이 책 제목이 «내 맘대로 베란다 원예»인 만큼 디자인은 ‘내 맘대로’에 초점을 맞췄다. 자유분방한 분위기가 되도록 손글씨로 제목을 쓰고 베란다 풍경과 화분들도 직접 그렸다. 본문이 짤막한 챕터들이 나열되는 일지 형식이어서 표지에도 약간의 요소를 차용해 밑줄이 쳐진 빈칸에 지은이와 옮긴이 이름을 손글씨로 채워 넣었다. 기회가 잦은 건 아니어서 손글씨나 직접 그린 그림을 표지에 활용할 땐 늘 조금은 부담스럽고 약간은 황송하며 대체로 신난다. 표지에 그려 넣은 화분은 모두 본문에 등장하는 것들인데, 갖가지 식물을 검색해 사진을 찾아보고 특징을 파악해 가며 그림으로 그리는 일이 정말 말 그대로 재미있었다. 실제로 식물을 보살피는 것처럼 관찰이 필요한 일이라는 생각에 더 즐거웠던 것 같다. 앞표지 전체에서 내가 직접 그리거나 쓰지 않은 부분이 한 곳도 없다는 사실을 떠올리면 여전히 마구 신기한 기분이 들고, 그래서 더 애정이 가는 디자인이다.

«내 맘대로 베란다 원예» 제목 손글씨 원안
«내 맘대로 베란다 원예» 앞표지 출연진

무엇보다 이 책은 아주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만들고 싶었다. 이전에 펴낸 책들과 비교해 본문 디자인에 큰 변화를 주지는 않았지만 짧게 끊어지며 주로 식물의 이름이 주를 이루는 장제목을 표지 손글씨와도 잘 어울리는 귀여운 서체로 처리했다. 그리고 가장 큰 변화는 가벼운 본문 용지를 사용한 것이다. 우리는 다른 출판사들에 비해 무거운 종이를 쓰는 편이다. 100g 모조지를 쓸 때도 있고 어떨 때는 120g을 사용하기도 한다. 이런 빳빳한 종이를 쓰는 건 수많은 책이 쏟아졌다 사라지는 세상에서 우리 책이 조금이나마 단단하고 꼿꼿하게 자리 잡고 있기를 바라는 마음에서다. 헛된 바람일 수도 있고 빳빳한 종이와는 아무 관련이 없을 수도 있으며(…) 또 온전히 그런 이유 때문만은 아니지만 아무튼 우리의 종이 선택에는 이런 마음이 담겨 있다. 하지만 «내 맘대로 베란다 원예»는 정말로 가볍게 읽을 수 있는 책이기를 바랐다. 그래서 비교적 얇고 가벼운 클라우드 80g을 본문 용지로 사용했다. 독자들이 우리 출판사의 본문 용지가 기존과 다르다는 걸 단번에 알아차리진 않겠지만 우리에겐 이 용지 선택이 나름 과감한 결정이었고, 우리끼리는 앞으로도 꽤 오랫동안 «내 맘대로 베란다 원예»를 인쇄/제작과 관련해 ‘클라우드지로 만든 첫 책’으로 기억하게 될 것이다.

원예의 시작은 봄일 테니까 봄에 이 책이 나왔다면 더 좋았겠다는 아쉬움이 남는다. 그렇지만 어엿한 한 사람의 베란더로서 내가 느끼기에 여름이야말로 진정 식물들의 계절이다. 울창한 초록이 우거진 무더운 여름 일종의 피서라 생각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이 책을 집어드는 모습도 꽤나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베란더인 독자라면 몇 챕터 읽지 못하고 나처럼 베란다로 달려나가기를 반복하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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