앤 보이어의 에세이 <아니오>에 이어 이번에는 그가 저널 «빌리버»(The Believer) 지면에서 칼리 히치콕(Callie Hitchcock)과 나눈 인터뷰를 공유합니다. 앤 보이어가 이제까지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어 낯설게 느낄 독자분이 많을 텐데, 이 두 글을 통해 보이어가 어떤 종류의 작가인지 분명하게 드러나리라 생각합니다.
이 인터뷰는 보이어의 <아니오>에 담긴 의미로 이야기를 시작해 공산주의자로서 그가 여전히 품고 있는 세상의 가능성으로 시선을 넓힙니다. 또 1년간 영국 케임브리지에 머물면서 느낀 계급적인 모순을 이야기하고 이어 «언다잉» 을 쓰게 된 경위와 집필 과정에서 생각한 것들을 들려주고 있어요.
이 인터뷰는 보이어의 새로운 작업을 엿볼 수 있는 기회기도 합니다. 분량이 적지 않지만 그만큼 충실하게 보이어의 생각들을 전해 주고 있는 인터뷰고, «언다잉»과 보이어, 문학과 정치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글입니다.
인터뷰어 칼리 히치콕의 허락을 받아 게재하며, 이번에도 «언다잉» 옮긴이 양미래 선생님이 우리말로 번역해 주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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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택일은 언제나 거짓말일 수밖에 없어요”
앤 보이어와의 인터뷰
칼리 히치콕
양미래 옮김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약물 가운데 가장 해로운 것은 시다. 수북이 쌓인 시집, 끊임없이 이어지는 시 낭독에 한없이 매진해 봐야—비이자 익 대비 이자 익의 비율을 고려했을 때—보통은 득 될 것이 없다. 그러나 좋은 시가 유발하는 전기 충격 같은 자극은 그 무엇에도 비할 수 없다. 단 몇 줄의 글이 인간의 우주를 풀이하는 그런 밀도 높은 순간에는 가장 세속적인 것이 신성한 영역에 다가선다.
그런 순간을 만나고 싶은 사람에게는 앤 보이어가 확실한 선택이다. 보이어는 온갖 충격을 전하는 시인이며, 그의 통찰은 시간의 흐름이 무색하리만치 오랜 생명력을 갖는다. 보이어가 그리는 이 세상은 우리가 지금껏 상상한 것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또 단순하다. 보이어의 시는 에세이나 강의의 구조를 취하지만, 시에 담긴 생각들은 늘 지면을 넘어 진동한다.
보이어는 강직한 공산주의자지만 결코 엘리트주의적인 공산주의 지식인은 아니다. 그는 허울뿐인 겉치레를 멀리하고 공산주의적인 발상들을 조금씩 가다듬어 끝내 그 핵심에서 은은히 타오르는 진실의 불씨, 우리가 공유하는 풍요와 타인을 돕고자 하는 선천적 욕망의 불씨를 인식함으로써 공산주의 글쓰기 영역에서 신뢰받는 작가로 자리매김했다.
보이어는 빛이다. 보이어는 마녀다. 보이어는 대양이다.
그리고 이는 나만 아는 사실이 아니다. 보이어는 «여성에 반하는 의복»으로 2016년 문학 잡지 및 출판사 협의회(CLMP)의 파이어크래커상을 수상했고, «어긋난 운명 안내서» 출간 후 2018년 현대 예술 재단(FCA)의 사이 트웜블리상 시 부문과 2018년 와이팅 작가상 시 및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2019년에 9월 중순에는 암과 암의 존재론에 관한 저서 «언다잉»을 출간했고 현재는 첫 소설을 집필하고 있다.
인터뷰가 시작된 시기에 보이어는 케임브리지 대학교 주디스 E. 윌슨 기금의 시 부문 펠로십 자격으로 1년간 영국에서 진행한 워크숍과 집필 활동을 마무리 짓고 있었다. 본격적인 인터뷰 시작을 한 시간 앞두었을 때 보이어는 비자 허가 서류를 수령했다고 전했다. 펠로십을 계기로 방문하게 된 영국은 (캔자스주 설라이나에서 성장한) 보이어가 난생처음 미 중서부 지역을 떠나 발을 내디딘 곳이자, 캔자스시티 예술 학교 학생들을 비롯해 지난해 가을 대학 입학과 동시에 독립한 딸과 처음으로 멀리 떨어져 생활한 곳이었다. 이 인터뷰 중 일부는 보이어가 미국으로 돌아온 며칠 뒤인 2019년 6월경에 진행되었다.
칼리 히치콕
1. “‘아니오’로 포장된 ‘예’”
칼리 히치콕 «어긋난 운명 안내서»에 수록된 첫째 글 <아니오>를 읽는 동안 필경사 바틀비가 떠올랐습니다. 어느 날 일터에서 “안 하는 편을 택하겠습니다”라고 말하고 그걸 자기 인생의 새로운 철학으로 삼게 된 인물이요. 혹시 이 인물에게서 영향을 받은 건가요?
앤 보이어 제가 가르치는 ‘부조리 문학’ 강의의 첫 수업 주제가 바틀비와 소외 개념입니다. 학생들과 카뮈의 작품도 읽고요. 그렇게 ‘예’로 포장된 ‘아니오’와 ‘아니오’로 포장된 ‘예’라는 개념을 추적해 보고 있어요. 강의를 통해 무언가를 반복적으로 가르치고 또 어떤 계기로든 제 강의실을 찾게 된 훌륭한 학생들과 대화를 나누다 보면, 제가 쓰고 싶은 주제와 관련된 아이디어가 진전될 때도 있습니다. ‘아니오’라는 단어가 얼마나 아름다운지에 대한 시를 써 보려 했던 열네 살 시절 일기에서 어떤 아이디어를 발견한 적도 있지만요. 그런데 사실 그런 시를 쓰기 위한 노력을 30년째 이어 오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듯합니다.
칼리 히치콕 ‘예’로 포장된 ‘아니오’와 ‘아니오’로 포장된 ‘예’라는 개념에 대해 더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앤 보이어 허먼 멜빌은 내서니얼 호손에게 부친 한 편지에서 ‘예’가 어째서 위장한 ‘아니오’인지 설명합니다. 그런데 제 에세이에서는 ‘아니오’가 ‘예’를 포장하고 보호하는 일종의 보존제 역할을 합니다. 거부한다는 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보다 나은 것을 보존한다는 것이거든요. 말하자면 ‘아니오’라는 등껍질이 진실하고 열정적인 ‘예’를 보존해 주는 거죠. 운명애(amor fati)를 믿은 니체가 소망한 것은 말 그대로 숙명을 받아들이는 것, 운명을—이를테면 선량함뿐 아니라 고통과 추함도—받아들임으로써 종국에는 자기 자신이 일종의 온전한 ‘예’, 체현된 ‘예’가 되는 것이었습니다. 결국 오늘날엔 니체가 ‘아니오’의 철학자로 인식되고 있다는 걸 생각해 보면 참 흥미로운 일이죠. 이런 식으로 ‘예’와 ‘아니오’ 사이에는 일종의 밀고 당기기가 존재합니다.
니체에게 있어 ‘예’는 누군가의 삶을 이루는 단 일분일초마저도 불운의 시간으로 보지 않겠다는 거부 의사의 표명입니다. 우리는 우리 경험을 이루는 모든 요소를 금지하고, 폄하하고, 비하해야 할 것 같은 압박을 느끼지만, 니체의 관점에서는 순수한 ‘예’를 체화한 존재가 되는 것이야말로 궁극적인 차원에서 사회 규범을 거부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제가 제 에세이에 쓴 ‘아니오’는 우리가 진심으로 사랑하고 우리가 진심을 다해 ‘예’라고 응답하고 싶은 보다 심오한 미스터리를 감싸는 보이지 않는 갑옷 역할을 하고요.
칼리 히치콕 저도 정치적 거부라는 맥락에서 ‘아니오’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혹시 작가님과 뜻이 일치한다고 생각하는 특정 정당이 있나요?
앤 보이어 분명 저는 공산주의자입니다. 저는 세상이 만인을 위한 것이어야 한다고 믿고, 우리 모두가 세상을 공유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애초에 공동 세계니까요. 사유 재산이라는 거짓을 믿어서는 안 됩니다. 전 세계 인구의 80퍼센트가 소유한 돈이 극빈층이 소유한 돈과 맞먹지만, 사실상 각자가 그 돈을 소유했다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건 우리 모두의 것이니까요. 세상을 일구는 건 노동이며, 자신이 세상을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뭔가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정치는 우리에게 여러 선택지를 주지만 그런 선택지만으로는 역사적 순간을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제 아버지는 양자택일을 제시하는 사람은 십중팔구 거짓을 말하고 있는 거라고 늘 말씀하셨어요. 양자택일은 언제나 거짓말일 수밖에 없거든요. 정치는 제한된 선택지만 주어지는 상황으로 우리를 몰아넣습니다. 기만적이죠. 더 나은 것을 향해 나아가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거부를 행하고 ‘아니오’라고 말하는 것이 힘을 갖는 이유도 바로 그 때문입니다.
칼리 히치콕 우리가 한층 공산주의적인 혹은 사회주의적인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앤 보이어 그건 전혀 모르겠네요.
칼리 히치콕 제가 뉴욕에 살아서 그런 건지는 모르겠지만, 요즘 미국인들이 과거에 비해 공산주의와 사회주의에 관심이 많은 것 같다고 느껴요. 공산주의나 사회주의가 그럴듯하다고 생각하는 정도가 아니라 필수 불가결하다는 인식을 갖게 된 것 같달까요.
앤 보이어 정말 그래요. 전 지구의 생존이 우리가 자본주의에서 벗어나느냐 아니냐에 달려 있으니까요. 우리가 지구에 계속 존재하고 싶다면 변화를 만들어 내야 하는 거죠. 게다가 제 딸과 딸의 고등학교 토론회 학생들도 사회주의와 공산주의와 반자본주의에 놀라울 정도로 우호적이었어요. 고등학생 시절 제게도 그런 친구가 몇 있기는 했지만, 확실히 그땐 그런 게 실제로 가능하다는 가정하에 막힘없이 토론한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우리가 변화를 위한 준비를 갖춰 놓으면 좋겠어요. 우리가 위기와 불안정과 궁핍의 상황으로 점점 더 떠밀려 갈수록, 우리에게 현 상황이라고 주어진 현실이 실은 작동 불가능하며 우리가 인간 종으로서 지닌 가능성을 통해 더 나은 것을 취할 수 있다는 사실을 깨닫기 시작할 거라고 저는 진심으로 생각합니다.
칼리 히치콕 예전에 “인간은 가만 내버려 두면 꽤 귀여워질 수 있는 존재다”라고 말씀하신 적 있죠. “자본주의는 우리의 영혼을 수상쩍고 편협한 것으로 만든다”라는 트윗도 남겼고요.
앤 보이어 정말 그렇지 않나요!
칼리 히치콕 맞아요, 정말 그래요. 그리고 저는 그게 보수주의자나 자유 지상주의자들이 자본주의를 자연화한 방식 그대로 공산주의를 자연화할 훌륭한 방법을 보여 준다고 생각해요. 그런 보수주의자나 자유주의자는 의식적으로든 무의식적으로든 «이기적 유전자»를 들먹이면서 자본주의가 다윈의 진화론으로 뒷받침될 만한 숙명적인 결과라고 말하죠. 그에 반해 작가님은 어쩌면 우리에겐 서로를 돕고 풍요로운 생활 방식을 증진하려는 경향이 강할지도 모르는데 실제로는 뭔가가 결핍돼 있다는 사고 방식에 길들어 있음을 보여 주고 있고, 저는 그런 게 정말 좋답니다.
앤 보이어 한번 상상해 보세요. 대형 경기장에 가면 마주치는 사람들이—그러고 보니 요전에 제가 축구 경기장에서 미란다 램버트 공연을 봤네요—제각기 어린 아이였던 시절을요. 화장실을 이용할 줄도, 코를 닦을 줄도 몰랐던 아이들이 어떻든 계속 살아남아 어른으로 성장한 모습을요. 그런 아이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데는 분명 최소 한 사람의 공이 있었을 겁니다. 그야말로 놀라운 협력의 결과인 거죠. 어른으로 성장한 모든 개인, 어른으로 성장한 모든 인간은 살아 움직이는 반박 불가능한 증거예요. 우리가 서로를 돌보는 법을 알고 있고, 자본주의가 야기한 편협하고 이기적이고 경쟁적인 세계 외에 더 많은 것을 품고 있음을 증명하는 증거 말예요. 그런 것들은 더 나아가 인간이 지닌 동물성도 상기시키죠.
이 세상이 부리는 농간 중 하나는 우리가 우리의 역사적 상황을 자연스러운 상태로 착각하게끔—가족 형태, 경제의 작동 방식, 우리가 타인을 대하는 방식을 자연스러운 상태로 간주하도록—만드는 것입니다. 심지어는 감정까지도요. 이를테면 성적 흥분이 보다 거대한 사회 구조를 반영하는 자연적인 과정이 아니라, 그 자체로 진실하고 자연스러운 것이라고 가정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그래서 저는 자본주의가 가장 자연스러운 존재 양식이라는 서사를 거스르는 모든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 증거를 어디에서나 찾을 수 있으니까요. 사소한 체제 전복도, 대범한 체제 전복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지구상에서 그 어떤 형태의 반란도 일어나지 않은 곳은 단 한 평도 없을 거고요. 우리는 내면에 이런 경이로운 가능성을 품고 있는 존재예요. 비록 현재의 사회 구조가 우리를 속여 절망과 체념으로 몰아넣을 수는 있지만요.
이데올로기적인 교육의 공세에 직면한 우리는 정신적 차원에서 궁지에 몰려 있습니다. 저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사람들과 자극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이런 것들에 대해 대화해 보려 하고 있는데요. 제가 느끼기엔 이 세상과 잘 어우러지는 사람들이 이 세상 그리고 세상이 베푸는 보상을 독차지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게 상식적인 일로 받아들여지기도 하고요. 그런데 지금 우리가 따르는 생활 방식을 각자의 정치적 관점에 얽매이지 않고 그저 상식의 관점에서 바라본다면, 이 방식의 열렬한 옹호자를 찾기란 굉장히 힘들 겁니다. 저는 지금의 방식이 효과가 없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사람이 깨달았다고 생각해요.
제가 늘 실천하려고 애쓰는 것 중 하나는 공산주의자 혹은 사회주의자가 되기 위해 마르크스주의 지식인이 될 필요는 없다는 사실을 명확히 하는 겁니다. 애초에 지식인이 될 필요도 없습니다. 버소(Verso) 출판사에서 출간한 책 가운데 상당수를 읽어 봐야 하는 것도 아니고, 알 만한 사람들만 아는 전문 용어를 알아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런 사상에 대한 믿음을 품고자 밤새 페이스북에서 벌어지는 토론에 참여해야 하는 것도 아니거든요.
저는 그렇게 제한된 구성원으로 이루어진 무리가 일련의 집단주의적 가능성을 거머쥐고 있는 상황이 작금의 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저는 소외되고 있고요. 오로지 제 고집만이, 이런저런 생각에 대한 제 애착만이—심지어 그런 생각이 다른 누군가의, 어떤 엘리트들의 소유물인 것 같고 그래서 그들의 실체를 아는 저로선 참으로 부조리하다는 생각이 들어도—제 완고한 태도와 ‘다 좆까’ 하는 심정만이 제가 가진 생각을 계속 붙들게 해 주고 있네요.
2. “온갖 평등주의적 충동”
칼리 히치콕 케임브리지에서는 어떤 시간을 보냈나요?
앤 보이어 케임브리지 방문에는 단순히 익숙한 곳을 떠나 새로운 장소로 가는 것 이상의 의미가 있었습니다. 태어난 지역에서 교육까지 받으며 그야말로 평생을 보낸 사람의 여정이기도 했고, 그저 하나의 색다른 국가가 아닌 영국의 계급 제도를 명시적으로 재현하고 있는 장소로의 이동이기도 했죠.
무척 곤란했던 건 케임브리지의 계급 제도에 맞는 행동 양식을 익히는 일이었어요. 거기 계급 제도의 주목적은 영국에서 태어나 영국 사립 학교에서 교육받은 상류 계급의 관습을 강화하는 것뿐만 아니라 상류 계급 출신은 아니지만 누구보다 총명한 이들이 엘리트 집단의 일원이 될 수 있도록 그에 걸맞은 행동 양식을 가르치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심지어는 학생들의 방까지 매주 청소부가 청소했고, 학생들은 하나같이 영국의 영주 가문에서나 볼 법한 집사, 문지기, 정원사와 함께 사는 법을 배웠습니다. 그런 제도 속에 던져진 저는 대접받는 상황을 그럭저럭 받아들이는 법을 익히기에 이미 너무 나이 든 상태였고, 식탁에서 자기 접시를 직접 치우지도 않고 자기가 쓰는 화장실을 직접 청소하지도 않는 사람이 되지는 못하겠더라고요. 상류 계층의 그런 무력함, 케임브리지가 학생과 교직원에게 요구하는 듯이 보이는 그런 속성을 익히는 삶에 익숙해지려다 보니 우울해졌고 소외감도 점점 더 많이 느끼게 됐어요.
문지기들이 모든 입구와 방벽을 지키고 있고 일주일에 몇 차례씩 청소부들이 방을 청소해 주는 공간에서 사는 건 적응하기 굉장히 힘든 일이었습니다. 제가 처음에 묵은 방을 청소해 준 분은 폴란드 출신의 30대 여자였는데, 그분은 항상 페미니스트 티셔츠를 입고 다녔어요. 성격이 시원시원해서 다른 환경에서 만났더라면 좋은 친구 사이가 될 수 있었을 거란 생각도 들었죠. 그분은 제 방에 있던 타로 카드를 발견하고는 어느 날 제게 타로 점을 봐줄 수 있겠냐고 물었어요. 그래서 저희는 타로 카드를 펼쳐 놓고 마주 앉아서 인생 이야기를 했고요. 그런데 그때, 그토록 유서 깊고 보수적인 케임브리지 대학에서 저희처럼 서로 마주 앉아 타로점을 본 초빙 교수와 청소부는 역사상 단 한 쌍도 없었을 거라는 생각이 스쳤습니다. 저와 청소부의 관계 속에 일종의 구조적인 금지가 견고히 자리 잡고 있었던 겁니다. 대학에서 주최하는 공식 정찬 자리에 그분과 함께 참석해 볼까 하는 생각도 했는데, 그렇게 했다간 그분을 곤란한 상황에 빠뜨리고 계급 제도에 균열을 일으키겠다는 의도도 쓸모없는 퍼포먼스로 귀결되기만 할 것 같았어요. 그런 제도는 온갖 평등주의적 충동을 품고 있기는 하나 일개 미국인인 제가 바꿀 수 있는 게 아니고, 그 제도의 본질은 몇 세기에 걸쳐 동일한 방식으로 이어져 온 것이니까요.
하지만 저희는 그런 제도 속에 있는 사람인 동시에 서로와의 관계 속에 있는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다만 그곳이 저희의 공간도, 저희가 구축한 구조도 아니었던 거죠. 저희 둘 다 외부인이었고, 기존 제도를 떠받치기 위해 불려 간 것이니까요. 저희가 그 제도를 유지하는 것에 어떤 이해 관계를 가진 것도, 그 제도의 영속성을 훼손시킬 힘을 가진 것도 아니었지만요.
칼리 히치콕 서로 다른 국가 출신의 외부인이 서로 다른 형태의 노동을 한다는 점이 흥미로운 부분인 것 같습니다. 작가님 그리고 작가님과 친구가 된 여자분 모두 영국 계급 제도의 재확립이라는 임무 수행을 위해 영국 외부에서 불려 온 사람이었지만 서로 조건이 달랐던 거니까요. 혹시 그런 경험이 브렉시트라든가 최근 영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현상을 반영하고 있다고 생각하나요?
앤 보이어 다른 건 몰라도 국경을 둘러싼 사안들의 모순적인 속성은 잘 보여 주는 것 같습니다. 케임브리지와 여타 엘리트 교육 기관은 국경 개방을 필요로 합니다. 그래야 누구보다 영리한 인재들을 영입할 수 있고, 명문 교육 기관으로서의 명성을 유지하려면 일류 학자들을 확보하고 있어야 하니까요. 그리고 당연한 일이지만, 계급 제도를 계속 유지하려면 저임금 이주 노동자들의 노동력이 필요합니다. 이주 노동자들이 시중을 들고 명령을 순순히 따르도록 교육도 시켜야 하고요. 말하자면 상류 계급의 이익을 위해 이런 종류의 국경 개방이 필요한 것이죠. 기업들은 저렴한 비용으로 제품을 생산하기 위해 개방 무역을, 고용주들은 이윤을 남기기 위해 마음껏 조정하고 조종하며 착취할 수 있는 노동력을, 정보 경제와 정보 기관들은 영리한 일꾼을 필요로 합니다. 이 모든 것의 선결 조건은 국경 개방이고요. 그런 한편 정치 권력의 강화는 일면 이슬라모포비아와 인종주의, 국외자에 대한 공포를 조장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집니다. 국경 폐쇄를 추진함으로써 가난한 노동자들의 자유로운 이동을 방해하고, 사람들이 지각하는 문화적 위협이라든가 온갖 유형의 차이에 대한 공포를 유발하는 겁니다. 이 모든 조치의 목적은 정치 권력 창출이지만, 글로벌 자본 흐름과 지식인 계급을 염두에 둔다면 국경은 완전 개방되어야 합니다.
사람들은 단순히 입국을 저지당하기만 하는 게 아니라, 끔찍한 조건하에 구금되고 있습니다. 이동하려 했다는 이유만으로 구금되고 저지당하고 처벌받고 있는 겁니다. 세계 각국이 개개인의 자유로운 이동을 가로막기 위한 극단적인 조치를 동원하는 동안, 상류 계급을 위한 인재, 사상, 물자의 이동은 초가속화되고 있습니다. 상류 계급은 완전한 이동의 자유를 누리는 데 반해, 가난한 노동 계급은 매 순간 좌절과 조종을 경험하고 있고요. 이 노동 계급의 이동이 허용되는 경우는 더 많은 권력을 쥔 사람들에게 봉사할 때뿐입니다.
칼리 히치콕 맞아요. 이렇게 모든 문제에 다루기 힘든 모순이 내재해 있다 보니 결국 점점 더 불평등한 상황으로 치닫고 있죠.
앤 보이어 제가 케임브리지에서 경험한 건 그런 극심한 부당함이었습니다. 현 제도에서 성장해 케임브리지나 옥스퍼드에 진출하는 사람들은 장차 언론과 정부에 자리를 얻게 될 겁니다. 어딜 가든 왕 대접을 받을 것이고, 나머지 사람들은 그저 자기가 운이 지지리도 나빴다고 생각하겠죠. 어떻게 해도 무너뜨릴 수 없는 계급 관계의 이동 불가능성이란 게 있는 거예요.
제가 케임브리지에서 만난 사람 중에 브렉시트 찬성자는 한 명도 없었습니다. 다들 지식인의 이동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이해하고, 프랑스에서 구운 크루아상을 먹고 싶어 하고, 에스파냐에서 휴가를 보내는 따위를 빼앗기지 않고 싶은 겁니다. 그런 점에서 이건 일종의 매정한 제노포비아나 보호 무역주의가 아니라, 브렉시트를 둘러싼 문제들보다 더 거대하고, 더 장기적이고, 더 까다로운 사회 구조에 내재한 약간 다른 유형의 보수주의에 가깝습니다.
3. “저 배우들은 암에 안 걸렸네”
칼리 히치콕 «언다잉»에 대해 말씀해 주세요.
앤 보이어 «언다잉»은 2014년 8월 악성 유방암 진단을 받은 주에 집필을 시작한 책입니다. 갓 마흔하나가 된 때였고 마침내 인생이 안정적인 시기에 접어들어 모든 게 잘 풀리고 있었습니다. 더할 나위 없이 활력이 넘치고 건강한 기분도 들었고요. 그런데 단 며칠 만에 제가 알고 있던 모든 게 뒤집히고 말았습니다. 제가 병든 상태라는, 굉장히 공격적인 치료를 받지 않으면 얼마 못 살 거라는 말을 들은 겁니다. 살 수 있을지 아니면 죽게 될지 아무것도 알 수 없었던 데다가 항암 화학 요법을 받으면 뇌 손상, 기억 상실, 언어 상실을 겪게 될 게 뻔했기 때문에 저는 치료를 받는 기간에 글을 썼습니다. 치료를 받으러 갈 때마다 이번에는 내 어떤 부분을 잃게 될지도 알 수 없었습니다. 치료 기간에 저는 수천 단어 분량의 일기를 썼고, 나중에는 계속 살 수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치료 때문에 몸이 망가지고 불구가 된 상태였기 때문에 계속 썼습니다. 그 후에는 그동안 쌓인 10만 단어를 압축하고 압축하고 또 압축해 4만 단어로 줄인 다음 다시 더 적은 분량의 산문으로 만들었고요. 이 산문은 치료 기간에 남긴 기록들을 토대로 쓴 것이기는 하지만, 그 기록을 그대로 복제한 결과물은 아닙니다. 그 기록과는 다른 무언가가, 저만의 경험을 담은 서사를 넘어서서 앎을 얻는 방법을 보다 넓은 시각에서 탐구하는 무언가가 되었으니까요. 특히 앎을 얻는 능력이 완전히 고갈되었을 때 앎을 얻는 방법과 유방암이 초래한 이데올로기의 맹공격을 탐구하는 책이 되었네요. 암 치료를 받다 보면 약에 취하고 잔뜩 겁먹게 됩니다. 제가 저 자신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 부분 중 하나가 꽤 똑똑하다는 것이었는데, 약에 취하고부터는 심하게 둔해졌죠. 그런 와중에도 저는 진실이 무엇인지, 이를테면 어떤 치료를 받아야 하는지, 무엇 때문에 내가 암에 걸리게 된 건지, 내가 걸린 암이 젠더, 경제, 인종 등 이 세상의 나머지와 어떤 관계를 맺고 있는 것인지를 알아야 했습니다. 그런 것들을 알고 싶은 마음이 절실했어요. 그런데 그럴 능력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이—질병과 장애와 고통과 소진에 관한 책에 그치지 않고—일종의 인식론적 스릴러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어요. 앎을 얻는 방법과 얻을 수 있는 앎에 관한 생각들이 서사의 주도권을 쥐고 이끌어 나가는 책이 되기를 말이죠.
칼리 히치콕 무엇이 진짜인지를 알 수 없어서 이 세상으로부터 고립될 뿐만 아니라 내 몸과 내가 지닌 능력으로부터도 고립된다는 점이 흥미롭습니다. 이중의 고립이 작용한 것이네요.
앤 보이어 그동안 트라우마로 남을 만한 온갖 일을 겪으며 살았지만, 암만큼이나 저를 소외시킨 경험은 없었습니다. 게다가 친구들이 정말 믿기지 않을 정도로 저를 잘 돌봐 주었기 때문에 많은 사랑을 받는 이상적인 환경에 놓여 있었으면서도 여전히 몹시 외롭고 무척 쓸쓸했어요. 그리고 머지않아 온 세상의 구조가 암을 중심으로 재편되기 시작했어요. 암 말고는 아무것도 없었죠. 제 눈에 보이는 모든 사람도 그저 암에 걸리지 않은 사람으로만 보였어요. 영화를 보러 가서도 한 시간 사십칠 분 내내 ‘저 배우들은 암에 안 걸렸네’라는 생각만 했고요. 어쩌면 배우들이 암에 걸렸던 것일 수도 있겠죠! 여하간 암에 걸리면 그것 말고는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는 경험을 하게 된답니다.
«언다잉»에서 저는 침대와 스크린이라는 두 직사각형 사이를 왔다 갔다 합니다. 침대와 스크린은 현대 질병을 규정짓는 두 가지 지배적인 형상이죠. 암은 스크린에서의 삶, 데이터의 삶을 풍족하게 누립니다. 암에 걸린 사람은 스크린을 뚫어져라 응시하거나 직사각형 침대에 파묻혀 있거나 하면서 거친 몸짓으로 두 직사각형 사이를 오가고요. «언다잉»의 트레일러를 제작한다면 그 영상에는 4분 내내 침대, 스크린, 침대, 스크린만 번갈아 나올 거예요.
칼리 히치콕 크리스토퍼 히친스의 «죽음»[1]이라는 책 읽어 보셨나요?
앤 보이어 아뇨, 하지만 질병 문학에 대한 조사는 좀 해 봤는데요. <개구쟁이 스머프>에 굉장히 멋진 에피소드가 있더라고요. 그 에피소드에서는 시인 스머프가 더는 시를 쓰지 못하는 상황에 처합니다. 그것도 하필 다른 스머프들이 시에 푹 빠져들게 됐을 때 말예요. 시인 스머프가 점점 유명해지고 시 자체도 점점 인기가 많아지니 다들 시인 스머프를 찾아와 시를 지어 달라고 하는데, 시인 스머프는 더 이상 시를 쓰지 못합니다. 그러다 영감을 얻으러 영양의 계곡(Valley of the Wildebeests)에 간 시인 스머프는 영양 공주를 울리지 못하면 잡아먹힐 각오를 하라는 영양들의 협박을 받게 됩니다. 하지만 시인 스머프는 영양 공주를 울릴 시를 짓지 못해 결국 죽을 위기에 처하죠. 죽음을 코앞에 둔 시인 스머프는 마지막으로 친구들을 위한 시를 쓰고 싶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시를 쓴 후, 항상 바위를 들어 올리고 다니는 친구들이 발견할 수 있도록 시를 바위 밑에 놓아 달라고 요청합니다. 그런데 그 시를 한 영양이 읽게 되고 결국 공주 영양을 울려 목숨을 구하게 되는데요. 시인 스머프가 돌아가자 시는 스머프 마을에서 더 이상 중요하지 않은 것이 되어 버린답니다. 저는 열과 약 기운에 취한 병세 깊은 밤을 보내던 시기에 이 에피소드를 봤어요. 3막 전체에서 비올레타의 죽음을 다루는 <라 트라비아타>도, 1980년에 개봉한 영화 <죽음의 중계>도 봤고요. 그래서 히친스의 책은 읽지 않았지만 <개구쟁이 스머프>는 봤다고 말씀드릴 수 있겠네요.
칼리 히치콕 스머프 얘기가 히친스 책보다 더 흥미로운걸요.
앤 보이어 [웃음] 음, 죽음과 글쓰기의 방향은 여러 갈래로 나뉠 수 있는 것 같아요. 죽음을 앞둔 존 던은 «다가오는 시간에 부치는 기도»에서 신을 향해 허세를 부립니다. 그의 불손한 태도와 그가 그토록 위대한 시인이 되어 그토록 위대한 책을 집필한 것을 두고 신이 벌을 내릴 수도 있었을 테니 그가 죽지 않은 건 어쩌면 운이 따른 결과일지도 모르겠네요. 조금은 더 겸손해야 했어요. 아무튼 때로는 불손함이—마지막 숨결로 최상의 노래를 부르는 것처럼—최상의 것을 만들어 내기도 하고, 때로는 우리의 온갖 허영심과 자존심이 넘쳐흘러 그런 최상의 순간을 만들어 내기도 합니다. 저는 제 일기를 다시 살펴보는 동안 과거에 내가 나 자신에게 어떤 거짓말을 한 건지 수없이 생각해야 했고 그런 거짓의 주름을 반듯하게 펴야 했습니다. 한 문장 한 문장 읽으며 교정을 보는 동안에는 속으로 이렇게 자문하기도 했어요. ‘이거 진실일까, 아님 그냥 내가 진실이라고 생각한 걸까?’ ‘내가 나를 속인 부분은 어디고, 내 허영심이나 사적인 좌절이 반영된 부분은 어디지?’
칼리 히치콕 어쩌면 당시의 자존심과 허영심은 불멸을 향한 욕망이었을 수도 있겠네요.
앤 보이어 맞아요, 정말 그래요.
칼리 히치콕 죽음에 대한 두려움과 연관되기도 하고요. 전적으로 정상적인 일이죠.
앤 보이어 제가 책에 요절과 요절이 갖는 펑크록적 매력에 대해 쓴 부분도 있는데요. 실제로 병에 걸리게 되면 ‘취소할게요. 못 들은 걸로 해 주세요. 그냥 친구들이랑 같이 늙어 죽고 싶어요’ 하는 심정이 된답니다. 그리고 책에서 아르테미시아 젠틸레스키가 그린 <클레오파트라>와 한 플랑드르 화가가 오래전에 남긴 그림도 언급했는데요.[2] <클레오파트라>는 그야말로 섹시함이 철철 넘쳐흐르는 그림이고, 다른 그림은 그야말로 굉장히 무시무시한 그림이에요. 저는 병드는 과정을 겪고 죽음에 대해 숙고하는 동안 ‘그래, 나는 <클레오파트라> 그림 같은 책을 쓸 수 있어!’라는 생각에 몰두하기도 했는데 그만큼 한발 물러서서 그런 책이 진실인지 파악해야 했어요. 그러다 ‘아니! 그건 진실이 아니야!’하고 깨우치게 됐고요. 그런 식으로 허영심을 조정해야 했죠.
저는 글을 쓰다가 제 본연의 약함, 제 본연의 꽉 막힌 시선, 진실을 분간하거나 어떤 아이디어를 발견해 내는 작업이 썩 내키지 않는 순간을 인지하면 그걸 그냥 글 안에 담으려고 해요. 제가 할 수 없는 것을 그냥 글 안에서 시인하는 거죠. 저는 자신이 쓴 글에 모든 해답이 들어 있다고 가정하거나 모든 것에 대해 권위적인 태도로 말하는 작가가 되고 싶은 생각이 전혀 없습니다.
칼리 히치콕 «어긋난 운명 안내서»에서 질병에 관한 또 다른 책인 «마의 산»도 언급하셨죠.
앤 보이어 네, «마의 산»은 시간과 질병에 관한 소설이고, 정말 환상적인 작품입니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고 병드는 상태가 지속되는 그런 소설을 써낼 수 있는 작가는 토마스 만이 유일하죠. 병자에 관한 문학의 정전에서 저는 «마의 산»과 «다가오는 시간에 부치는 기도»가 가장 인상적이고 깊이 있는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칼리 히치콕 두 작품이 어떤 점에서 특별한가요?
앤 보이어 위대한 두 작가가 복잡하고 다루기 어려운 주제에 대해 썼다는 사실만으로도 특별합니다. 저는 «언다잉»에서 버지니아 울프 그리고 ‘병듦을 다룬 위대한 문학은 존재하지 않는다’라고 주장한 울프의 에세이 <병듦에 대하여>를 언급하면서 “병듦을 다룬 위대한 문학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은 병듦을 다룬 거의 모든 문학에 담겨 있는 주장이다”(124쪽)라고 썼는데요—왜냐하면 정말 그러니까요! 파토그래피, 즉 질병 전기가 지닌 놀랍고도 희한한 측면 중 하나는 ‘왜 여태 아무도 이런 걸 쓰지 않은 거지?’라는 생각을 모두가 품게 된다는 데 있답니다—그래서 글을 쓰는 동안 그런 생각을 하지 않으려 했지만, 그럼에도 글을 쓰는 내내 머릿속에 ‘아, 나는 지금 전례 없는 뭔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거야’라는 생각이 맴돌더라고요. 전례 없는 뭔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말은 우리가 서로에게 들려주는 강력한 신화이기도 하니까요.
다만 제겐 전례가 되어 준 작가가 한 명 있었습니다. «언다잉»에서 중요하게 다루는 2세기의 그리스 웅변가 아리스티데스예요. 병을 치유할 처방을 얻기 위해 병자의 몸으로 신성한 신전에서 잠을 청한 수년의 시간을 «성스러운 이야기»로 담아낸 사람이죠. 그래서 저는 책을 쓰는 내내 ‘나보다 앞서 이런 책을 쓴 사람은 없어’라고 생각하는 동시에 ‘나는 병듦에 관한 전례 없는 책을 써낸 2세기 웅변가에 대한 책, 그리고 우리가 믿을 수 있는 것과 믿을 수 있는 것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 방법에 관한 책을 쓰고 있는 거야’라고도 생각했답니다.
칼리 히치콕 전례 없는 무언가를 만들어 내고 있다는 믿음이 어쩌면 글쓰기를 할 때 느끼는 일반적인 감정이 아닐까 싶기도 합니다. 하지만 질병에 관한 글쓰기를 할 때 느끼는 감정은 더 농밀할 것 같아요.
앤 보이어 질병은 기존 서사에 일종의 저항감을 품고 있는 측면이 있습니다. 기존 서사에 저항하는 일이 계속 벌어지고 있기도 하고요. 그런데 정말 훌륭한 작가가 그런 서사에 뛰어들면, 질병에 관한 아주 환상적인 작품이 탄생할 수 있습니다. «마의 산»이나 «다가오는 시간에 부치는 기도» 같은 작품이 실제로 탄생하기도 했고요. 사실 제가 속으로 ‘나는 지금 전례 없는 뭔가를 만들어 내고 있는 거야’라고 생각하는 동안 진심으로 바랐던 것은 제 책이 책장 속에서 그런 작품들 옆에 놓이는 거였어요. ‘내가 존 던이나 토마스 만이나 버지니아 울프나 수전 손택의 작품들 사이에 아늑히 자리 잡을 책을 쓸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며 그런 장면을 꿈꾼 거죠.
4. “주둥이부터 꼬리까지”
칼리 히치콕 요즘엔 무엇에 대해 생각하시나요?
앤 보이어 음, 지금은 소설을 써 보려 하고 있는데, 소설 쓰기가 제게 완전히 새로운 작업이라 최근엔 소설 생각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정신적으로 취약한 상태에서 무얼 하려는 건지도 모르면서 소설을 하겠다고 덤볐으니, 생각하지 않을 도리가 없네요. 지금은 글을 써 보려고 고군분투하는 어린 아이의 마음가짐으로 장문의 서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소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소설의 세계로 진입할 글을 어떻게 쓸 수 있을지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원래 소설 쓰기는 «언다잉»을 마무리 지은 것에 대한 자기 보상이었어요. «언다잉»을 쓰는 동안 굉장한 비참함을 감내해야 했거든요. 암 치료의 고통과 그에 결부된 감각들을 되새기느라 몸에 통증을 느끼기도 했고요. 그래서 «언다잉»을 쓰는 내내 스스로에게 이렇게 말했어요. 소설을 쓰고 그걸로 보상받는 거야, 소설 쓰기는 그리 스트레스 받는 일도 아닐 테고, 인형 놀이를 하는 기분일 거야, 그냥 상상력을 발휘하면 물 흐르듯 써질 테니까 마음껏 즐기면 돼, 실제 경험을 충실히 반영할 필요도 없고, 그냥 혼자서 완전한 판타지 게임을 즐기듯이 하면 돼, 라고요. 그런데 결국엔 제가 지금껏 쓴 그 어떤 글보다 더 진실에 충실한 소설을 쓰게 됐어요. 제가 예상한 소설 쓰기의 즐거움 같은 건 거의 느끼지도 못하면서요. 아침에 일어나서 제 소설을 읽어 보면 작가로서의 부족함을 직시하게 되거든요. 그러니 이게 어떻게 될지는 일단 두고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칼리 히치콕 저는 작가님의 이메일 뉴스 레터를 구독해서 읽고 있는데, 레터를 읽다 보면 픽션과 복잡한 관계를 맺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책과 관련해 이런 문장도 쓰셨죠. “자기 비밀을 폭로하는 것도, 증명되지도 않은 자기 생각을 아무에게나 강박적으로 쏟아내는 것도 우스꽝스럽다.” 생각해 볼 만한 좋은 문장인 것 같습니다. 그런데 작가님 말씀처럼 소설은 무언가를 더 깊게 파고들 방법도 제공해 주는 것 같아요.
앤 보이어 바로 그걸 배우고 있습니다. 더 깊게 파고들고, 더 많은 것을 담는 것에 대해서요. 픽션을 쓸 때는 서로 다른 대상을 잇는 조직(組織)에 대해 생각해야 합니다. 예컨대 사람들이 공간 사이를 이동하는 방식을 떠올려야 하죠. 소설이 아닌 글에서는 결코 일어나지 않는 일이지만, 소설에서는 누군가가 이 방에서 저 방으로 이동해야 하거든요. 온갖 전치사와 추가 접속사와 대화가 필요한 것도 그 때문이고요. 소설은 경험을 아름답게 응축하는 시와도, 생각하는 몸을 매개로 사물의 정신을 자유롭게 전달할 수 있는 에세이와도 달라서 그런 모든 부위와 조직과 인대를 다루어야 합니다. 그로써 경험에 대한 이해를 더 심화할 수 있고요. 하지만 저는 전문 소설가가 아니라 그런 점에서 굉장히 부족하다는 느낌이 듭니다.
소설을 읽는 방식도 예전과는 달라져서 더 인내심 있고 관대한 마음가짐으로 독서하려 한답니다. 예전에는 소설을 읽으면 그 소설을 읽으며 느껴야 할 감정을 느끼고 싶어 했고, 비판적인 태도 같은 걸 거의 견지하지 못했어요. 그 소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낱낱이 분석할 생각이 없었거든요.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아요. 저는 훌륭한 소설가란 서로 다른 대상을 잇는 조직의 필요성을 활용하여 최대한 이로운 효과를 내는 방법을 아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 소설가는 소설이 안기는 부담을 부담이 아닌 기회로 간주하죠. 저도 그렇게 하고 싶어요. 그렇게 하는 방법을 이해하고 싶어요.
저에게 이번 여름은 발자크의 여름이었습니다. 발자크는 정말 훌륭한 작가예요. 대부분 이미 알고 있는 사실이겠지만요. 발자크는 정말 아무것도 낭비하지 않는 작가입니다. «사촌 베트»에서는 어떤 가구였는지 장식장이었는지가 생산된 연도를 언급하는데, 그런 정보가 그의 책에서는 놀랍게도 가구 장식의 역사를 알려 주는 지표가 되거든요. 다른 작가였다면 그냥 가구 장식을 묘사하고 말았겠지만 발자크는 그렇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독자들은 그런 가구의 무게와 너비, 가구 소유주와 가구의 관계까지 알게 돼요. 레스토랑 중에 모든 부위를 쓴다고 장담하는 곳들 있죠? «사촌 베트»는 이를테면 소설의 주둥이부터 꼬리까지 빠짐없이 담은 작품이에요. 그래서 발자크의 작품이 제겐 굉장히 훌륭한 교재가 되어 주고 있고요. 발자크는 단어 하나하나와 그 단어 하나하나의 필요성을 활용해서 궁극의 이해와 진실과 재미를 이끌어 낼 수 있는 작가입니다. 그 모든 것을 구현해 내는 동시에 필요에 따라 독자가 박장대소할 만큼의 재미를 선사하기도 하고, 눈물을 쏟을 만큼의 슬픔을 안겨 주기도 하고요. 저는 그런 부분을 배우고 있고, 머잖아 터득하고 싶습니다.
칼리 히치콕 그런 말씀을 들으니 톨스토이도 떠오르네요. «안나 카레니나»는 그 안에 담긴 모든 디테일이 의미심장해서 읽는 데 상당한 시간이 드는 작품이죠. 관심을 갖고 살펴보면 그런 모든 디테일이 등장 인물들에 대한 설명을 담고 있고요. 등장 인물 중 한 사람이 벌 한 마리와 교감을 나누는 대목이 있었는데 그게 사실 그 인물에 관한 중요한 핵심을 알려 주는 부분이었던 것이 기억나네요.
앤 보이어 소설을 이해할 때 지켜야 할 가장 중요한 원칙이 바로 벌에 주목하는 것이죠. 저는 올여름에만 벌써 3만 5,000단어를 썼어요. 처음에는 손끝에서 꿀이 뚝뚝 떨어지는 것마냥 술술 써졌는데, 사실 쓸 수 있는 날만 잔뜩 벼르고 있던 글이어서 가능했던 것 같아요. 그렇게 초반에 맹렬한 기세로 쓰고 나니 이제는 이 소설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어떤 식의 구조를 갖게 될지를 더 신중하게 생각하게 되네요. 원리를 치밀하게 파악해서 잘 굴러가게 해야겠죠. 사람들의 머리 위로 와르르 무너지게 만들 수는 없으니까요!
칼리 히치콕 정말 기대됩니다. 소설은 언제쯤 출간될까요?
앤 보이어 «언다잉»은 2019년 9월에 출간되었는데 소설은 언제 나올지 저도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아직 마무리해야 할 부분도 남아 있고, 출판하기에 적합한 형태로 처음부터 끝까지 다듬어야 하거든요. 제 생각에는 전부 계획대로 될 것 같고, 그렇게 되기를 진심으로 바라고 있기도 합니다. 기쁨이 깃들어 있는 소설이니까요. 제 소설은 인디 록이 유행하는 90년대 캔자스주 중부 지방의 한 대학 도시를 배경으로 펼쳐집니다. 그렇다 보니 젊은이 특유의 반항과 기쁨이 담겨 있고, 저는 향수에 푹 젖은 채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으면서 작업하고 있습니다. «언다잉»이 너무나도 슬프고 모진 작품이라 체이서[3] 한 잔 없는 세상에 내버려 두고 싶지 않거든요. 슬픔과 고됨과 비통함을 담은 책을 쓰고 났더니 바로 다음 작품은 그저 즐거운 책이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고요. 즐거움 속에 힘듦도 있겠지만 그래도 사람들이 자신의 예술과 삶의 방식을 장악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고, 서로를 사랑하고, 함께 음악을 만드는 순간을 만날 수 있을 거예요. 저는 그런 책을 쓰려고 매일매일 부단히 나아가고 있습니다.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가능한 한 계속 소설을 쓰려 하는 저를 멈춰 세우려면 아마 제 양손을 결박해야 할걸요.
[1] [옮긴이] 크리스토퍼 히친스, «신 없이 어떻게 죽을 것인가», 김승욱 옮김, 알마, 2014.
[2] «언다잉»에서 보이어는 회화라는 수사를 매개로 죽음에 대해 쓴다. 보이어가 특히 흥미롭게 바라보는 작품은 죽어 가는 클레오파트라를 하인들이 발견하는 장면을 그린 (1627~1635년 사이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젠틸레스키의 그림이다(클레오파트라의 죽음은 미술에서 흔한 주제 중 하나다). 보이어는 이 젠틸레스키의 그림을 1621년에 한 익명의 화가가 그린 인물화와 병치한다. 익명의 스물다섯 살 플랑드르 여자가 사망하고 두 시간이 흐른 시점의 모습을 담은 이 인물화는 이미 사후 경직이 진행돼 누렇고 창백해진 여자의 몸을 청색과 금색이 섞인 침구와 회색 벽지와 대비시킨다.
[3] 독주를 마신 후 연달아 마시는 도수가 없는 음료나 도수가 낮은 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