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없는 시간»

«나이 없는 시간: 나이 듦과 자기의 민족지»
마르크 오제 지음 | 정헌목 옮김 | 144쪽 | 12,000원

우리는 나이 듦이 자연스럽지도 바람직하지도 않은 시대를 살고 있다. 전통과 위계를 중시하던 과거에는 나이가 들수록 자연스레 권위와 존경을 얻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른바 고령화와 진행되고 사회의 변화가 가속화된 오늘날 나이가 든다는 것은 낡고 뒤처졌다는 것을 뜻할 뿐이다.

그래서 나이 듦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노년의 삶을 어떻게 꾸릴지 고민하는 사람도 점점 늘고 있다. 프랑스의 원로 인류학자이자 ‘비장소’라는 개념으로 잘 알려진 마르크 오제의 «나이 없는 시간»은 이처럼 나이 든다는 사실의 의미를 사유하는 책이다. 원서가 출간된 2014년에 일흔아홉 살이었던 지은이는 켜켜이 쌓인 세월에서 체득한 성찰과 인류학자 특유의 관찰을 결합한다.

이 책의 제목이 역설하듯 나이 듦에 대한 성찰이란 자기의 민족지, 즉 자기에 대한 탐구에 다름 아니며, 이때 무엇보다도 필요한 것은 ‘나이 없는 시간’의 가능성을 사유하는 것이다. “사실 노년이란 건 따로 존재하지 않는다.” 이 말은 우리가 나이 들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몸과 마음이 노쇠해 가는 와중에도 일반적으로 이해되는 나이 듦과는 다르게 시간과 관계 맺을 수 있다는 뜻이다. 이런 성찰 과정에서 지은이는 직접 경험과 간접 경험을 넘나들며 나이 듦과 시간, 기억, 자아, 글쓰기, 향수 등의 관계를 사색한다.

«나이 없는 시간»

«자본주의 리얼리즘»

«자본주의 리얼리즘: 대안은 없는가»
마크 피셔 지음 | 박진철 옮김 | 176쪽 | 13,000원

자본주의는 우리의 사회적 상상력을 거의 완전히 잠식했다.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쉬울 정도다. 자본주의가 우리의 삶뿐 아니라 생각의 지평까지 장악한 이런 상황을 이 책은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으로 분석한다.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유일하게 유지 가능한 체계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모순과 비일관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은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지배에 균열을 낼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달리 말해 자본주의가 자신이 약속하는 바를 결코 지킬 수 없는 실패한 체계임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기존의 이론적 개념들을 이용해 각종 문화 현상을 명민하게 분석하는 이 책으로 마크 피셔는 동시대 영국의 가장 중요한 이론가 대열에 속하게 되었고, 당시 새롭게 등장한 정치 운동과 호흡을 같이하며 젊은 세대 공중의 지지를 얻었다. 나아가 ‘개인화된 정신 건강’, ‘새로운 관료주의’, ‘참신함을 만들어 낼 수 없는 문화적 무능’ 등의 쟁점은 우리 사회로 가져와 다시 읽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리얼리즘»

«알고 싶지 않은 것들»

«알고 싶지 않은 것들»
데버라 리비 지음 | 이예원 옮김 | 박민정 후기 | 148쪽 | 12,000원

여성 작가는 자기 인생을 지나치게 또렷이 느낄 형편이 못 된다. 그리할 경우 그는 차분히 글을 써야 할 때 분노에 차 글을 쓰게 된다. […] 작가가 되고자 나는 끼어들고, 소리 내어 말하고, 목청을 키워 말하고, 그보다 더 큰 소리로 말하고, 그러다가 종국에는 실은 전혀 크지 않은 나 자신의 목소리로 말하는 법을 배워야 했다.

긴 공백기에서 돌아와 두 차례 맨부커상 최종심에 오르며 문단과 독자의 이목을 다시 사로잡은 작가 데버라 리비의 자전적 에세이. 여성이자 작가로서 삶과 언어가 맞이한 위기를 극복하고자 아파르트헤이트 시절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보낸 유년기로 돌아간다. 그리고 인종과 젠더 차별이 공공연하게 자행되던 그곳에서 말을 잃은 아이의 눈에 비친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의 잔인한 현실과 그 아이에게 용기를 준 여성들의 이야기를 되짚는다. «알고 싶지 않은 것들»

«오늘 너무 슬픔»

«오늘 너무 슬픔»
멀리사 브로더 지음 | 김지현 옮김 | 232쪽 | 13,000원

불안과 우울에 관한 트위터 퀸으로 등극한 멀리사 브로더의 자전적인 고백. 자신이 겪은 정신적 고통과 성적 판타지, 중독 성향, 연애 관계 등을 솔직하고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익명의 트위터 계정 @sosadtoday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뒤 이 책으로 멀리사 브로더라는 구체적인 여성의 한층 더 내밀한 경험들을 털어놓았다. 한 매체는 이 책을 두고 “우리의 삶을 구해 줄 유일한 트위터 책”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오늘 너무 슬픔»

Object Lessons 4 _ «유리»

우리 삶에서 유리가 차지하는 비중은 점점 더 커져 왔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아마 그 투명함과 비춤의 속성 탓에 유리를 통해 무언가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자꾸 잊지요. 그러나 반면에 그 속성 덕분에 유리는 아주 독특한 기대감을 불러일으키기도 합니다. 어쩌면 이것이 육안으로는 볼 수 없는 대상, 저 너머 가려진 진실, 빛바래지 않은 과거나 간절히 엿보고 싶은 미래, 혹은 지금 이곳과는 판이하게 다른 세상을 보여 줄지도 모른다고요. 첨단 기업 마케터에서 르네상스 문학 전문가로 변신한 지은이는 «유리»에서 이런 기대들이 과거에나 현재에나 유리를 매개로 발현되었고 또 유리를 이용해 실현되었음을 보여 줍니다. 셰익스피어의 거울에서 최신 웨어러블 디바이스까지. 변한 것과 변하지 않은 것의 대차대조표를 적다 보면 어느 순간 우리가 실은 기나긴 ‘유리의 세기’를 살고 있음을 새삼 자각하게 될지도 모릅니다.

Object Lessons 4 _ «유리»

object Lessons 3 _ «패스워드»

‘패스워드’의 역사란 곧 인간이 비밀을 만들고 타인의 비밀을 알고 싶어한 역사라 해도 과언이 아닐지 모릅니다. 미노타우르스의 미궁, 앨런 튜링의 에니그마,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 홍채 인식, 스마트폰의 ‘잠금 해제’ 매커니즘… 이 책은 이 모든 것이 패스워드에 관한 것이라고 말합니다. 패스워드는 단순히 몇 자리의 문자 조합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당신은 누구인가?’라는 질문에 알맞게 답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기억과 해독, 탈취와 방어. 패스워드는 거의 항상 이런 팽팽한 긴장의 무대에 놓여 있었습니다. 더구나 오늘날 프라이버시의 부상은 패스워드의 중요성을 전면화하고 있죠. 지은이는 패스워드의 역사와 의미, 문화적 재현의 변천 양상을 더듬어 가며 이 유서 깊은 암투의 무대 뒤편으로 향합니다. 앗, 빨리 따라오지 않고 뭐하냐고 신호하는 것 안 보이시나요?

object Lessons 3 _ «패스워드»

Object Lessons 2 _ «쓰레기»

“우리는 쓰레기 가득한 세상을 살고 있다.” 너무 식상한 이야기라고요? «쓰레기»의 지은이 브라이언 틸은 우리가 정말로 이 말의 의미를 실감하고 있는지 묻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지은이가 캐낸 사례들에서 쓰레기는 일회용 커피 잔과 컴퓨터 안에서 곤히 잠자고 있는 온갖 파일뿐 아니라 파묻힌 비디오게임, 땅속에서 느릿느릿 유출되고 있는 플루토늄, 나무에 걸린 비닐봉지, 다락방과 헛간과 거실에 쌓인 잡동사니, 우주를 떠다니는 위성의 잔해를 아우르게 됩니다. 지은이는 이 미지의 쓰레기들 사이를 산책자의 시선으로 거닐면서 생각과 문장을 한계까지 밀어붙입니다. 이제 친숙했던(혹은 친숙하다고 상상했던) 오브젝트인 쓰레기는 낯설어지고, 쓰레기가 우리의 욕망, 우리가 만들어 온 세상과 문명, 점점 더 세계를 망가뜨리기만 하는 우리 무능의 핵심 요소임이 생생히 드러나게 됩니다.

Object Lessons 2 _ «쓰레기»

Object Lessons 1 _ «호텔»

속단은 금물, 이 책은 호텔 안내서가 아닙니다. 파경에 이른 결혼 탓에 한동안 호텔 리뷰어로 지냈던 시간을 배경으로 삼고 있는 이 문학적 논픽션에서 정작 주연은 호텔이 아니라 그 반대편에 있는 것들, 즉 결혼 생활, 집, 집일, 집일하며 기다리는 여자, 그리고 무엇보다 욕망과 사랑입니다. 그리고 다시 한 번 속단은 금물, 주목받는 소설가이자 에세이스트인 지은이는 이 익숙한 이야기를 정말이지 ‘뜻밖의’ 스타일로 풀어 나가고 있습니다. 쓸쓸함과 유머, 세심한 관찰과 자유로운 연상, 단순하지만 모호하고 그럼에도 가슴에 깊이 박히는 문장, 다시 말해 글의 맛을 음미하고픈 독자라면 이 매혹적인 «호텔»의 환영받는 투숙객이 될 수 있을 것입니다.

Object Lessons 1 _ «호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