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평의 위기와 ‘모던 걸’

«현대비평» 2020년 겨울호에 발표되었던 문학평론가 안지영 선생님의 «관광객의 철학» 서평을 공유합니다. ‘일본 근대문학의 종언’을 말한 가라타니 고진에 의해 발탁되어 «관광객의 철학»에 이르기까지의 아즈마 히로키의 행보를 일본 비평사에 등장한 ‘비평의 위기’에 대한 대응이라는 맥락에서 파악하고, “아즈마가 미처 발화하지 못한 우글우글대는 무수한 가능성”에도 눈길을 주는 글입니다. 이 글과 함께 «관광객의 철학»이 더 많은 ‘오배’를 불러오기를 바랍니다.

비평의 위기와 ‘모던 걸’

1 빅 실버

«살림 비용»의 첫 장 <빅 실버>를 공유합니다. 앞으로 무엇을 써야 할지, 누구를 위해 쓸 건지에 관한 데버라 리비의 다짐을 엿볼 수 있는 챕터예요.

«살림 비용»은 길지 않은 열한 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중 특히 짤막한 이 장에서 리비는 묘하게도 자신의 경험이 아니라 자신이 목격한 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어요.

리비의 글로 전해진 이 일화는 «살림 비용» 전체의 무대를 설정하는 한편 몇몇 단어와 착상(폭풍과 보트, 빅 실버로 불리는 남성, 밝히지 않은 상처 등)은 반복되는 모티프로 활용되어 뒤에서도 거듭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장의 배치가 조금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책을 읽어 갈수록 여기에 던져진 말들이 잔상처럼 남아 계속 곱씹게 돼요. 그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무척 강렬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특별한 장이 «살림 비용»이라는 책의 내부를 궁금해하고 상상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라 봅니다.

1 빅 실버

«살림 비용» 추천의 글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감명 깊게 읽은 분들이라면 책 말미에 수록되어 그의 글이 가진 섬세한 결을 서로 다른 조명으로 밝혀 보였던 세 편의 ‘추천의 글’도 여러 번 곱씹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혹은 쓰기 시작하려는 여성, 그러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을 기꺼이 감수하기로 마음먹은 여성을 위한 책인 «살림 비용»을 준비하면서 이번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여성 등장 인물을 창조하며 한국 문학을 갱신하고 있는 세 작가께 추천의 글을 받았습니다.

항상 새로운 문체로 치열하게 여성 서사를 개척해 온 강영숙 선생님은 «살림 비용»의 요체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추천사를 기고해 주셨고, 독립적인 여성이 마주하는 이 사회의 속내를 단단한 문장으로 그려 온 강화길 선생님은 리비의 문장을 통해 위 세대 여성 작가들을 다시 만나며 다진 각오를, 여러 작품을 통해 뭉클한 여성 연대로 독자들을 초대했던 최은미 선생님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공동의 장에서 맞닿”는 언어의 기쁨을 담은 추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지금 여기에 발 딛고 활발한 창작을 이어 가고 있는 작가들의 문장이 이 책에 불어넣은 생생한 숨결을 느껴 보세요.

«살림 비용» 추천의 글

나로 존재하는 수고로움

«살림 비용»은 «알고 싶지 않은 것들»처럼 한국 작가가 리비의 글에 응답하는 ‘후기’를 수록하고 있습니다. 전작의 박민정 선생님에 이어 이번엔 여성들 삶의 다양한 모습을 차분하고 촘촘한 문장으로 직조해 왔을 뿐 아니라 번역 활동도 이어 오고 있는 백수린 선생님이 흔쾌히 후기를 맡아 주셨어요.

백수린 선생님의 후기 <나로 존재하는 수고로움>은 옥상 수도 동파라는 일상의 한 사건을 계기 삼아 ‘가부장제 바깥에서 홀로 삶을 살아가는 여성’에게 세상이 보이는 무례함을, 또한 골목에 쭈그려 앉아 혼자 얼음을 깨고 있을 때 다가온 살가운 손길을 들려주는 글입니다.

«살림 비용»의 축도처럼 느껴지는 이 글은 “누구누구의 아내나 엄마가 아니라 내 이름으로 존재할 자유”를 위해 치러야 할 비용과 그 분투의 과정에서 일궈 나가게 될 연대를 되새기게 만들어 줍니다. 새롭게 시작하는 여성들이 이 글에서 용기를 얻기를 바랍니다.

나로 존재하는 수고로움

«커밍 업 쇼트» 디자인 후기

‘또 하나의 세대론이 추가되는 걸까, 그래 뭐 의미 있는 일이니까. 이 책은 청년들을 호되게 비판하려나 아니면 감정적으로 위로하려나?’
출력해 둔 원고를 읽으려 책상 앞에 앉으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청년이라고 하기 애매한 나이 때문인지 요즘은 청년 관련 담론을 접하면 거기 등장하는 청년 세대 대부분이 나와 거리가 있다고 느낀다. 책의 주인공인 청년보다 청년들에 관해 진단을 내리고 있는 저자 세대에 더 가깝다고 느끼기도 한다. 아니, 둘 중 어느 쪽도 아니라고, 나는 그사이에 끼어 있는 제삼자라고 둘러대며 내 앞가림이나 신경 쓰는 게 속 편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요즘 세대가 좀 그렇긴 해’, ‘그들 나름대로 힘겨운 삶이긴 하겠지’같이 남 얘기하듯 얄미운 목소리나 보태는 무신경한 관조자였다. 그런데 «커밍 업 쇼트»에서 만난 청년들은 생계에 노심초사하거나 자포자기한 상태로 살아가는 ‘노동 계급’이었고, 그런 탓인지 이들과 거리를 유지하거나 나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읽으면서 하나 둘 내 얘기인 것 같은 부분이 늘어났는데, 청년들이 가진 유일한 자원이자 리스크가 자기 자신이며, 또한 고통의 주범을 가족과 부모에서 찾고 거기에서 해방되려 애쓰며, 과거 중심의 치료 서사를 이야기하는 법을 터득한다는 대목에 가서는 마음속으로 처절하게 울부짖고 말았다. 나를 고스란히 옮겨다 무자비하게 파헤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커밍 업 쇼트» 디자인 후기

반-치료

오늘은 마크 피셔의 글 <반-치료>를 공유합니다. 제니퍼 M. 실바의 «커밍 업 쇼트»에 대한 일종의 서평이자 조금 더 확장된 논의를 펼치는 글이기도 해요. 번역은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옮김 박진철 선생님이 맡아 주셨습니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에서 마크 피셔는 현실의 기저에 있는 ‘실재’들을 환기하는 것이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대항하는 전략일 수 있다고 제안하면서 ‘정신 건강’이라는 쟁점을 그런 전략적 요충지 중 하나로 설정했습니다. 이런 그에게 무드 경제와 치료 담론을 주된 분석 대상으로 삼은 «커밍 업 쇼트»가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커밍 업 쇼트»가 출간된 후 이 책을 소재로 몇 편의 글을 쓰거나 대담을 나누었으니까요. 오늘 번역해 블로그에 올리는 이 글도 그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반-치료>는 2015년에 진행한 한 대담을 전사한 것으로, 생전에는 출간된 적 없고 피셔의 유고집인 «K-Punk»에 수록되어 (영어로) 처음 공개된 글입니다. 여러 책에 대한 논평 형식을 취하는 이 글에서 피셔는 영국과 미국에서 감정 정치가 부상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 이 현상이 초래한 두 가지 문화적 곤란을 ‘치료적 상상계의 이율 배반’으로 진단합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감정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이 이율 배반을 넘어 대항 정치적 행위가 될 수 있는 조건을 탐색합니다.

미국과 영국에 만연한 (하지만 한국도 예외가 아닌) 치료 문화에 대한 «커밍 업 쇼트»의 분석을 조금 더 폭넓은 문화 정치/이론 맥락에 두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피셔의 «K-Punk»를 박진철 선생님의 번역으로 2021년 하반기에는 출간하고자 준비 중이에요. 그의 더 많은 글을 기다리는 독자들께 이 글이 갈증을 조금 해소시켜 주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반-치료

우리이지만 우리가 되지 못하는 우리가 ‘우리’라는 감각을 지니려면

작년에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출간한 조기현 선생님의 «커밍 업 쇼트» 독후감을 공유합니다. «커밍 업 쇼트»를 읽은 걸 계기로 지난날 다른 청년들을 만나 벽을 느낀 경험을 돌아보는 글이에요. 짧은 에피소드를 통해 오늘날 청년의 단면들을 살짝 소묘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우리’라는 감각을 확보한 상태로 벽을 허물려면 우선 이 벽의 정체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한국에서도 노동 계급 청년들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방식이 급속해 변해 왔을 뿐 아니라 이들이 성인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이번 서평을 경유해 «커밍 업 쇼트»가 이 변화를 파악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이지만 우리가 되지 못하는 우리가 ‘우리’라는 감각을 지니려면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는 중입니다

문화연구자이자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회사가 괜찮으면 누가 퇴사해»의 저자인 천주희 선생님의 «커밍 업 쇼트» 서평을 공유합니다. 몇 년 동안 청년들을 만나 연구한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의 핵심 주제인 ‘무드 경제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는 글이에요. 국내에도 청년의 감정 구조나 서사에 대해 연구하는 작업이 있지만 이제 시작하고 있는 분야임을 지적하고, 부족한 부분을 이 책이 메워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도 표하고 있는데요. “무드 경제는 고통과 그에 대한 해결을 치료 서사로 환원하며,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감정 관리로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지적은 우리 사회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변화 아닐까 싶습니다. 서평에서 권하는 것처럼 “연구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사람들”,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지, 그 삶을 연구자는 어떻게 해석하려고 노력하는지 궁금한 이들”에게 «커밍 업 쇼트»가 다가가길 기대해 봅니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는 중입니다

결론: 리스크의 감춰진 상처들

«커밍 업 쇼트»의 결론 장인 <리스크의 감춰진 상처들> 일부를 공유합니다(263~276쪽). 이 책의 분석을 ‘리스크의 감춰진 상처들’을 발견하려는 시도로 정의하고 본문에서 다룬 쟁점들을 정리하는 부분이에요.
신자유주의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리스크의 사유화’를 초래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성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 말고는 누구도 믿지 않음을” 뜻합니다. 그렇게 청년들은 자립, 개인주의, 능력주의라는 문화적 각본을 받아들여 배신의 아픔과 연결을 향한 갈망을 완화합니다.
나아가 성인기에 이르는 자원의 부재로 고통받는 노동 계급 청년들은 거의 유일하게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자아’의 성장을 통해 성숙을 이루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의 의지’에 한층 집착하며 자아 변화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상대로 경계선을 긋게 됩니다.
구체적인 분석과 청년들 자신의 이야기는 본문에 풍부하게 담겨 있습니다. 결론 장을 읽으시면 전체적인 논의 방향을 파악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결론: 리스크의 감춰진 상처들

헤이세이라는 병

일본의 문예지 «분게이»(文藝) 2019년 여름호에 수록되었던 아즈마 히로키의 에세이를 안천 선생님이 번역해 주셨습니다. 이 에세이에서 아즈마는 2019년 4월 30일로 끝을 고한 헤이세이 연간과 자신의 경력을 포개며 감회를 풀어냅니다. 일본 사회 전체가 변화를 향한 희망으로 넘실대던 90년대(헤이세이 00년대)에 철학과 비평을 공부하고 문필가로 데뷔했던 그는 헤이세이를 철저한 실패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레이와라는 새 연간에도 거짓 희망으로 들뜬 ‘축제의 시대’가 이어질까 염려합니다.
«관광객의 철학»에서 그는 “나는 이 닫힌 회로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라는 문장을 썼습니다. 책의 문맥에서는 실체성을 잃고 공회전을 거듭하는 현대 사회 사상을 향한 염증의 표현이었으나, 이 에세이를 읽은 후 곱씹어 보니 숨막히는 시대와 작별하겠다는 선언으로 더욱 절실히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의 사용권은 코믹팝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저작권자와 계약한 리시올에 있습니다.*

헤이세이라는 병

«관광객의 철학» 디자인 후기

원고지 1200매라는 분량을 듣고 이 책의 판형은 128×200으로 해야겠다 싶었다. 리시올/플레이타임에서 펴낸 책들의 판형은 세 종류(122×190, 128×200, 138×210)다. 190부터 세로가 10mm씩 늘어난 세 가지 판형이다. 꼭 10mm씩 간격을 두자고 결심한 건 아니었고, 얇고 가벼운 책들을 먼저 내고 점차 무게 있는 책들도 출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렇게 정했다. 각각의 판형 모두 많이 고민한 뒤 결정했고 판형만으로도 여전히 아주 마음에 드는 모양새여서, 앞으로의 책들도 대부분 이 세 판형을 기준으로 삼게 될 것 같다. «관광객의 철학»은 적당한 분량의 인문서이므로 둘째 크기의 판형인 128×200으로 결정했다.

«관광객의 철학» 디자인 후기

«관광객의 철학» 2부 내용을 소개합니다

5장 <가족>

1부에서 관광객의 철학의 윤곽을 제시한 지은이는 2부에서 새로운 주체에게 필요한 ‘정체성’의 문제를 다룹니다. 글로벌리즘에는 개인이라는 정체성이, 내셔널리즘에는 국가(공동체)라는 정체성이 있습니다. 과거 공산주의는 개인도 국가도 아닌 제3의 정체성으로 계급을 제시한 바 있고요.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지 못한 연대란 동원에는 유용할지 몰라도 “취미 동아리”처럼 해산하기도 쉬워 정치의 토대가 될 수 없다고 지은이는 말합니다. 말하자면 네그리와 하트의 다중론 등은 이렇다 할 정체성을 제시하지 못한 것이 약점이라는 관점입니다.

설혹 미완성이더라도 이 책에 관광객의 철학이 필요로 하는 새로운 정체성에 관한 논의를 추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 시도를 하지 않는다면 관광객의 철학은 다중이라는 기묘한 개념에 ‘우편적’ 같은 말을 덧붙였을 뿐인 말장난으로 보일 수밖에 없을 것이다. 211쪽

지은이는 “개인도 국가도 아니면서 자유 의지로 변경할 수 없고 정치적 연대에 활용할 수 있는 확장성을 갖춘 개념”으로 뜻밖에도 ‘가족’을 말합니다. 개인과 국가에 각각 뿌리를 둔 글로벌리즘과 내셔널리즘을 동시에 비판하기 위한 발판으로 가족을 재발견하자는 것입니다.

물론 그가 가부장제나 혈연주의와 결부되는 전통적 가족을 말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가족을 재구축 혹은 탈구축해 보수 이데올로기로부터 개념을 되찾아 올(중립화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입니다.

«관광객의 철학» 2부 내용을 소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