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이세이라는 병

일본의 문예지 «분게이»(文藝) 2019년 여름호에 수록되었던 아즈마 히로키의 에세이를 안천 선생님이 번역해 주셨습니다. 이 에세이에서 아즈마는 2019년 4월 30일로 끝을 고한 헤이세이 연간과 자신의 경력을 포개며 감회를 풀어냅니다. 일본 사회 전체가 변화를 향한 희망으로 넘실대던 90년대(헤이세이 00년대)에 철학과 비평을 공부하고 문필가로 데뷔했던 그는 헤이세이를 철저한 실패로 규정합니다. 그리고 레이와라는 새 연간에도 거짓 희망으로 들뜬 ‘축제의 시대’가 이어질까 염려합니다.
«관광객의 철학»에서 그는 “나는 이 닫힌 회로 바깥으로 나가고 싶다”라는 문장을 썼습니다. 책의 문맥에서는 실체성을 잃고 공회전을 거듭하는 현대 사회 사상을 향한 염증의 표현이었으나, 이 에세이를 읽은 후 곱씹어 보니 숨막히는 시대와 작별하겠다는 선언으로 더욱 절실히 다가오는 것 같습니다.
*이 글의 사용권은 코믹팝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저작권자와 계약한 리시올에 있습니다.*

헤이세이라는 병

«관광객의 철학» 디자인 후기

원고지 1200매라는 분량을 듣고 이 책의 판형은 128×200으로 해야겠다 싶었다. 리시올/플레이타임에서 펴낸 책들의 판형은 세 종류(122×190, 128×200, 138×210)다. 190부터 세로가 10mm씩 늘어난 세 가지 판형이다. 꼭 10mm씩 간격을 두자고 결심한 건 아니었고, 얇고 가벼운 책들을 먼저 내고 점차 무게 있는 책들도 출간하는 과정을 거치면서 이렇게 정했다. 각각의 판형 모두 많이 고민한 뒤 결정했고 판형만으로도 여전히 아주 마음에 드는 모양새여서, 앞으로의 책들도 대부분 이 세 판형을 기준으로 삼게 될 것 같다. «관광객의 철학»은 적당한 분량의 인문서이므로 둘째 크기의 판형인 128×200으로 결정했다.

«관광객의 철학» 디자인 후기

영혼과 비평

아즈마 히로키가 2015년 잡지 «겐론» 창간을 앞두고 발표했던 에세이를 번역해 올립니다. «관광객의 철학»은 이 잡지의 창간 준비호(0호) 기획에서 출발한 책이기도 하므로, «겐론» 창간의 포부를 밝히는 이 글이 «관광객의 철학»으로 이어지는 문제 의식의 추이를 보다 선명히 드러내 주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특히 1990년대 가라타니 고진 등이 책임 편집을 맡았고 아즈마 히로키 자신의 등단 무대가 되기도 했던 잡지 «비평 공간»과 비교해 «겐론»이 나아가려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사용권은 코믹팝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저작권자와 계약한 리시올에 있습니다.*

영혼과 비평

«관광객의 철학» 들어가며, 옮긴이 후기

들어가며

이 책은 철학서다. 나는 비평가지만 철학을 한다. 1993년 출간된 내 첫 글은 소련의 반체제 작가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을 다룬 평론이었다. 그 이래 사반세기에 걸쳐 다양한 주제를 사고했다. 특히 인터넷, 테러 그리고 증오로 뒤덮인 21세기 세계에 진정 필요한 철학은 어떤 것일지 생각해 왔다. 그리고 지금 시점에 내가 내린 결론을 이 책에 담았다.
이 사반세기 동안의 내 작업은 철학 및 사회 분석부터 서브컬처 평론 및 소설 집필까지 다양한 분야에 걸쳐 있다. 그러다 보니 수용되는 방식도 다양했고, 무의미한 오해를 받기도 했다. 이런 상황을 바꾸려는 것도 이 책을 쓴 이유 중 하나다. 그러므로 이 책은 지금까지의 내 작업을 연결시키는 형식으로 구성되었다. 이 책을 «존재론적, 우편적»의 속편으로도,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의 속편으로도, «일반 의지 2.0»의 속편으로도, 그리고 «약한 연결»의 속편으로도 읽을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퀀텀 패밀리즈»의 속편으로 읽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나는 이 책을 쓰면서 근 20년 만에 처음으로 내 ‘비평’ 스타일을 아무런 거북함 없이 순수하게 긍정하는 마음을 갖게 되었다. 나는 지금까지 비평가라는 사실에 부채감을 안고 있었다. 비평 따위를 써 봤자 누구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고 누구도 기뻐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그런 망설임이 사라졌다. 이 책의 집필을 마친 지금, 나는 그 어느 때보다 글쓰기의 자유를 실감하고 있다.

«관광객의 철학» 들어가며, 옮긴이 후기

«관광객의 철학»

«관광객의 철학»
아즈마 히로키 지음 | 안천 옮김 | 336쪽 | 18,000원

근대의 태동과 함께 출현한 세계 시민의 이상이 21세기 들어 흔들리고 있다. 배외주의적 정치 세력의 득세,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발, 세계 각지에서 끊이지 않는 테러리즘. 세계는 새로운 내셔널리즘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이미 이루어진 지구화를 되돌리는 데는 많은 대가가 따른다. 무엇보다 우리 대부분은 그것을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국민과 세계 시민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다. «관광객의 철학»은 이 분열을 넘어서는 정치철학을 모색한다. 이때 관광객은 글로벌리즘과 내셔널리즘 사이에서 분열된 현대 세계를 다시 연결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의 상징이다.

«관광객의 철학»은 2000년대 정보 사회에 관한 독창적인 논점을 제기하며 일약 일본 비평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던 아즈마 히로키가 지난 20여 년의 활동을 결산해 “지금 시점에서 내린 결론”을 담은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칸트와 헤겔, 슈미트와 코제브 그리고 아렌트, 노직과 로티, 네그리와 하트 등 기존 정치철학을 대표하는 이론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또 비판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다듬어진 ‘관광객의 철학’에 도스토옙스키부터 현대 SF에 이르는 문학이 보여 준 전망을 접목시킨다.

이 책은 흔하고 가까운 관광이라는 현상을 오늘날 우리가 처한 철학적 위기를 돌파할 실마리로 삼음으로써 진지함과 경박함, 공과 사 등 자유로운 사유를 가로막는 장벽들을 허물어뜨린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철학이 무엇인지에 관한 생각을 솔직히 개진한다. ‘오배’, 즉 배송 사고를 목표로 하지만 누구에게나 ‘전달될 수 있는 언어’를 지향한다. 다방면에 걸쳐 이어져 온 지은이의 작업이 한 권의 책 안에서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집약되는 것을 독자들은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관광객의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