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치료

오늘은 마크 피셔의 글 <반-치료>를 공유합니다. 제니퍼 M. 실바의 «커밍 업 쇼트»에 대한 일종의 서평이자 조금 더 확장된 논의를 펼치는 글이기도 해요. 번역은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옮김 박진철 선생님이 맡아 주셨습니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에서 마크 피셔는 현실의 기저에 있는 ‘실재’들을 환기하는 것이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대항하는 전략일 수 있다고 제안하면서 ‘정신 건강’이라는 쟁점을 그런 전략적 요충지 중 하나로 설정했습니다. 이런 그에게 무드 경제와 치료 담론을 주된 분석 대상으로 삼은 «커밍 업 쇼트»가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커밍 업 쇼트»가 출간된 후 이 책을 소재로 몇 편의 글을 쓰거나 대담을 나누었으니까요. 오늘 번역해 블로그에 올리는 이 글도 그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반-치료>는 2015년에 진행한 한 대담을 전사한 것으로, 생전에는 출간된 적 없고 피셔의 유고집인 «K-Punk»에 수록되어 (영어로) 처음 공개된 글입니다. 여러 책에 대한 논평 형식을 취하는 이 글에서 피셔는 영국과 미국에서 감정 정치가 부상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 이 현상이 초래한 두 가지 문화적 곤란을 ‘치료적 상상계의 이율 배반’으로 진단합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감정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이 이율 배반을 넘어 대항 정치적 행위가 될 수 있는 조건을 탐색합니다.

미국과 영국에 만연한 (하지만 한국도 예외가 아닌) 치료 문화에 대한 «커밍 업 쇼트»의 분석을 조금 더 폭넓은 문화 정치/이론 맥락에 두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피셔의 «K-Punk»를 박진철 선생님의 번역으로 2021년 하반기에는 출간하고자 준비 중이에요. 그의 더 많은 글을 기다리는 독자들께 이 글이 갈증을 조금 해소시켜 주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반-치료

우리이지만 우리가 되지 못하는 우리가 ‘우리’라는 감각을 지니려면

작년에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출간한 조기현 선생님의 «커밍 업 쇼트» 독후감을 공유합니다. «커밍 업 쇼트»를 읽은 걸 계기로 지난날 다른 청년들을 만나 벽을 느낀 경험을 돌아보는 글이에요. 짧은 에피소드를 통해 오늘날 청년의 단면들을 살짝 소묘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우리’라는 감각을 확보한 상태로 벽을 허물려면 우선 이 벽의 정체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한국에서도 노동 계급 청년들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방식이 급속해 변해 왔을 뿐 아니라 이들이 성인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이번 서평을 경유해 «커밍 업 쇼트»가 이 변화를 파악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이지만 우리가 되지 못하는 우리가 ‘우리’라는 감각을 지니려면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는 중입니다

문화연구자이자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회사가 괜찮으면 누가 퇴사해»의 저자인 천주희 선생님의 «커밍 업 쇼트» 서평을 공유합니다. 몇 년 동안 청년들을 만나 연구한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의 핵심 주제인 ‘무드 경제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는 글이에요. 국내에도 청년의 감정 구조나 서사에 대해 연구하는 작업이 있지만 이제 시작하고 있는 분야임을 지적하고, 부족한 부분을 이 책이 메워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도 표하고 있는데요. “무드 경제는 고통과 그에 대한 해결을 치료 서사로 환원하며,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감정 관리로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지적은 우리 사회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변화 아닐까 싶습니다. 서평에서 권하는 것처럼 “연구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사람들”,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지, 그 삶을 연구자는 어떻게 해석하려고 노력하는지 궁금한 이들”에게 «커밍 업 쇼트»가 다가가길 기대해 봅니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는 중입니다

결론: 리스크의 감춰진 상처들

«커밍 업 쇼트»의 결론 장인 <리스크의 감춰진 상처들> 일부를 공유합니다(263~276쪽). 이 책의 분석을 ‘리스크의 감춰진 상처들’을 발견하려는 시도로 정의하고 본문에서 다룬 쟁점들을 정리하는 부분이에요.
신자유주의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리스크의 사유화’를 초래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성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 말고는 누구도 믿지 않음을” 뜻합니다. 그렇게 청년들은 자립, 개인주의, 능력주의라는 문화적 각본을 받아들여 배신의 아픔과 연결을 향한 갈망을 완화합니다.
나아가 성인기에 이르는 자원의 부재로 고통받는 노동 계급 청년들은 거의 유일하게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자아’의 성장을 통해 성숙을 이루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의 의지’에 한층 집착하며 자아 변화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상대로 경계선을 긋게 됩니다.
구체적인 분석과 청년들 자신의 이야기는 본문에 풍부하게 담겨 있습니다. 결론 장을 읽으시면 전체적인 논의 방향을 파악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결론: 리스크의 감춰진 상처들

«커밍 업 쇼트»

«커밍 업 쇼트: 불확실한 시대 성인이 되지 못하는 청년들 이야기»
제니퍼 M. 실바 지음 | 문현아・박준규 옮김 | 352쪽 | 18,000원

«커밍 업 쇼트»는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오늘날 ‘노동 계급 청년들’의 ‘성인기로의 이행’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하는 사회학 저작이다. ‘선택의 부재’ 상황에 처해 있는 ‘노동 계급 청년’ 100명을 인터뷰해 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구체적이고도 생생하게 들려준다. 아울러 산업 노동을 대체한 서비스 경제에서 살아남고자 고투하는 여성과 비백인 청년의 현실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신자유주의가 젠더와 인종의 선을 따라 어떻게 상이한 영향을 미치는지도 분석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이런 상황에서 보수화된 청년들을 단순히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신자유주의 담론을 스스로 재생산하게 되는 주체적 과정을 분석한다는 것이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배신과 좌절만을 경험한 청년들은 경쟁, 개인주의, 자립이라는 신자유주의의 문화적 각본을 받아들이고는 자립하지 못한 사람들을 배척한다. 또한 ‘무드 경제’의 명령에 붙들려 자아의 성장에 집중하는 탓에 시장과 국가 같은 강력한 제도들이 행사하는 힘을 시야에서 놓치게 된다.

이 책은 우리 자신과 타인, 공동체에 대한 이해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불평등에 저항하는 연대를 수립하고 유지하기란 요원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래야만 청년들이 성인이 된 이야기를 감정 관리로 환원하지 않고, ‘우리’라는 감각을 유지한 상태로 불안전 및 상실과 맞서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커밍 업 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