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행복한 늙은 소녀예요

스피박은 개인사를 자신의 논의에 종종 포함하는 비평가입니다. 이는 자신이 어디서 왔고 지금은 어디에 있는지를, 즉 자신의 주체 위치를 표시하는 시도라 할 수 있어요. 그리고 스피박의 독자들은 자연스럽게 그가 살아온 여정에도 호기심을 품게 됩니다. 그렇지 않나요?

이를 한눈에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인터뷰가 있어 번역해 블로그에 올립니다. 안줌 카티알Anjum Katyal이 스피박의 여든 번째 생일을 기념해 기획한 인터뷰로, 올해 2월 인도의 ‘Scroll.in’ 지면에 게재되었습니다. Scroll.in의 허락을 받아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이 인터뷰는 스피박의 어린 시절에서 출발해 학창 시절과 미국 유학생 시절을 돌아보고, «그라마톨로지에 대하여» 번역과 그의 학문적 여정을 짤막하게 회고합니다. 그뿐 아니라 페미니즘과 서발턴 계급, 마하스웨타 데비에 대한 그의 생각, 그가 인도 농촌에 세운 학교들의 의의도 확인할 수 있어요.

이 인터뷰에서 드러나듯 그는 지적으로만이 아니라 신체적으로도 끊임없이 이동해 온 사상가예요. 이제 여든이 되었고 그래서 죽음을 생각한다고 말하지만 인터뷰 속 그는 여전히 힘이 넘칩니다.

홍콩에서 한국 여성 노동자들을 만난 일화나 그의 인도 학교에 얽힌 이야기들은 무척 감동적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마지막 대목을 읽고 나면 커다란 벨트로 운전자와 자신을 결속하고 오토바이 뒷자리에 앉아 농촌 마을로 향하는 그의 모습을 상상하지 않기가 어려울 거예요.

이 인터뷰가 스스로 “탈조직화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단지 다르게 결정되어” 있다고 평하는 스피박과의 비평적 내밀함을 확보하는 계기가 되길, 그리하여 «읽기»를 비롯한 그의 저작에 들어서는 데 도움을 주는 도구가 되길 기대해 봅니다.

저는 행복한 늙은 소녀예요

«읽기» 디자인 후기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이름은 익숙하지만 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서발턴에 관한 글을 썼다는 것과(이렇게 말하지만 서발턴에 대해선 내가 또 뭘 알겠나..) 아주 박식한 사람들마저 진저리를 칠 만큼 어려워한다는 것 정도? 그렇지만 그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알았다. 사진에서 풍기는 카리스마로도 예감할 수 있듯이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도. 그래서 벵골 출신의 이 노장 여성 학자의 책을 우리가 출간하기로 결정했을 때, 근거 없는 자부심이 나를 감쌌다. 스피박이라니! 하지만 스피박을 오랫동안 좋아한 옮긴이 선생님이 번역 원고를 보내시고 그와 함께 스피박을 오랫동안 흠모한 편집자가 1교, 2교를 거치며 교정지에 얼굴을 파묻고는 아직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머리칼을 쥐어뜯는 걸 지켜보면서, 자부심과는 비교도 안 되는 불안이 나를 휩쌌다.

«읽기» 디자인 후기

비평적 내밀함

«읽기»는 강연을 엮은 책이어서 장 말미나 중간에 학생들의 질문과 스피박의 답변을 수록하고 있습니다. 마지막 장인 <교직과 자서전>의 질문 제목은 ‘비평적 내밀함’이에요. 이에 대한 스피박의 대답을 발췌해 여러분과 공유합니다.

철학적 읽기와 문학적 읽기의 구분에 대한 질문이 나왔던 같아요. 이에 그는 그런 차이는 부수적이라고, 적어도 자신에게는 그냥 읽기가 있을 뿐이라고 답합니다. 이는 비평적 거리가 아니라 비평적 내밀함을 확보하는 읽기예요. 그가 애용하는 표현으로는 “텍스트의 프로토콜”에 들어가는 읽기고요.

그는 로자 룩셈부르크의 «대중 파업»을 예로 들어 이것을 간명하게 설명합니다. 읽기란 요약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 텍스트’의 사적인 문법을 살피는 것이라고요. 그리고 그러한 읽기로 훈련받아야만 어떤 텍스트를 진정으로 ‘사용’하는 법을 터득하게 된다고 스피박은 말해요.

그의 글이 종종 그렇듯 무심해 보이면서도 에너지 가득한 부분입니다. 읽고자 하는 이들의 마음을 들썩거리게 만드는 부분이라 생각하고요. 그리고 이 부분을 읽었다면 이제 강연의 처음으로 돌아가 스피박의 읽기에 들어서는 일만 남았어요!

비평적 내밀함

읽기

«읽기»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지음 | 안준범 옮김 | 224쪽 | 17,000원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은 전 세계 인문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소리 중 하나로, 그의 작업은 한국에도 다수가 소개되어 ‘서발턴’과 ‘포스트식민 페미니즘’ 같은 개념을 확고히 새겨 넣었다. 그렇지만 이들 개념이 너무나 강한 그림자를 드리운 탓에 그가 언제나 읽기의 책임을 요청하는 문학 비평가이자 교사로 쓰고 활동해 왔다는 사실은 제대로 환기되지 못했다.

«읽기»는 스피박이 2012년 5월에 인도의 푸네 대학에서 진행한 나흘간의 강연을 담은 책이다. 이 책에서 스피박은 읽기란 사회 정의를 향한 의지를 육성하는 행동이라는 자신의 오랜 지론을 다시 한번 역설한다. 그리고 그 정신에 입각해 프란츠 파농과 J. M. 쿳시, 엘리자베스 개스켈 등의 작품을, 그리고 자신의 과거 텍스트들을 읽는다.

«읽기»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읽는지, 그 자신은 어떻게 읽는지를 일흔에 접어든 스피박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책이다. 스피박의 문체는 난해하기로 유명하지만, 강의 형식을 취한 이 책은 스피박에 대한 이해를 가다듬을 기회를 마련해 준다. 또 문학적 훈련을 통해 상상력을 사용하라고 권하는 이 대가의 어조는 읽기가 사소해지고 있는 오늘날 특별히 감동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요컨대 «읽기»는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의 읽기들을 돌아보고 우리의 읽기를 위해 그의 읽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최상의 도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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