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이 학자 푸코가 현재를 돌(아)보는 방법

활동가이자 역사학도로 «세상과 은둔 사이», «불처벌»(공저), «원본 없는 판타지»(공저) 등의 저자인 김대현 선생님의 «푸코» 서평을 공유합니다. 벤느의 관점을 이어받아 “자료 보고 글 쓰는 사람”으로서 푸코를 조명하고, 푸코의 이해자로서 벤느의 탁월함도 정확히 짚은 글이에요.

또한 미국의 지성사가 제임스 밀러가 푸코의 섹슈얼리티를 다루며 내비친, 연구의 시선에 내재한 동성애 혐오 문제를 날카롭게 다루며 소수자와 ‘함께 있음’의 의미를 숙고해 볼 것을 제안하는 글입니다(<개정판 옮긴이 후기>와도 공명하는 주제라서 한층 반가운 부분이었어요).

저희가 소개하고 싶었던 이 책의 면모들을 고루 톺아 보고 연관 텍스트를 광범위하게 참조하며 단단한 문제의식으로 연결한, 글의 스타일과 자세 모두 «푸코»의 그것과 멋지게 조화를 이루는 서평을 전할 수 있게 되어 몹시 기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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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현(한국게이인권운동단체 친구사이 운영위원)

사학에 해박한 철학도, 철학에 해박한 사학도

미셸 푸코는 사학에 해박한 철학도였고, 폴 벤느는 철학에 해박한 사학도였다. 나쁜 책이 나오기 힘든 조합이다. 이제는 거의 밈처럼 쓰이는 학문 간 융합이란 말은, 각 연구자가 실제로 인접 학문에 얼마만큼 식견을 갖는지에 따라 그 내실이 결정된다.

역사학에는 본래 과거와 자료를 다루는 것 외에 정해진 방법론이 없지만, 거기에 깔린 몇 가지 철학적 전제는 있다. 그중 하나가 바로 모든 것은 생성되고, 재구성되고, 소멸한다는 것이다. 이 책의 옮긴이 주에 소개된 생성/변전devenir(23쪽)의 용례에 따라, “역사가는 존재가 아닌 변전devenir을 전제한다.”[1] 역사학은 모든 것이 결국은 변한다는 인식을 역사 서술에 반영하기를 꿈꾼다. 그리고 그것은 말처럼 쉽지 않다.

가령 과거 한반도에서 명멸해 간 많은 국가와 같이, 대한민국도 언젠가는 망할 것이다. 현재 상태가 너무도 당연한 입장에서 대한민국이 망한 이후를 사유하기란 어렵다. “모든 개념은 생성된 것”(35쪽)임을 전제로 어떤 것을 “역사적 구성물 또는 사회적 구성물”로 바라보는 데는 그러한 난점들이 있고, 역사학은 바로 그것에 도전한다. 나아가 현재가 당연하지 않듯이 그것을 바라보는 지금의 나 또한 당연하지 않다. 나 또한 시시각각 변하고, 또 언젠가는 죽을 것이다. “인간이 산이나 다른 생명체들보다 더 고정되어 있을 이유는 없지 않겠는가?”[2]

초보 역사 연구자들이 종종 저지르는 실수는, 내가 애착을 가진 어떤 역사적·사회적 대상을 단단하고 변하지 않는 형태로 재현하는 것이다. 역사와 사회 가운데 모든 것이 변할 터이므로 그 대상 또한 예외가 아니고, 그런 까닭에 그렇게 불변의 형태로 기술한 부분은 서술 가운데 티가 나게 되어 있다. 게다가 연구자인 나 또한 애착을 기울이는 대상과 관심사가 때때로 변하기 마련이고, 나중에 그렇게 쓴 내 글을 읽으면 한때 내가 옹호하고 싶었던 것들이 글 속에서 덩그러니 본질화해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그것은 본질화되었기 때문에 자연히 비역사적이고, 실제와 거리가 멀며, 소위 “촌티”가 흐른다.[3]

모든 것이 변한다면 어차피 변할 오늘을 포함해 모두가 허무한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모든 것은 상대적”이지만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단언은 상대적이지 않다”는 이 책의 탁월한 말처럼(104쪽), 푸코 역시 상대주의자도 허무주의자도 아니었다. 그는 지금 여기서 이해할 수 있는 “경험적이며 영원히 잠정적인 진실들”(122쪽)이 분명히 있다고 생각했다. 역사학이 다루는 과거의 철학적 의미는 결국 경험과 사건으로 요약되는데, 그것이 아무리 변한다 한들 거기에는 반드시 무언가가 있고, 결코 없느니만 못하지 않다. “실천의 세부 사실, 행해진 것과 말해진 것에서 출발”(20쪽)하는, 경험과 사건에 대한 분석과 그 위상에 대한 존중은 푸코를 관통하는 화두였다. 이 책에서 푸코가 말한 담론을 “역사적 구성물에 대한 가장 정확하고 촘촘한 묘사”(14쪽)로, 계보학적 비판을 “기원이나 토대가 아니라 경험적 출현”(151쪽)으로 본 것도 비슷한 맥락이다.

푸코는 자료 보고 글 쓰는 사람이었다. 그는 되도록 자신이 흥미를 가진 주제에 대해 “직접 역사적 분석을 수행하고자 노력”했고,[4] 실제로 그의 저작은 1차 사료의 풍부한 인용으로 가득하다. 푸코의 재능이라 일컬어진 “한 문화나 학문 분야를 몇 달 만에 혼자서 파악”(41쪽)하는 능력은, 오늘날 현대사 연구자들이 치르는 일반적인 요구 사항이 되었다. 그리고 그렇게 파고들다 보면, 파고들어 가기 전에 짐작했던 것과는 다른 의외의 발견과 구체 들이 반드시 있다. 이 구체성에서 오는 “두꺼운 기술”(112쪽)이야말로 역사학의 또 다른 정수다. 그것은 글쓴이의 입장으로부터 연역되어 바깥 가지가 매끈히 쳐진 서술과는 차원을 달리한다. 그런 매끈한 서술을 볼 때, 역사가는 자료 속에서 만난 의외의 발견을 서술이 충분히 반영하지 않은 것은 아닌지 의심하고, 그것을 ‘두껍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폴 벤느가 푸코를 두고 “완성된 역사가이며 역사학의 완성”이라 부른 까닭이 여기에 있다.[5]

비물질적인 것의 물질성

사건과 사건은 서로 이어져 있다. 그것이 어찌 이어져 있고, 사건들이 당대의 맥락 안에서 어떤 성격을 갖는지를 설명하는 것도 역사학의 중요한 임무다. 또한 사건 간의 연관성은, 당대는 물론이고 지금을 사는 사람들의 생각에 갇히지 않고 그것을 벗어나는 부분이 있다. 연구 과정에서 연구자는 “우리 안의 무언가가 우리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더 오래 우리 자리에서 생각”(83쪽)해 왔음을 발견한다. 이러한 사실들 사이의 “객관적인 연관성”[6]을 가리켜 푸코는 “비물질적인 것의 물질성”(52쪽), 혹은 “비물체적인 것의 유물론”[7]이라 불렀다.

역사는 기본적으로 모두가 남의 이야기다. 여기서 남이란, 인간의 범주 안에서 나와 상관없어 보이는 (그러나 실은 상관이 있는) 또 다른 인간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아예 인간의 범주를 벗어난 인간 아닌 것을 가리키기도 한다. 이 후자에 얽힌 내용이 푸코의 사유에 특징적인 것이었다. 그는 “인간과 사회 체계를 분석하고자 원한다면 인간 또는 인간 본성을 피해 가야”(64쪽) 한다고 믿었고, 벤느 또한 “사람의 행위는 그에 대해 사람이 가지는 의식을 훨씬 넘어”서며, “우리 행위의 가장 큰 부분은 실재의 비공식적인 부분인 뉘앙스들에 의해 인도된다”고 보았다.[8] 즉 인간은 인간이라 명토 박힌 곳이 아니라 문서고와 비인간의 역사 속에서 때로 그 진면목이 드러나고, 사건 사이의 연관성 또한 인간이 인간 아닌 것들과 맺는 관계, 다시 말해 ‘남’과의 관계 속에서 나온다.

이렇게 개개인의 마음과 의식을 넘어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남과의 연관성을 학자들은 저마다의 개념과 용어로 불렀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바로 ‘구조’일 것이고, 푸코는 이러한 현상 중 하나를 가리켜 ‘담론’이라 불렀다. 그가 생각한 담론은 “지식의 무의식”(28쪽), 텍스트를 지배하는 “익명의 법칙과 텅 빈 관성”[9]으로 “구조화”(75쪽)된 어떤 것이었다. 그 명칭과 정의가 어찌 됐든, 내 인생과 내가 사는 세계에 남이 구성해 놓은 질서가 있음을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다. 내 뜻대로 내 삶과 내 세계를 바꿀 수 있다는 것이 사람들에게 훨씬 호소력 있는 서사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사건과 그것들 사이에 존재하는 연관성은 그리 호락호락한 것이 아니다.

가령 이성애 성폭력의 경우, 가해자 남성의 변명은 대개 “그냥 성관계를 한 것이다”, “그래도 되는 줄 알았다”, “남자라면 그럴 수도 있다” 등으로 마치 빼다 박은 듯 천편일률적인 내용을 지닌다.[10] 성폭력을 가해자 남성 개인의 일탈이 아니라 남성성의 문화적 실천을 기반으로 한 젠더 기반 폭력GBV으로 보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그런 식으로 사건들은 서로 객관적으로 이어져 있고, 그 객관적인 연결로서의 구조는 각 사건의 실증적 내용을 기반으로 한다. 그렇기 때문에 내 섹스와 연애가 성폭력과 무슨 상관이 있는지 모르겠다는 개인의 의식, 혹은 성에 구조의 차원은 없다는 인식은 문제의 해결에 별로 도움이 되지 못한다.

성 문제를 사법의 틀로 다루어 온 역사를 집요하게 비판했던 푸코조차, “강간이 성적인 폭행이 아니라고 말하는 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성이 사법 체계 내에서 고려되어야” 할 최소한의 사례 가운데 하나로 성폭력을 꼽았다.[11] 다른 글에서 그는 자신이 “인간주의를 싫어하는 이유”를 “그것이 가장 반동적인 사유가 그 뒤로 숨는 방패막이가 되기 때문”이라 밝혔다.[12] 인간과 사물, 사건과 사건 사이의 연관성을 파악하는 일에 얽힌 인간 중심적 편향에 대해, 벤느는 “우리 문화가 휴머니즘과 사회학주의를 뒤섞어 만든 것이기에, 우리는 인간의 자유를 찬양하다가 다시 인간이 사회 조건의 결정론적 영향에 희생양이 된다고 불평하는 일을 번갈아 하게”(139쪽) 된다고 탁월하게 정리했다. 그처럼 사람은 인간의 자율성과 구조의 강제력 사이를 동요하며 지낸다.

푸코는 스스로가 “구조주의자”가 아니라 몇 번을 천명했음에도,[13] 그는 종종 “구조주의자로 간주”(138쪽)되었다. 이쯤에서 푸코가 생각한 담론, 혹은 구조의 내용이 당대의 구조주의자들과 어떻게 달랐는지 짚고 넘어가야겠다.[14] 인간의 근친상간 금기에 대해, 당대의 대표적인 구조주의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는 그것을 인류 문명에 보편적인 상징 체계이자 “근원적 실재”로 보았다.[15] 그러나 푸코는 근친상간 금기가 각 시대와 지역에 따라 서로 다른 맥락으로 재구성된다고 보았다. 즉 초기 기독교의 근친상간 금기는, 그가 보기에 이성애 결혼의 모범이 “그리스도와 교회의 결합”으로 인지되고 부부 관계가 교회의 일부로 격상되면서, 가정이 성을 관리하는 직무를 떠안는 과정에서 만들어진 장치였다.[16] 오이디푸스 콤플렉스로 상징되는 19세기 유럽에서의 근친상간 금기 또한, 18세기부터 가족에 성을 관리하고 조절하는 역할을 부여한 “근대적 성의 장치”와 “이론적 담론”이 만들어지는 과정에서 생겨난 것이었다.[17] 이것이 푸코가 구조와 유물론을 사유하는 방식이었다. 즉 구조 또한 당대의 역사 속 구체들로부터 그때그때 만들어지고 재구성된다.[18]

구조가 영속하는 것이 아니라 만들어지고 재구성된다는 것은, 언젠가는 그것이 부서지고 탈구축(해체)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푸코는 무엇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안다면” 그것을 “해체할 수도 있다”(165쪽)고 말했다. 푸코에게 구조란 내가 입을 여는 순간 거기에 이미 집요하게 따라붙는 어떤 것임과 동시에, 그것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사실”로서 자각하고 체험하고 “전투”(55쪽)를 치를 수 있다면 그것과 다르게 생각하고 다르게 살 수 있는 여지가 얼마든지 보장되는 어떤 것이었다. 그렇게 믿을 수 있던 까닭은, 그가 역사를 다루는 철학의 바탕을 구조도 이론도 역사도 아닌 “경험”에 두었기 때문이다.[19]

그는 인간의 현실이 “다양”하고 “가변적”(13쪽)이며, “우리의 사유”가 “필연적”이지 않다면 그 사유와는 다른 “수많은 사유가 상상 가능”(86쪽)할 거라는 “생성의 긍정성”(59쪽)을 믿었다. 폴 벤느는 이 책에서 “역사적 생성”은 결코 “구조나 담론에 복속”(47쪽)되지 않으며, “삶은 계속”되고, “이론 가운데 가장 사기를 저하시키는 것조차 실제로는 결코 누구의 사기도, 심지어 그 이론가의 사기도 꺾어 놓지 못”한다고 언급했다(48쪽). 이것이 곧 폴 벤느 스스로 푸코를 “경험주의자”(11쪽)라 평가한 이유다.

게이 정체성, 거기에 함께 있음의 의미

푸코가 게이, 즉 남성 동성애자였고 AIDS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난 사실은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이 책은 AIDS가 불치병이자 ‘동성애자들의 암’이라 불리던 시절, 만년의 푸코가 자신의 병에 대해 명확히 인지하고 있었음을 증거한다(200~201쪽). 지금이야 HIV에 감염되어도 AIDS까지 가는 경우는 드물고, 하루 한 알의 약으로 천수를 누릴 수 있는 만성 질환이 되었지만, 푸코가 사망한 1984년에는 그렇지 못했다. 미 공화당 상원 위원이 “HIV 검사에서 양성이 나온 이들은 격리 수용해야 한다”고 공공연히 말하던 시절이었고,[20] 증세의 악화를 막는 부작용이 극심한 약조차 처방받지 못해 수많은 게이가 목숨을 잃을 때였다.

동성애 혐오에는 몇 가지 방식이 있다. 첫 번째는 어떤 동성애자의 삶과 저작을 논할 때 그의 성적 지향을 일언반구 언급하지 않는 것이다. 푸코를 포함해 해외 유명 학자나 예술가가 한국에 소개되는 방식이 종종 그러하다. 둘째는 한 사람의 성적 지향을 악의적인 형태로 언급하는 것이다. 세상은 성소수자의 성에 대해 입 밖에 내지 않거나, 성소수자가 여태 모욕을 느껴 온 친숙한 방식으로만 그들의 성을 입에 올리고는 한다.

이 책에서 푸코의 섹슈얼리티를 “섣불리 넘겨짚”은 예로 소환된 제임스 밀러의 책은 후자에 해당한다. 1993년 발간된 제임스 밀러의 책은, 푸코의 SM(사도마조히즘) 섹스 경험이 그가 주장한 “한계-경험”의 착상이 되었다고 주장하는 한편(199쪽), HIV/AIDS 활동가 더글러스 크림프가 쓴 글의 핵심이 “안전한 섹스”에 대한 동성애자 집단의 “선도적 역할”에 있다고 요약했다.[21] 또한 푸코의 평전을 기술한 디디에 에리봉이 그의 전기에서 푸코의 섹스와 사생활을 “선정적”이지 않은 방식으로 접근한 세심함에 대해, 그것이 만일 유가족의 법률적 조치에 대한 “두려움”이라면 “근거 없는 것”이며, 푸코의 성생활을 담은 문헌들이 보다 “충분히 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22]

하나하나 반박해 보면, 첫째로 푸코가 말한 “한계-경험”은 내가 그 전에 얼마나 똑똑했는지와 상관없이 “나를 나 자신으로부터 ‘뿌리 뽑고’ 나를 똑같은 상태로 있지 못하게 하는 직접적 경험”을 가리킨다.[23] 이 정의에 따르면, 제임스 밀러야말로 자신의 이성애 중심주의로부터 스스로를 전혀 “뿌리 뽑지” 못한 학자라 할 수 있다. 둘째, 더글러스 크림프의 핵심은 “안전한 섹스” 이전에 “문란한 돌봄”에 있다. 그는 “우리가 세이프 섹스를 발명할 수 있었던 것은, 감염병 위기의 시기건 그 외의 시기건 섹스가 규범적인 삽입 섹스로 제한되지 않는다는 것을 우리가 그 어떤 이들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라 썼다.[24] 성 매개 감염병의 시대에도 섹스를 포기하지 않고 그것을 바탕으로 퀴어한 돌봄을 만들어 온 노력에 대해, 세 아들을 둔 이성애자 남성의 입장에서 그것을 “안전한 섹스”로 요약하는 것은 그다지 적절하지 않다. 셋째, 이성애/비이성애의 구조와 사회적 규정력을 망각한 채 성소수자의 섹스와 사생활을 ‘학술적’ 흥미로 접근하는 것은 학자로서 바람직하지 않다. 더욱이 사회를 법률과 사법의 눈으로 재단하는 것이야말로 생전의 푸코가 가장 싫어한 일이다.

연구자의 성적 지향은 당연히 연구 대상과 시각에 일정한 영향을 미친다. 다만 그것을 병리화의 시선으로 보지 않고, 세상이 떠드는 부정적인 방식대로 한 사람을 요약하는 데 사용하지 않는 것이 필요할 따름이다. 푸코는 자신의 성적 지향을 알아 갈 무렵 “내 개인사 속에서 내가 배제”되는, “사회의 그늘 속에 속하게 되었다는 느낌”을 받게 되었고,[25] 훗날 스스로 “청소년기에 주위 사람들에게 순종적인 희생자였던 점이 부끄럽다”고 고백했다(196쪽). 섹스에 관한 지식의 “정상성”과 “진실 담론이 유도하는 권력 효과”에 대한 그의 관심사는 이러한 흐름 속에 일견 자연스러운 것이었다.

푸코의 성적 지향이 그의 연구에 미친 영향으로 다음 두 사례를 들 수 있다.[26] 첫째는 성 문제에 대한 고백과 거기에 얽힌 권력 문제에 대한 관심이다. 그는 성에 대한 말들이 “모습을 숨기므로” 그것을 “강제로 끌어낼 필요가 있다”는 문장을 통해, 성 관련 지식이 고백이라는 형태로 제도화된 방식을 지적했다.[27] 여기서의 고백은 동성애의 후천적 병리화, 즉 부모가 ‘잘못 키워’ 동성애자가 ‘되었다’는 설명을 제공한 당대의 정신분석학을 의식한 것이었다. 즉 그는 정신의학, 특히 정신분석의 이데올로기적 틀을 벗어난 주관성과 주체성의 형태를 사유하고자 했다.[28]

이러한 성적 고백의 원형을 찾기 위해 푸코는 초기 기독교로 거슬러 올라갔다. 보통 성소수자 가톨릭 교인들은 고해소 앞에서 자신의 육욕에 대한 ‘죄’를 고백할 때, 고해소 너머의 사제에게 교회의 가르침에 빗대어 내 심중과 몸의 일 가운데 어디까지 고백할 것인지를 적절히 타협하게 된다. 이렇듯 기독교의 신앙 실천에 등장하는 참회의 서사(엑소몰로게시스)와, 신 앞에서 결국 그 모든 걸 포기하기 위해 자신의 죄와 사유를 치밀하게 분석하는 일(엑사고레우시스)은, 섹슈얼리티의 어떤 부분을 꺼내어 말해야 하는 상황 속에서 기독교의 영적 지도자 앞에 자기를 삭탈하며 고백하는 자기 해석학의 권력과 연결된다. 푸코는 이것이 서구에서 형성된 주체와 성을 둘러싼 지식-권력 관계의 일면에 해당한다고 보았다.[29]

둘째는 동성애 및 자위 행위 낙인과 관련된 푸코의 관심이다. 그는 19세기 유럽에 동성애와 더불어 자위 행위의 금기가 따라붙는 것에 주목하여, 동성애와 자위 사이에는 이성애 정상 가족 규범에 의거한 생식 및 재생산과 연결되지 않는 성적 쾌락이라는 공통분모가 있고, 그것이 곧 ‘성 충동’과 다른 종류의 ‘변태’적 섹스로 확장되고 연결된다고 보았다.[30] 동성애가 병리화되는 원리가 비단 동성애에만 적용된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그는 알았다. 나아가 푸코는 이러한 ‘비생산적’인 성적 쾌락의 낙인 또한 고대 그리스 로마, 초기 기독교 때부터 존재했음을 밝혀냈다.[31] 초기 근대와 현대를 아우르는 자유주의 연구로 이름을 떨친 푸코가 만년에 그의 연구 대상 시기를 고대로 끌어올린 까닭이 여기에 있었다.

푸코의 모든 연구를 성적 지향의 관점으로 요약하는 것은 적절치 않을 수 있지만, 적어도 그의 연구 중 일부를 게이의 입장을 기반으로 얻게 된 세상에 대한 시각과 지식의 확장으로 평가해 보는 것은 가능하다. 구조적으로 차별받는 사람들의 말이 그들 ‘정체성’ 기반의 주장이라 오인되는 일은 흔한데, 그때의 정체성이란 사회에 만연한 구조적 차별을 가리키는 다른 표현일 경우가 많다.[32] 또한 게이에 얽힌 억압과 낙인을 다루면서 게이 정체성에‘만’ 관심을 두는 일은 애초에 가능하지 않다. 앞에서 보았듯 게이가 억압된 원리와 그 억압이 고이던 자리에는 거의 반드시 다른 누군가가 함께 있기 때문이다.

함께 있음이 과거의 게이에게만 해당되지는 않는다. 동성애자인 미셸 푸코의 옆에는 이성애자인 폴 벤느가 있었다. 푸코는 폴 벤느를 가리켜 “명예 동성애자”(193쪽)라 불렀다. 서로가 겪는 현실과 경험이 어떤 것인지를 충분히 알고 교류하지 않은 상태에서 ‘명예 소수자’라는 호칭이 오갈 수는 없다. 그처럼 게이 옆에는 게이가 아닌 숱한 정체성의 사람들이 있고, 여느 사람처럼 그들도 서로 관계 맺으며 살아간다. 너무도 당연한 사실이지만, 게이 커뮤니티와 게이 인권 운동을 두고 ‘정체성 정치’라 쉽게 몰아세우는 이들은 그 사실을 종종 잊곤 한다.

푸코가 자신한 대로 그가 정말 “아무 문제 없는 용감한 호모”(198쪽)였을지는 의심스럽다. 그는 동성애 혐오가 지금보다 훨씬 짙던 시대를 살았다. 1970년대 말 미국 버클리에서 새로운 게이 하위 문화를 경험하고, 샌프란시스코 폴섬 스트리트의 SM 클럽에서 섹스를 탐닉하면서 그가 느꼈을 감정들은,[33] 동성애가 정신 질환의 낙인 속에서 갓 빠져나올 무렵의 유럽인이 아니었다면 성립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분명한 사실은, 푸코는 자신의 가장 비밀스러운 것을 종교나 팔자의 손에 쉽게 넘기지 않았고, 그 비밀스러운 것조차 무언가에 의해 만들어지며 그것이 내가 모르는 사이에 남들과 관계 맺고 있음을 인정하고 체계적으로 기술할 줄 알았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용감한 호모”였다.

폴 벤느는 만년의 푸코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다”(200쪽)고 썼다. 세상 모든 것이 변한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았을 그였던 만큼, 자신을 둘러싼 낙인과 차별의 장치는 물론이고, 자신을 구성하는 많은 찬사와 성취도 언젠가는 기쁘게 극복되기를 바랐을지 모른다. 물론 이 시대가 푸코를 극복하는 일이 아직은 요원해 보이지만 말이다.

동성애 혐오와 같은 어떤 편견들은 사라지는 중이다. 우리는 이러한 심성(이 비물질적인 것의 물질성)의 자의성을 알아차렸다. 그런데 우리에게 또 다른 편견들은 없을까? 어떤 것들이 있을까? 우리가 죽고 난 뒤 우리 자손들은 그것을 알리라. 그들이 우리와 달라졌을 때 말이다. 간단히 말해 우리는 단지 차이들만을 알고 있으며 알 수 있을 것이다. (129쪽)


[1] 폴 벤느,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 이상길, 김현경 옮김, 새물결, 2004, 132쪽.
[2] 같은 책, 132쪽.
[3] 같은 책, 135쪽.
[4] 미셸 푸코, <둣치오 뜨롬바도리와의 대담>(1978), «푸코의 맑스», 이승철 옮김, 갈무리, 2005, 121~122쪽.
[5] 폴 벤느, <부록: 역사학을 혁신한 푸코>(1978),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 454쪽.
[6] 폴 벤느,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 65쪽.
[7] 미셸 푸코, «담론의 질서», 허경 옮김, 세창출판사, 2020, 76~77쪽.
[8] 폴 벤느, «역사를 어떻게 쓰는가», 308~309쪽.
[9] 미셸 푸코, <정치와 담론 연구>(1968), 콜린 고든, 그래엄 버첼, 피터 밀러 엮음, «푸코 효과 : 통치성에 관한 연구», 심성보 외 옮김, 난장, 2014, 112쪽.
[10] 권수현, <남성의 섹슈얼리티와 성폭력>, 한국성폭력상담소 편, «섹슈얼리티 강의», 동녘, 1999, 329~337쪽.
[11] 미셸 푸코, <‘진실과 주체성’에 관한 토론>(1980.10.23.), «자기 해석학의 기원», 오르트망(심세광, 전혜리) 옮김, 동녘, 2022, 110~111쪽.
[12] 프레데릭 그로, «미셸 푸코», 배세진 옮김, 이학사, 2022, 73쪽.
[13] 미셸 푸코, <정치와 담론 연구>(1968), 97쪽 ; 미셸 푸코, <주체성과 진실>(1980.11.17.), «자기 해석학의 기원», 38쪽.
[14] “푸코의 철학은 ‘담론’의 철학이 아니라 ‘관계’의 철학이다. ‘관계’는 사람들이 ‘구조’로 지칭했던 것의 이름이다.” 폴 벤느, <부록 : 역사학을 혁신한 푸코>(1978), 499쪽.
[15] Claude Lévi-Strauss, Les structures élémentaires de la parenté(친족의 기본 구조),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49;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마르셀 모스 저작집 서문», 박정호, 박세진 옮김, 파이돈, 2023, 49~52쪽.
[16] 미셸 푸코, «성의 역사 4: 육체의 고백», 오생근 옮김, 나남출판, 2019, 379~381쪽.
[17] 미셸 푸코, «성의 역사 1: 앎의 의지», 이규현 옮김, 나남출판, 2004, 123~129쪽.
[18] 피에르 부르디외, «남성 지배», 김용숙, 주경미 옮김, 동문선, 2000, 118~120쪽.
[19] 미셸 푸코, <둣치오 뜨롬바도리와의 대담>, 38쪽.
[20] 더글러스 크림프, <에이즈 : 문화적 분석/문화적 행동주의>(1987), «애도와 투쟁: 에이즈와 퀴어 정치학에 관한 에세이들», 김수연 옮김, 현실문화, 2021, 54쪽.
[21] 제임스 밀러, «미셸 푸코의 수난 1», 김부용 옮김, 인간사랑, 1995, 325~326쪽.
[22] 제임스 밀러, «미셸 푸코의 수난 1», 349쪽.
[23] 미셸 푸코, <둣치오 뜨롬바도리와의 대담>, 36쪽.
[24] 더글러스 크림프, <감염병의 시대에 우리의 문란한 사랑을 계속하는 법>(1987), «애도와 투쟁: 에이즈와 퀴어 정치학에 관한 에세이들», 96쪽.
[25] 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1926~1984», 박정자 옮김, 그린비, 2012, 48쪽.
[26] 김대현, «성 규범의 지식·제도와 반사회성 형성, 1948~1972», 연세 대학교 사학과 박사 학위 논문, 2023의 1장 2절 참조.
[27] 미셸 푸코, «성의 역사 1: 앎의 의지», 88쪽.
[28] Didier Eribon, “Diagnostiquer le présent: L’Histoire, les généalogies, la politique”(현재를 진단하기: 역사, 계보, 정치), Écrits sur la psychanalyse(정신분석에 관한 글), Fayard, 2019, pp.289~290.
[29] 미셸 푸코, <그리스도교와 고백>(1980.11.24.), «자기 해석학의 기원» 참조. 이에 대해 기든스는 근현대의 정신분석 상담과 고대 기독교의 고해를 바로 연결 짓는 것은 무리가 있고, 그의 성 관련 분석이 젠더를 다루지 않고 섹슈얼리티만 강조한 측면이 있으며, 근현대의 젠더/섹슈얼리티 문제에 핵심적인 것은 푸코가 주장한 고백의 문제보다 피임 기술의 보급 등으로 인한 “조형적 섹슈얼리티”의 창조라 주장하였는데, 일리 있는 비평이라 판단된다. 앤서니 기든스, «현대 사회의 성·사랑·에로티시즘 : 친밀성의 구조 변동», 배은경, 황정미 옮김, 새물결, 1996, 58~65쪽.
[30] 미셸 푸코, «비정상인들: 1974~75, 콜레주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 박정자 옮김, 동문선, 2001, 335~342.
[31] 미셸 푸코, «성의 역사 2: 쾌락의 활용», 문경자·신은영 옮김, 나남출판, 2004, 31~35쪽; 미셸 푸코, «비정상인들, 205~280쪽; 미셸 푸코, «성의 역사 3: 자기 배려», 이혜숙, 이영목 옮김, 나남출판, 2004, 210~211쪽.
[32] 아이리스 매리온 영, <서장>, «포용과 민주주의», 김희강, 나상원 옮김, 박영사, 2020, 11쪽.
[33] 디디에 에리봉, «미셸 푸코, 1926~1984», 538~54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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