끝없는 봄

재클린 로즈Jacqueline Rose의 글 <끝없는 봄>An Endless Seeing을 번역해 공유합니다. «뉴욕 리뷰 오브 북스»The New York Review of Books 2022년 1월 13일 자에 실린 글이고, 저작권자의 허락을 받아 블로그에 게재합니다(Copyright © 2022 Jacqueline Rose).

이 글은 2021년 출간된 로버트 자레츠키Robert Zaretsky의 «전복적 시몬 베유»The Subversive Simone Weil: A Life in Five Ideas에 대한 서평 격으로 쓰인 글입니다. 로즈는 자레츠키의 책을 다루는 대신 이를 매개 삼아 베유의 생애 및 생각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시도합니다. 그리하여 특정 책의 서평보다는 재클린 로즈 버전의 ‘시몬 베유론’이라 할 만한 글이 탄생했어요.

이전에 재클린 로즈가 시몬 베유에 관한 글을 쓴 적이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저희가 알고 있었던 건 이스라엘-팔레스타인 갈등을 중심으로 이른바 중동 문제를 살핀 저작 «마지막 저항»의 제사로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한 구절(“힘을 소유한 사람은 아무런 저항도 없는 공간을 걸어 나갑니다. 그 주변의 인간 물질 가운데 그 어떤 것도 그의 충동과 행위 사이에 생각이 머물 짧은 틈을 만들어 내지 못합니다”)을 사용했다는 사실 정도였어요. 어쩌면 베유를 본격적으로 다룬 첫 글일지도 모를 이 서평에서 로즈는 베유의 저작과 노트, 편지를 오가며 ‘정의’라는 이념에 주목합니다.

끝없는 봄

야만에 대한 성찰들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출간과 더불어 시몬 베유의 짧은 글 하나를 공유합니다.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집필과 비슷한 시기인 1939년 작성한 미완성 원고인 <야만에 대한 성찰들>(Réflexions sur la barbarie)입니다.

정치 철학자 로베르토 에스포지토는 시몬 베유와 한나 아렌트의 정치 사상을 대조하는 책 «정치적인 것의 기원»(L’Origine della politica, 1996)에서 이 글이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와 가장 긴밀하게 엮인 전주곡이라고 지칭한 바 있습니다. 이 글에서 베유가 과거에 대한 향수에도, 진보에 대한 믿음에도 반대하며 ‘힘’을 “인간 본성의 보편적인 상수이자 불변항으로” 평가하기 때문입니다.

이 글에서 베유는 “힘 개념에 초점을 맞추지 않으면 인간 관계들을 명료하게 사고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는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전체를 아우르는 메시지이자 베유 철학의 무게 중심입니다. 그리고 문명화와 진보가 위험한 까닭은 야만이 종식되었다는 환상을 초래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이후 전개된 상황을 통해 극단적인 문명화가 세계 대전으로 이어졌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2차 대전 이후의 현대사는 이를 교훈 삼아 힘을 쫓아내려 애써 온 역사일까요? 전혀 그렇지 않음을 날마다 확인하고 있고, 베유의 독특한 입장으로 돌아갈 필요가 있는 것도 이 때문일 겁니다.

이처럼 이 글은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로 진입하는 통로로 기능하는 한편 당대 정치적 상황에 대한 베유의 우려도 명확히 드러내 주고 있습니다. 베유의 저술들이 동시에 번역되어 그에게 관심을 가지게 된 독자분이라면 이 글부터 읽으셔도 좋으리라 생각합니다.

<야만에 대한 성찰>은 베유의 «전집»(Œuvres complètes) II-3권(Gallimard, 1989), 222~225쪽에 실렸고, «선집»(Œuvres, Gallimard, 1999), 503~507쪽에도 수록되었습니다.

야만에 대한 성찰들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시몬 베유 지음 | 이종영 옮김 | 124쪽 | 12,000원

1938년경 시몬 베유는 한 편의 글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유럽 대륙에 불길한 전쟁의 기운이 감돌던 시점에 쓴 이 글은 뜻밖에도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서사시를 다루고 있다. 시몬 베유의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논고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가 바로 그 글이다.

리시올 출판사는 이제까지 국내에 번역된 적 없는 베유의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를 처음 번역 출간한다. 이 글에서 베유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해석한다. 그가 보기에 이 서사시의 진짜 주인공이자 중심 주제는 위대한 영웅들이 아니라 힘이다. 베유는 힘의 논리에 입각해 «일리아스»를 읽고 이 서사시가 전쟁의 차가운 잔혹성과 공평성을 서구 역사상 그 어떤 작품보다도 선명하고 생생하게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베유에게 이 시는 여러 형태의 순수한 사랑을 그림으로써 사람들이 힘의 포획에서 벗어나 영혼을 지니게 되는 “그 짧고 신적인 순간”을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또 베유의 미완성 원고 <마르크스주의적 독트린은 존재하는가>를 함께 수록하고 있다. 중력과 은총의 대립으로 잘 알려진 베유의 사고 체계는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에서 힘과 거기서 빠져나오는 은총의 대립으로 형상화된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적 독트린은 존재하는가>에서 이 대립은 베유가 마르크스주의 사고의 약점으로 지적하는 필연성과 초자연적인 것의 대립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두 글은 «일리아스»와 마르크스라는 상이한 대상을 다루지만 힘과 필연성, 전쟁, 은총 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동일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힘과 권력이 숭배되고 힘의 격차는 나날이 벌어지는 오늘날 힘과 필연성, 불행, 선, 은총, 주의(관심), 교육 등에 대한 그의 성찰은 우리에게 사고와 태도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이 새로운 번역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오해받았거나 잊혔던 시몬 베유의 생각들을 더 체계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시대의 문제들에 그가 어떤 도전을 제기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감출 만한 것을 가능한 한 빨리 찾으세요

앤 보이어가 저널 «더 엔드 오브 더 월드 리뷰»(The End of the World Review) 지면에서 샘 재피 골드스틴(Sam Jaffe Goldstein)과 나눈 인터뷰를 공유합니다. «언다잉» 출간 1년 후인 2020년 9월의 인터뷰로 팬데믹 이후의 세상과 문학에 대한 생각을 선명한 언어로 밝히고 있어요.

특히 이 인터뷰에서는 «언다잉»에서도 중요한 키워드였던 데이터라는 주제가 부각됩니다. 보이어는 ‘데이터로 환원되는 자기(self)를 되찾으려 반항’하는 작가지만 현대 사회의 모순을 몇 가지 키워드로 단순화하고 손쉬운 비관을 말하는 사람은 아님이 이 인터뷰에 잘 드러납니다.

지배 계급의 이익에 복무하는 “문학 하는 남자들”에 대한 비판으로 포문을 연 보이어는 팬데믹 상황 속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불평등의 심화를 짚고, “공적 애도”가 부재하는 현실을 통탄하며,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는 존엄에 대한 투쟁(과 낙관)을 말하며 혁명적인 작가들을 인용합니다.

«언다잉»에서 “계속 살아 있기 위해 진 빚을 이 세상에 갚으려면 앞으로 얼마나 많은 책을 써야 하는 걸까?”라는 말로 생존자의 부채감을 토로했던 보이어가 얼마나 놀라운 활력과 지성으로 빚을 갚아 나가고 있는지를 가감 없이 보여 주는 인터뷰예요.

이 인터뷰도 번역가 양미래 선생님이 옮겨 주셨고 저작권자인 샘 재피 골드스틴과 «더 엔드 오브 더 월드 리뷰»의 허락을 받아 번역 게재합니다. 앤 보이어의 변함 없는 입장을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포괄적인 쟁점들에 대한 그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기회예요.

감출 만한 것을 가능한 한 빨리 찾으세요

“양자택일은 언제나 거짓말일 수밖에 없어요”

앤 보이어의 에세이 <아니오>에 이어 이번에는 그가 저널 «빌리버»(The Believer) 지면에서 칼리 히치콕(Callie Hitchcock)과 나눈 인터뷰를 공유합니다. 앤 보이어가 이제까지 국내에 소개된 적이 없어 낯설게 느낄 독자분이 많을 텐데, 이 두 글을 통해 보이어가 어떤 종류의 작가인지 분명하게 드러나리라 생각합니다.

이 인터뷰는 보이어의 <아니오>에 담긴 의미로 이야기를 시작해 공산주의자로서 그가 여전히 품고 있는 세상의 가능성으로 시선을 넓힙니다. 또 1년간 영국 케임브리지에 머물면서 느낀 계급적인 모순을 이야기하고 이어 «언다잉» 을 쓰게 된 경위와 집필 과정에서 생각한 것들을 들려주고 있어요.

이 인터뷰는 보이어의 새로운 작업을 엿볼 수 있는 기회기도 합니다. 분량이 적지 않지만 그만큼 충실하게 보이어의 생각들을 전해 주고 있는 인터뷰고, «언다잉»과 보이어, 문학과 정치에 관심이 있는 독자라면 누구나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글입니다.

인터뷰어 칼리 히치콕의 허락을 받아 게재하며, 이번에도 «언다잉» 옮긴이 양미래 선생님이 우리말로 번역해 주셨습니다.

“양자택일은 언제나 거짓말일 수밖에 없어요”

아니오

오늘은 앤 보이어의 에세이 한 편을 공유합니다. «언다잉»의 전작인 에세이 모음집 «어긋난 운명 안내서»A Handbook of Disappointed Fate 첫 글로 수록된 <아니오>No입니다. 보이어가 무엇을 쓰고자 하며 어떻게 쓰고 있는지를 여실히 드러내 주는 글이에요. ‘아니오’라는 부정이 “내 예술의 논리를 이끄는 주축”이라 선언하는 보이어는 자본주의적 ‘예’를 거스르는 ‘아니오’에서 부정과 긍정의 가능성을 동시에 끄집어 내며, 시에 이 가능성이 새겨져 있다고, 아니 새겨져야 한다고 역설합니다. 아직 앤 보이어라는 시인이 낯설게 느껴질 한국의 독자에게 단호하고 진실하면서도 불명료함의 여지를 남기고자 하는 그의 문학을 조명해 줄 수 있으리라 판단해 저작권자 앤 보이어의 허락을 받아 번역해 게재합니다. 이 글을 통해 회고록 집필자가 아닌 시인 앤 보이어의 면모를 확인할 수도 있겠지만, 반대로 이 글과 «언다잉»에서 서로의 메아리를 확인할 수 있음을 감안하면 «언다잉»이 어떤 정신에 입각해 쓰인 작품인지도 확연히 느낄 수 있을 거예요.

아니오

«언다잉» 디자인 후기

디자인 작업에 들어가면 매번 ‘이번 책이 제일 어렵다’며 절규하지만, 그래서 양치기 소년이 된 감이 있지만 «언다잉»은 진짜 제일 어려웠다(믿어줘요,,). 좋은 책이라 느낄수록 ‘내가 감히?’라는 생각이 들면서 위축되고 엄두도 안 나고 무력감만 키우곤 한다. «언다잉»은 놀랍도록 훌륭한 책이어서 우리가 이 책을 펴낸다는 사실에 기쁘고 충만함을 느꼈지만 디자이너로서 나는 점점 쪼그라들어 내 능력과 한계와 적성을 되돌아보는 데 작업 중 꽤 많은 시간을 흘려보냈다…

부담감만이 아니라 실질적인 어려움도 컸다. «언다잉»은 개인의 고통을 넘어서는 암 수기, 문학이기를 바라는 증언이다. 이 책은 복수의 서사, 복수의 목소리, 복수의 형식을 담고 있고 무엇보다 시적이다. 이 모든 걸 전부 표지에 담아야 할까? 아니면 일부만? 그렇다면 무엇을? 다행스럽게도 지은이 앤 보이어는 이 책에 “유방암은 형식을 흐트러뜨리는 질문으로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질병이다”라는 문장을 새겨 놓았다. 고민이 좀 걷힌 뒤 우리는 이 문장에 집중하기로 마음먹었고, 구상할 때뿐 아니라 작업 과정에서 난항을 겪을 때도 이 문장이 나를 붙들어 안내해 준 것 같다.

«언다잉» 디자인 후기

옮긴이 후기

전희경 선생님의 <추천의 글>에 이어 오늘은 옮긴이 양미래 선생님의 «언다잉» <후기>를 공유합니다.

한 인터뷰에서 앤 보이어는 «언다잉»이 많은 독자에게 가닿기를 바라며 편집자의 제안을 많이 받아들였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그럼에도 시적 충동으로 가득한 그의 산문은 독자를 종종 낯선 곳으로 데려갈 거예요. 번역된 글로 읽는 우리는 길을 잃을 위험이 한층 더 크고요.

하지만 «언다잉»은 우리말로 읽을 수 있는 책입니다(장담합니다). 그리고 이건 전적으로 옮긴이 양미래 선생님의 끈기와 노력 덕분이에요. 구구절절 설명할 필요 없이 책을 펼쳐 드는 순간 바로 실감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 만큼 <옮긴이 후기>도 «언다잉»의 의의를 정확하고 풍부하게 전하고 있어요. “소음의 장벽을 세우는 이 세상의 시스템을 향해 고통의 근원을 되묻는” 이 책에서 형식이 차지하는 중요성을 드러내고, “고통을 통한 혁명”을 제안하고 촉구하는 보이어의 급진적 면모를 밝혀 주는 글이에요.

양미래 선생님의 <옮긴이 후기>는 «언다잉»이라는 ‘눈물 사원’에 들어서는 데 요긴한 길잡이 역할을 하는 글입니다. 그러니 이 글 꼭 읽어 봐 주세요.

옮긴이 후기

‘아프다’는 것, 쓴다는 것

생애문화연구소 옥희살롱 연구활동가 전희경 선생님의 «언다잉» 추천의 글인 <‘아프다’는 것, 쓴다는 것>을 공유합니다. ‘아픈 사람의, 돌보는 사람의 페미니즘’을 고민하는 선생님이라면 앤 보이어의 모험에 동참해 주시리라 기대하며 추천사를 부탁드렸고, 흔쾌히 수락해 주셨을 뿐 아니라 매우 감동적인 추천사를 보내 주셨어요.

이 글은 «언다잉»을 ‘투병의 의미를 바꾸는 글’로 정의합니다. 흔히 투병은 질병과의 싸움으로 이해되지만, «언다잉»은 아픈 사람들이 질병과만 싸우는 것이 아니라 질병을 겪으며 살아가기 위해 싸운다는 진실을 드러내는 글이기 때문입니다.

진단명으로 축소될 수 없는 고유한 삶을 필사적인 글쓰기로 드러내는 것, 세상이 아픈 사람으로부터 듣고자 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내 아픈 몸을 가로지는 “젠더, 계급, 인종 차별, 의료 제도, 자본에 대해 쓰는 것”, 이것이 ‘병은 당신을 무기로 변모시킨다’(64)는 말의 의미일 거예요.

전희경 선생님은 마지막으로 보이어가 «언다잉»에서 보여 준 ‘쓰기’를 통한 ‘살기’의 길이란 “누군가와 함께, 누군가를 위해 쓰고자 했던 분투의 결과물”임을 분명히 합니다. 보이어가 그렇게 했듯 이제 우리도 누군가와 함께, 누군가를 위해 ‘쓰기’로 나아가길 권하는 이 글을 함께 읽어요.

‘아프다’는 것, 쓴다는 것

막을 올리며

앤 보이어는 «언다잉»의 <막을 올리며>에서 유방암에 걸린 뒤 그 사실을 어떤 형태로든 기록한 여성 작가들을 소개합니다. 이는 이들과 동행하겠다는 의지 표명인 동시에 이 작가들이 직면했던 문제 하나가 자신의 기획에도 출몰해 있다는 사실 확인입니다. ‘무엇을 어떻게 쓸 것인가’라는 문제가요.

사회는 암 환자에게 긍정적인 태도를 갖추라고, 자기 관리를 철저히 하라고, 싸워 이기라고, 유방암처럼 젠더화된 암의 경우 여성성을 유지하라고 명령합니다. 그리고 이 명령에 맞추어 생산된 수많은 승리 서사가 소음을 이루며 진실에 이르는 길을 가로막고 있습니다.

그는 진실을 쓰고자 하지만 그 진실이 대체 무엇이며 어떻게 전달되어야 하는지를 함께 고려해야 합니다. 그래서 그는 “유방암은 형식을 흐트러뜨리는 질문으로 자기 존재를 드러내는 질병”이며, 오늘날의 과제는 “툭하면 우리 삶의 이야기를 묵살해 버리는 소음에 맞서 저항하는 법을 배우는 것”이라 말합니다.

이처럼 <막을 올리며>는 이 책 전체의 문제 의식과 목표를 압축적으로 제시하는 부분입니다. 본문이 나아갈 방향을 가리켜 주지만, «언다잉»의 매력은 그 방향마저 흐트러뜨리고 수많은 가지를 치면서 예상치 못한 형식으로 뻗어 나간다는 것입니다. 이 낯선 여정에 여러분도 동행해 주세요.

막을 올리며

«언다잉»

«언다잉: 고통, 취약성, 필멸성, 의학, 예술, 시간, 꿈, 데이터, 소진, 암, 돌봄»
앤 보이어 지음 | 양미래 옮김 | 326쪽 | 18,000원

시인 앤 보이어는 2014년 마흔하나의 나이에 대단히 공격적인 ‘삼중 음성 유방암’을 진단받는다. «언다잉»은 이 암이 유발하는 고통을 견딘 과정을 기록한 투병기다. 하지만 그의 시선은 자기 자신의 몸에만 머물지 않는다. 자본주의와 가부장제, 인종주의의 비정한 폭력을 예민하게 감지하고 시적 언어로 풀어헤쳐 온 작가인 그는 이 책에서도 세상의 잔혹함을 직시하며 고통의 사회적 근원을 되묻는다.

그렇게 «언다잉»은 물리적인 아픔, 몸과 마음 일부를 상실했다는 쓰라림, 혼자라는 외로움, 미래에 대한 두려움을 토로하는 기록인 한편, 보이어의 증언과 고백은 이윤에 혈안이 된 미국 자본주의와, 천진하고 일상적인 온갖 차별과, 유방암으로 죽은 여자들에 대한 애도와, 고통을 매개로 연결되는 낯선 연대에 대한 소망과 뒤얽힌다.

유방암을 다룬 기념비적인 저작들의 목록에 새로운 목소리를 더하고 있는 이 책은 한 매체로부터 “뛰어난 유방암 회고록들을 스펙트럼으로 분류할 때 수전 손택의 글이 가장 덜 개인적이고 이브 코소프스키 세즈윅의 글이 가장 개인적이라면, «언다잉»은 스펙트럼 전체를 아우른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질병과 미국 자본주의의 암 돌봄이 얼마나 잔인한지 보여 주는 품위 있고 잊지 못할 서사”라는 선정의 변과 함께 2020년 퓰리처상 논픽션 부문을 수상했다.

«언다잉»

«내 맘대로 베란다 원예» 디자인 후기

나도 몇 종류의 식물과 함께 살고 있다. 함께 살고 있다는 말이 어울리게 된 건(식물이 죽어가고 있지 않다는 의미에서……)(하지만 죽어가고 있는 식물도 있다……) 최근 몇 년의 짧은 기간뿐이지만, 기억을 더듬어 보면 15년 전쯤부터 간간이 식물을 구입해 온 것 같다. 봄이 되면 대개 꽃집 앞 인도에 넘쳐흐르듯 꽃 화분들이 늘어서 있는데 그 광경을 보면 늘 주변에서 발길이 멈췄고, 주머니를 뒤적이면 나오는 이삼천 원으로 뿌리까지 달린 꽃이나 좋아하는 모양의 이파리를 가진 관엽 식물을 살 수 있다는 건 신나는 일이었다. 그러나 아름다움을 뽐내던 식물들은 언제나 우리 집에만 데려오면 곧장 안색이 어두워지며 죽고 말았다. 꽃집 사장님이 시키는 대로 일주일에 한 번만 물을 듬뿍 줬더니 시들었고 해가 잘 드는 창가에 뒀더니 흙에서 웬 버섯이 올라왔다. 죽으면 버렸고 이듬해 예쁜 화분이 보이면 또 샀다…….

«내 맘대로 베란다 원예» 디자인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