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주에서

소설가 황정은 선생님의 신작 에세이 <파주에서>를 공유합니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출간을 기해 청탁드린 글로, 가자의 비극과 고립을 알리고 연대를 요청하는 뜻을 담아 이 글을 집필해 주셨습니다.

작년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향한 잔인한 보복에 나서는 한편, 전방위적 프로파간다로 세계의 눈과 입을 가리는 것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 책략의 효과로 이스라엘의 폭주를 제어해야 한다는 말을 꺼내기도, 그런 말이 전파되기도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던 것 같아요.

그런 답답함을 느끼던 중, 황정은 선생님이 팟캐스트 «책읽아웃: 황정은의 야심한 책»(367-2회, 2023년 11월 17일 자)[1]에서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를 경유해 이스라엘이 지금 벌이고 있는 일을 “대량 학살 제노사이드”로 명확히 언명하고 ‘한국 사회에 도착해야 할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를 요청한 것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출간도 이 일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겠고요.

편지 형식으로 쓰인 이 글은 고립된 ‘거기’와 우리의 ‘여기’들을 연결하려는 시도입니다. 우리가 가자와 하늘을 공유한 이상 누구도 이 학살과 무관할 수 없음을 일깨우는 글입니다. 21세기 최악의 대량 학살 범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 이 글과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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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정은(소설가)

선생님, 계시는 곳의 날씨는 오늘 어떻습니까.
선생님이 계시는 곳에 한번 다녀가겠다는 약속을 이 년째 지키지 못했습니다. 그 약속을 떠올릴 때마다 서둘러 가고 싶다는 충동을 느끼면서도 거기가 여기서 제법 멀다는 생각을 저는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얼마나 떨어져 있는지, 서로에게서 얼마나 먼 곳에 있는지를 가늠해 보려고 지도에서 거리를 잰 적이 있습니다. 자동차로 빠르면 네 시간, 자전거로는 꼬박 하루 걸린다는 거리입니다. 기준이나 경험에 따라서는 멀지 않다고도 말할 수 있겠습니다만, 사정이 있어 외출이 쉽지 않은 요즘 저로서는 여전히 멀다고 느껴지는 거리였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며 거기까지 가는 길이 끝나는 지점, 목적지에 눈을 두고 가만히 있다 보니 그 장소에 선생님이 있고 선생님의 생활이 있다는 것을 새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거기가 여기에서 멀다기보다는 제가 거기서 멀리 있는 것이겠지요.

언젠가 선생님에게 쓴 편지에 서울 하늘은 넓지 않았는데 파주 하늘은 넓다고 썼다가 아주 이상한 말을 썼다는 것을 깨달은 적이 있습니다. 하늘은 어디나 넓을 텐데, ‘서울 하늘’과 ‘파주 하늘’로 하늘에 경계를 세워 생각했다는 사실을 말입니다. 그 편지에서 잘라 낸 하늘 이야기가 더 있습니다. 저는 실은 폴란드 오시비엥침을 근래에 자주 생각합니다. 여태 살며 본 것 중 가장 넓은 하늘을 아마도 거기서 보았을 테니 말입니다. 하지만 저는 그 하늘이 기억나지 않습니다.
이제는 뮤지엄이라는 이름으로 전 세계에서 몰려오는 방문객을 맞아들이고 있는 아우슈비츠 제2수용소, 비르케나우에서 제가 본 것은 넓은 벌판이었습니다. 벌판과 하늘이 떨어질 리 없으니 그 지평선을 바라볼 때 틀림없이 하늘도 보았을 테지만, 웬일인지 하늘은 기억하지 못합니다. 그 대신에 저는 소각로 입구와 작은 연못을 둘러싼 나무들을 기억합니다. 너무도 광활한 벌판을 기억하고, 거기 몸을 숨길 곳이 없어 갇힌 사람들이 탈출을 상상하기가 얼마나 어려웠을지를, 얼마나 고립감을 느꼈을지를 생각하기도 전에, 몰아닥치듯 제게 일었던 감각과 감정을 기억합니다. 정말 이상한 감각이며 감정이었습니다. 사방으로 그만큼 트인 장소에서 그토록 압도적인 고립을 느낀다는 것이 말입니다.
방문객들을 거기까지 안내한 도슨트는 목조 막사 안으로 우리를 들여보내며 거기 설치된 시설의 목적을 상상해 보라고 요청했습니다. 무엇에 쓰는 장치인가. 작고 동그란 구멍들이 나란히 이어져 길쭉한 화덕이나 부뚜막처럼도 보이는 시설물이 바닥에 솟아 있었습니다. 그걸 바라보며 대답을 찾지 못하는 방문객들의 얼굴을 하나하나 바라본 도슨트는 여기가 포로들이 사용한 공동 변소라고 설명했습니다. 유대인 포로들은 감시자들 앞에서 엉덩이를 드러낸 채 몇 초간 그 구멍 위에 머물다가 뒷사람에게 자리를 내주어야 했다고, 그러므로 이 시설물의 목적은 배변이나 최소한의 삶 유지가 아니었다고 말입니다. 이것은 포로들에게 너희가 인간 중에 인간이 아님을 자각시켜 모욕하고 존엄을 빼앗을 목적으로 정교하게 고안된 장치라고 도슨트는 말했습니다. 그의 말을 듣고 막사를 나온 누군가가 몹시 괴로운 얼굴을 하고 서 있다가 방금 우리가 빠져나온 막사 출입문을 단속하는 그에게 물었습니다. 이것을 겪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팔레스타인에 어떻게 같은 고통을 겪게 하는가. 그러자 도슨트는 망설임 없이 대답했습니다. We can’t judge them.
그의 단호하고 즉각적인 대답을 들으며 저는 이것이 매우 오래되었으며 이미 진부해진 대화라는 걸 알 수 있었습니다. 한나 아렌트가 예루살렘의 아이히만에게서 느낀 바대로 말입니다. 팔레스타인을 향한 유대 민족주의의 폭력에 붙이는 우리의 질문은 너무나 진부하고, 그들에게는 이미 대답이 준비되어 있는 것입니다. You can’t judge us. 9년 전 일입니다.
선생님, 오늘 가자에서는 이스라엘 군부의 통제와 공격으로 식료품과 구호품을 받지 못해 사람들이 죽고 있습니다. 아이들이 폭격에 더해 기아로 죽고 있습니다. 팔레스타인 소식을 알리는 소셜 미디어 계정으로는 오늘 죽은 아이들의 얼굴이 계속 올라옵니다.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사이에서 중립을 말하는 이들은 흔히, 이스라엘의 유대 민족주의자들이 팔레스타인에서 저지르는 학살을, 마치 비등한 정도의 군사력과 정치력과 자금을 가진 두 세력 간의 정당한 다툼인 것처럼 말합니다. 그들이 말하는 것을 그들 자신도 믿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저는 오늘 가자의 하늘을 생각합니다. 오늘 제가 올려다본 하늘 어딘가가 가자의 하늘이기도 하다는 것을 생각합니다. 그 하늘이 제게 문득 가까워진 날의 기억을 여기 다시 씁니다.
불꽃놀이 때문이었습니다. 제가 사는 도시에서는 가을마다 호수 공원에서 불꽃놀이 축제를 여는데 팬데믹으로 몇 년 동안 중단되었다가 재작년부터 다시 열렸습니다. 저는 재작년엔 외출로 집을 비워 소식만 들었고 작년엔 집에서 그 순간을 맞았습니다. 첫 폭음을 듣고 베란다로 나가 밤하늘에서 폭발하는 불꽃을 보았습니다. 빛이 먼저, 소리가 그다음입니다. 고요한 찰나 불꽃이 터지고 폭음은 그보다 늦게 도착합니다. 하늘이 넓고 가리는 것이 적어서인지 폭음을 담은 진동이 제가 선 자리로 고스란히 밀려왔습니다. 몸이 흔들렸고 발 딛고 선 바닥도 흔들렸습니다. 불꽃이 터질 때마다 어디에서 지르는지도 알 수 없는 사람들의 환호성이 들렸습니다. 즐거워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팬데믹으로 모든 것이 수축되고 위축되었던 때를 지나 모처럼 돌아온 공동의 축제에 환호하고 그를 반기는 마음들이었습니다. 그를 기뻐하는 마음이 제게도 있었나 봅니다. 불꽃을 반기려고 반사적으로 베란다로 나갔다가, 호된 공포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수일 전에 어느 가정집이 등장하는 짧은 영상을 보았기 때문입니다. 창문마다 커튼을 내린 거실에서 서너 살 먹어 보이는 아이들이 작은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며 놀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폭음과 동시에 커튼들이 풀썩 날리고 영상이 뒤흔들렸습니다. 자전거를 타던 아이들이 기겁해 뭐라고 외치며 화면 밖으로 빠져나갑니다. 그들의 언어를 알아들을 수는 없었지만 그것이 비명이며 다급히 누군가를, 아마도 그들의 보호자일 어른을 부르는 말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습니다. 가을 파주 밤하늘에서 뻥뻥 터지며 자자작, 번지는 불꽃을 보고 들으며 저는 그 거실에서 일어난 일을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불꽃은 꽃 아닌 섬광이었고, 아름다운 꽃불의 개화를 알리는 폭음은 단지 폭탄 폭음이었습니다. 불꽃놀이를 이름 그대로 놀이 삼아 즐길 수 없게 되었다는 것을 그 자리에서 알았습니다. 저렇게 넓은 하늘 아래 어딘가엔 그런 섬광과 폭발을 도저히 놀이로 즐길 수 없는 사람들이 있는 것입니다. 당장 실내로 돌아가고 싶었지만 실내에서 폭음을 들으면 공포가 더할 것 같아 그 자리에 붙들려 있었습니다. 결국은 곁에 있던 사람이 걱정할 정도로 덜덜 떨며 창백해진 채 불꽃놀이를 등졌습니다.
지난 편지의 내용을 여기 반복해 기록하는 점에 양해를 바랍니다. 이 이야기를 통하지 않고서는 이 모든 하늘을 말할 도리가 달리 없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저는 굴뚝에 올라간 사람을 오래 지켜본 적이 있습니다. 이따금 지나가야 하는 거리에 그 굴뚝이, 담장 안에 솟아 있었습니다. 세상에 할 말이 있어, 세상이 꼭 들어야 하지만 들어주지 않는 말을 하러 그 자리에 올라간 사람이 거기 있다는 것을 저는 알고 있었습니다. 밤이 오면 굴뚝 위에선 아래쪽이 어떻게 보일지, 누군가 불을 켜 두었을지, 저 위에서 센 바람을 어떻게 맞을지, 한여름 볕에 그늘 한 점은 어떻게 마련되어 있을지, 그가 겨울 추위를 어떻게 피하고 있을지를 걱정하면서도 저는 고개를 젖혀 바라보거나 지나가거나 했습니다. 그가 굴뚝에서 426일이나 버텨 세계 최장기 굴뚝 농성이라는 기록을 세우는 동안, 다양한 이가 그의 굴뚝 곁으로 모여 그의 말을 세상으로 확성했습니다. 그가 거기에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누군가는 굳이 담장을 넘어 그 곁으로 가고, 누군가는 지나가거나 무지라는 형식으로 부재합니다. 그러므로 그 높은 데 올라간 사람은 홀로 고립된 이가 아니라 수많은 ‘나’의 연대와 ‘나’의 부재로 둘러싸인 이였습니다. 어떤 이가 어떤 장소에서 고립되어 있다면 우리 각자는 늘 연대로든 부재로든 그 고립의 자리에 이미 가 있는 것입니다. 저는 그와 같은 광경을 오늘 가자를 통해 봅니다. 거기에 누가 있습니까. 어떤 얼굴로 모여 있습니까. 화기뿐만 아니라 굶주림이 무기로 사용되는 곳, 인간 중에 인간 아닌 존재로 살해당하고 있다는 자각과 절망이 무기로 사용되는 곳, 거기에 구호품을 전달하러 죽음을 무릅쓰는 사람의 얼굴로, 사람들을 돌보러 들어가는 의료의 얼굴로, 죽은 아이를 싸맨 가느다란 꾸러미를 보고 우는 얼굴로, 하마스가 무엇이냐고 묻는 얼굴로, 먼저 시작한 쪽이 어느 쪽인가를 묻는 얼굴로, 거기가 너무 멀고 우리의 힘이 작아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없다고 말하는 얼굴로, 너무 멀고 너무 달라 우리와 상관없다고 말하는 얼굴로, 사망자들의 이름 속에서 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들은 이의 비명에 붙들리는 얼굴로, 너무 고통스러워 외면하는 얼굴로, 모른다고 대답하는 얼굴로, 이 제노사이드를 멈추라고 말하는 얼굴로, 무심히 지나가는 얼굴로, 우리는 모여 있습니다. 훗날 역사에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로 틀림없이 명명될 이 시간을 우리가 함께했으며, 하고 있다는 것을 저는 잊지 못하겠습니다.

선생님, 저는 폭격도 눈에 보이는 기아도 길바닥에 임시로 마련된 무덤도 없는 파주에서 이 글을 씁니다. 이것이 저와 가자 사이의 거리입니다. 굶주림과 폭격에 관한 당장의 공포 없이 이렇게 앉아 쓸 수 있을 만큼의 거리로 떨어져 있습니다만, 그곳이 고립되어 있기 때문에 저는 그 장소에 있다고 느낍니다. 다른 모든 이들과 마찬가지로 말입니다. 우리 각자가 바라건 바라지 않건 가자의 고립에 우리는 이미 당도해 있습니다. 그러므로 어떤 얼굴을 선택할 것인가. 그것이 오로지 나의 선택이기 때문에, 나는 이 학살과 무관할 수 없습니다.


[1] 팟캐스트 https://www.podbbang.com/channels/15135/episodes/2482378, 녹취 요약 https://ch.yes24.com/Article/View/549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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