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베르 아슈카르의 인터뷰 한 편을 번역해 블로그에 게시합니다. 저항과 동원, 연대의 현황에 초점을 맞춘 인터뷰로 2월 8일 프랑스의 ≪앵프레코르≫ 지면에 게재되었고, ≪인터내셔널 뷰포인트≫에 영어로 번역되었습니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은 “집단 학살의 교과서적 사례”라 불릴 정도의 파괴를 자행했지만 초반에는 이에 대한 저항의 불길이 거세게 퍼져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전, 각국의 지원과 공모, 대중 운동의 침체 등이 동원과 연대를 움츠러들게 한 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아슈카르는 그 원인을 밝히고 그럼에도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저항의 물결을 조명합니다. 나아가 현 시점에 팔레스타인인의 저항과 연대 운동이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이 학살 전쟁의 원인과 실상을 분석하는 시도였다면, 이번 인터뷰는 저항과 대안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드러내 주는 자료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함께 읽기를 권하고 싶은 글입니다.
프랑스어판 링크: https://inprecor.fr/node/3815
영어판 링크: https://internationalviewpoint.org/spip.php?article8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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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인의 자결권을 위해, 중동에서 제국주의 세력의 철수를 위해
앙투안 라라슈와 질베르 아슈카르의 인터뷰
2024년 2월 8일
리시올 편집부 옮김
지금 이스라엘은 어떤 개입 국면에 이르렀을까요?
점령군의 군사 보고들에 비추어 볼 때 상황은 비교적 명확합니다. 북부에서는 가장 집중적인 폭격 국면이 완수되었고 남부에서도 완료되는 중입니다. 북부와 중부에서 점령군은 다음 국면으로, 이른바 저강도 전쟁 국면으로 넘어갔습니다. 실제로 이들은 점령한 지역들의 완전한 그리드를 조직하는 중입니다. 터널망을 파괴하고, 터널이 존재하는 한 언제까지고 매복해 있으면서 아무 때나 모습을 드러낼 하마스 및 여타 조직의 전투원들을 색출할 목적으로요.
이 이른바 저강도 국면으로 넘어가라는 압력이 이스라엘 군대에 갈수록 더 많이 가해지고 있습니다. 특히 미국이 그렇죠. 그런데 이 명칭은 오해의 소지가 있어요. 현실에서 저강도는 폭격에 한정되니까요. 비행기와 드론이 발사하는 미사일과 폭탄 수는 줄어들 겁니다. 파괴할 것도 얼마 남지 않았어요. 이스라엘 군대는 전투원 집단이 여기저기 나타날 때마다 일회성 개입을 실시하는 쪽으로 방향을 전환할 겁니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절대적으로 파괴적인 폭격이 뒤따랐습니다. 집단 학살이라 할 수준이었죠. 광범한 도시 지역을 대규모로 파괴했고, 믿을 수 없을 만큼 많은 민간인을 몰살했습니다. 가자 주민 1퍼센트 이상이 살해당했어요. 프랑스로 따지면 68만 명이 사망한 셈입니다. 끔찍한 숫자죠.
이에 더해 주민의 90퍼센트가 주거지에서 추방당했습니다. 이스라엘 우익 대부분―시온주의 좌파가 분쇄된 나라의 극우―은 이 주민들을 가자에서 쫓아내 이집트나 여타 지역으로 보내고 싶어 합니다.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군사적으로 완전히 통제하기를 원하지만 이것은 미망이에요. 그곳에서 모든 사람을 몰아내지 않는 한 결코 성공하지 못할 테니까요. 가자에 주민이 남아 있는 한 점령에 대한 저항도 끊이지 않을 겁니다.
가자에 집중적으로 폭격을 퍼부으면서 이스라엘은 레바논과 헤즈볼라에도 더욱 강경한 태도를 보이고 있습니다. 시온주의 지도자들은 레바논의 일부가 당파적이고 정치적인 이유로 헤즈볼라에서 떨어져 나올 수 있다는 사실에 기대를 걸고 있어요. 이스라엘은 나날이 위협의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이스라엘과의 국경 지역인 레바논 남부에서] 북부로 철수하라는, 자신이 받아들일 수 있을 만큼 국경에서 멀리 떨어지라는 강한 압력을 헤즈볼라에 가하고 있어요. 그렇게 하지 않는다면 가자와 비슷한 운명을 레바논에 부과하겠다고 위협하면서요. 수도의 남부 교외 지역에서, 나라의 남부에서, 또한 베카 같은 동쪽 지방에서 헤즈볼라가 강한 입지를 구축한 지역들을 완전히 파괴하겠다는 것이죠.
팔레스타인의 군사 저항 현황은 어떤가요?
가자에서 저항은 황폐화된 지역들에서 계속 이어질 수 있습니다. 그곳들에 터널이 있는 한 말이죠. 전투원을 위한 일종의 지하 도시가 세워졌어요. 지하철 네트워크와 비슷한데 가자 주민은 그곳에 은신할 수 없어요. 2차 대전 시기 유럽이나 최근 우크라이나의 키이우에서 그랬던 것과는 다르죠. 하마스가 판 터널들은 전적으로 전투원용입니다.
로켓들도 가자에서 이스라엘 도시들로 계속 발사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마스를 비롯한 집단들은 자신이 여전히 건재하다는 걸 보여 주려 노력하는 중입니다. 가자에서 하마스와 모든 형태의 저항을 소탕한다는 것은 불가능한 목표예요.
그래서 이스라엘 극우는 가자 지구에서 주민을 몰아내야 한다고, 그곳을 병합해야 한다고, 요르단강과 지중해 사이 전체를 아우르는 대이스라엘을 창조해야 한다고, 팔레스타인인이 사는 이 영토 전체를 비워야 한다고 말합니다. 바로 이것이 리쿠드당을 포함해 이스라엘 극우가 열망하는 바입니다. 총리라는 위치 때문에 네타냐후는 공식적으론 애매한 태도를 취하지만 그러면서도 이런 극단주의적 입장을 눈감아 주고 있죠.
서안 지구와 가자의 차이는 전자에서는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서안 지구의 팔레스타인 민간인 지역을 책임지는―가 독일에 점령되었던 프랑스의 비시 정부와 정확히 똑같은 입지를 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마흐무드 압바스는 팔레스타인인의 페탱이에요. 서안에도 하마스를 비롯해 무장 투쟁을 옹호하는 조직들이 있지만, 작년에 가장 많은 주목을 끈 것은 청년을 주축으로 새로이 등장한 집단들이었습니다. 이 집단들은 파타와도, 하마스와도, 나아가 어떤 전통적인 조직과도 연고가 없어요. 이들은 제닌과 나블루스 같은 일부 난민촌이나 도시에서 무장 단체를 꾸려 점령군에 맞서는 작전을 간헐적으로 수행했습니다. 이스라엘은 대대적인 앙갚음으로 응수했고요.
10월 7일 이래 점령군은 서안 지구에서 소탕 작전을 감행했습니다. ‘알제리 전투’의 재현이었죠. 2001년 이래 처음으로 비행기도 띄웠습니다. 그뿐 아니라 시온주의 정착민들이 주민을 공격하고 살해했고요. 현재까지 서안 지구에서는 300여 명이 사망했습니다. 가자에서 자행되는 학살만큼 절대적으로 끔찍하지는 않죠. 하지만 이스라엘 극우는 서안 지구에서도 학살을 반복할 기회를 엿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마스의 희망과는 달리 서안 지구와 이스라엘 국가 내부의 팔레스타인 주민 사이에서 이슬람 운동(=하마스)의 요청에 응답한 봉기의 불길이 확산되고 있지는 않아요. 양쪽의 군사력 차이가 얼마나 압도적인지를 서안 지구 주민이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2005년 이래 점령군이 주둔하지 않은 가자의 하마스 군인들과 달리 서안 지구의 주민들은 일상적으로 점령군과 접촉하며 극우 및 정착민과 직접적으로 맞닥뜨리고 있습니다. 서안 지구 주민은 이들이 1948년에 범한 일을 반복할 기회를 기다리는 중임을 알고 있습니다. 사람들을 위협해 살아가는 땅을 떠나도록 강제할 기회를 노리고 있다는 것을요. 가자에 대한 서안 지구의 연대가 그리 강하지 않은 이유를 이렇게 설명할 수 있을 겁니다.
이스라엘에서의 동원 현황은 어떻습니까?
2001년 9월 11일이 미국에 그랬던 것처럼 10월 7일 공격은 매우 강한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런 다음에는 언론들이 우려먹었죠. 복수심에 불탄 주민을 동원하기 위해 지금도 증언을 끝없이 내보내며 이 충격을 부당하게 이용하고 있어요. 미국에서는 이런 식의 캠페인 덕분에 부시 팀이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에서 전쟁을 개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이스라엘에서도 이런 캠페인이 운용되고 있고요. 이스라엘의 유대인 대다수가 전쟁을 지지하고 있어요.
집단 학살을 맹렬히 비난하는 반전 집단도 소규모지만 있어요. 사회 환경의 완강한 거부를 거스른 이들의 용기에 경의를 표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두드러지는 현상은 이스라엘 내에서 팔레스타인 시민권자들의 동원이 사실상 부재한다는 겁니다. 서안 지구에서 인티파다가 시작되자 연대의 의미로 강한 동원이 이루어졌던 2021년과는 차이가 있어요. 당시 이스라엘의 시온주의 극우는 이 동원에 폭력적으로 대응했습니다.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의 유대인을 사로잡은 증오를 감안할 때, 팔레스타인인 시민이 그런 동원을 다시 시도한다면 끔찍한 결과가 뒤따르겠죠.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시민권자들은 겁박이 만연한 분위기에 고통받고 있습니다. 괴롭힘, 억압, 검열이 안 그래도 이등 시민인 이들의 지위를 더욱 악화시키고 있어요. 이스라엘 사회 다수의 눈에 이들은 새로운 파리아[불가촉 천민]입니다.
아랍 나라들이 더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지 않는 까닭은 무엇일까요?
저는 1967년의 패배와 그 여파를 경험한 세대입니다. 1970년대에는 매우 강한 동원을 경험했고요. 이번에도 아랍 나라들에서 대규모 시위가 열렸습니다. 하지만 예컨대 인도네시아나 파키스탄과 비슷한 수준이었죠. 요르단과 모로코에서도 큰 시위가 있었지만 이 나라들은 심지어 이스라엘 국가와의 외교 관계도 끊지 않았어요.
동원들이 상대적으로 약세인 까닭은 전적으로 축적된 패배의 무게 때문이에요. 팔레스타인의 대의는 약해졌어요. 비시 정부 스타일의 팔레스타인 자치 정부로 인한 분열 탓이 크죠. 그 결과 일부 아랍 국가가 이스라엘과 외교 관계를 수립할 수 있었거든요.
또한 2011년과 2019년에 중동 역내를 뒤흔들었던 두 번의 혁명 물결도 패배했습니다. 오늘날 이 지역을 관찰하면 슬픈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어요. 두 차례 물결이 남긴 게 거의 없다는 결론을요.
대중 운동이 여전히 활발한 최후의 두 나라는 튀니지와 수단입니다. 튀니지에서는 벤 알리의 독재가 끝나고 카이스 사이에드의 독재가 시작되었죠. 비극 이후에 당도한 ‘소극’의 한 측면이라 할까요. 수단에서는 저항 위원회[2013년부터 대통령 오마르 알-바시르에 맞서 시민 불복종 운동을 시작한 비공식적인 풀뿌리 네트워크]들이 작년까지 얼마간 성공을 거뒀습니다. 낡은 체제의 두 파벌이 4월에 무자비한 내전에 돌입하기 전까지는요. 수만 명이 죽고 수백만 명이 추방당한 데다 성폭력을 비롯한 온갖 일이 벌어졌는데도 국제 매체들, 특히 서양 매체는 이 내전을 거의 보도하지 않습니다. 인민의 피부색이 어두울수록 언급을 줄이는 것이죠. 이것은 엄청난 비극입니다. 저항 위원회들이 미처 대비하지 못한 비극이에요. 이들은 무장 분파를 보유하고 있지 못합니다. 이런 유형의 상황에서 역할을 맡을 수 있으려면 무장 분파가 필요한데도요.
우리는 ‘아랍의 봄’ 이래 거듭된 패배의 충격을 구체적으로 가늠할 수 있습니다. 시리아, 예멘, 리비아, 그리고 이제는 수단까지 내전에 휩싸였죠. 이집트에서 엘-시시 대통령은 2011년에 국민이 몰아낸 무바라크보다 더욱 잔인한 독재 체제를 확립했고요. 알제리에서는 팬데믹을 틈타 군부가 질서를 복원했습니다. 그다음은 튀니지 차례였죠…
이 모든 것은 폭넓은 동원에 유리한 분위기를 창출하지 않습니다. 그런 분위기가 형성되어야 카이로를 비롯한 여러 나라의 수도에서 이스라엘의 외교 공관들을 공격하고, 시온주의 국가와의 공조 관계를 끊도록 자국 정부를 강제할 수 있을 텐데 말이죠.
이스라엘 극우의 기획이 실현된다면 역내에서 이스라엘이 행사하는 영향력도 증대할까요?
이스라엘 극우는 중동 역내의 정부들이 팔레스타인 문제에 거의 관심을 기울이지 않음을, 이 정부들 다수가 이미 이스라엘과 공식적인 관계를 수립했음을, 반동적인 정부들이 서로 협조하며 지내고 있음을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은 이 전선에서 물러날 필요를 딱히 느끼지 않아요. 이스라엘은 사우디 정부가 위선적임을, 아랍 에미리트 연합국이 그랬듯 자신과 외교 관계를 맺는 중임을 알고 있어요. 이들은 공동의 적인 이란에 맞서 안보와 군사 면에서 협력 중이고요.
10월 7일을 기회로 이스라엘 극우는 중도 우파로 여겨지던 세력 일부를 포섭했습니다. 현재 극우파는 가자 지구에 대한 이스라엘의 기획에 무조건적인 지원을 제공하는 오류를 범한 미국 행정부가 이젠 발을 뺄 수 없다는 사실에 기대고 있습니다. 실제로 미국에서는 곧 선거가 치러질 예정이죠. 민주당은 공화당과 경합 중이며, 바이든 행정부를 공격하려는 트럼프는 이스라엘과 워싱턴이 사소한 의견 충돌만 빚어도 절대 놓치지 않을 겁니다. 바이든 행정부는 불리한 입지에 몰려 있어요. 이스라엘의 집단 학살 기획에 더는 강한 압력을 가할 수 없는 위치에 발을 들였으니까요. 더 많은 ‘인도적’ 관심을 기울이라고 이스라엘에 촉구한 [미국 국무부 장관] 블링컨의 연설은 위선투성이였습니다. 그는 사람들을 바보 취급하고 있어요. 가자에서 벌어진 집단 학살적인 파괴와 살상이 미국의 지원 덕분에 가능했음을 사람들이 익히 알고 있는데도 말이죠.
이 전쟁은 최초의 이스라엘-미국 합동 전쟁입니다. 미국이 처음부터 작전, 명시적 목표, 무기 공급 및 재정 지원에 전적으로 관여한 전쟁이에요.
그에 더해 이스라엘 극우와 네타냐후는 트럼프가 미국 대선에서 재집권에 성공할 가능성에 기대를 걸고 있습니다. 그렇게 된다면 대이스라엘을 실현하기가 훨씬 용이해질 테니까요.
전쟁이 2024년 내내 이어질 것이라고 이들이 끊임없이 공언하는 것도 이 때문입니다. 이는 2024년이 미국에서 선거가 치러지는 해라는 사실과 불가분합니다. 이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 군사적 여세를 몰아갈 겁니다. 따라서 레바논과 서안 지구도 매우 위험한 상황입니다. 향후 시온주의가 대규모 군사 작전을 벌일 가능성이 있는 곳이죠. 현재 서안 지구에서 전개 중인 ‘저강도’ ‘게릴라 진압’ 전쟁이 강화될지도 몰라요. 또 레바논에서는 국경 양편에서 제한된 수준으로 주고받는 폭격이 대규모 작전으로 확대될 위험이 있습니다.
베트남, 이라크, 1차 인티파다 등의 전쟁 동원 역사에 비추어 볼 때 이스라엘의 공격에 대항하는 가장 효과적인 구호는 무엇일까요? 파괴 불가능한 적을 상대하고 있는 듯 보이는 상황이라 많은 사람이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궁금해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10월 7일의 효과를 최대한 활용했습니다. 9/11 이후 제가 “나르시시즘적 연민”이라 불러 온 것에 의지해서요. 이 연민은 우리를 닮은 사람들에게만 발휘되죠. 프랑스에서는 [이스라엘에서 열린] 10월 7일의 음악 축제와 바타클랑[파리의 음악 극장]의 연상 작용이 즉각 연민을 이끌어 냈습니다. 그래서 프랑스인들은 이스라엘인과 자신을 동일시하고 하마스를 이슬람 국가IS와 같은 범주에 넣었죠.
이런 나르시시즘적 연민에도 불구하고 서양 나라들에서 가자와의 연대를 위한 동원이 부상하고 있어요. 주로 아랍 지역이나 팔레스타인의 대의에 공감하는 여타 지역 출신의 이주민 공동체들이 집결한 것이긴 하지만요. 매체에서 사건들을 보도하는 비중이 절대적으로 불균형함에도―팔레스타인인의 죽음은 이스라엘인의 죽음보다 훨씬 사소하게 취급됩니다―사람들은 집단 학살이 진행 중임을 깨닫고 있어요. 물론 10월 7일의 효과 탓에 이런 유형의 학살 전쟁에 직면해 응당 그래야 하는 것만큼 강한 분노가 터져 나오고 있지는 않습니다. 전 세계의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인데도요.
그렇지만 분노가 갈수록 강해지고 있는 것은 확실합니다. 처음에는 팔레스타인에 대한 연대의 목소리들이 이 연대를 조금만 표현해도 반유대주의나 나치즘 등등으로 몰리며 억압당한 반면, 이제는 분노가 10월 7일의 효과를 반전시키기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집단 학살에 대한 분노에 기초해 장기 전략을 세워야 합니다. 가자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은 오랫동안 극우가 지배한 이스라엘 국가의 실상을 보여 줍니다. 점점 더 극단화되던 극우가 10월 7일을 기회 삼아 행동에 나선 것이죠. 조지 W. 부시 행정부가 9월 11일을 기회 삼아 오랫동안 계획한 행동을 실행했듯이요.
행동 차원에서 BDS 캠페인은 유효성을 입증했습니다. 계속 유지되고 확산되어야 해요. 정치적인 층위에서 우리는 서양 정부들이 다양한 수준에서 공모했다는 사실을 강조해야 합니다. 독일 지배 계급이 보인 태도는 역사적인 이유에서 이해해 볼 수 있어요. 그럼에도 이들은 나치즘이라는 재앙에서 매우 그릇된 교훈을 얻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유대적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제로는 나치와 더욱더 유사한 행태를 보이는 국가를 지원하고 있으니까요
프랑스의 마크롱은 이스라엘의 가자 전쟁에 참전하겠다고 말했을 때 자신이 너무 멀리까지 나아갔다고 느꼈음이 분명합니다. 현재 프랑스는 휴전 요청을 지지함으로써 다른 유럽 정부들과는 차이를 보이고 있어요. 집단 학살 문제를 두고 남아프리카가 국제 사법 재판소에 제기한 소송도 각국 정부에 압력을 가하는 중요한 지지대고요.
우리는 또 이스라엘에 대한 여러 나라의, 그중에서도 미국의 무기 전달에 반대하고 우크라이나 문제와 팔레스타인 문제에 서양 정부들이 보이는 위선과 ‘이중 잣대’를 강조해야 합니다. 우크라이나에 대한 이들의 인도주의적이고 법적인 담론은 카드로 쌓아 올린 집처럼 무너졌습니다. 특히 글로벌 남반구의 관점에서 볼 때 그랬죠. 아직도 환상에 빠져 있는 사람은 거의 없지만, 그렇다 보니 이중 잣대가 훨씬 노골적인 수준에 이르렀습니다. 여기에는 집단 학살의 적격성이 포함됩니다. 우크라이나의 경우 집단 학살이라는 규정이 곧장 적용되었죠. 이스라엘이 가자에서 석 달 동안 자행한 일이 지금까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에서 자행한 일보다 훨씬 파괴적이고 살인적인 강도를 보이는데도 말입니다.
다양한 정치적 주제들이 현재 진정으로 일관된 국제주의적, 반제국주의적 의식을 재건할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습니다. 우크라이나와 가자를 연결하면 우리가 러시아, 이스라엘, 미국을 막론하고 어떤 침략에도 반대한다는 것을, 국제주의자로서 우리가 일관되게 평화, 인민의 권리, 자결권 같은 보편 가치를 수호한다는 것을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언론, 기승을 부리는 위선, 이스라엘이나 모스크바를 지지하는 저 모든 세력에 맞서는 정치 교육의 전장이 수없이 존재합니다. 이런 종류의 서사 전쟁을 조장하는 것은 네타냐후와 푸틴에 대한 극우의 공감이죠. 이 서사 전쟁은 또 반유대주의와 시온주의가 어떻게 서로를 보완하는지 드러내는 데도 도움을 줍니다. 우리는 반시온주의가 반유대주의에 다름 아니라는 혐의를 뒤집어야 합니다. [반시온주의가] 그 둘의 영속적인 동일성을 확립하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는 사실을 보여 줌으로써 말이죠. 일부 반유대주의적 발화가 반시온주의로 위장하는 것은 사실이지만요. 반유대주의와 시온주의가 서로 수렴한다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럽과 미국의 반유대주의적 극우는 유대인을 제거하길 원하면서도 시온주의를 지지합니다. 유대인이 유럽이나 북미 대신 이스라엘에서 살아야 한다는 생각을 옹호하니까요.
가자와의 연대를 외치는 구호들과 관련해 지금 우리는 우리가 제기한 다양한 질문을 정교하게 다듬어야 합니다. 이 질문들은 무엇보다 본성상 방어적입니다. 학살을 중단시킬 필요성이 최우선 순위인 것이죠. 따라서 즉각 휴전을 요구해야 합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아요. 영토 전체에 대한 무장 점령이 계속되는 상황이므로 당면한 전쟁을 중단시키더라도 분명 또 다른 문제가 제기될 테니까요. 그래서 우리는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인 점령군 철수도 요구해야 합니다. 1967년부터 점령해 온 모든 영토[시리아 골란 고원 포함]에서 이스라엘이 즉각적이고 무조건적으로 철수할 것을 요구해야 하는 것이죠.
이것은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경에 부합하는 구호입니다. 거의 모든 사람이 이해할 수 있는 구호예요. 국제법이 이 영토가 점령되어 있다고 보고, 따라서 점령을 끝내고 점령자가 실행하는 어떤 식민화도 종식하라고 요구하니까요. 마찬가지로 국제법은 팔레스타인 난민에게 귀환권이나 배상권이 있다고 인정합니다.
이를 넘어서는 수준에서 팔레스타인인이 무엇을 원할지는 그들의 결정에 달려 있어요. 제가 보기에 한 국가냐 두 국가냐를 두고 연대 운동 내부에서 벌어지는 논쟁은 많은 경우 부적절합니다. 팔레스타인인에게 필요한 것을 결정하는 곳이 파리나 런던, 뉴욕은 아니니까요. 연대 운동은 팔레스타인 인민의 자결권을 위해 싸워야 합니다. 팔레스타인인이 무엇을 원할지는 그들에게 달린 문제예요. 지금으로선 이스라엘이 1967년에 점령한 영토에서 철수할 것, 서안 지구의 [불법 유대인] 정착촌을 해체할 것, 분리 장벽을 허물 것, 난민의 귀환권을 보장하고 이스라엘 시민권을 가진 팔레스타인인에게 진정한 평등을 보장할 것이 합의된 요구 사항입니다. 이것들은 모두 민주주의적인 요구예요. 누구나 납득할 만한 요구죠. 그리고 이 요구들이 팔레스타인 인민과의 연대 캠페인에서 중심을 이루어야 합니다.
이를 넘어서는 유토피아의 영역에는 당연히 사유와 논쟁을 위한 양식糧食이 있겠죠. 그렇지만 지금은 그런 것에 기초해 대중 캠페인을 수립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에요. 특히 이처럼 집단 학살이 진행 중인 위급한 상황에서는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