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고호의 선원들≫ 디자인 후기

나는 직업인으로서의 디자이너에 가깝다. 나만의 디자인 철학이랄 것도 없고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 같은 것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른 디자이너들이 이론적인 논의를 펼치거나 담론을 형성하려는 걸 볼 때면 자극을 느끼기도 하지만, 내 얕음이 들통날까 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더욱더 안쪽으로 숨어드는 편이다. 이제까지 쓴 디자인 후기들에서 작업을 맞닥뜨린 내 어리둥절함과 막막함 같은 솔직한 심정을 줄줄이 쓰긴 했지만 이것도 큰맘 먹고 용기를 낸 거고, 디자이너라는 멋진 직업이 내 삶을 작지 않은 무게로 억눌러 왔음을 느낀다. 게다가 성격 탓도 있어 좁디좁은 생활 반경과 대인 관계를 이어 오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스스로를 좀 더 내보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부족하거나 약점인 부분들까지도 겁내지 않고, 망설임 없이 새로운 관계에 뛰어들며. 몇몇 계기가 있었는데 ≪아르고호의 선원들≫을 읽고 작업한 것도 그중 하나다.

처음부터 ≪아르고호의 선원들≫이 막 좋았던 건 아니다. 몇몇 일화가 마음을 건드렸지만 넬슨이 자신을 변호하고 있다는 인상도 강했다. 행복을 허용하지 않고 또 미끼로 활용하는 세상에서 행복을 찾은, 또 그걸 드러내는 사람을 볼 때 느끼는 인상. 처음 읽었을 때 이 책은 내 안에서 가벼운 열등감을 불러일으키는 책, 조금은 얄미운 책이었다. 작업에 들어가기 전 편집자와 이런 내 인상을 나누었는데, 편집자는 내 의견에 공감하는 한편 넬슨이 이런 반응도 예상하지 않았겠느냐고, 다만 눈을 가늘게 뜨는 대신 열린 태도로 이 책을 읽어 주길 바라지 않았겠느냐고 덧붙이며 원고를 한 번 더 읽어 보기를 권했다. 그래서 다시 읽었는데 웬걸, 정말 많은 것이 다르게 다가왔다. 후반부에 넬슨은 “인문학은 물론 자본의 하나님에 이바지하지 않는 모든 사랑-열정에 기반한 노동의 목을 따는 데 전념하는 문화가 더더욱 용서하지 않는 것: 그런 무의미하고 변태적인 자기 일을 좋아하고 즐기며 심지어 그로 돈을, 그것도 잘, 버는 여자의 광경”이라고 말하는데 어쩌면 나 역시 처음엔 이런 눈초리였는지도. 가장 결정적인 건 원고를 다시 읽으면서 넬슨의 이야기를 정당화가 아니라 정직함으로 받아들이게 되었다는 것이다. 정직하다고 만사가 형통하는 건 아니지만 나 자신에게 정직하기란, 다른 사람들에게 나를 정직하게 내보이기란 또 얼마나 어려운지.

표지 작업을 시작할 때마다 내가 만족할 만큼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채로 작업의 시공간에 내던져져 있다고 느낀다. 언제나 불완전한 상태인 내가 어떻게 표지를 채울 수 있을까? 이게 책을 디자인하는 사람으로서 내 근본적인 난처함이다. 디자인이라는 일이 창의적임에도 내가 그다지 창의적이지 못한 사람이라는 게 내 불안과 자격지심의 원천이었다(반갑게도 넬슨 자신도 책에서 “스스로를 ‘창작하는 사람’으로 생각해 본 적이 별로 없다”고 밝힌다). 그런 만큼 이 책에서 거듭 울려 퍼지는 ‘그만하면 충분한’이라는 후렴이 정말로 큰 격려가 되었다. 내 능력에 다소 한계가 있더라도 물러서지 않고 시도하며, 그런 다음에는 ‘그만하면 충분하다’고 믿기. 어찌 보면 내가 이미 해 오던 방식을 설명하는 말이기도 하다. 이제까지는 어쩔 수 없어 떠밀리는 심정으로 그랬다는 차이가 있지만. 이렇듯 ≪아르고호의 선원들≫은 내가 디자인과 맺어 온 애증 섞인 관계에서도 숨통을 약간 틔워 준 책이다.

무엇보다 ≪아르고호의 선원들≫을 두 번째로 읽으면서 이 책의 테마들이, 이 책의 분위기와 태도와 여러 발상이 어휘 단위로 내게 다가왔다. 원고를 읽으며 쏟아지는 말들, 말들이 불러내는 장면들, 장면에서 연상되는 이미지들이 머릿속에 어지럽게 흩어지고 뒤엉켰는데, 이것들을 정돈해 한 뭉치로 또는 부분적으로 나누어 그려 넣은 결과물이 ≪아르고호의 선원들≫ 표지 이미지다. 여기에 그 어휘들 몇 가지를 소개하고 싶다. 끝없는 대화: “어쩌면 영영 멈추지 않을지도 모르겠다.” 변모: “너와 나는 나란히 변모 중인, 그리고 느슨하게나마 서로의 변신을 목도하고 있는 두 인간 동물이었다. 달리 말하자면 우리는 나이 들고 있었다.” 임신한 몸: “임신한 상태로 공공에 나선 몸은 또한 적나라하다. 어딘가 우쭐한 자가 성애, 자가 성감의 기운을 발산한다. 이 몸에서는 아주 내밀한 관계가 맺어지고 있다.” 의존: “우리 모두가 애초 (심리적으로) 다른 이에게 절대적으로 의존해야만 하는 존재.” 엷어짐: “팽창은 깨어짐이 아니라 극도의 엷어짐이다.” 산산이 조각나기: “끝없이 추락하며 산산이 조각나기에 순응하는 방법은 없나요라고 묻는 이는 없었다. 이건 내면의 질문이다.” 기름기: “네 등 아래쪽에 새겨진 파란색 사다리 문신 아래로 네 칸 세어 내려가 손끝으로 살을 펴고 5센티미터 가까이 되는 주사 바늘로 기름기 띤 금빛 호르몬을 심부 근육 깊숙이 밀어 넣을 때마다, 네게 선물을 전하고 있음을 확신한다.” 푸름: “바로 전날, 서늘하고 푸른 개울가를 거닐며 나는 아기에게 이만 밖으로 나와 보라고 말했다. 이제 그만 나올 시간이야, 이기.”

늘 그렇듯 주변으로부터도 도움을 받았다. 작업 전 막막함을 털어놓았을 때 옮긴이 이예원 선생님은 구멍이라는 힌트를 던져 주었다. 책 초반부에 넬슨이 파트너 해리에게 “석판!”이라고 외치듯이. “구멍!” 하고 울려 퍼졌다. 물론 이보다 훨씬 다정하고 조심스러운 어조였지만. 구멍은 이 모든 것의 근간이 되는 열쇠였다. 또 편집자가 이상하게 마음에 든다며 보내 준 사진이 있는데 정말 오묘한 방식으로 ≪아르고호의 선원들≫과 어울린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림에서 성별을 특정하기 힘든 몸(들)이 흘러내리며 뒤섞이고 변화하는 모습으로 느껴진다는 점이. 작업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이 그림을 여러 번, 한참 바라보곤 했다.

편집자는 이제껏 우리가 낸 책 중에서 ≪아르고호의 선원들≫이 보도 자료를 쓰는 것도, 여타 소개 글을 작성하는 것도 가장 어려웠던 책이라고 지금까지도 말하고 다닌다. 표지 디자인은 조금 달랐다. 쉬운 작업이 어디 있겠냐마는 넬슨이 뿌려 놓은 문장과 어휘가 이미지나 다름없이 빛나고 있었다. 그 이미지들을 내 것으로 삼기만 하면 됐다. 그 과정이 순탄하지만은 않았지만 이와 관련해서도 넬슨이 말한 정직함이 도움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제목 서체는 특별한 의도 없이 가능한 모든 서체를 늘어놓고 제일 어울려 보이는 것을 골랐다. 옅은 보랏빛 분홍색이 가장 마음에 들었다. 뒤표지에는 앞표지 그림이 부분적으로 변형된 모습을 담았고, 뒷날개에는 처음으로 표지 설명을 넣었다. 표지에 사용한 푸른 이미지를 글로 설명하기가 쉽지 않아 이리저리 함께 고민하고 매만진 결과다. 원서 본문 여백에는 인용한 문장의 저자 이름이 작게 쓰여 있는데 한국어판에도 같은 방식을 사용했다. 그 외에도 넬슨은 행 띄움, 대문자와 이탤릭체, 밑줄에 이르기까지 텍스트적인 장치를 많이 활용하는데 전부 그대로 살려 주었고, 이런 장치들을 보면서 상상력을 동원하는 것도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즐거움이지 싶다. 면지는 제목 색상과 비슷한 연보라색으로 골랐는데 완성된 책을 받았을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부분이다. 자주 언급되지는 않지만 디자이너들이 약간의 짜릿함을 느낄 때가 바로 인쇄돼 나온 책을 펼쳐 면지를 확인하는 순간 아닐지.

내가 작업한 디자인을 설명하는 일은 늘 좀 쑥스럽다. 동그라미를 앞에 놓고 이것은 동그라미라고 말하는 꼴인 듯해서. 하지만 그럴듯한 이미지 뒤에 숨어 괜한 말로 밑천을 드러낼까 두려워 시치미 떼고 앉아 있기보다는 어떻게든 설명해 보려 하고 있다는 사실이 이 순간 꽤 마음에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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