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체»의 문화사적 위치

올해 군산 북페어에서 소책자로 공개한 후쿠시마 료타의 <«삼체»의 문화사적 위치>(윤재민, 정창훈 옮김)를 블로그에 올립니다. 후쿠시마의 «헬로, 유라시아»(2021)에 보론으로 수록된 글이며, «헬로, 유라시아»는 추후 두 옮긴이의 번역으로 리시올에서 출간될 예정이에요.

2008년 1부가 출간되었고 올해 넷플릭스에서 영상화되기도 한 류츠신의 «삼체»를, 중화권의 문화사적 맥락 속에서 그 탄생부터 현재적 함의까지 짚어 설명한 글입니다. 중문학자이기도 한 후쿠시마의 비평이 어떤 종합을 향해 나아가고 있는지 시사해 주는 글이기도 해요. 중국이 오랫동안 SF의 불모지로 남을 수밖에 없었던 이유부터 이런 대작이 나올 수 있게 한 배경(홍콩이라는 변경의 존재, 양계초와 루쉰에 이르는 문화적 전통, 켄 리우의 우수한 번역 등)은 무엇이었는지를 꼼꼼히 조명하고, 웅장하면서도도 오싹한 ‘우주론적 진화론’의 의미를 밝힙니다.

«나선형 상상력»의 출간 후 인터뷰에서 후쿠시마는 “더 거시적이고 자유로운 시각”이 필요한 때가 되었다고 말한 바 있는데요. 이 글이 작품의 내부와 외부, 문학과 정치, 로컬과 글로벌을 능수능란하게 연결 지으며 주는 자유의 감각을 여러분도 느껴 보시면 좋겠어요.

* * *

후쿠시마 료타
윤재민, 정창훈 옮김

2019년 여름, 1부가 일본어로 번역된 류츠신의 SF 시리즈 «삼체»는 중국 내에서는 사이언스 픽션사, 나아가 문학사 전반의 이정표로서 평가되고 있다(이후 2~3부도 마저 번역되었다). 일본인의 입장에서도 이 이색적인 대작을 좁은 의미의 SF 장르가 아니라 보다 넓은 맥락 안에서 이해해 볼 필요가 있다. 나는 중국 SF(과학 환상科幻)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가능한 범위 내에서 문헌 소개도 겸하며 «삼체»의 문화사적 위치를 개관해 보고자 한다.

1. 중화권의 SF

중국 대륙은 오랫동안 ‘SF 불모의 땅’으로 여겨져 왔지만, 2008년에 간행된 «삼체» 이후 상황은 완전히 뒤바뀌었다. 1부 «삼체 문제»에 이은 2부 «흑암삼림», 3부 «사신영생»으로 이뤄진 3부작이 경이로운 매출을 기록하고 10개국 이상에서 번역되면서 류츠신은 단숨에 크게 주목받는 작가가 되었다.

원래 중국에서 SF가 오랫동안 뿌리내리지 못한 데는 문명론적 이유가 있다. “군자는 괴력난신怪力亂神을 말하지 않는다”라는 «논어»의 유명한 구절이 시사하듯, 중국의 지식인은 대체로 초자연적인 판타지를 말하는 것에 금욕적이었다. 형이상학적인 책이 아닌 «사기», «한서» 등 역사서가 뛰어난 고전으로 추앙받은 것도 그 ‘사실 존중’의 정신을 엿보게 한다. 이는 일본에서 공적인 역사서 이상으로 «헤이케 이야기»나 «태평기»와 같은 재야의 이야기 문학物語文学1이 널리 읽혔던 것과 좋은 대조를[1] 이룬다. 중국 기준으로 말하면, 저자의 경력도 확실하지 않은 이러한 일본의 픽션들은 수상한 서브컬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경험적 사실을 중시하는 중국인의 태도는 허구적 작품에도 영향을 미쳤다. «서유기»나 «수호전»이라는 제목은 비록 황당무계한 픽션일지라도 역사적 기록이라는 외관상의 치장이 요구되었음을 보여 준다. 신비로운 능력을 지닌 무술가들이 등장하여 활약하는, 20세기 후반 김용의 무협 소설조차 역사적 사실에 입각하고 있기에 중화권에서 널리 받아들여진 셈이다. 흥미롭게도 루쉰은 이런 경향을 비꼬는 풍자 작품을 썼다. 그의 대표작 <아Q 정전正傳>의 도입부에는 수다스러운 화자가 열전列傳, 자전自傳, 내전內傳, 외전外傳 등의 타이틀을 열거하면서 어느 것도 마땅하지 않다고 고민하는 장면이 있는데, 그것은 중국의 뿌리 깊은 역사주의에 대한 교묘한 패러디처럼 보이기도 한다.

따라서 SF처럼 현실과 동떨어진 장르는 중국의 지적 풍토와 거리가 먼 것이었다. 하지만 중화권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SF의 수맥을 발견할 수 있다. 즉 홍콩 같은 변경의 도시들이 ‘괴력난신’을 자유롭게 말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온 것이다.

일찍이 가토 슈이치는 영국이나 프랑스와의 비교를 통해 일본 문화를 ‘잡종 문화’라고 형용한 바 있다.[2] 그러나 홍콩은 어떤 의미에서 일본 이상으로 잡종적이며, 그 문화는 서양과 동양의 뒤범벅이다. 브루노 마카에스의 말을 빌려 “홍콩인은 어쩌면 최초의 유라시아인”이라고 평해도 될 것이다.[3] 그리고 이 하이브리드한 풍토에서는 중국 본토로부터 배제된 것들이 번영했다. 중문학자 김문경의 말처럼 홍콩에서는 장아이링張愛玲​이나 리빅와李碧華와 같은 여성 작가들이 인기를 얻은 한편 SF, 미스터리, 무협 같은 통속 소설이 많은 독자에게 환영받았는데, 이것들은 모두 중국 본토에서는 이단적인 것, 즉 ‘괴력난신’을 이야기하는 서브컬처에 지나지 않았다.[4] 문화적 차원에서 홍콩은 ‘거꾸로 뒤집힌 중국’인 것이다.

특히 SF 분야를 개척한 인물은 1935년생 니쾅倪匡이다. 상하이에서 홍콩으로 도망치듯 이주한 니쾅은 1963년 이후 ‘웨슬리’衛斯理, Wisely 시리즈―필명과 주인공 이름이 모두 웨슬리인 일련의 SF 모험 소설로 폭넓은 인기를 얻었다―를 연달아 발표했고, 그와 함께 미스터리에서 포르노에 이르는 온갖 통속적 장르를 써 내 저작의 수가 3백 권 이상에 달한다(참고로 그의 여동생 이슈亦舒도 홍콩의 인기 작가로 지금은 캐나다에서 살고 있다). 그야말로 글 쓰는 기계처럼 돌진해 온 그 모습은 과연 홍콩 잡종 문화의 상징이라 칭할 만하다. 전 세계 화교를 대상으로 하는 중국어 SF 문학상이 ‘니쾅 SF상’(2001~2010년)이라 명명된 것에서도 사이언스 픽션사에서 그가 차지하는 대단한 위상을 엿볼 수 있다.[5]

아울러 홍콩의 대중 작가들이 문학의 범주 안에서만 활동하지 않았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무협 소설의 일인자로 2018년에 사망한 중화권의 거인 김용도 자신이 창간한 «명보»明報에서 저널리스트로 활약했고 영화 각본도 맡은 다재다능한 작가였다(일본에서 비슷한 예를 찾다면 기쿠치 간菊池寛[6]이 거대화된 경우라고 생각하면 이해하기 쉬울 것이다). 니쾅도 방대한 양의 각본을 집필했고, 해외 도항 중이던 김용의 핀치 히터(대타)로 등장해 «명보»에 연재 중이던 무협 소설 «천룡팔부»를 대필하기도 했다. 이들은 풍부한 현실 인식과 미디어 횡단적 감성을 무기로 삼아 SF나 무협 소설을 쉼없이 써 나간 것이다.

2. 신세대 SF 작가

여하튼 간에 SF는 무협 소설 이상으로 중국 문학사에서 비정통적인 장르이다. 그렇기에 홍콩, 대만이 아닌 중국 대륙에서 «삼체»가 베스트셀러가 되고, 켄 리우Ken Liu[7]의 번역을 거쳐 휴고상까지 수상한 것은 그야말로 이례적인 사건이라고 할 수 있다.

류츠신은 혼자서 중국 SF를 세계 수준까지 끌어올림으로써 중국 SF를 둘러싼 상황 자체를 바꿔 놓았다(덧붙여 그의 세계적 성공은 켄 리우가 통상적인 번역을 넘어서 «삼체»를 미국적 취향으로 편집한 것이 큰 역할을 했다. 이는 가와바타 야스나리나 무라카미 하루키의 경우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데, 아시아 작가에게 우수한 영어 번역자의 역할은 결정적인 의미를 가진다). 작금의 중국 SF는 10년 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활기를 보이고 있다. ‘SF의 류츠신’이 ‘무협 소설의 김용’에 버금가는 작가라는 견해가 종종 있는데 이는 결코 과대평가가 아니다.

1963년생인 류츠신은 본래 엔지니어였는데 이미 1990년대부터 작가 경력을 쌓아 왔다. 그 외에도 1948년생 왕진캉王晋康, 1965년생 한송韓松, 1947년생 허시何夕 등이 유력한 SF 작가로 꼽힌다. 21세기에 들어서는 1980년대 출생의 젊은 작가나 여성 작가도 차례차례 SF계에 데뷔했다. 뿐만 아니라 SF는 이제 오락 산업의 거점으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일례로 류츠신의 단편 소설 <유랑 지구>(2000)가 2019년에 영화화되어 크게 흥행했으며 앞으로도 중국 SF의 영화화는 계속될 것이라고 본다.

여기서 주목할 점이, 이 신세대 SF 작가들 가운데 칭화대, 베이징대, 상하이 교통대, 저장대 등 명문 대학의 이과 대학 졸업자 출신, 그리고 신문사 기자 출신이 많다는 점이다.[8] 지금 중국 SF는 아카데미즘이나 저널리즘의 근방에 있는 엘리트들이 담당하고 있다. 이는 2000년대에 화려하게 등장해 10대 젊은이로부터 광범위한 지지를 모은 80년대생 작가 한한韓寒, 궈징밍郭敬明이 학력 사회에서 이탈해 다재능적인 작가나 사업가의 길을 걸어 온 것과 정확히 대조적이다.

다만 «삼체»만이 너무 돌출되어 있는 까닭에, 중국 SF라는 장르 전체가 일시적인 붐 현상을 넘어서 세계 문학으로 자리 잡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중국 근현대 문학 연구의 대가인 왕더웨이王德威―번체자판 «삼체» 표지에 ‘류츠신은 21세기 중국 문단의 가장 주목할 만한 작가’라는 추천문을 달았다―는 몇 년 전 강연에서 휴고상을 수상한 하오징팡郝景芳(칭화대에서 물리학을 공부한 1988년생 여성 작가)의 <접는 도시>北京折叠(2014)[9]를 부정적으로 언급하면서, 중국 SF의 문체가 대체로 ‘조잡’할 뿐이라며 SF 전성기는 이미 지나갔다고 평가했다.[10] 그러나 류츠신은 그렇다 치더라도, 그 이후의 젊은 작가들을 무턱대고 평가하는 것은 섣부른 일일 것이다.

게다가 류츠신 자신의 정치성도 문제를 내포하고 있다. 예를 들어 독일의 신문 «디 차이트» 인터뷰에서, 인터뷰어가 류츠신에게 지금의 중국은 «1984»와 같은 감시 사회가 되어 가는 것이 아니냐고 물었더니 그는 99%의 중국인은 그런 것에 관심이 없다고 대답했고, 그렇다면 나머지 1%의 인권 운동가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냐는 추궁에 현실 생활에서 그런 소수파와 만날 일이 없다고 말했다. 인터뷰어는 이 발언에 긴 주석을 달아, 중국 공산당 기관지 «인민일보»에서 문학계의 스타로 추앙되는 류츠신이 베스트셀러 작가이긴 하나 정치 사상가도 공공적인 지식인도 아니라고 일침을 가했다.[11]

물론 안전지대에 몸을 두고 있는 인터뷰어가 중국 소설가를 대상으로 이런 일방적인 판단을 내린 데는 다소 가혹한 면이 있다. 그러나 중국 체제 측에서 류츠신 및 SF라는 장르를 에워싸고 있다는 사실은 중국 SF의 앞날을 점치는 데 중요하리라고 생각한다. 2019년 올해만 해도 «인민일보»에서는 영화판 «유랑 지구»―멸망의 위기에 처한 지구에 엔진을 달아 태양계 탈출을 기도하는 이야기로, 왕년의 일본 ‘특촬’[12] 영화를 떠올리게도 한다―의 성공을 계기로 중국적 사고방식을 배경으로 한 국산 SF 영화에 기대를 거는 기사가 자주 눈에 띄었다. 이제 «삼체»를 필두로 한 중국 SF는 국가 콘텐츠 전략의 첨병으로서 공식적으로 환영받고 있는 것이다.

적어도 류츠신은 비슷한 세대인 위화(1960년생), 옌롄커(1958년생) 등과 같이 검열이나 발매 금지 처분에 맞서는 전투적인 유형의 인물이 아니다(서양의 가치관에서 볼 때 공산당에 세뇌당한 것이 아니냐는 의혹이 생기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류츠신 예찬만 늘어놓고 있는 일본의 미디어나 언론인보다 서구 저널리즘 쪽에 아직 비평성이 남아 있다고 볼 수 있겠다. 그렇다고 해도 중국 SF의 모습 자체를 일변시킨 «삼체»의 임팩트가 줄어드는 것은 아니다. 우리는 일단 현대 중국의 SF 붐이 중국 문화사를 구획하는 이례적 사건임에 유념하도록 하자. «삼체»는 어떤 의미에서 소설에 담긴 내용 이상으로 중국 문화의 패러다임을 고쳐 썼다는 그 사건성이 중요하다.

3. 과학의 위상

여기서 잠시 전통 중국에서 과학이 차지하는 위상에 대해서도 살펴보기로 하자.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역사적 사실에 기반하지 않는 순수한 픽션에 대한 평가가 낮았을 뿐만 아니라, 과학 기술도 지적 권위를 얻을 수 없었다. 즉 사이언스(과학)도 픽션(환상)도 중국에서는 오랫동안 냉대를 받아 왔는데, 뒤늦게 21세기가 되어서야 ‘과학 환상=SF’의 전성기가 찾아온 까닭도 거기에 있다고 볼 수 있겠다.

이과 경시의 흐름을 조장한 것은 역시 과거제일 것이다. 과거제에는 당초에 수재과秀才科, 진사과進士科, 명경과明經科, 명법과明法科, 명자과明字科, 명산과明算科라는 과목이 있었는데, 법률이나 수학과 같은 여러 분야의 전문가들도 등용되었다. 육예六藝(여섯 가지 기초 교양)를 중시한 유교는 원래 지식의 다원성과 종합성을 평가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과거제는 곧 경서 암기와 시 창작을 시험하는 진사과에 집중되어, 각 분야의 재능을 모은다는 방침이 오래 가지 않았다.[13] 여기서부터 당연히 문과 편중과 이과 경시가 발생한다. 만약 과거제에 과학 기술 과목이 들어갔다면 중국, 나아가 세계의 과학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을까.

물론 중국에도 실증주의가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예컨대 주자학에는 ‘격물치지’格物致知, 즉 사물을 규명하여 지식을 깊게 한다는 발상이 있다(근대 초기 중국에서는 ‘science’의 번역어로 ‘격치’가 쓰이기도 했다. 그랬던 것이 결국 메이지 일본에서 유입된 ‘과학’으로 대체되었다). 중국 과학사의 대가 조지프 니덤처럼 도가 연금술에서 과학의 맹아를 발견하려 한 학자도 있었다.

다만 실증적 정신을 갖춘 지식인들조차 대개 고전 텍스트의 문헌학적 해석에 그치고 과학 기술 개척에는 나서지 않았다. 근대 중국의 지도적인 리버럴 지식인이었던 후스胡適는 1933년 영문 강의 <중국의 르네상스>에서 17세기 고염무顧炎武와 염약거閻若璩 등 고증학자(실증적 문헌학자, 언어학자)의 연구 방법이 유럽 동시대 갈릴레오, 케플러, 뉴턴, 하비(해부학자), 토리첼리(물리학자), 보일(화학자) 등과 유사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연구 내용은 근본적으로 달랐다는 점에 주목했다.[14]

근세 일본의 학자들이 네덜란드어를 열심히 배워서 난학蘭学[15] 을 만들어 낸 것과 달리, 근세 중국의 학자들은 다른 언어의 습득보다는 자국 고전어 분석으로 기운 것이다.

중국의 과학사를 돌아보면 17세기 초부터 중국을 방문하기 시작한 선교사의 공적을 간과할 수 없다. 예수회의 마테오 리치는 원래 수학과 천문학을 공부했고 그 지식을 발휘해 세계 지도를 만들었다. 더욱이 중국은 오래전부터 역법을 중시했지만 보다 정밀한 달력을 만드는 데는 선교사의 지식이 필요했고, 마찬가지로 예수회 소속이었던 아담 샬이 이에 화답했다. 즉 이 시기 중국의 과학은 기독교를 통해 서양의 근대 과학과 교차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18세기 강희제 시대 이후에는 문화적 보수화가 진행되어 예수회 선교사들의 방문도 줄어들었다.[16]

어쨌든 17세기 이후 서양 과학이 갈릴레오나 케플러의 천문학과 함께 비약해 세계를 변혁한 반면, 중국에서는 실증적 탐구가 고전 텍스트에만 집중되어 이과 분야가 크게 뒤떨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생각하면 류츠신이 일관되게 우주 SF를 고집하고 있는 것이 시사적이다. 중국 사이언스/픽션의 한계를 돌파하기 위해서는, 서양의 과학적 인식, 그 중추에 있는 우주 세계를 상대하는 것이 필요했을 것이다.

4. 20세기 초의 유토피아니즘

이처럼 중국에서는 ‘사이언스/픽션’의 가치를 공식적으로 승인하는 풍토가 자라나기 어려웠으나, 사실 중국 SF도 이미 100년의 역사를 가지고 있다. 여기서는 20세기 초두로 거슬러 올라가, 초창기 SF의 중요한 작품 두 편을 소개하고 싶다.

그중 하나는 1873년생 양계초梁啓超의 «신중국 미래기»新中国未来記(1902)다. 당시 제일의 저널리스트였던 양계초는 소설을 문명화의 유익한 도구로 보았으며, 특히 메이지 일본의 정치 소설, 즉 도카이 산시東海散士의 «가인의 기우»佳人之奇遇, 야노 류케이矢野 龍渓의 «경국미담»経国美談, 스에히로 뎃초末広鉄腸의 «설중매»雪中梅와 «23년 미래기»二十三年未来記 등에 주목했다. 이 중 «설중매»는 국회 개설 150주년 기념식으로부터 메이지 국가를 돌아보는 미래 소설인데, 양계초는 아마도 그 영향 아래 «신중국 미래기»의 무대를 1962년의 상하이 국제 박람회로 정한 것으로 보인다. «신중국 미래기»는 거기서 행해진 가공의 강연과 대화를 기록하는 형식을 취했다(참고로 상하이 세계 박람회는 2010년에 실현되었다).

그 미래의 중국은 미국이나 유럽으로부터도 유학생이 몰려드는 학문 대국이 되어 있다. 양계초는 작품 속에서 정보를 운반하는 기술로서 속기술, 연설, 전신을 등장시켰다.[17] 이 전달 기술의 진보를 배경 삼고 입헌주의와 문리文理의 학문을 받아들여 번영한, 다양한 의견이 활발히 교류되는 ‘신중국’의 비전이 나오는 것이다. 따라서 «신중국 미래기»는 서양적 의미의 SF라기보다는 새로운 지식의 유토피아를 이상화한 정치 소설로 보는 편이 더 맞겠지만, 중국의 ‘과학/환상’을 특징짓는 유토피아주의의 선구로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다만 이 작품 자체는 연재 5회 만에 중단됐기 때문에 중도하차의 아쉬운 느낌을 부정할 수 없다.

또 하나는 일본의 나쓰메 소세키와 같은 세대에 해당하는 오견인呉趼人의 «신석두기»新石頭記(1905)다. 이것은 18세기 작가 조설근曹雪芹의 걸작 «홍루몽»의 속서續書(다른 작자가 쓴 속편)로, 주인공인 자보옥을 서술자로 하여 서양의 기술을 소개하는 계몽적인 소설이다(중국 백화 소설의 2차 창작은 속서인 경우가 많다. «삼체»의 경우도 예외는 아니어서, 바오슈宝樹의 «삼체 X»처럼 비교적 평판이 좋은 속서도 있다). 이 소설의 후반부에서 오견인은 자보옥을 ‘문명 경계’라는 이세계로 이끈다. 그곳은 기온이 공기 조절 장치에 의해 조정되며 식사도 의술도 발달하고 로봇이 있고 하늘을 나는 차가 다니는 등 그야말로 테크노 유토피아였다. 자보옥은 그곳에서 잠수함을 타고 북극과 남극의 기이한 광경을 목격한다.

«신석두기»도 SF라기보다는 ‘과학의 보급’科普을 염두에 둔 과학 소설로서 쓰였다. 애초에 청나라 말기였던 20세기 첫 10년은 사회 풍자를 겨냥한 ‘견책譴責 소설’을 비롯해 중국에서 전례 없는 규모로 소설이 쓰인 시대였다.[18] 앞서 말한 왕더웨이는 이 사회 변혁 및 소설 변혁의 태동 속에서 비주류였던 과학 소설이 싹터 서양의 테크놀로지를 배경으로 하는 유토피아상을 낳았다는 점에 주목했다.[19] 당시 공전의 소설 열기는 중국 SF의 전사前史를 형성했을 뿐 아니라, 양계초와 오견인 등의 유토피아니즘도 키웠다.

덧붙여 중국인의 세계 인식 틀 자체가 20세기 초에 격변한 것도 간과할 수 없다. 1895년 청일 전쟁 패전은 중국 지식인들에게 트라우마적인 충격을 주었다. 극동의 섬나라인 일본에 뒤처졌다는 것이 사상적 패러다임을 크게 변화시킨 것이다.

이때 포괄적인 ‘만물 이론’으로서 널리 수용된 것이 사회 진화론Social Darwinism이었다. 특히 다윈의 생물학을 사회에 적용해 적자 생존의 법칙을 설파하는 허버트 스펜서류의 진화론이 큰 영향력을 행사했다. 서양 사상의 도입자였던 옌푸嚴復는 스펜서의 이론에 기대어 인민은 각국 간의 생존 투쟁에 놓임으로써 각성한다고 보았다. 그리고 그 인민의 에너지는 ‘사회 유기체’로 일체화되며, 그 사회 유기체도 다른 사회 유기체와의 생존 투쟁을 계속할 것이라고 주장했다.[20] 이렇게 해서 세계는 사회 생물학적인 진화와 경쟁의 장으로 해석되는 동시에, 중국 문명이라는 사회 유기체는 서양 문명에 비해 열위에 있고 뒤처져 있음을 강조했다. 이후에도 양계초에서 루쉰, 후스, 마오쩌둥에 이르기까지 사회 진화론은 중국 지식인들의 발상에 깊이 뿌리내려 이어졌다.

사회학과 생물학이 뒤섞인 이 기묘한 진화론적 패러다임 속에서 20세기 초두 중국은 SF적 세계상을 포함한 문학적 상상력을 꽃피웠다. 이때 과학은 서구적 ‘진화’의 강력한 동력원으로 비쳤다. «신석두기»도 잡지 «점석재화보»點石齋畫報[21]도 서양 기술의 진기함을 일러스트를 통해 소개했다.

흥미롭게도 이 텍스트들에서 서양의 과학은 종종 테마 파크적이거나 박물학적으로, 이를테면 진기한 ‘물건’처럼 전시되었다. 중국 SF를 연구하는 너새니얼 아이작슨의 말을 빌리자면, 그것은 ‘콜로니얼 모더니티’의 유형이라고 말할 수 있다.[22] 즉 문화를 식민지화하는 유럽도, 식민지화되는 아시아도, 상대를 전시Display 가능한 것으로 바꾸면서 다른 세계를 이해하는 지식의 지평을 형성한 것이다. «삼체»에서도 흥미롭고도 공포스러운 VR 게임이 외계인과의 접촉을 위한 열쇠가 되지만, 이것은 다른 세계를 ‘물건’으로 변환시키는 엑스포나 테마 파크에 가깝다. 이렇듯 다른 세계와의 만남은 종종 경박한 시뮬레이션에서 시작되는 것이다.

5. 근대 문학과 SF

양계초 등의 뒤를 이어 지금으로부터 백여 년 전인 1919년 5·4 운동에서는 ‘과학’과 ‘민주’의 기치가 내걸렸고, 루쉰과 후스 세대가 그 역군이 되었다. 양계초나 오견인이 그랬듯이, 루쉰은 좁은 의미의 문학 장르로서 사이언스 픽션을 형성했다기보다 사이언스와 픽션을 교차시켰다고 하는 편이 맞을 것이다.

원래 의학을 공부한 루쉰은 작가가 되기 전에도 과학에 관한 에세이를 남겼으나, 문학사적으로 중요한 것은 1903년에 쥘 베른의 «지구에서 달까지»月界旅行와 «지구 속 여행»地底旅行을 번역해 간행한 것이다(이 중국어 번역 «지구에서 달까지»는 이노우에 쓰토무井上勤가 1880년부터 이듬해에 걸쳐 영어본을 일본어로 번역한 버전을 다시 중국어로 번역한 것으로, 원저보다 내용이 축약되었다). 루쉰은 쥘 베른을 통해 서양의 첨단 지식을 중국에 도입하려 했다. 쥘 베른의 ‘미지 세계 모험’이라는 모티브는, 앞서 언급한 «신석두기» 등을 포함해 중국의 초기 SF에서 자주 채용되곤 했다. 지식의 쇄신과 소설의 진화를 함께 촉진하는 데 쥘 베른의 작품은 더없이 유익했던 것이다.

알다시피 루쉰은 1918년 «광인 일기»를 통해 중국 근대 문학을 본격적으로 개창한 작가다. 이후 그의 문학은 쥘 베른적인 ‘여행’과는 완전히 대조적인 방향으로 나아가 어두운 실존 감각을 강조하게 되었다. 하지만 그런 루쉰이야말로 중국 SF의 씨앗을 뿌린 인물이라는 점이 흥미롭다. ‘중국 근대 문학의 기원’과 ‘중국 SF의 기원’은 루쉰을 접점으로 해서 부분적으로나마 오버랩되고 있는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근대 이전 중국 소설은 종종 ‘공동체 교사’로서의 역할을 했다는 점이다. 예를 들면 «삼국지 연의»나 «수호전»도 일본에서는 단순히 오락으로 받아들여졌으나 중국에서는 세계 인식을 나타내는 서적이었다(여기서 지성 편중을 경계하는, 원초적인 ‘반지성주의적’ 태도도 발견된다).[23] 중국 소설의 영향을 받은 교쿠테이 바킨曲亭馬琴[24]만 하더라도 «진설 유미하리즈키»椿説弓張月,«난소 사토미 팔견전»南総里見八犬伝을 지리학에서 문예 비평까지 아우르는 백과전서로 썼다. 루쉰이 보았을 때 쥘 베른의 SF도 그러한 종합적 지식의 시스템이었을 것이다. 아래에서 상술하겠으나 «삼체»에도 이와 닮은 구석이 있다.

그런데 루쉰 자신이 SF를 쓴 것은 아니지만, 만년의 단편집 «새로 쓴 옛날이야기»故事新編[25]는 SF적인 문명 비평에 반 발짝 다가선 것처럼 보인다. 특히 <하늘을 땜질한 이야기>補天에서 루쉰은 지질학적 이미지를 살려 태고의 지구를 묘사하면서 여와女媧(중국 신화의 유명한 여신)의 세계 창조를 패러디적으로 그린다. 이 단편은 여와가 흙으로 반죽한 난쟁이들이 이윽고 기묘한 의례와 말씨에 집착하며 거들먹대는 실속 없는 유생으로 진화해 버린다는 이야기다. 루쉰은 여기서 진화론을 형식적으로만 차용하고 있는 중국의 문명적, 유교적 인간상을 블랙 유머로 표현힌 것이다.

이 도발적인 아이러니로 가득한 단편집은 현대 작가들에게도 자극을 주고 있다. 노벨상 수상 작가인 모옌은 현대 소설의 특징―블랙 유머, 의식의 흐름, 마술적 리얼리즘―이 «새로 쓴 옛날이야기»에 수록된 <검을 벼린 이야기>鋳剣에 모두 선점되어 있다고 말했다.[26] 겉모습만 화려한 문명의 기만을 파헤치고 역사적 위인조차 바보로 만드는 «새로 쓴 옛날이야기»는 모옌만이 아니라 위화, 옌롄커 등의 문학적 원류라고 나는 생각한다. 류츠신도 예외는 아닐 것이다. «삼체»의 독자라면 VR 게임 ‘삼체’ 속에서 주나라 문왕이나 공자 같은 성인들이 엄청난 재앙 앞에 무력한 광대가 되어 버리는 장면을 기억할 것이다. 여기에도 «새로 쓴 옛날이야기»식 블랙 유머가 뜻하지 않게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6. 신냉전 시대의 백과전서 SF

20세기 초두의 양계초, 오견인, 루쉰의 의도가 순조롭게 이어졌더라면 중국의 SF사는 지금과 달랐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공산당의 통치가 확립된 20세기 중반 이후, 지식인들의 관심은 SF로 향하지 않았다. 신화사 통신 기자인 한송이 과거에 SF를 ‘아동 문학’으로 비하한 적이 있듯이 SF는 성인의 읽을거리로 여겨지지 않았다.

이렇듯 100년의 세월 동안 중국 SF는 지지부진한 모습을 보여 왔는데, «삼체»는 드디어 그것을 본격적인 문예 장르로서 일으켰다. 류츠신에게 이는 SF가 계몽적인 ‘과학’의 임무에서 해방되는 것을 의미한다. 그는 21세기 중국의 SF가 지난 세기의 중국적 특수성에서 벗어나 세계의 SF와 동일한 테마를 다루게 되었음을 강조한다.[27] 다만 그런 면이 분명 있다고 하더라도, 아이작슨이 지적했듯 류츠신의 작품에서 문명의 우열을 강하게 의식하던 초기 중국 SF의 반향을 읽어 내는 일 또한 가능할 것이다.[28]

실제로 «삼체» 시리즈의 큰 테마를 이루는 것은 도덕 관념을 공유하지 않는 외계인과의 생존 투쟁이다. 여기에는 20세기 초의 사회 진화론이나 사회 유기체론과도 통하는 난폭한 측면이 있다. 지구 문명은 삼체 문명과의 투쟁 후, 우주로부터 3차원을 2차원으로 만들어 버리는 차원 공격을 받아 큰 피해를 받는다. 남겨진 주인공들은 화려한 2차원 그림이 되어 버린 태양계의 종언을 지켜볼 수밖에 없다. ‘지구의 옛이야기’地球往事라는 «삼체» 시리즈의 원래 타이틀도, 지구를 자그마한 존재로 축소시키는 거대한 우주의 법칙을 독자에게 의식시키려는 것이다.

류츠신은 자연 과학이나 사회 과학의 엄밀함에 그다지 구애받지 않고 문과와 이과를 반강제로 한데 묶은 세계상을 «삼체»에 부여했다. 특히 2부 «흑암삼림»에서 이야기되는 우주 사회학은 시리즈의 결정적인 부분을 이룬다. 1) 생존은 문명의 첫째 요구다. 2) 문명은 끊임없이 증대되고 확장되지만 우주의 물질 총량은 불변을 유지한다―이 두 가지 기본 공리에 따라 우주는 정해진 자원 안에서 생존을 목표로 하는 사냥꾼들이 겨루는 투쟁의 장으로 간주된다. 자신의 모습을 무방비로 노출한 문명은 순식간에 숙청되고 만다. 이 히스테릭한 우주에서 ‘타인은 지옥’인 것이다.

반복하건대 20세기 초 중국은 서양 문명의 압박 속에서 과학의 힘으로 거듭나 혹독한 생존 투쟁에서 살아남고자 했다. 21세기 초 «삼체»에서도 생존의 요구가 도덕이나 인간성을 능가한다. 1부 «삼체 문제»에 나타나 있다시피 완전히 망가진 기후 속에서 살아가는 삼체인에게 민주적 정치 체제는 너무도 허약한 것이다. «삼체» 시리즈에는 사회 진화론을 넘어선 우주론적 진화론Cosmological Darwinism이 잠재해 있다.

그리고 이 우주 규모의 ‘문명의 충돌’이라는 구도는 그저 기발한 상상력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정치적인 리얼리티도 내포하고 있다. 특히 지구 문명과 삼체 문명의 싸움은 마치 미중 관계의 우의처럼 보이기도 한다. 한편 고도의 감시 기술로 지구를 제약하고 마침내는 식민지화하는 삼체 문명은 중국의 통치 자세와도 어딘가 닮아 있다. «삼체»의 독자들은 현실의 정치 문제가 우주 세계에 투영돼 있다는 인상을 받지 않을까.

류츠신은 ‘SF에 현실을 은유적으로 반영하는 것은 좋아하지 않는다’며 ‘SF를 위한 SF’를 지향하는 입장에서 정치적 독해를 거부한다.[29] 그러나 원래 중국 작가들은 작중에 정치적 내용을 암호화해 넣는 것, 이른바 ‘미언대의’微言大義[몇 마디 말로 깊은 뜻을 전하는 것]나 ‘춘추필법’春秋筆法[은유나 완곡어법을 통한 비판] 등을 구사하는 것이 장기이기에, 작가의 발언을 액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거꾸로 말하자면 이런 장기를 부리지 못하는 작가는 결국 이류에 불과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류츠신이 중국 SF 작가로서는 두드러지게 비관적인 비전을 제출하고 있다는 것, 그리고 거기에는 ‘문명 충돌’이나 ‘생존 투쟁’이라는 지난 세기부터 오늘에까지 이어져 온 불길한 정치적 망령이 아물거리고 있다는 것이다.

1940년대에 시작된 아이작 아시모프의 유명한 ‘파운데이션’ 시리즈도 돌이켜보면 공산주의 국가가 탄생하고 냉전 구조가 확립된 시대의 SF로 읽힌다. 21세기에 출간된 «삼체»의 경우도, 작자의 의도가 어떻든, 상호 이해는커녕 충돌도 회피할 수 없을 것 같은 미중 ‘신냉전’ 시대에 어울리는 외관을 갖추고 있다(그렇다면 어느 쪽이 ‘삼체 문명’에 상당하는 것일까?). 그런 점에서 삼체를 문명론적 백과전서 SF라고 평해도 무방할 것이다.

실제로 «삼체»에는 나노 기술부터 천체 물리학, 정치 철학, 사회학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독해를 이끌어 내는 장치가 담겨 있어, 각종 서적이나 인터넷상 등에서 시리즈의 수수께끼(감춰진 의미) 풀이를 하는 팬들의 열기가 뜨겁다. «삼체»는 단순한 오락 소설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세계 인식을 주는 서적으로서, 즉 문리 횡단적인 백과전서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애초에 주요 등장인물 모두를 과학자로 설정한 «삼체»의 중심에 주지주의主知主義가 자리하고 있음은 분명하다. 더군다나 정재계의 명사가 된 류츠신 자신도 종합적 지식인으로서 활약하고 있다. 굳이 일본에서 비슷한 작가를 꼽자면 역시나 고마쓰 사쿄小松左京[30]일 것이다.

7. 다크 코스몰로지

더욱이 «삼체»의 정치성에 관해서는 문화 대혁명을 빼놓을 수 없다. «삼체»는 문화 대혁명의 과학자 탄압에서 시작한다. 이로 인해 밑바닥으로 추락한 여성 천체 물리학자가 인류에 대한 절망에서 삼체 문명을 불러오는 것이다. 문화 대혁명의 끔찍한 반과학적 폭력이 블랙 유머를 내포한 VR 게임으로 연결되고, 이윽고 인류가 종말에 이른다. 이 화려한 도약이 «삼체»를 강렬한 소설로 만든다.

문화 대혁명의 종결 이후 70년대 후반부터 중국에서는 그 트라우마를 그린 일군의 ‘상흔傷痕 문학’이 나타났는데, 중국 SF에서도 일종의 정신적 외상을 살펴볼 수 있다. 중국 SF 연구를 선도하는 송밍웨이宋明煒에 의하면, 하방下放[31] 경험이 있는 왕진캉王晋康은 물론이고 류츠신에게도 마오쩌둥의 망령이 들러붙어 있다. 1989년 천안문 사건 직전에 쓰인 류츠신의 미출간 데뷔작 «중국 2185»[32]의 주인공은 마오쩌둥 시체의 뇌를 스캔하여 사이버 공간에서 부활시킨다. 송밍웨이는 양계초의 유토피아니즘도 언급하면서, «중국 2185»를 유토피아와 디스토피아를 횡단하는 복잡한 소설로서 높이 평가했다.[33]

마오쩌둥은 중국을 유토피아적 꿈과 디스토피아적 현실로 갈라놓았다. 그 충격이 «삼체»에도 미치고 있다. 거기서는 마오쩌둥 시대의 가공할 만한 유토피아니즘, 즉 문화 대혁명이 과학자에게 초래한 깊은 굴욕과 절망이 예상 밖의 방향으로 전개되어 최악의 디스토피아로 치닫는다. 20세기 초 양계초 등은 청일 전쟁의 트라우마적 패배를 겪으며 과학 유토피아를 꿈꾸었다. 이와 반대로 21세기 초 류츠신은 문화 대혁명의 트라우마와 문명 충돌의 공포가 만든 디스토피아의 모습, 가혹한 생존 투쟁만이 지배하는 우주의 모습을 그린다. 본래 사회 진화론의 영향을 받은 마오쩌둥의 혁명 사상이 류츠신의 비전에서 감춰진 심층을 이루게 되었다고 볼 수 있겠다.

이처럼 중국 SF에는 집단 심리적 공황과 세계 인식의 혼란에서 기인해 유토피아/디스토피아로 도약하는 경향이 있다. 더구나 류츠신의 경우 그 도약한 장소인 디스토피아적 우주는 냉엄하기 짝이 없는,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곳이다. 그의 초기 걸작인 «아침에 도를 들을 수 있다면»朝聞道[34]에서는 어떤 난해한 물음에도 정답을 돌려주는 외계인이 우주에 목적이 있느냐는 물음에만 침묵한다. 이렇듯 류츠신은 불가해한 우주와 만난 인류의 모습을 강박적으로 그려 온 SF 작가다.

고대 그리스인들은 우주 세계에서 아름다움과 질서를 발견했다. 근대의 ‘인간적인, 너무 인간적인’ 철학자들과 달리 그리스 사상가들은 인간과 무관하게 움직이는 별들의 코스모스에서 최고의 로고스(이치)를 발견했다. 이와 마찬가지로 «삼체»도 인류나 지구로부터 독립된 법칙을 가진 거대한 코스모스를 그리고 있다. 다만 그것은 그리스적인 명랑하고 아름다운 우주와 거리가 멀다. «삼체»의 기조는 이를테면 다크 코스몰로지Dark Cosmology다. 거기서 우주는 인간적인 도덕에 구애되지 않는 무자비한 심연으로 나타난다.

류츠신은 이 어두운 우주의 모습을 그리는 것으로 SF라는 장르의 특성을 충분히 살려냈다. 과거 SF의 중심적 가치를 ‘인지적 낯설게 하기’cognitive estrangement로 여겼던 다코 수빈은 ‘물리와 윤리’라는 관점에 기초해 자연주의 문학[35]과 SF를 구별한 바 있다. 수빈에 의하면, 자연주의 문학에서는 물리와 윤리의 관계가 끊어지고, 인간들의 윤리 영역―와쓰지 데쓰로식으로 말하면 ‘관계성’間柄의 세계[36]―은 그것 자체로 완결되어 있다. 반면 SF에서는 종종 인간 윤리에 물리적 법칙(현실을 벗어난 시공간도 포함)이 깊이 침투해 본질적인 작용을 끼친다.[37]

류츠신 역시 불가사의한 물리적 법칙을 작중의 규칙으로 채택해 왔다. «삼체»는 다코 수빈이 제시한 물리와 윤리의 밀착이라는 틀에 정확히 들어맞는다. 더구나 이 두 가지 모두가 네거티브한 방향으로 기울어 있다―문화 대혁명이라는 폭력이 윤리적 차원을 무너뜨린 것이라면, 우주의 차원 소멸이라는 폭력은 물리적 차원을 위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문화 대혁명이 도화선이 되어 «삼체»에서는 윤리도 물리도 인간 지성이 도달할 수 없는 ‘흑암’dark의 혼미 속으로 빠져든다. 양쪽 어느 것이든 구조할 수단은 더 이상 없다.

어쨌든 간에 중국의 SF사란 단절과 재개의 역사다. 급성장한 ‘과학 환상’ 장르가 앞으로 성숙할 수 있을지의 문제는 국책이나 영화 산업에 의존하지 않고 문학으로서 질적인 자율성을 확립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삼체»의 다크 코스몰로지와 경쟁할 만한 세계 인식을 제시할 SF를 나는 갈망하고 있다.


[1]   〔옮긴이〕 일본의 고전 산문 문학(서사 문학) 장르의 한 형태로, 특히 헤이안 시대에서 무로마치 시대의 것을 가리킨다.
[2]   〔옮긴이〕 자세한 내용은 加藤周一, <日本文化の雑種性>, «加藤周一セルフセレクション5»(平凡社ライブラリー, 平凡社, 1999)에서 확인할 수 있다.
[3]   Bruno Maçães, The Dawn of Eurasia, Penguin Books, 2018, p.11.
[4]   金文京, <香港文学瞥見>, 可児弘明 編, «香港および香港問題の研究»(東方書店, 1999) 수록. 홍콩 문화에 대한 탁월한 리뷰인 이 글의 일독을 권한다.
[5]   니쾅의 열렬한 팬으로 알려진 왕정王錚이 자서전에서 언급했다시피, 반공적인 입장이 분명하고 권력자에 대한 풍자와 자유 존중을 취지로 하는 외국 소설은 1988년 당시 대륙에서는 금서로 취급되었다(«来找人間衛斯理―倪匡與我», 風雲時代, 2019, 86쪽). 그래서 대륙의 독자들은 해적판으로 ‘웨슬리’ 시리즈를 접했다. 참고로 니쾅은 히가시노 게이고의 애독자로 «하쿠바 산장 살인 사건»은 별로지만 «백야행»은 굉장히 좋다는 평을 남긴 바 있다(같은 책, 190쪽).
[6]   〔옮긴이〕 일본의 작가이자 저널리스트. 기업가로도 활약해 일본의 유명 출판사인 문예춘추사를 세웠으며, 오늘날까지 일본을 대표하는 문학상인 아쿠타가와상, 나오키상 등을 창설했다.
[7]   〔옮긴이〕 중국계 미국인 작가. 2011년에 발표한 <종이 동물원>으로 이름을 알렸으며, 이 단편을 통해 휴고상, 네뷸러상, 세계환상문학상 등을 수상했다.
[8]   현대 SF 작가들의 프로필 정보는 董仁威, «中国百年科幻史話»(清華大学出版社, 2017)가 상세하다.
[9]   〔옮긴이〕 하오징팡, «고독 깊은 곳»(강초아 옮김, 글항아리, 2018)에 수록되어 있음.
[10]   王德威, <科幻文學的高潮已經過去了>, «每日頭條» 2017.06.13. https://kknews.cc/culture/y638z3k.html
[11]   중국어 사이트 http://toments.com/974304/를 참고. 독일어 원문은 https://www.zeit.de/zeit-magazin/2018/42/science-fiction-autor-liu-cixin-china에서 읽을 수 있다. 정부의 선전으로 보일 법한 발언을 하는 류츠신과 인터뷰어의 엇갈린 감각은 «뉴요커»New Yorker 인터뷰에도 잘 나타나 있다. Jiayang Fan, “Liu Cixin’s War of the Worlds”, The New Yorker, 2019.06.17. https://www.newyorker.com/magazine/2019/06/24/liu-cixins-war-of-the-worlds에서 읽을 수 있다.
[12]   〔옮긴이〕 특수 촬영 기술特殊撮影技術, Special Effects의 약칭으로, 전후 일본에서는 특촬 작품이라고 불리는 영화나 텔레비전 프로그램 등이 큰 장르를 형성할 정도로 발전한 바 있다. ‘특촬 히어로물’, ‘특촬 괴수물’ 등이 대표적이며, 이러한 일부 작품군을 가리키는 통칭으로서도 ‘특촬’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다.
[13]   유교와 과거제의 관계에 대해서는 陳舜臣, «儒教三千年»(中公文庫, 2009)에 요약된 기술을 참고.
[14]   Hu Shih, “Chinese Renaissance”, «胡適全集», 第37巻(安徽教育出版社, 2003), 110쪽 이하 참고.
[15]   〔옮긴이〕 에도 시대에 네덜란드를 통해서 일본에 들어온 유럽의 학문, 문화, 기술의 총칭.
[16]   藪内清, «科学史からみた中国文明»(NHK出版, 1982), 4장 참고.
[17]   清水賢一郎, <梁啓超と〈帝国漢文〉>, «アジア遊学», 第23号, 2000.
[18]   阿英, «晩清小説史»(飯塚朗 他訳, 平凡社, 1979)의 제1장 내용 참고.
[19]   王徳威, <賈宝玉坐潜水艇―晩清科幻小説新論>, «小説中国»(麥田出版, 2012)에 수록. 왕더웨이는 이 백 년 전의 유토피아니즘을 류츠신과 연결시킨다. 王徳威, <烏托邦、悪托邦、異托邦—従魯迅到劉慈欣>«現当代文学新論»(生活・読書・新知三聯書店, 2014)에 수록. 일본어로 읽을 수 있는 청대 초창기 SF론에는 武田雅哉, «翔べ!大清帝国»(リブロポート, 1988) 등이 있다.
[20]   ベンジャミン・シュウォルツ, «中国の近代化と知識人», 平野健一郎訳, 東京大学出版会, 1978, 61쪽.
[21]   〔옮긴이〕 중국 청대 말기 상하이에서 간행된 그림 신문. 당시의 시사부터 민속까지 다양한 내용이 실려 있다.
[22]   Nathaniel Isaacson, Celestial Empire: The Emergence of Chinese Science Fiction, Wesleyan University Press, 2017, p.17.
[23]   자세한 내용은 金文京, 福嶋亮大, <世界認識としての<三国志>>, «ユリイカ», 2017.06. 참고.
[24]   〔옮긴이〕 에도 시대 후기의 독본讀本 작가로 유명하다. 여기서 ‘독본’이란 중국 백화 소설의 영향을 받아 에도 시대 후기에 유행한 전기풍伝奇風 소설을 가리킨다.
[25]   〔옮긴이〕 한국어 번역본으로 루쉰, «새로 쓴 옛날이야기»(유세종 옮김, 그린비, 2011) 등이 있다.
[26]   «莫言対話新録»(文化芸術出版社, 2010), 193쪽.
[27]   劉慈欣, <ありとあらゆる可能性の中で最悪の宇宙と最良の宇宙>, ケン・リュウ編, «折りたたみ北京»(中原尚哉 訳, 早川書房, 2018)에 수록.
[28]   Isaacson, Celestial Empire, p.182.
[29]   陳頎, <文明冲突与文化自覚>, 李広益他編, «《三体》的X種読法»(生活・読書・新知三聯書店, 2017), 57쪽 이하 참고.
[30]   〔옮긴이〕 일본 SF계를 대표하는 작가. 그 이전까지의 통상적인 작가 업무를 넘어 다방면으로 활동한 인물로 유명하다. SF 외에도 다양한 분야의 저술 활동을 했고 방송 출현도 자주 했으며 저널리스트로도 활약했다.
[31]   〔옮긴이〕 문화 대혁명 시기, 중앙의 당원이나 공무원을 일정 기간 지방의 농촌이나 공장에 내려보내 노동을 하게 한 정치 운동.
[32]   〔옮긴이〕 류츠신의 공식적인 데뷔작은 <고래의 노래>(1999)다. «중국 2185»는 데뷔 이전인 1985년부터 1989년 사이에 쓴 미발표 원고를 모은 작품으로서, 대담한 정치적 상상력으로 인해 정식 출판되지 못했다가 차후 알려졌다.
[33]   Mingwei Song, “After 1989: The New Wave of Chinese Science Fiction”, China Perspectives, 2015/11. https://journals.openedition.org/chinaperspectives/6618 에서 읽을 수 있다.
[34]   〔옮긴이〕 «논어», <이인편>里仁篇의 유명한 구절인 “아침에 도를 듣는다면 저녁에는 죽어도 좋다”朝聞道夕死可矣에서 모티브를 따왔다.
[35]   〔옮긴이〕 낭만주의에 반대해 19세기 유럽에 출현한 문학 사조. 세계의 모든 현상과 그 변화의 근본 원리가 자연(물질)에 있다고 보고, 근대에 새로이 발견된 자연에 대한 실증적인 방법(환경, 유전 등)에 입각해 인간과 사회에 대한 ‘과학적인’ 서술이나 묘사를 시도했다.
[36]   〔옮긴이〕 와쓰지 데쓰로和辻哲郎는 근대 일본의 철학자이자 윤리 사상가로, 일본만의 독자적인 철학 체계를 지향한 ‘교토 학파’京都学派의 일원으로 유명하다. 한편 여기서 말하는 ‘관계성’間柄이란 인간의 주체성이 각기 단절된 개별 존재 차원이 아닌, 공동체적인 ‘관계-내-존재’의 차원에서 발현되는 것임을 강조하는 개념이다.
[37]   ダルコ・スーヴィン, «SFの変容», 大橋洋一訳, 国文社, 1991, 55쪽 이하 참고.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