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우리» 디자인 후기

«그냥 우리» 원고를 처음 읽을 때부터 막연하지만 어떤 상을 떠올렸다. 완성된 책의 표지가 당시 떠올린 상과 아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돌이켜 보면 구현하고 싶은 대략적인 모습은 이때부터 꽤 분명했던 것 같다.

«그냥 우리»에 수록된 장들은 분량이 일정치 않다. 오십 쪽 가까이 되는 장도 있고 두 쪽에 불과한 장도 있다. 그중 두 번째로 짧은 글인 <양팔을 벌린>에는 매우 엷게 인쇄된 사진 한 장이 수록되어 있다. 어느 도시 풍경 속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담은 이 사진은 필름부에 빛이 새어 들어갔거나 노출 과다로 찍힌 잘못된 사진처럼 보인다. 얼핏 보면 안개가 자욱한 괴기스러운 풍경 같기도, 서정적이고 여유로운 분위기 같기도 하다. «그냥 우리»는 오른쪽 페이지에서만 본문이 이어지고 왼쪽 페이지는 각종 사진이나 참고 자료로 채우거나 백면으로 비우는 구성을 취하는데, 이 사진은 다른 왼쪽 페이지에 들어찬 선명하거나 강한 색상의 그림, 한눈에 파악되는 그래프 등과는 확연히 다른 희미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하지만 오른쪽으로 눈을 돌려 본문을 읽다 보면 이 허연 사진의 내부 요소들에 조금 더 가까이 눈을 대게 된다.

«그냥 우리» 112~113쪽. 왼쪽 페이지의 사진은 폴 그레이엄의 <양팔을 벌린>(Outstretched, 2000).

“우리는 희뿌연 장막을 통과해야만 한 명의 인간 대상에 도달할 수 있다. 백색이 그 사이에 끼어들어 있다. 우리를 향해 다가오는 대상을 계속 주시하기란 좀처럼 쉽지 않다. 나는 어떤 이미지를 부드럽게 만든다는 것이, 마치 기억 속에, 미래의 기억 속에 있는 이미지처럼 부드럽게 만든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생각한다. 필터가 우리의 동공을 뒤덮고는 우리가 가진 검고 동그란 구멍이 빛을 향해 열려 있을 때조차 일종의 백내장처럼 작용한다. 시야는 부옇고, 모든 해석은 정보에 기반하거나 기반하지 않은 예상과 추측일 따름이다. […] 백색에 바탕을 둔 ‘수사’修辭들은 무자비한 혼란을 낳았다. 심지어 지금까지도, 수년이 흐른 뒤에도, 수년이 흘러도, 사진 속 세상에서 여자는 기다린다.” (클로디아 랭킨, «그냥 우리», 양미래 옮김, 115쪽)

사진 정중앙에 누군가가 서 있다. 그 사람은 흑인이고 여성이다. 옆에는 작은 짐가방과 비닐 봉지가 놓여 있다. 무엇을 하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양팔이 살짝 들려 있는 것이 보인다. 그리고 이 사람과 주변 풍경을 반투명한 흰색이 뒤덮고 있다. 인용한 부분에서 랭킨은 우리가 눈앞에 있는 것을 명확히 보거나 파악할 수 없도록 가로막는 흰색이라는 장막을, 뿌연 부드러움이 야기한 혼란과 해석 불가능성을 찬찬히 뜯어 살핀다. 백인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라고 알려 주듯이.

몇 해 전부터 이런저런 영화를 찾아보며 여가 시간을 보내곤 한다. 한정된 생활 반경 바깥에 대한 감각이 희박한 내게 영화는 세계의 존재를 체감시켜 주는 하나의 신체 기관이 되었다. «그냥 우리» 작업을 앞두고는 인종 문제를 주제로 한 영화와 흑인 감독이 연출한 영화를 여럿 봤는데, 색깔에 의도적으로 이미지가 덧씌워졌음을 폭로하는 «맬컴 엑스»(스파이크 리 연출, 1992)의 한 장면이 뇌리에 강하게 남았다. 흑인 혁명가 맬컴 엑스는 젊은 시절 범죄 조직의 일원으로 활동했고 강도 행각을 벌이다 붙잡혀 감옥 생활을 시작한다. 감옥에서 의식 있는 동료 흑인 수감자를 알게 되고 그의 권유로 도서관에서 영어 사전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훈련을 하게 된다. 동료 수감자는 맬컴 엑스에게 사전 읽기를 권하면서 black과 white가 어떻게 설명되고 있는지 확인해 보라고 말한다.

[검은] : 빛이 없는, 색이 없는, 어둠에 가리워진, ‘미래가 캄캄하다’처럼 음울하고 암담한, 오물로 더러워진, 불결한, 음울한, 성난, 불길한, 더럽고 잔인한 행위의, 치욕, 불명예, 유죄, 협박, 반대 투표, 불량배를 나타내는…
[흰] : 깨끗한 눈의 색깔, 스펙트럼에서 반사되는 빛, 검은 색의 반대, 오점이 하나도 없는, 순수한, 순결한, 악의가 없는, 죄 없는, 정직한, 공정한 거래의…

영화 «맬컴 엑스» 중 교도소에서 베인스(Baines)가 맬컴 엑스에게 사전을 읽어 주는 장면.

오늘 나는 옷장에서 흰색 티셔츠를 골라 입었다. 이처럼 흰색은 검은색을 비롯한 다른 모든 색과 같이 하나의 색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흰색은 더 많은 것을 요구한다. 흰색은 무결하거나 순수하거나 투명한 색이라고 스스로를 내세운다. 부재하는, 최초의, 기본적인, 보편적인 상태로 스스로를 포장한다. 그리고 스스로를 투명한 색으로 관철하는 데 성공할 때 흰색은 우리의 시야를 흐리고 진실을 감추며 세상과의 접촉을 단절시키는 보이지 않는 장막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 메시지를 표지에 구현하고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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표지를 구상하기 시작한 초기부터 우리는 «그냥 우리»의 표지가 앞서 말한 엷고 희뿌연 사진과 비슷한 모습이면 좋겠다고, 그런 모습으로 완성되리라고 생각했다. 형체를 단번에 알아보기 힘든 희미한 무언가가 그려진 표지. 희미한 무언가가 무엇이 되어야 할지를 상상해 보면서. 그런데 한 가지 걸리는 점이 있었다. 표지 디자인은 본문에 수록된 사진 하나하나와는 달리 해당 책의 인상을 단번에 결정짓는다. 흰색이 장막처럼 표현되더라도 그 표지가 ‘하얀 표지’로 각인돼선 안 된다는 데 생각이 미쳤다.

데이비드 해먼스의 <무제>(Untitled, 2014)

고민하던 중 편집자가 나로서는 상상하기 힘든 편집자스러운 방향으로 돌파구를 찾았다. 아직 번역되지 않은 랭킨의 다른 책과 인터뷰를 이리저리 들춰 보다가 우리에게 영감이 될 미술 작품 하나를 발견한 것이다. 흑인 작가인 데이비드 해먼스의 작품이었고, 랭킨이 이 작가를 좋아한다는 사실도 알아냈다(올~). 우리는 해먼스의 작품들을 찾아보면서 희열을 느꼈다. 바로 이거야! (그러면서 랭킨의 전작인 «시민» 표지에 실린 작품이 해먼스의 것이라는 사실도, 랭킨이 해먼스에 관한 짧은 글을 쓴 적이 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그중 하나가 특히 깊은 인상을 남겼는데, 미국 국기가 연상되기도 했고 누더기 같은 직물이 널려 있는 모습이 어쩐지 그 자체로 미국 같기도 했다. 우리는 이 작품을 마음에 담고 처음부터 마음먹었던 흰색 장막이라는 주제를 표현해 보기로 했다. 그렇게 완성된 것이 지금의 «그냥 우리» 한국어판 표지다.

«그냥 우리» 앞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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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서는 판형이 아주 크고 각 쪽에 들어가는 글자 수도 적지 않다. 오른쪽 페이지 여백에 붉은 동그라미가 표시되어 있고, 표시된 부분에 관한 참고 자료나 팩트 체크가 왼쪽 페이지에 수록되어 있다. 한국어판에서도 이 구성을 유지하기로 했는데, 문제는 원서와 완전히 동일해지려면 원서 한 쪽과 한국어판 한 쪽이 거의 같은 분량을 담고 있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다른 언어를 번역하다 보면 대체로 분량이 늘어나는데, 이 책의 경우엔 분량이 늘면 페이지뿐 아니라 백면이 많아진다는 게 신경 쓰였다. 고민 끝에 기존 플레이타임 책보다 판형을 키우고 특히 가로 비율을 높였다. 또 행장이나 글자 크기, 행간 등을 여러 차례 고치고 다듬었다. 그랬는데도 원서와 비슷한 쪽수를 유지하기는커녕 100쪽 이상이 늘었다… 옮긴이 양미래 선생님이 정성껏 달아 주신 주석들 영향도 있는데, 본문만 읽었다면 ‘그렇구나’ 하고 넘어갔을 수많은 끔찍하고도 황당한 사례가 옮긴이 주 덕분에 훨씬 생생하게 다가오곤 했다. 옮긴이 주를 꼭 같이 읽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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곳곳에 컬러로 된 사진들이 포진해 있어 본문 전체를 컬러로 인쇄해야 했다. 리시올/플레이타임 역사상 첫 전면 컬러 인쇄였고, 분량은 436쪽이나 됐다. 다른 책들 때와는 차원이 다른 금액이 적힌 견적서를 받고는 덜덜 떨며 북펀드를 진행해 보기로 결심했다. 그간 우리는 여러 이유로 북펀드를 고려하지 않았는데, 기왕에 한다면 우리를 믿고 아직 작업도 마치지 않은 책을 북펀드를 통해 미리 구입해 주는 독자들께 뭐라도 선물하고 싶다고 생각했다. 오래 고민한 끝에 ‘대화’를 주제로 한 두 가지 선물을 떠올렸다. 하나는 클로디아 랭킨의 전작 «시민»의 한 대목을 발췌해 만든 편지고, 다른 하나는 «그냥 우리»에 수록된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 그림으로 만든 엽서다.

«그냥 우리» 북펀드 리워드 1: «시민»의 한 대목을 발췌한 편지.

«시민»은 랭킨의 가장 유명한 저작이다(우리는 얼마 전 이 책의 저작권 계약을 맺었다). 아직은 이 책을 소개할 수 없으니 아쉬운 대로 «시민»의 한 대목을 독자들에게 띄우는 편지처럼 만들면 좋겠다는 아이디어를 떠올렸다. 편지야말로 가장 가슴 뛰는 대화 수단이니까. ‘백색/백인’이 하나의 색이면서도 모든 색보다 우위에 있는 비가시적인 권력이라는 의미를 살려 반투명 트레이싱지 편지지를 선택하고, 검은색 글씨를 새겨 첫째 선물을 완성했다.

영화 «블랙클랜스맨»에서 노년의 흑인이 1916년의 린치 사건을 들려주는 장면.

«그냥 우리» 막바지 작업이 한창일 때 «블랙클랜스맨«(스파이크 리 연출, 2018)이라는 영화를 봤는데, 백인들이 1916년에 무고한 흑인을 체포해 가혹하게 죽이고, 그 광경을 사진으로 찍어 엽서로 판매한 ‘린치 엽서’의 기억을 들려주는 장면이 나왔다. 영화 말미에는 2017년에 백인 우월주의자들이 벌인 폭력 집회(«그냥 우리»에서도 수차례 언급되는) 영상이 삽입되는데, 백 년 사이에 바뀐 것도 많겠지만 어떤 것들은 바뀌지 않고 되돌아오기까지 한다는 메시지를 전달하려는 마음이 느껴졌다. ‘린치 엽서’는 당시에 우편으로 광범위하게 유통되었고, 사회적 문제가 되어 국가에서 발송을 금지하자 그제야 백인들은 엽서를 ‘봉투’에 넣어서 보냈다고 한다. ‘린치 엽서’는 «그냥 우리»에도 한 번 언급되는데, 책에 수록된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 그림을 엽서로 만들어 보기로 한 것도 이 역사를 얼마간 염두에 둔 판단이었다. 랭킨의 친구 아들이 어린이집에서 곰 세 마리뿐 아니라 골디락스의 피부도 갈색으로 칠했더니 다른 남자 아이가 그림을 “망쳤네”라고 말한 일화에 삽입되는 그림이다.

«그냥 우리» 북펀드 리워드 2: «그냥 우리»에 수록된 ‘골디락스와 곰 세 마리’ 그림으로 제작한 엽서.

이 그림을 보자마자 너무나 마음에 들어 이걸로 뭔가를 꼭 제작하고 싶었다. 그러다 ‘린치 엽서’에 대항하는 갈색 피부의 골디락스가 그려진 귀여운 엽서라면 정말 멋지겠다는 생각으로 이어졌다. 좀 뻔할 수도 있지만 우리에겐 의미와 감동을 지닌 아이템인 둘째 선물이 이렇게 완성됐다.

책을 스스륵 넘기다 보면 일부 글자만 남겨진 페이지들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처음 원서에서 이 페이지를 마주쳤을 땐 몰랐는데, 나중에 앞의 몇 쪽을 가져와 대부분의 글자를 희뿌연 색으로 가린 형태라는 걸 알게 됐다. <윤리적 외로움>이라는 장의 일부인데 여기서 랭킨은 친구와 인종 문제로 불화를 겪는다. 이런 형식의 구체적인 의도는 알 수 없지만 감정의 소용돌이를 겪는 랭킨(과 친구)의 말을 허연 페이지들이 잡아먹고 있는 듯해 먹먹함이 남는다. 이 페이지들이 마음에 들어 북펀드 후원자 이름을 새길 때 형식을 빌려 디자인했다.

북펀드를 결심하면서부터 후원자 목록은 낱장으로 인쇄해 책 사이에 끼우기보다는 본문과 함께 인쇄해 책 말미에 수록하고 싶었다. 북펀드를 자주 여는 것도 아니니 기왕이면 이 특별함을 책에 함께 싣고 싶었고, 다른 한편으로 영원을 약속하는 피의 맹세처럼 우리 독자들을 책에 새겨 버리고 싶기도 했다(흐흐). 후원자 이름들 사이에는 본문의 일부 텍스트가 숨어 있다. 숨겨진 부분은 본문의 맺음말에 가까운 422쪽 텍스트인데, 보이는 색상으로 지정하고 사이사이 이름이 들어간 상태로 읽으면 또 다른 뭉클함이 전해져 온다.

«그냥 우리» 말미에 수록된 북펀드 후원자 명단 페이지(위)와 숨겨진 글자들을 보이게 만든 버전(아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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