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우리» 디자인 후기

«그냥 우리» 원고를 처음 읽을 때부터 막연하지만 어떤 상을 떠올렸다. 완성된 책의 표지가 당시 떠올린 상과 아주 유사하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돌이켜 보면 구현하고 싶은 대략적인 모습은 이때부터 꽤 분명했던 것 같다.

«그냥 우리»에 수록된 장들은 분량이 일정치 않다. 오십 쪽 가까이 되는 장도 있고 두 쪽에 불과한 장도 있다. 그중 두 번째로 짧은 글인 <양팔을 벌린>에는 매우 엷게 인쇄된 사진 한 장이 수록되어 있다. 어느 도시 풍경 속에 서 있는 한 사람을 담은 이 사진은 필름부에 빛이 새어 들어갔거나 노출 과다로 찍힌 잘못된 사진처럼 보인다. 얼핏 보면 안개가 자욱한 괴기스러운 풍경 같기도, 서정적이고 여유로운 분위기 같기도 하다. «그냥 우리»는 오른쪽 페이지에서만 본문이 이어지고 왼쪽 페이지는 각종 사진이나 참고 자료로 채우거나 백면으로 비우는 구성을 취하는데, 이 사진은 다른 왼쪽 페이지에 들어찬 선명하거나 강한 색상의 그림, 한눈에 파악되는 그래프 등과는 확연히 다른 희미한 존재감을 발산한다. 하지만 오른쪽으로 눈을 돌려 본문을 읽다 보면 이 허연 사진의 내부 요소들에 조금 더 가까이 눈을 대게 된다.

«그냥 우리» 디자인 후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