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혼과 비평

아즈마 히로키가 2015년 잡지 «겐론» 창간을 앞두고 발표했던 에세이를 번역해 올립니다. «관광객의 철학»은 이 잡지의 창간 준비호(0호) 기획에서 출발한 책이기도 하므로, «겐론» 창간의 포부를 밝히는 이 글이 «관광객의 철학»으로 이어지는 문제 의식의 추이를 보다 선명히 드러내 주리라 생각합니다. 이 글에서는 특히 1990년대 가라타니 고진 등이 책임 편집을 맡았고 아즈마 히로키 자신의 등단 무대가 되기도 했던 잡지 «비평 공간»과 비교해 «겐론»이 나아가려는 길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이 글의 사용권은 코믹팝 엔터테인먼트를 통해 저작권자와 계약한 리시올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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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과 비평

초출 «겐론 관광 통신»(2015), «테마파크화하는 지구»(2019) 수록 | 아즈마 히로키
안천 옮김

올해(2015년) 말에 사상 잡지 «겐론»을 창간한다. 창간 준비 과정에서 분명해진 것이 하나 있다. 지금 «겐론»이 «비평 공간»[1]의 계승을 자임하며 비평의 부활을 목표 삼아 창간되는 것이라면, 우리는 다름 아닌 «비평 공간»이 내친 문제를 재검토하고 재통합해야 한다는 것이다.

구체적으로는 ‘영’이나 ‘혼’에 관한 문제를 염두하고 있다. 그리고 앞으로 «겐론»을 편집할 때 이 문제를 기반에 두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영도 혼도 실재하지 않는다. 적어도 나는 그리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은 무슨 연유에서인지 영이나 혼을 필요로 한다. 이 수수께끼를 정면으로 다루지 않는 한 비평이나 철학을 해 봤자 의미가 없지 않을까? 요 몇 년 나는 그런 생각을 갖게 됐다.

영이나 혼은 원래 철학의 중심 문제이자 문학의 중심 문제기도 하다. 하지만 «비평 공간»의 책임 편집자였던 가라타니 고진과 아사다 아키라는 영이나 혼의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이를테면 그들은 1995년에 일어난 옴 진리교 사건에 대해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되돌아보면 그들, 특히 가라타니 고진이 ‘초월성’과 ‘초월론성’을 집요하게 구별하려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철학 용어로서 초월성과 초월론성은 딱히 구별하지 않고 쓰이는 일이 많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가라타니는 두 개념을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학의 기초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경험적’인 세계 너머[초월]에 있는 무언가를 사유하는 데 있다. 단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사유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철학자가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실체화하는 오류와 실패를 범했다. 가라타니는 이렇게 주장하고 초월하려는 사유의 운동을 ‘초월론성’, 초월의 세계를 실체화한 것을 ‘초월성’으로 나누어 부르며 둘을 철저히 구별할 것을 제안했다. 초월적 사유는 나쁘나 초월론적 사유는 좋다는 것이 «탐구»[2]를 내던 시기 가라타니 ‘비평’의 원리였다.

이 이분법은 무척 알기 쉽다. 1990년대에 가라타니는 일부 학생들의 열렬한 지지(나도 그 중 한 명이었다)를 받았는데, 아마 이 알기 쉬움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을 것이다. ‘저 사람은 초월론적이니까 좋지만 이 사람은 초월적이라서 나빠’라는 식의 판단은 철학적 지식이 별로 없어도 할 수 있다(그런 느낌을 준다). 가라타니는 흉내 내기가 쉬웠던 것이다.

또 과학적이라는 인상도 주었다. 가라타니와 아사다는 종종 융을 부정적으로 언급했다. 융은 ‘집단 무의식’이라는 개념을 내놓은 것으로 유명한데, 가라타니와 아사다에 따르면 이는 프로이트의 무의식을 실체화한 것이 된다. 프로이트의 무의식은 초월론적이니까 좋지만 융의 무의식은 초월적이라서 나쁘다는 것이 «비평 공간»의 ‘상식’이었다.

이처럼 초월론성과 초월성을 구별하고, 철학과 오컬트를 구별하며, 프로이트와 융을 구별하는 식의 이분법은 «비평 공간»의 편집 방침에 명료한 방향성을 부여했다. 예를 들어 나카자와 신이치[3]는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융을 긍정적으로 논하고 만다라와 카를로스 카스타네다를 언급하는 나카자와는 소위 초월론성을 실체화하는 철학자로 치부됐다. SF 소설가 쓰쓰이 야스타카도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가라타니와 아사다가 쓰쓰이를 언급한 글이 지금은 잘 떠오르지 않는데, 아마도 그들에게는 메타 픽션이 초월론성의 실체화로 보였기 때문 아닐까. 메타 픽션 같은 기법을 쓰지 않아도 소설은 이미 소설이라는 것만으로 충분히 허구적이고 초월론적이라고 가라타니와 아사다는 말하지 않았을까 싶다.

그러나 과연 초월성과 초월론성을 엄밀히 구별할 수 있을까? 오히려 그럴 수 없기에 프로이트로부터 융이 나왔고 철학으로부터 오컬트가 나온 것이 아닐까?

아니, 오히려 순서는 반대가 아닐까? 우리는 애초부터 신, 영, 혼과 같은 초월적인 것을 꼭 필요로 하고 그 때문에 이런 대상을 사유해야 했으며 초월론적인 사유의 운동이 나오게 된 것 아닐까? 그렇다면 초월론성과 초월성을 구별하고, 초월론적 사유를 ‘올바른 철학’으로 옹호하려는 시도 자체가 오히려 도착적이지 않은가? 현재의 나는 그리 생각한다.

관련 지식이 있는 독자라면 이 주장이 데리다의 에크리튀르론과 구조가 같음을 눈치챘을 것이다. 전통적인 유럽 철학에서 에크리튀르(글자)는 파롤(목소리)의 타락한 형태로 치부됐다. 이에 데리다는 파롤은 반드시 에크리튀르를 낳는 법이므로, 타락을 피할 방도가 없다고 주장했다. 파롤은 에크리튀르를 배제할 수 없다. 아니, 에크리튀르의 가능성 없이는 애초에 존재조차 할 수 없다. 따라서 파롤과 에크리튀르를 엄밀히 구별하는 것은 무의미하다. 이것이 데리다의 주장이었다. 마찬가지로 나는 여기서 ‘초월론적 사유는 반드시 초월론성의 실체화=초월성을 낳는다. 아니, 초월론적 사유는 그 실체화 가능성 없이는 존재할 수 없다. 따라서 철학은 오컬트로 오염되는 것을 피할 수 없고, 프로이트와 융을 명확히 구분하는 것은 (물론 상식적인 수준에서는 구분할 필요가 있지만) 본질적으로 의미가 없다’고 주장하고자 한다.

따라서 «겐론»에서는 다시 영이나 혼의 의미를 생각하려 한다. 다르게 말하자면 «비평 공간»이 그으려 했던 초월론성과 초월성의 경계, 즉 비평과 비평이 아닌 것의 경계 자체를 ‘탈구축’하려 한다.

영과 혼을 사유한다는 것. 이는 위와 같은 철학적 논의이기 이전에 매우 실천적이고 구체적인 과제기도 하다. 이는 우선 대지진의 문제이다. 그리고 인터넷의 문제이다. 타임라인에 둘러싸인 우리 삶은 현실 속에 존재하는지 여부가 불명확한, 진실인지 거짓인지도 불명확한 유령적인 존재의 위협을 받고 있다. 이는 오키나와의 미군 기지, 한일 관계의 문제기도 하다. 일본은 여전히 제2차 세계대전의 전사자 혼령을 어떻게 다룰지 답을 내지 못했다. 예전에 죽은 자의 추도에 대해 가토 노리히로와 다카하시 데쓰야가 유명한 논쟁을 벌였지만 그 후로 논의가 진전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2010년대인 지금 ‘영혼 같은 건 존재하지 않고 모든 것은 아키텍처로 해결할 수 있다’고 호언장담하는 엔지니어가 많은데, 그들이 믿는 정보 기술 혁명의 밑바탕에는 피에르 테야르 드 샤르댕에서 마셜 매클루언에 이르는 신비 사상의 계보가 흐르고 있다. 그 사례 중 하나가 ‘특이점’론이다. 우리는 여전히 영과 혼이 가득한 시대를 살고 있다. 비평가는 이 현실을 직시해야 한다.

산 자만이 존재하고 죽은 자는 존재하지 않는다. 현재만이 존재하고 과거는 존재하지 않는다. 사람은 무에서 태어나 무로 돌아간다. 영도 혼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고 삶=현재의 모든 것은 경제로 설명이 가능하다.

옳은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것만으로는 도저히 납득하지 못하는 것이 인간의 복잡함이고 철학의 존재 이유다. «겐론»은 이 원점으로 돌아가 과거 «비평 공간»이 ‘시시하다’고 내친 다양한 ‘바보 같은’ 문제도 다루는 잡지이고자 한다.

관(광)객의 시점이란 아마도 유령의 시점일 것이다. 그리고 오로지 그럴 때만 진정한 공공성을 낳을 수 있다.


[1] 가라타니 고진 등이 책임 편집을 맡았던 1990년대 일본을 대표하는 비평지다. 1991년 4월부터 1994년 1월까지 1기, 1994년 4월부터 2000년 4월까지 2기, 2001년 10월부터 2002년 7월까지 3기로 운영되었으며, 2001년에는 생산협동조합 비평공간사가 설립되기도 했다. 그러나 2002년 편집장의 갑작스러운 병사 등의 이유로 2002년 비평공간사는 해산했고 『비평 공간』도 종간되었다.
[2] 1992년에 1권, 1994년에 2권이 출간되었다.
[3] 1980년대 일본의 뉴아카데미즘(현대 사상 붐)을 상징하는 종교 철학자. 뉴아카데미즘을 대표하는 당시의 젊은 철학자로 아사다 아키라와 나카자와 신이치가 꼽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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