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는 중입니다

문화연구자이자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회사가 괜찮으면 누가 퇴사해»의 저자인 천주희 선생님의 «커밍 업 쇼트» 서평을 공유합니다. 몇 년 동안 청년들을 만나 연구한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의 핵심 주제인 ‘무드 경제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는 글이에요. 국내에도 청년의 감정 구조나 서사에 대해 연구하는 작업이 있지만 이제 시작하고 있는 분야임을 지적하고, 부족한 부분을 이 책이 메워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도 표하고 있는데요. “무드 경제는 고통과 그에 대한 해결을 치료 서사로 환원하며,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감정 관리로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지적은 우리 사회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변화 아닐까 싶습니다. 서평에서 권하는 것처럼 “연구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사람들”,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지, 그 삶을 연구자는 어떻게 해석하려고 노력하는지 궁금한 이들”에게 «커밍 업 쇼트»가 다가가길 기대해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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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는 중입니다

천주희(문화연구자)

몇 년 동안, 청년을 연구했다. 학자금 대출을 받으며 대학에 다니는 사람이 어떻게 채무자라는 정체성을 형성하는지 살펴보는 일에서부터, 취업과 실업을 반복하는 사람들이나 장기 미취업 상태에 놓인 사람, 혹은 퇴사를 준비하는 사람 등을 만났다. 지금도 크게 달라지지 않았지만, 불과 5년 전만 하더라도 청년들의 눈이 너무 높아서 취업을 미루거나 퇴사하는 것이라는 인식이 팽배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들이 경험하는 불안정한 노동이 다시 쓰여야 한다고 생각했다. 나는 연구 참여자들이 ‘노동’을 중심으로 자신의 성인기를 설명하기 어려워한다는 점을 발견했다. 2~3년 사이에 직장을 여러 번 바꿔야 했고, ‘어른’이 되지 못한다고 느꼈다. 이는 스스로 삶을 재생산할 수 없다는 데서 오는 어려움이자, 주변에서 기대하는 생애 주기 과정을 따르지 못했다는 데서 오는 난감함이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자신을 유예된 존재로 구성해 가고 있었다.

그 와중에 제니퍼 M. 실바의 «커밍 업 쇼트»를 소개받았다. 책 제목을 풀어보면, 노력해도 실패하다 또는 목표에 미달하다 정도이다. 이 책은 2008~2010년 사이 20대 중반에서 30대 초반 미국의 노동 계급 청년 100명을 만나 인터뷰한 내용을 담고 있다. 책에 등장하는 청년들은 패밀리 레스토랑, 콜센터, 의류 매장, 군대, 영화관 등에서 일한다. 한국으로 비유하면 주로 서비스 업종에서 일하는 비정규직 청년이다. 책은 단숨에 완독할 정도로 흥미로웠지만, 그렇다고 해서 결코 가볍지 않았다.

나는 이 문장에 매료되어 한참을 머물렀다. “청년 남녀의 성인기는 기존 문헌들의 주장과 달리 단순히 지연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성인기는 노동, 가족, 관계, 친밀함(intimacy), 젠더, 신뢰, 존엄(dignity)과 결부되어 극적으로 새롭게 상상되고 있다.” 그동안 내가 만났던 청년들이 떠올랐고, 내가 놓친 부분이 무엇이었는지 생각에 잠기기도 했다. 저자와 내가 만났던 청년들은 시공간적 차이에도 불구하고 불안정한 삶과 노동이라는 공통된 감각으로 연결되는 듯했다. 이 책은 연구자가 어떻게 연구 참여자를 만나고, 어떤 연구 방법론을 시도했는지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유용한 연구 지침서이다. 동시에 불확실한 상황에 놓인 청년들이 어떻게 자신의 노동 계급성과 성장의 언어를 만들어 가고 재구조화하는지 드러낸다는 점에서 연구자들에게 지적 자극을 준다.

무드 경제에서 성인이 된다는 것

‘N포 세대’라는 말이 있다. 처음 이 말이 나왔을 때 사람들은 청년들이 연애, 결혼, 출산 등을 포기한다는 것에 놀라워하면서도 우려의 시선을 보냈다. 그러나 N포 세대라는 말은 불확실성이 높아진 사회에서 전통적으로 성인에게 요구되었던 삶이 더는 달성하기 어렵거나 포기할 수 있는 선택의 영역이 되었음을 함의한다. 이 책에 등장하는 미국 청년들도 유사하다. 한쪽에서는 ‘밀레니얼 세대’라는 말로 끊임없이 탐험가 정신과 기업가 정신을 강조하며, 도전과 실험을 요구한다. 그러나 그것은 자원 있는 이들에게나 해당하는 이야기다. 노동 계급 청년은 ‘선택의 부재’를 경험하면서 성인이 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각자가 “철저히 혼자며 스스로의 운명을 책임져야 하고 리스크를 감수해야만 외부의 도움에 기댈 수” 있다고 느낀다. 그렇다면, 이런 감각은 어떻게 만들어진 것일까?

미국 노동 계급 청년은 사회에 나오면 가정 먼저 무력감을 배운다. 대학을 졸업하면 취업이 보장될 것이라는 기대로 학자금 대출을 받았지만, 그 기대가 무너지면서 빚만 떠안게 된다. 유연화된 노동 시장에서 학력 자원을 통해 안정적으로 성인기에 진입하기를 기대했지만 좌절하는 것이다. 기대가 좌절되고 잦은 실패를 경험할 때 청년들은 무력감을 느꼈다. 실바는 청년들이 노동 시장의 유연성은 받아들이지만 동시에 시장 외부에서의 삶은 경직된 형태로 살고 있다고 분석한다. 지속되는 배신과 좌절, 극도의 불확실함을 체화한 사람들이 자신을 지키는 방법은 경직된 형태로 자신을 바꿔 가는 것이다.

실바는 이들이 자신의 삶을 어떠한 방식으로 설명하는지 주목하며, 경직된 자아를 형성하는 데 주요한 서사 과정을 찾고자 했다. 그 과정에서 연구 참여자들이 개인이 감내했던 고통을 강조하면서,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지 못하고 낭만적 관계를 유지하지 못했다는 사실을 가리려고 한다는 점을 발견한다. 청년들은 감정적 시련을 회고적으로 이야기하면서 ‘치료적 자아’를 만들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새롭게 형성된 노동 계급 성인 자아의 핵심에는 노동에 대한 낮은 기대치, 헌신하는 연애 관계에 대한 경계심, 사회 제도에 대한 폭넓은 불신, 타인들과의 깊은 단절, 감정과 정신 건강에 최우선으로 집중하는 태도가 있다. 내가 인터뷰한 대다수 남녀는 안전한 성인의 삶을 꾸리지 못하도록 가로막는 장애물을 설명할 때 정치를 언급하지 않았다. 대신 이들은 아주 개인적인 층위에서 성인이 된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과거에 겪은 고통의 치유를 성인 정체성의 기반으로 삼아 해방되고 변형된 성인 자아를 구축했다는 것이다.”(35)

이러한 통찰의 배경에는 미국 문화에서 치료(therapy) 언어와 제도가 폭발적으로 증가한 현실이 있다. 이제 사회는 건강하고 잘 사는 삶을 만들기 위해 감정 표현과 심리적 성장이 중요하다고 가르친다. 이러한 경제 시스템을 실바는 무드 경제(Mood Economy)라고 명명한다. 무드 경제는 노동, 결혼, 계급, 연애 같은 전통적인 통화(通貨)가 아닌 감정을 통해 구축되는 경제로, 이 경제에서 사람들은 자아 변형 서사를 조직하는 능력을 통해 정당성과 자기 가치를 획득할 수 있다.

실바는 연구 참여자들이 놀랍게도 자신의 삶을 설명할 때 치료 욕구, 욕망, 감정적 고통, 자아 성장 언어 등을 유창하게 구사했다는 점에 주목한다. 무드 경제는 노동 계급 청년에게 감정에 기반한 자아 관리가 행복의 열쇠라고 가르친다. 치료 서사의 영향으로 이제 노동 계급 청년은 훌륭한 성인의 상을 ‘고통스러운 가족사를 극복한 사람’이라고 재정의한다. 오늘날 성인의 정당성이나 자존감은 노동이나 결혼 같은 전통적인 양식이 아니라 감정들을 자아 변형 서사로 조직하는 능력에 달려 있다. 그리고 이러한 치료 서사가 무드 경제를 구체화한다. 무드 경제에서 감정 관리는 자신의 고통을 비난하면 자아 변형을 이룰 수 있다는 약속을 제시하기 때문이다.

신자유주의가 청년들에게 혼자 경제적 성공을 이루고 책임져야 한다고 가르치는 것처럼 무드 경제는 불행한 과거를 극복하고 개인의 감정 관리와 행복을 만들라고 요구한다. 실바는 이를 ‘행복의 사유화’라고 부른다. 무드 경제는 고통과 그에 대한 해결을 치료 서사로 환원하며,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감정 관리로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 개인은 불안정한 경제적 과정을 홀로 견디며, 그 안에서 자신의 삶이 가치 있다는 것을 스스로 입증하고 증명하는 ‘증언’자로 출현한다. 쓸모를 찾기 위해 스스로 가치를 증명하고 감정을 조절한다. 그러나 개인이 아무리 자신의 감정을 조절하더라도 노동 시장의 불안정함까지 통제할 수는 없다. 구조적으로 개인은 착취당하고, 결국 또다시 좌절과 배신을 경험한다. 반복되는 이런 순환은 궁극적으로 신자유주의를 재생산한다.

불확실한 세계에서,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는 중입니다

이 책은 겉으로 보기에 미국 노동 계급 청년들의 성장이 지연되거나 단절된다는 메시지를 전하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나는 그보다 저자가 다른 방식으로 구성되는 청년의 성장 서사에 주목하고 있음을 언급하고 싶다. 이는 그동안 노동 서사가 해체되었다고 선언한 연구자들의 인식 공백을 채우는 작업인 동시에, 새로운 서사 쓰기를 통해 ‘청년’을 재구축하는 과정이기도 하다. 실바가 말하는 ‘경직된 자아’나 ‘치료적 성인기’라는 초상은 사회적 리스크를 스스로 극복해야 한다는 시대적 요청이 만들어 낸 것이기도 하고, 또 남을 탓해 봤자 소용없다는 경험에서 만들어진 사회적 간파의 결과물이기도 하다. 이러한 자기 책임화 과정이 미국 노동 계급의 성인기 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국내에서 청년 우울증이 증가하고 있다는 뉴스를 종종 접한다. 다른 한편에는 힐링 프로그램이 인기를 얻고, 또 심리 치료에 관한 이야기가 베스트셀러가 된다. ‘소확행’(소소하고 확실한 행복)이 문화적 형태로 등장하기도 했다. 몇 년 전부터는 청년 정책 프로그램에 ‘마음 치료’ 같은 심리 상담 프로그램도 추가되었다. 오늘날 이러한 현상에 빗대어 책을 독해한다면 새로운 관점에서 사회와 청년을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새롭게 생산되는 자아는 비록 신자유주의 가치와 만나 자신을 점점 고립시키고 개인주의를 추동하지만, 저자가 책의 말미에 쓴 것처럼 “이들이 성인이 된 이야기는 여전히 전개 중이며 이들의 미래는 아직 다 쓰이지 않았다”. 그러니 오늘날 우리가 마주하는 청년의 모습은 얼마든지 다른 방식으로 변화하거나 설명될 가능성이 있다. 삶은 진행형이지, 완결형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이 청년을 연구하는 이들에게 많이 읽히면 좋겠다. 물론 국내에도 청년의 감정 구조나 서사에 대해 연구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이제 막 시작되는 분야이며 주로 감정 노동자, 미디어에 재현된 청년의 감정 서사, 분노와 실패, 혐오의 재생산에 제한되어 있다. 그리고 연구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사람들에게도 추천하고 싶다. 비록 이 책에서 다루는 청년이 공유하는 토대는 한국과 다르지만, 그 차이를 비교하면서 살펴보는 것도 묘미 중 하나이다. 그리고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지, 그 삶을 연구자는 어떻게 해석하려고 노력하는지 궁금한 이들에게도 이 책이 도움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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