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비평» 2020년 겨울호에 발표되었던 문학평론가 안지영 선생님의 «관광객의 철학» 서평을 공유합니다. ‘일본 근대문학의 종언’을 말한 가라타니 고진에 의해 발탁되어 «관광객의 철학»에 이르기까지의 아즈마 히로키의 행보를 일본 비평사에 등장한 ‘비평의 위기’에 대한 대응이라는 맥락에서 파악하고, “아즈마가 미처 발화하지 못한 우글우글대는 무수한 가능성”에도 눈길을 주는 글입니다. 이 글과 함께 «관광객의 철학»이 더 많은 ‘오배’를 불러오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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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평의 위기와 ‘모던 걸’: ‘관광객의 철학’ 읽기
안지영
1. 종교로서의 문학비평
«내가 읽고 만난 일본»에서 김윤식은 자신에게 영향을 미친 다섯 저술(가)로서 고바야시 히데오, 에토 준, 모리 아리마사와 더불어 «국화와 칼»의 루스 베네딕트와 «일제하의 사상통제»를 쓴 리처드 H. 미첼을 들었다. 이중에서도 특히 그의 비평적 글쓰기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것은 고바야시 히데오로 보인다. 김윤식은 특유의 문체로 “정확히 말해 문예비평이란 일본에서 형성된 것을 가리킴인 것”이라고 단언하면서 고바야시 히데오를 ‘근대비평의 조상’이라고 칭한 후쿠다 가즈야(福田和也)를 인용한다. “그것은 또 ‘안다는 것’에 대해 믿는다는 것‘을 뚫고 나가고자 하는, 역사나 체계를 초월하는 이론을 억지로 꿰맞춘다든가 의미를 찾아내고자 하지 않는다. 내측에서 생기는 것일 수밖에 없는 것을 다루는 비평인 것이다.”[1] ‘아는 것’과 ‘믿음’을 대비시킴으로써 문예비평이 일종의 ‘종교’였다고 강조하는 그의 문장에는 묘한 동경이 서려 있다. 그에 따르면 “가히 종교라 할 절대적 비평”(120)으로서의 일본 문예비평과는 달리, 루카치로 대표되는 서구의 비평(에세이)은 ‘학문’에 흡수되어 버림으로써 이러한 영역에까지는 도달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한국에서 ‘비평’의 위상은 어떠한 것이었을까(나는 이 문장을 의식적으로 과거형으로 쓰고 있다). 단순히 ‘안다는 것’에 대해 서술하는 정도로는 ‘비평’의 위상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여기며 ‘믿음’의 영역으로 초월하고자 해 왔던 것은 한국 비평 역시 마찬가지 아니었던가. 조금 섣부른 가정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이 대목에서 가라타니 고진 이후 일본 비평에 대한 한국 비평의 열정이 사그라든 원인을 발견할 수 있지 않은가 싶다. 가라타니의 인기는 이제 과거형이 되어 버렸고, 그의 뒤를 잇는 ‘후예’들의 영향력은 상대적으로 미미한 편이다. 대표적으로 가라타니를 잇는 신예 비평가로 주목받았던 아즈마 히로키의 저서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 «게임적 리얼리즘의 탄생» 등이 일부 평론가의 글에서 다뤄지기도 했지만 가라타니만큼 영향력을 발휘했다고 보기는 어렵다. 그 원인으로 나는 일본에서조차 ‘비평’의 위상이 변했기 때문이라는 데 주목하고 싶다. 아즈마 히로키는 급격히 대두한 ‘비평의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선배 비평가들과 다른 길을 개척했다. 그는 더 이상 ‘비평이 팔리지 않게 된’ 시대에 직접 독자-소비자를 찾아 시장으로 나섰는데, 역설적이게도 이것이 한국에서 아즈마가 ‘잘 팔리지 않는’ 이유가 된 것은 아닐까. 이런 맥락에서 이 글은 아즈마의 비평을 ‘비평의 위기’라는 맥락에서 독해해 보고자 한다.
2. 초월론적인 것과 초월적인 것
2000년대 이후 일본 비평의 계보를 논한 사사키 아쓰시는 가라타니 고진보다 아즈마 히로키에 주목한다. 어쩌면 그의 책 «현대 일본 사상» 자체가 어떻게 일본 비평이 아즈마 히로키에 이르게 되었는가를 설명하기 위해 쓰였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그는 2000년대 이후를 “아즈마 히로키의 독무대”[2]라고 설명하면서 아즈마를 “‘아카데미즘적 비평’에서 ‘저널리즘적 비평’으로 다리를 놓”은[3] 비평가로 소개한다. 아즈마는 «동물화하는 포스트모던»을 통해 오타쿠라는 독특한 존재를 다루었다. 이것이 얼마나 파격적인 행보인지를 이해하기 위해 김윤식도 인상 깊게 서술한 바 있는 에토 준의 이야기를 해 보자. 에토 준은 20여 년간 지속하던 소설 월평을 문학의 서브컬처화(sub-culturized)에 충격을 받고 돌연 중단하게 된다. 에토에게 ‘문학=컬처’였으므로 여기에서 벗어난 서브컬처는 당연히 문학이라고 볼 수 없는 것이었다.[4] 이러한 태도는 가라타니에게도 반복되는 것으로, 가라타니가 ‘근대문학의 종언’을 선언한 배경에서 서브컬처의 부흥을 발견할 수 있다.
이와 달리 아즈마는 비평의 대상으로 여겨지지 않던 서브컬처를 전면적으로 논의하기 시작했는데, 아이러니하게도 이는 가라타니 고진이 «일본근대문학의 기원»에서 논파했던 사실, 즉 ‘근대’ 자체가 하나의 허구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과 관련된다. 이는 아즈마의 ‘전향’에 영향을 미쳤다고 이야기되는 오쓰카 에이지를 통해 이야기된 바 있다. 오쓰카는 전체 문화와 서브컬처를 대비시키는 에토 준의 독법의 부당함을 지적하며, 기실 그 ‘전체 문화’라는 것 자체가 ‘근대’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픽션이 아니었는지 질문을 던진 바 있다.[5] 에토 준이나 가라타니나 근대국민국가(네이션)과 근대문학이 ‘픽션’에 불과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으면서도 부재하는 ‘전체 문화’를 두고 ‘서브컬처’를 비판하는 자가당착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가라타니의 비평적 전회를 이해하는 데 있어서도 이 물음은 중요하다. 후기 가라타니의 사유를 드러낸다고 평가받는 «트랜스크리틱»에서 ‘보편’의 의미는 이전과 달라지게 된다. 이 책을 계기로 가라타니에게 ‘보편’은 적극적으로 추구해야 할 지향점이 되었으며,[6] 그는 이를 초월적 태도와 초월론적 태도의 대비를 통해 서술하면서 공동체적 사유의 한계를 자각하는 초월론적 사유를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데 아즈마는 이에 대해 가라타니와 상반된 의견을 표명한다.
영이나 혼은 원래 철학의 중심 문제이자 문학의 중심 문제기도 하다. 하지만 «비평 공간»의 책임 편집자였던 가라타니 고진과 아사다 아키라는 영이나 혼의 문제를 거의 다루지 않았다. 이를테면 그들은 1995년에 일어난 옴 진리교 사건에 대해 거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지금 되돌아보면 그들, 특히 가라타니 고진이 ‘초월성’과 ‘초월론성’을 집요하게 구별하려 했기 때문인 것 같다.
철학 용어로서 초월성과 초월론성은 딱히 구별하지 않고 쓰이는 일이 많다. 그런데 어느 시점에서 가라타니는 두 개념을 구별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철학의 기초는 눈으로 보고 손으로 만질 수 있는 ‘경험적’인 세계 너머[초월]에 있는 무언가를 사유하는 데 있다. 단 그 ‘너머에 있는 무언가’는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존재하는 것은 사유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철학자가 ‘너머에 있는 무언가’를 실체화하는 오류와 실패를 범했다. 가라타니는 이렇게 주장하고 초월하려는 사유의 운동을 ‘초월론성’, 초월의 세계를 실체화한 것을 ‘초월성’으로 나누어 부르며 둘을 철저히 구별할 것을 제안했다. 초월적 사유는 나쁘나 초월론적 사유는 좋다는 것이 «탐구»를 내던 시기 가라타니 ‘비평’의 원리였다. [7]
아즈마는 자신의 작업이 파롤과 에크리튀르를 엄밀히 구별하는 것이 무의미하다고 본 데리다와 마찬가지로 초월론적 사유와 초월적 사유를 구별하기가 어려우며 더구나 우위를 가리는 것은 부당하다는 점을 지적한다. 그러면서 자신의 작업을 “비평과 비평이 아닌 것의 경계 자체를 ‘탈구축’하려”는 것이라고 정리한다. 그런데 이러한 태도 전환이 어떠한 논리적 귀결에 따른 것이라기보다 피로감이라는 정동에 의해 추동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아즈마는 2000년대 초반을 회상하며 “나는 모든 것에 염증을 느꼈다. 90년대에 필사적으로 손에 넣으려 했던 인문학적 지식과 교양은 모두 버리고 인생을 다시 시작하고 싶다는 생각만 했다”[8]고 말한다. 그러면서 이는 일본 사회가 통감하는 바였음이 54년 만에 이뤄진 2009년의 정권 교체로 증명된다고 본다. 문제는 정권 교체 이후에도 피로감이 지속되었다는 것이다. 한 대담에서 아즈마는 “정권 교체가 이루어지면 정치도 바뀔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아무것도 바뀌지 않았습니다”[9]라고 술회하기도 한다. 한데 이는 현 정권에 대해 한국 사회가 마주하고 있는 피로감과 정확히 부합하지 않는가. ‘촛불 민심’을 대변한다는 정권이 만든 국민청원 웹사이트에서 아무리 ‘동의하기’를 눌러도 부조리한 현실은 좀체 바뀌지 않는다. ‘직접 민주주의’를 가장하는 기만적인 장치로 인한 피로감과 무력감만이 가중될 뿐이다. 그제서야 나는 가라타니의 초월론적 태도를 비판하면서 아즈마가 무슨 말을 하고 싶었던 것인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3. 비평의 위기와 오배
2010년대 초반 한국 문단에서도 비평의 위기에 대한 여러 논의가 있었다.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비평은 그 이전과 생태적 환경 자체가 다르다는 것을 일단 인정해야 한다. 사사키 아쓰시에 따르면 일본에서 뉴아카데미즘이라고 불리는 비평의 부흥은 1970년대 이후 일본 경제의 버블이라는 특수한 현상과 관련되어 설명된다. 사회 전반에서 새로운 상품을 소비하려는 구매 동기와 더불어 지식에 있어서도 ‘새로움’을 추구하는 경향이 두드러졌는데 이것이 아사다 아키라, 나카자와 신이치 등의 서적 판매로 연결되었다는 것이다.[10] 당시 일본 사회는 경제적 풍요를 구가하며 사회가 변화하리라는 가능성에 대한 믿음 혹은 기대감이 흘러넘치던 시기였고, 이러한 시대적 분위기가 사상의 부흥을 가능하게 한 동력으로 작용하였다. 마찬가지로 90년대 한국 비평이 ‘위기’라는 소리를 듣지 않았던 데는 90년대 한국의 경제 호황이 관련된다는 가설을 세워 볼 수 있다. 그러다가 IMF 경제 위기 이후로 경색된 사회 분위기 속에서 한국 비평 역시 일종의 ‘피로’를 호소하게 되었던 것은 아닐까.
한국 비평이 이러한 위기에 어떤 식으로 대응했는가에 대한 논의는 다음으로 미루고, 일단 일본 비평에서 특히 아즈마가 어떻게 대응했는가를 간략히 정리해 보겠다. 아즈마는 가라타니 고진이 만들어 낸 ‘비평 공간’에서 비평가이자 사상가로서 활동을 시작했으며, 그가 <데리다 시론>으로 비평 활동을 시작하게 된 것 역시 가라타니의 영향으로 보인다(가라타니는 1975년 객원 연구원으로 예일 대학에 체재했을 때 미국에서 폴 드 만을 통해 데리다를 수용하며 탈구축 비평의 길을 열었다). 하지만 아즈마가 가라타니를 비롯해 기존 비평가들과 차별화되는 부분은 기존의 비평 공간에 대한 철저한 불신을 바탕으로 근본적으로 비평이 생산되는 메커니즘을 변화시키려 했다는 데 있다. 그는 “문학 영역을 벗어나 비평 범주와 기능을 회복”하기 위해 문학 영역을 벗어난 비평을 할 수 있는 제도 혹은 장치를 직접 마련하려 했고 그 결과 ‘제로 아카(ゼロアカ) 도장’[11]이라는 제도 혹은 공간을 만들게 된다. 하지만 아즈마는 그저 ‘현상 긍정’에 그치는 듯한 소극적인 태도로 인해 일본 내에서도 비판에 직면하였다. 아즈마가 «동물화된 포스트모던»에서 서술하고 있는 오타쿠의 세계관 자체가 “세계를 ‘변혁(개변)’하려고도, 세계를 ‘기술(설명)’하려고도 하지 않고 이 세계를 ‘감수’하는”[12] 데 그치는 무력한 2000년대 이후 출현한 동물화된 주체의 형상을 보여 주고 있다는 지적이었다(가라타니 고진의 후계자가 불리는 아즈마의 저작이 한국에서 그다지 반향을 일으키지 못한 데는 이러한 소극적 태도가 작용했을 것이다).
한데 최근의 아즈마가 제시한 ‘관광객의 철학’을 보면 일면 그는 가라타니의 고민을 이어가고 있는 듯하다. «관광객의 철학»에서 아즈마는 가라타니 고진이 «트랜스크리틱»에서 논의한 ‘어소시에이션’의 한계를 지적하며, 공공성을 실현할 새로운 주체로서 ‘관광객’을 호명하고 있다. 가라타니가 시도한 어소시에이션의 실천(NAM)이 순식간에 와해되는 것을 목격한 아즈마는 “현대 사회를 비판하려면 새로운 사회 구성체의 발명이 불가결”[13]하다는 데는 동의하나, 네그리와 하트의 다중이나 가라타니의 어소시에이션이나 “원래는 존재할 수가 없는 연대를 다름 아닌 연대 불가능성을 매개로 구축하려”[14] 한다는 점에서 부정신학적 존재에 불과하다며 날카롭게 비판한다. 하지만 아즈마도 고백하거니와 그가 제시한 관광객의 철학과 이를 보완하기 위해 제안되고 있는 “가족적 연대에 기반한 새로운 다중”[15] 역시 현실에서 어떻게 실현될 수 있는 것인지는 여전히 모호한 느낌이다. 일단은 아즈마가 발표할 다음 글을 기다려 봐야겠지만, ‘관광객의 철학’이 꽉 막혔던 사유를 자극하며 새로운 길을 열어 주는 특유의 매력을 지니고 있음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특히 페미니즘 리부트의 영향인지 한국 문학에는 아즈마의 철학을 젠더적으로 사유하려는 경향이 발견되는데 이에 대해 간단하게 정리하면서 글을 마치겠다. 우선 정지돈의 경우 인터넷에 연재하고 있는 에세이를 통해 ‘산책자’와 ‘관광객’을 연결시킨다. 벤야민이 산책자의 신체에 부여하려 했던 우연적 저항의 의미를 «걷기의 인문학»에서 리베카 솔닛이 젠더적 맥락에서 비판적으로 독해한 것을 수용하며(여성형과 남성형 산책자의 신체와 경험, 감각 등을 구분하기), 여성-산책자(플라뇌르)라는 새로운 주체의 형상을 상상하게 만든다.[16] 이것은 아즈마가 ‘관광객’을 통해 사람들이 이제는 지겹다고 피로를 호소하는 타자의 철학을 새롭게 구성하려 한 것과 동일한 맥락에서 ‘산책자’라는 오염된 단어를 구하려는 시도라 할 수 있다. 한편 한정현의 「과학 하는 마음」에서 ‘관광객의 철학’은 조금 더 비중 있게 언급되는데, 동아시아 재외 한인 여성들이나 ‘모던 걸’을 아즈마의 ‘관광’ 개념으로 설명하는 학자로서 ‘한주’라는 연구자를 등장시킨다. 그리고 아즈마가 ‘진지한’ 학자들로부터 들었을 법한 우려를 한주 역시 학회장에서 듣게 된다.
누군가 손을 들어 질문을 청했다. 질문자는, 한주의 발표가 몹시 흥미로웠으나 조선적 재일이라는 특수가 어떻게 보편을 포괄하는 다양한 관점까지 설명할 수 있느냐고 물었다. 그러면서 한주의 발표문에서 해녀 이씨와 같은 관광 개념의 예로 들었던 근대 이후 ‘모던 걸’에 대해서도 의문을 표했다.
“실제 모던 걸 중에 그런 의식을 품은 사람이 몇이나 있었을까요?”
한주는 잠시 질문자를 바라보다 이렇게 답했다.
“있었는지 없었는지, 오로지 리얼의 문제만을 생각하면 나아감이란 없습니다. 없는 것을 있게 만든다, 그것이 모던 걸들이니까요.”[17]
아즈마 자신이 관광객의 철학을 ‘오배의 철학’이라고 설명하기도 했지만,[18] 정지돈과 한정현의 독법은 아즈마가 미처 발화하지 못한 우글우글대는 무수한 가능성 가운데 일부를 배달해 준다는 점에서 일종의 오배로 설명할 수 있다. 아즈마는 이렇게 말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우리는 글로벌리즘에 저항하기 위해 새로운 장소를 제국의 외부도 내부도 아닌 그 사이에서, 즉 스몰 월드와 무척도를 동시에 생성하는 오배 공간의 내부에서 찾을 수 있지 않을까?”[19] 그렇다, 저항이 불가능해 보이는 이 시대에 우리가 포기하지 말고 끈질기게 탐색해야 하는 것은 어떤 틈새에서 발생하는 우연적 저항의 가능성일 테다. “리얼의 문제만을 생각하면 나아감이란 없”다. 정지돈의 에세이도 그렇지만 한정현의 이런 문장은 그 자체가 비평이면서 비평을 비평에서 해방시킨다. 비평의 위기를 계기로 새로운 비평(가)의 길을 개척하고 있는 아즈마에게도 이런 식의 전개는 반가운 소식이 아닐까 한다.
[1] 福田和也, «甘美な人生», 筑摩学芸文庫, 2000, 33쪽(김윤식, «내가 읽고 만난 일본», 그린비, 2011, 111쪽에서 재인용).
[2] 사사키 아쓰시, «현대 일본 사상», 송태욱 옮김, 을유문화사, 2010, 17쪽.
[3] 같은 책, 264쪽.
[4] 김윤식, «내가 읽고 만난 일본», 286~287쪽.
[5] 大塚英志, «サブカルチャー文学論», 朝日文庫, 2007, 12쪽(사사키 아쓰시, «현대 일본 사상», 288쪽에서 재인용).
[6] 이에 대해서는 다음의 주장을 참고하였다. “가라타니가 말하는 ‘트랜스크리틱’이란 쉽게 말하자면 ‘초월론적 태도=비평적 태도’를 유지하려면 계속해서 수평으로 이동해야 한다는 의미이다. 이것만이 보편에 이르는 길이다. 수직으로 이동(초월적 태도)해서는 결코 공동체의 외부로 나갈 수 없다. 수평으로 이동(초월론적 태도)하는 것만이 공동체의 외부로 나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후기 가라타니가 말하는 ‘외부’란 공동체 바깥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는 장소가 아니다. 그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 “외부적이란 말은 결코 적극적인 입장을 취하거나 장소에 서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속해 있는 시스템에 대해 자기 관계적이라는 말이다.” 안천, <가라타니 고진과 ‘보편’>, «한국학연구» 29, 2013, 201쪽.
[7] 아즈마 히로키, <영혼과 비평>, https://playtime.blog/2020/08/20/영혼과-비평/.
[8] 아즈마 히로키, <헤이세이라는 병>, https://playtime.blog/2020/09/13/헤이세이라는-병/.
[9] 아즈마 히로키, «철학의 태도», 안천 옮김, 북노마드, 2020, 26쪽.
[10] 사사키 아쓰시, «현대 일본 사상», 34~35쪽.
[11] 2008년에는 «아즈마 히로키의 제로아카 도장»(東浩紀のゼロアカ道場)이 고단샤(講談社)BOX에서 개최되었다. 약칭 ‘제로아카 도장’은 거기에 참가한 비평가 예비군들이 차례로 몇 개의 관문에 의해 걸러지고 최종 관문을 돌파한 사람이 단행본으로 초판 1만 부를 내며 데뷔하는 식으로 비평가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었다. 같은 책, 14~17쪽.
[12] 같은 책, 285쪽.
[13] 아즈마 히로키, «관광객의 철학», 안천 옮김, 리시올, 2020, 220~221쪽.
[14] 같은 책, 159쪽.
[15] 같은 책, 221쪽.
[16] 아즈마의 ‘관광객의 철학’을 직접 언급하고 있는 것은 5회이다. 정지돈, <당신을 위한 것이나 당신의 것은 아닌 – 5회 샛길: 코로나 시대의 산책>, «주간 문학동네», 2020.4.27.
[17] 한정현, <과학하는 마음>, «소녀 연예인 이보나», 민음사, 2020, 201쪽.
[18] 아즈마 히로키, «관광객의 철학», 76쪽.
[19] 같은 책, 201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