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자본에 맞서기 위한 실천 매뉴얼

인류학자 이승철 선생님께서 학술지 «문명과 경계» 7호(2023년 9월)에 «피투자자의 시간» 서평인 <금융 자본에 맞서기 위한 실천 매뉴얼>을 발표하셨습니다. 이승철 선생님의 허락을 구해 저희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원문도 «문명과 경계» 홈페이지에서 자유롭게 다운받을 수 있으니 PDF로 보시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 보세요.
원문: http://ricc.postech.ac.kr/bbs/board.php?tbl=journal&mode=VIEW&num=12&amp;

이승철 선생님은 일상 생활의 금융화와 포퓰리즘을 연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저희 블로그를 통해 페어의 글도 번역했을 정도로 미셸 페어의 작업을 꾸준히 살펴 오셨는데요. «피투자자의 시간»을 비평할 최적임자인 만큼 아주 명료하게 이 책의 장점과 약점을 짚어 주셨습니다.

“금융을 분석하고 문제 삼을 개념과 ‘가지성(intelligibility)’의 틀이 여전히 취약하고 부족하다”는 문제 의식을 밝히며 시작하는 이 서평은 «피투자자의 시간»을 이런 개념과 틀을 제공하는 작업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서평에서 제시하는 이 책의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금융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기존 논의들을 재배치한다는 것, 금융화와 관련된 동시대 사회과학 연구들과 긴밀히 연결되는 확장성을 지닌다는 것, 무엇보다도 금융 자본주의에 대응할 논쟁적이지만 일관된 전략을 제시한다는 것.

나아가 «피투자자의 시간»에서 제시하는 노동 운동과 피투자자 운동의 유비가 불완전하고, 금융 내부와 외부의 투쟁들 간 연결 고리가 부족하며, 투자/투기라는 인간 조건이 사물과 권리, 사회, 정치에 대한 상상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는 다루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서평은 “앞선 논의들을 명쾌하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정리하고, 이를 통해 기존의 현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도우면서, 흥미로운 질문과 사유를 계속해서 자극하는 책”이라는 평가로 마무리됩니다.

«피투자자의 시간»의 의의와 미진한 점 모두를 명료하고 균형 감각 있게 짚어 주신 이승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피투자자의 시간»뿐 아니라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논의에 관심 있는 분들은 꼭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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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철(서울대학교 인류학과 교수)

제 진정한 적수는 이름도 얼굴도 당파도 없으며 결코 후보자를 내세우지 않고 절대 당선되지도 않을 것이지만 (우리를) 통치합니다. 이 적수는 금융입니다.[1]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

1. 들어가며

현대 자본주의가 고도로 금융화되었으며 금융을 분석하지 않고는 오늘날 자본주의의 동학과 그 한계를 논하기는 불가능하다는 인식은 이제 자본주의 비판 담론에서 일종의 ‘상식’으로 자리 잡은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실질적인 분석과 대안 제시에 있어 이러한 ‘상식’은 얼마나 진지하게 고려되고 실행되고 있을까? 정치학자이자 환경 운동가인 채효정은 이와 관련한 자신의 경험 하나를 전한다. 생산 및 화석 자본에 대해서 줄곧 비판의 날을 세워 온 한 기후 활동가 동료가 자신이 금융 자본 ESG와 녹색 펀드를 문제 삼자 성급하고 과하다는 반론을 펼쳤다는 것이다. 채효정은 산업 자본에 비판적인 많은 이들이 금융 자본을 향해서는 미적지근한 자세를 보이는 것이 흔한 일이라며 개탄한다. “(…) 기후 불평등과 부정의에 대해서도 울분을 자주 토하던 이가 보인 반응에 나는 꽤 충격을 받았다. 금융 회사들이 1 대 99의 양극화된 세계를 만들어 낸 주범이며 지금도 1퍼센트의 지배를 지속가능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은 까마득히 잊은 것일까?”[2]
이 경험에 등장하는 동료의 반응을 단지 무지와 망각 탓으로 돌릴 수는 없을 것이다. 오히려 이 에피소드는 자본주의에 비판적인 이들 사이에서도 금융을 분석하고 문제 삼을 개념과 ‘가지성(intelligibility)’의 틀이 여전히 취약하고 부족하다는 사실을 보여 주는 것 같다. 자본주의에서 일상을 살아가며 우리가 느끼는 불의의 감각과 개인적 고통은 그 자체로 자본주의 비판의 동력으로 자동 전환되지는 않는다. 이러한 감각과 고통이 상품 및 가치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분석을 통해 ‘착취’라는 개념과 만나고 ‘계급’이라는 주체가 소환되어 저항과 실천의 자리가 마련될 때, ‘자본주의’라는 추상적 환경은 비로소 비판의 대상으로 ‘세계화(worlding)’될 수 있다. 자본주의의 역사 속에서 산업 자본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개념적 분석과 비판은 장기간 축적되어 온 반면, 전 세계 인터넷 연결망과 스크린을 통해 실시간 순환하는 금융의 세계는 이 불의와 모순의 경험을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실천할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채, 여전히 추상적인 “이름도 얼굴도 당파도 없는” 세계에 머물고 있다. 아마도 오늘날 팽배한 ‘좌파 멜랑콜리’는 이러한 금융화된 자본주의의 인지적 지도를 그려 낼 수 없고, 따라서 그에 들어맞는 정치적 비판과 전망을 발전시킬 수 없다는 좌절감, 즉 근본적으로 ‘세계 없음’의 감각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3]
“우울이 언제나 좌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고 선언하며,(7)[4] “어떤 조건에서 우울이 우파 쪽으로 되돌아갈지”를 묻는 미셸 페어의 «피투자자의 시간: 금융 자본주의 시대 새로운 주체성과 대항 투기(Le temps des investi: Essai sur la nouvelle question sociale)»는 이러한 점에서 야심 차고 주목할 만한 기획이다.(11) 이 책의 번역을 통해 국내에 처음 소개되는 벨기에 태생의 사회 이론가 페어는, 주로 미셸 푸코의 영향 아래 섹슈얼리티 정치학, 이민 문제, 신자유주의 통치성 등의 주제를 집중적으로 사유해 왔다. 특히 2007년 발표된 논문 〈자신의 가치를 상승시킨다는 것, 혹은 인적 자본의 열망〉은, 푸코가 신자유주의 통치의 상관물로 분석한 ‘인적 자본(human capital)’의 문제를 한층 정교화함으로써, 오늘날 주체성의 형식을 탐구하는 이들이 반드시 참조해야 하는 글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5] 2017년 프랑스어판이 출판된 «피투자자의 시간»은 이 논문의 문제의식을 확장한 책으로, 논문에서 논의된 ‘인적 자본’이라는 금융 주체성의 성격을 ‘피투자자(investee)’로 재규정하고 오늘날 이 피투자자 주체들이 직면한 공통의 조건과 새로운 사회 운동의 가능성을 탐색한다. 이를 통해 페어는 오늘날 금융 자본주의의 지형에 대한 일종의 지도 그리기를 시도하는 동시에, 그 속에서 살아가는 우리의 경험을 해석할 가지성의 틀과 개념들을 세공해 나가고자 한다.

2. 금융을 투쟁의 장으로 구성하기: ‘피투자자’라는 조건

이 책 전체를 가로지르는 페어의 주장은 의외로 간단하고 일관된다. 지난 40여 년간 우리가 ‘신자유주의’라 불러온 변화는 금융의 경제 통제를 강화하면서 자본주의를 근본적으로 변형시켰고, 그 결과 금융화된 주체성과 자본주의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기존 산업 자본주의에 기반한 우리의 개념과 분석 틀을 넘어서는 새로운 접근이 요청된다는 것이다. 페어에 따르면 이러한 변화는 주체성의 형식에서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는데, 오늘날 금융화된 주체는 산업 자본주의의 ‘노동자’도 혹은 애초에 신자유주의적 기획이 꿈꿨던 혁신적이고 계산적인 ‘기업가적 주체’도 아닌, 금융 시장의 상시적 등급 평가에 종속되어 자신의 ‘신용도(creditworthiness)’ 향상을 추구하는 ‘피투자자’ 주체로 대표될 수 있다. 기업, 정부, 개인, 가계 등을 포괄하는 이 금융적 주체는 장기적인 전망 속에서 이윤율 상승이나 소득의 극대화를 꾀하기보다는, 자신의 브랜드, 품행, 사회적 관계와 같은 고유한 요소들을 자산화하여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끊임없이 평가의 대상이 되는 물질적, 비물질적 자산의 가치 상승을 도모”한다.(29) 얼핏 보면 이러한 주장은 금융과 관련해 만연한 디스토피아적 전망을 반복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페어는 반대로 이러한 조건과 주체성의 변화가 모든 정치적 가능성을 제거하는 것은 아니며, 오히려 새로운 사회 운동과 정치의 가능성, 즉 “투자자와 그의 후원에 의지하는 ‘피투자자’ 간에 신용 할당을 둘러싼 갈등”이 촉발된다는 점에 주목해야 한다고 주장한다.(30)
이러한 문제의식하에 페어는 오늘날 피투자자로 재구성된 기업, 국가, 개인의 삶에서 드러나는 새로운 조건과 갈등의 양상을 차례로 추적한다. 책의 1장에서 페어는 금융화로 인해 기업 운영의 핵심 목표가 장기적인 이윤 생산에서 단기적인 자본 수익 증대로 변화했음을 언급하며, 이에 따라 기업 거버넌스에서 “어떤 종류의 시도가 자원을 받을 자격이 있는지를 선별하여 신용을 할당”하는 투자/투기 실천이 가지는 중요성이 점차 커지고 있음을 지적한다.(38) 기업은 이제 투자자인 동시에 금융 시장에서 자신의 가치를 상시적으로 관리하고 평가받아야 하는 피투자자로 재구성되는데, 이러한 변화는 의도치 않게 기업을 대상으로 한 새로운 사회 운동을 가능케 한다. 즉, 생산 비용과 임금을 둘러싼 기존의 고용주-노동자 간의 갈등 이외에, 이제 기업의 가치를 결정하는 리스크 평가 및 신용 할당의 과정에 대중들이 이해관계자(stakeholder)이자 투자자로서 직접 개입할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린다는 것이다. 페어는 현재 금융 시장의 가치 평가를 넘어서 “다른 평가 기준을 조성하는” 이 같은 “대항 투기(counter-speculation)”의 가능성을 적극적으로 활용해야 한다고 역설한다.(55) 미국 원주민 보호 구역을 지나가는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은행과 기업의 평판 리스크를 높이고 주식 가치를 위협하여 이 투자를 철회하게 만든 ‘DAPL 투자 철회 캠페인’은, 이러한 대항 투기적 실천의 대표적인 예일 것이다.(76-80)
2장에서는 동일한 피투자자 주체로의 변화가 정부 차원에서 재확인된다. 20세기 후반 신자유주의 구조 조정을 통해 서구의 복지 국가는 조세 국가에서 부채 국가로 변화했으며, 이에 따라 정부의 역할은 “자국 시민들의 필요와 이를 충족할 돈을 빌려주는 국제적인 대부자들의 요구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 것”으로 변형되었다.(97) 페어는 간헐적으로 열리는 선거에 비해 중단 없이 이루어지는 금융 시장의 가치 평가로 인해, 정부는 항상 채권자의 압박을 우선시한다고 지적한다. 기업과 마찬가지로, 정부는 이제 장기적 비전에 따른 국정 운영보다는 국제 금융 시장에서 매력적인 피투자자의 지위를 유지하는 데 골몰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번에도 페어는 이 새로운 조건을 단순히 거부할 것이 아니라 수용하고 활용함으로써 좌파의 전략을 다변화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정치적 실천을 통해 금융에 대한 통제권을 회복하려는 좌파 포퓰리즘이나 채무 불이행을 통해 금융 시장에서 이탈하려는 부채 파업 전략이 일면적이라고 지적하면서, 페어는 대중 운동이 은행과 채권자를 벤치마킹하여 피투자자 정부에 지속적인 압박을 가하는 동시에, 정부에 사회적 부채를 청구할 수 있는 “사회적 채권자”이자 “정당한 청구인”의 지위를 활용할 것을 제안한다.(149)
마지막 3장에서 페어는 산업 자본주의의 임금 노동자 주체성을 대체하거나 그 위에 덧씌워지는 피투자자 개인의 등장에 대해 논한다. 이 부분에서 페어는 앞서 기업과 정부에서 발견된 논리를 금융 주체성 일반의 특징으로 확장시키는데, 이를 페어의 기존 논의와 연결시켜 조금 더 자세히 살펴보자. 페어에 따르면, 이전 산업 자본주의가 전제하고 주조해 냈던 ‘자유로운 노동자(free laborer)’는 근본적으로 분열된 주체였다. 이들은 상품화된 노동력과 이를 소유한 자의 양도(alienation)될 수 없는 내밀성 간의 분리, 즉 물질적 이해관계가 지배하는 상품 생산 및 공적 공간과 정신적 가치를 추구하는 재생산 및 사적 공간 간의 분열 속에서 고유한 주체성을 구성해 왔다.[6] 하지만 오늘날 금융 자본주의하에서는 “이해관계의 추구와 이해관계와 무관한 추구를 나누었던 오랜 경계가 해체”되고,(232) 자신의 선천적 기질이나 사회적 환경, 학력 및 소득, 건강은 물론, 기존에 내밀한 영역으로 여겨졌던 섹슈얼리티, 문화적 취향, ‘멘탈’로 표현되는 정신적 자본에 이르기까지, 삶의 거의 모든 측면을 자산으로 구성하고 관리하는 인적 자본 혹은 피투자자 주체가 전면화된다. 페어에 따르면, 최근의 플랫폼 자본주의 혹은 긱(Gig) 경제의 부상은 이 전환을 가속화하여, ‘자유 계약자’로 호명되는 피투자자들로 하여금 끊임없는 가치 평가 속에서 자신의 각종 ‘스펙’들로 구성된 포트폴리오의 가치를 향상시킬 것을 요구한다(아마도 숨고나 크몽, 유튜브와 같은 플랫폼들에서 이루어지는 가치화 실천들이 그 일례가 될 것이다). 이러한 현실에서 다시 한번 페어는 ‘임노동자 보호’라는 복고적 전략으로의 회귀가 아니라, 이 조건을 전유해 자신들의 평판 자본과 네트워크를 적극 활용하면서도 상이한 평가 체계를 구축하는 ‘플랫폼 협동조합’을 대안으로 제시한다. 금융화된 시장 속에서 끊임없이 가치 평가받지만 또한 가치 평가하는 피투자자들의 ‘등급화된 행위성(rated agency)’[7]은 이들로 하여금 “자신의 평판 자본에 투자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뜻이 맞는 다른 피투자자들과 함께 어떤 자산이 가치 상승 가능성이 있다고 인정되어야 하는지, 그리하여 누가 신용할 만하다고 여겨질 자격이 있는지”를 결정하고 투기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주기 때문이다.(227)
결과적으로 페어는 오늘날 기업, 시장, 개인이 금융 시장과 맺고 있는 불가결한 관계에 주목하고, 금융 시장 자체를 비판적 개입과 실천의 장으로 재구성할 것을 제안한다. 모두가 투자자이자 동시에 피투자자가 되어 버린 오늘날의 조건은, 기존 금융 시장과 다른 평가 체계에 기반한 투자 실천을 제안하고 구성할 ‘대항 투기’ 혹은 ‘피투자자 액티비즘’을 가능하게 해준다는 것이다. 페어는 이러한 새로운 주체성과 가능성에 기반하여 “고용주와 피고용주가 아니라 투자자와 피투자자가 주인공인 갈등 구도를 활용”할 때, 기존 사회 운동이 금융 자본주의하에서 직면해 온 교착 상태를 벗어나 비로소 “좌파의 우울을 떨쳐 낼” 수 있다고 강조한다.(31)

3. 금융의 내재적 전유: ‘투기의 자유’와 이중 전략

산업 자본주의와 구분되는 금융 자본주의의 동학을 분석하고 이에 대한 정치적 개입을 꾀하는 책들은 여럿 있지만, 페어의 《피투자자의 시간》은 이들 가운데서도 두드러지는 몇 가지 장점을 지닌다. 먼저 본인의 주장을 정교화하면서, 페어는 금융 자본주의와 관련해 비판 이론 진영에서 제출된 기존의 대표적 논의들을 자신의 관점에서 평가하고 재배치한다. 예컨대, 마우리치오 라차라토와 데이비드 그레이버, 앤드루 로스의 부채와 부채 파업에 대한 논의, 금융화가 야기한 국가와 민주주의의 변화에 대한 볼프강 슈트렉의 분석, 샹탈 무페의 좌파 포퓰리즘에 대한 옹호 등이 저자 나름의 관점에서 검토되면서 그 장점과 한계가 명확히 지적된다. 따라서 이 책을 읽는 독자는 금융 자본주의하에서의 정치적 실천에 대한 기존 비판 이론의 고민을 부분적으로나마 접할 수 있다.
더 나아가 이 책의 핵심 주장들이 금융화와 관련된 동시대 사회과학 연구들과 긴밀히 연결되는 확장성을 지니고 있다는 점도 지적할 만하다. 예를 들어 ‘가치 평가/가치화(valuation)’를 정치적인 실천이자 투쟁의 판돈으로 이해해야 한다는 페어의 주장은, 가치화 과정에서 작동하는 권력과 시장 장치의 문제를 면밀히 분석해 온 소위 ‘가치화 연구(valuation studies)’의 문제의식을 반영한 것이며, 역으로 페어의 작업은 관련 연구들을 촉진해 왔다.[8] 또한 자산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그 전체 가치를 관리하는 피투자자 주체성에 대한 페어의 논의는, 자본의 운동이 각종 유·무형 자원들—예컨대, 지적 재산권, 탄소 배출권, 미술 작품, 지하자원, 자연환경, 인프라스트럭처 등등—을 자산화하여 금융 축적의 회로 내로 포섭하는 과정을 탐구하는 최근의 ‘자산화(assetization) 연구’와 긴밀히 공명한다.[9] 기업, 국가, 개인 모두가 피투자자가 되었다는 페어의 논의는 최근 늘어나고 있는 ‘금리 생활자 자본주의(rentier capitalism)’에 대한 논의와 결합할 뿐 아니라,[10] 이들이 종종 간과하는 금융화의 문화적·미시적 토대를 들여다볼 수 있게 도와준다. 다시 말해, 페어의 책은 오늘날 금융 영역에서 벌어지고 있는 다양한 실천들을 이해 가능하게 도울 뿐 아니라,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기존 비판 담론들의 교차로이자 이들을 탐색하기 위한 진입로 역할을 훌륭히 수행한다.
이러한 장점만으로도 이 책을 권할 이유는 충분하겠지만, 무엇보다 이 책을 주목해야 할 가장 큰 이유는 금융 자본주의에 대응할 논쟁적이지만 일관된 전략을 제시한다는 점에 있다. 페어는 고도로 진행된 금융화로 인해 오늘날 금융 주체들이 “타인들의 평가에 영향을 미치기 위해 투기할 자유, 혹은 차라리 타인들의 투기에 투기할 자유”를 가지게 되었다고 지적한다.(49) 이러한 ‘피투자자의 자유’는 카를 마르크스가 지적한 임금 노동자의 ‘이중적 자유’—신체적 예속에서 벗어나 노동력 상품을 판매할 수 있는 자유이자 생산수단으로부터 유리되어 있는 자유—와 유비될 수 있는데, 페어는 기존 노동 운동이 이러한 임노동의 자유를 무조건적으로 거부하기보다는 이 조건을 수용하고 그 위에서 저항을 전개했듯이, 금융에 대한 저항 역시 이 투기의 자유를 수용하면서 이를 활용해 전개되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 운동가들이 임노동이라는 조건—운동가들이 노동자에 대한 착취를 가능하게 하는 주체성 형식이라고 비난하면서도 동시에 더 많은 임금, 한층 짧은 노동일, 보다 안전한 노동 환경, 한결 나은 복지 혜택을 협상하기 위해 받아들였던 조건—과 맺었던 이중의 관계를 다른 방식으로 반복”해야 한다는 것이다.(217)
이렇게 ‘투기의 자유’라는 조건을 수용하면서도 이를 활용해 이 조건 자체를 지양하자는 페어의 “이중 전략”이 가지는 장점은 분명하다.(61) 우선 이는 금융 시장을 ‘외부에서’ 개입하고 제어하기 위해 사회, 국가 혹은 개인의 도덕성에 호소해 왔던 기존의 금융 비판 방식에서 벗어나, 금융화 ‘내부에서’ 어떻게 금융 지배에 도전할 것인가라는 새로운 고민을 촉발한다. 동시에 이는 이러한 ‘내재적 전유’를 위해서라도 금융 자본의 구체적 동학과 그것의 기반이 되는 가치화 및 자산화 실천들이 가진 모순을 면밀히 검토할 필요성을 제기하는 것이기도 하다. 더 나아가 페어의 제안은 현재 진행 중인 다양한 형태의 갈등을 ‘가치 평가와 신용 할당의 배분을 둘러싼 투쟁’이라는 새로운 관점에서 바라보도록 도와준다. 페어의 논의를 통해, 우리는 평판 자본의 리스크를 직접 겨냥한 미투 운동에서부터 Black Lives Matter 운동에서 제기된 “경찰 투자 철회(Defund Police)” 구호, 거대 헤지펀드에 대항한 게임스톱 사태, 기업 브랜드 가치를 둘러싼 각종 트럭 시위와 불매 운동, 대학 랭킹 평가 거부 캠페인, 가치 평가와 신용 평가 방식을 둘러싼 각종 갈등들, 그리고 소위 ‘돈쭐내는’ 대중들의 놀이 실천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현상들에서 일관된 논리를 발견하고, 이들을 단순한 일회적 해프닝을 넘어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피투자자 액티비즘’과 정치적 주체화의 시도 속에 자리매김할 수 있다.

4. ‘대항 투기’를 넘어서: 피투자자 운동의 확장

    이러한 장점에도 불구하고, 페어의 매력적인 분석과 전략은 몇 가지 의문점도 남긴다. 이 책이 서술하는 금융화의 역사와 검토하는 사례들이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이라는 분명한 약점은 차치해 두고, 여기서는 페어의 논의가 가지는 제한적 성격과 범위에만 초점을 맞춰 보자. 먼저 페어의 분석과 ‘이중 전략’이 가진 가장 큰 문제는, 그의 논의가 기대고 있는 노동 운동과 피투자자 운동 간의 유비가 불완전하고 충분치 않다는 데에서 기인한다. 앞서 말했듯, 페어는 초기 노동 운동이 노동력의 상품화라는 조건을 받아들여 노동력의 가격(임금)을 올리는 동시에 단체 협상·복지 요구 등을 통해 노동력을 ‘탈상품화’하기 위한 노력을 전개했음을 지적하고, 금융 영역에서 이를 반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러한 제안 자체는 설득력이 있으나, 이 책에서 구체적으로 논의되는 피투자자 운동 모델은 금융 시장의 논리와 투기의 자유를 받아들여 피투자자의 가치를 상승시키는 대항 투기에 초점을 맞출 뿐, 이 조건을 활용한 ‘탈금융화’ 혹은 금융 시장의 지양을 위해서는 어떤 구체적 실천이 가능한지 명확히 논의되지 않는다. 여기에 더해, 페어는 좌파 운동의 역사에는 노동 운동의 이중 전략 외에도 정치권력을 통한 생산수단의 전유로 ‘외부적’ 탈상품화를 꾀했던 또 다른 시도가 항상 존재해 왔다는 사실—따라서 실제로는 노동력의 상품화를 수용하여 상품 가격을 올리고, 상품 소유자로서의 권리를 활용하여 내부적으로 탈상품화를 꾀하고, 동시에 정치권력을 접수하여 상품화의 조건 자체를 폐지하는 ‘삼중 전략’이 존재했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에 대해서도 침묵한다.
    그 결과 노동 운동에 대한 서술에서나 이와의 유비를 통해 제시하는 피투자자 운동의 모델에서나, 페어의 입장은 전형적인 ‘혁명적 조합주의(syndicalism)’의 전통과 공명하는 것처럼 보인다. 물론 이러한 관점 자체가 약점일 수는 없겠으나, 이로 인해 그가 제시하는 금융 시장에 대한 정치적 개입의 범위나 전략은 생각보다 제한적이고 일면적이다. 금융 시장을 정치적 실천의 장으로 재구성하자는 페어의 제안에 보다 충실하기 위해서는, 오히려 기존 노동 운동과의 유비를 더 철저히 밀어붙여 그 전략적 다양성을 참조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 말하자면, 페어가 제시하는 “또 다른 투기는 가능하다”는 피투자자 운동의 슬로건은,(235) 금융의 논리 자체를 활용한 금융 시장의 ‘내재적 지양’이 어떻게 가능할지에 대한 기존의 고민들,[11] 그리고 더 나아가 ‘금리 생활자의 안락사’나 ‘투자의 사회화’와 같이 정치권력에 의한 금융 자본의 ‘외부적’ 제어라는 보다 전통적인 문제의식과 함께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또한 금융 시장을 투쟁의 장으로 바꾸기 위한 페어의 전략은, 동시에 금융 외부의 사회 운동과 실천들과의 연결 지점도 마련해야 한다. 이 책 전체에 걸쳐 페어는 생산과 금융, 노동과 투자/투기를 대비시키고 있는데, 이는 발견론적으로 매우 유용한 시도이기는 하지만, 동시에 이 둘을 아무런 접점이 없는 별개의 범주처럼 보이게 하는 착시효과를 낳는다. 사실 자신의 평판 유지를 위해 추가적 감정 노동을 행하는 플랫폼 노동자들이나, 연구비를 투자받기 위해 밤새워 프로포절을 작성하는 연구자들, 각종 감사(audit)와 정기 평가를 준비하고 때로는 펀드 레이징 행사를 위해 격무에 시달리는 단체 활동가들의 사례처럼, 피투자자들이 투자자의 눈앞에 자신을 매력적인 투자처로 만드는 노력은 금융적 실천인 동시에 일상적으로 수행되는 노동이기도 하다. 물론 이러한 노동은 ‘자유노동자’에 의해 행해지는 고전적 형태의 상품 생산 노동이라기보다는, 인류학자 제임스 퍼거슨이 ‘분배 노동’이라고 명명한 이질적이고 변형된 새로운 형태의 노동일 것이다.[12]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가 피투자자의 실천을 노동과 유리된 금융 영역의 실천으로만 이해한다면, 이 투기와 노동 간의 흥미롭고 중요한 연결고리는 우리의 시야에서 사라져 버리고 만다. 여기서 자세히 다룰 수는 없지만, 이 문제는 사실 산업과 금융의 관계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라는 보다 크고 오래된 질문과 무관하지 않다. 결과적으로 금융을 투쟁의 장소로 재구성하자는 페어의 제안이 기존의 노동 운동 혹은 플랫폼 경제 영역에서 새롭게 등장하고 있는 노동 운동들과 연결되어 폭발력을 가지기 위해서는, 금융과 생산, 투기와 노동의 이분법을 넘어 실제 현실에서 금융 영역의 ‘수탈(expropriation)’과 생산 영역의 ‘착취(exploitation)’가 어떻게 중첩되고 상호 연결되는지 검토해 보자는 낸시 프레이저의 최근 제안에 좀 더 주목할 필요가 있어 보인다.[13]
    마지막으로 금융에 제한된 페어의 기획을 좀 더 확장하기를 원하는 입장에서, 피투자자가 사물 및 세계와 맺고 있는 관계의 형식으로서 ‘투자/투기’의 상상과 실천에 대해 페어가 보다 심층적으로 다루지 않은 것 역시 아쉬움으로 남는다. 사실 ‘신자유주의적 조건’ 혹은 금융화된 주체성의 토대로 ‘투자/투기’의 전면화를 제시하는 페어의 주장은 보기보다 상당히 야심 차고 논쟁적인 주장이다. 이는 근대 자유주의 사상이 ‘인간 조건(human condition)’으로 제시해 왔던 ‘교환(소유)’ 혹은 ‘생산(노동)’에,[14] 이를 대리 보충하는 새로운 차원을 덧붙이고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주장을 통해 페어는 지난 40년간 자본주의의 신자유주의화 혹은 금융화를 근대의 지평을 넘어서는 결정적인 변화로 자리매김한다. 프랑스어판의 부제 ‘새로운 사회 문제에 관한 에세이’에서도 드러나듯이, 교환과 노동이 아닌 투자/투기의 관점에서는 사물과 권리, 사회, 정치에 대한 상상과 관계 맺음의 형식 자체가 전면적으로 변화할 것이다. 예컨대, 교환의 관점에서 노동력을 포함한 사물은 소유되거나 양도되어야 하는 것이고, 이는 권리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근대 사회는 양도 가능한 사물의 시장 교환과 양도 불가능한 선물의 논리가 만나는 지점에서, 근대 정치는 개인이 소유한 주권의 양도 가능성과 불가능성이 대립하는 지점에서 각각 등장했다. 그렇다면 미래의 불확실성과 구조의 자기 준거성(self-referentiality), 레버리지 전략에 기대고 있는 투자/투기의 실천은 이러한 근대의 배치들을 얼마나 근본적으로 변화시킬까?[15] 금융에 대한 비판적 개입 전략을 구체화하는 책의 목표상, 이러한 질문에 대한 고민은 충분히 심화되지 못했다. 이러한 공백을 채우는 것은 아마 페어에 자극받은 연구자들의 몫이거나, 부록으로 실린 인터뷰에서 언급한 페어 본인의 장기 연구 프로젝트 “주체성의 계보학”이 향후 내놓을 결과물을 기다려야 할 것으로 보인다.(245)

    5. 나가며: 금융 비판을 고민하는 이들을 위한 필독서

      페어의 《피투자자의 시간》은 금융 자본주의를 분석할 수 있는 새로운 가지성의 틀과 개념들을 제시할 뿐 아니라, 이를 통해 금융에 대한 기존 비판 담론들의 의의와 한계를 돌아보게 한다. 또한 무엇보다도 금융 자본주의에 대항하는 실천을 위한, 비록 제한적이기는 하지만 명쾌하고 설득력 있는 전략을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을 사회 비평이나 이론적 논의를 넘어서 일종의 ‘실천 매뉴얼’로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마지막으로 덧붙이고 싶은 이 책의 또 다른 장점은, 풍부하게 축적되어 온 산업 자본주의 분석을 금융의 영역에 유비 적용하는 페어의 논의가 계속해서 새로운 질문을 자극한다는 것이다. 몇 가지만 예를 들면, 피투자자에게 노동자의 ‘소외’와 유비될 수 있는 것은, 투자의 흐름에서 제외된 것에서 오는 ‘우울’이나 혹은 반대로 ‘가면 증후군’ 같은 것일까? 표면적으로는 평등하나 실질적으로는 불평등한 노동력 상품의 교환에서 발생하는 ‘착취’는 투자자-피투자자 간의 관계에도 변형되어 적용될 수 있을까? 우리는 리스크 측정과 가치화 실천에 기반해 상품 생산의 노동가치론에 해당하는 새로운 ‘객관적’ 가치론을 고민해야 할까, 아니면 금융 가치는 상품과는 근본적으로 다른 매커니즘―자기 준거적 구조와 이를 뒷받침하는 폭력―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아야 할 것인가 등등. 비록 세부적인 내용에 있어서는 논쟁의 여지가 있다 하더라도, 앞선 논의들을 명쾌하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정리하고, 이를 통해 기존의 현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도우면서, 흥미로운 질문과 사유를 계속해서 자극하는 책을, 관련 분야의 ‘필독서’라 부를 수 있다는 데에는 아무 이견이 없을 것이다. 신자유주의와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의 가능성을 고민하는 모든 이들에게 필독을 권한다.
      끝으로 이 책의 번역과 관련해 한마디 덧붙여야 할 것 같다. 페어의 글은 정신분석학과 금융경제학, 정치 철학과 경영 담론을 넘나들 뿐 아니라, 페어 본인이 독자적으로 사용하는 ‘self-appreciation’이나 ‘creditworthiness’ 같은 개념들은 한국말로 옮기기 상당히 까다롭다. 거기에 덧붙여, 페어는 ‘investment’, ‘credit’, ‘stake’, ‘bond’와 같은 용어들에 의도적으로 다중적인 의미를 담아 사용하기도 한다. 번역자 조민서는 이 까다로운 텍스트를 자연스러운 한국어로 번역해 냈으며, 부록으로 수록된 저자와의 인터뷰와 옮긴이 후기는 책의 논점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번역이 체계적으로 저평가되는 한국 학계와 출판계의 현실에서 ‘원서보다 나은 번역서’를 생산해 낸 번역자와 편집자의 노고에 감사와 함께 그들이 받아야 할 정당한 크레딧을 보낸다. 아마도 이것 역시 이 책이 말하는 ‘대항 투기’의 한 실천일 것이다.


        [1] 미셸 페어(2023), 《피투자자의 시간》, 조민서 옮김, 리시올, 315쪽에서 재인용.

        [2] 채효정(2022), 〈은행을 접수하라〉, 《문화/과학》 109, 130쪽.

        [3] 웬디 브라운(2020), 〈좌파 멜랑콜리에 저항하기〉, 《문화/과학》 101, 강길모 옮김. ‘세계 없음’의 감각에 대해서는 서동진(2014), 《변증법의 낮잠》, 꾸리에 참고.

        [4] 이후 페이지 표시는 국역본을 따르며, 필요할 경우 번역은 일부 수정했다.

        [5] 이 논문은 《피투자자의 시간》 출간과 거의 동시에 동일한 번역자에 의해 번역·출판되었다. 미셸 페어(2023), 〈자신의 가치를 상승시킨다는 것, 혹은 인적 자본의 열망〉, 《문학과 사회》 141, 조민서 옮김.

        [6] “실제로 ‘자유로운 노동자’가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으로 생각하려면 그는 자기 자신은 상품이 아니라고 확신해야 한다.” 미셸 페어(2023), 〈자신의 가치를 상승시킨다는 것, 혹은 인적 자본의 열망〉, 《문학과 사회》 141, 조민서 옮김, 368쪽.

        [7] 이 책의 영어판 제목이기도 하다.

        [8] 가치화 연구에 대한 개략적인 소개로는 이승철(2022), 〈사회적인 것을 계산하기〉, 《한국문화인류학》 55(1) 참고. 이들의 구체적 연구성과는 영문 저널 Valuation Studies에서 확인할 수 있다.

        [9] 자산화 연구와 관련해서는 Fabian Muniesa & Kean Birch(2020), Assetization, e MIT Press 참고.

        [10] 대표적인 저작으로는 Brett Christopher(2020), Rentier Capitalism, Verso.

        [11] 페어는 전혀 언급하지 않고 있지만, 금융 시장의 논리를 활용해 탈금융화를 꾀하려는 시도나 아이디어가 전무했던 것은 아니다. 로빈 블랙번이 제안한 ‘연기금 사회주의론’이나 존 로머의 ‘쿠폰 사회주의론’, 최근에 김종철이 제안하는 ‘기본 자산제’ 등은 모두 금융화라는 조건을 수용하는 동시에 이를 통해 탈금융화를 추구하는 제안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들에 대해서는 Robin Blackburn(1999), “e New Collectivism”, New Left Review 233; 존 로머(1996), 《새로운 사회주의의 미래》, 고현욱·강문구 옮김, 한울; 김종철(2020), 《기본소득은 틀렸다》, 개마고원 참고.

        [12] 제임스 퍼거슨(2017), 《분배정치의 시대》, 조문영 옮김, 여문책.

        [13] 낸시 프레이저(2023), 《좌파의 길》, 장석준 옮김, 서해문집.

        [14] 이러한 인식을 상징적으로 보여 주는 발언은 각각 “인간에게는 교환하려는 성향이 있다”는 《국부론》에서의 에덤 스미스의 잘 알려진 진술과, 《인간의 조건》에서 논의되는 “노동하는 동물(animal laborance)”이라는 한나 아렌트의 유명한 개념일 것이다.

        [15] 투기의 이러한 속성들에 대한 시론적 논의로는, Martijn Konings (2018), Capital and Time, Stanford University Press 참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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