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셸 페어가 2021년 초 벌어진 ‘게임스탑 사태’를 다룬 글인 <또 다른 투기는 가능하다>를 번역해 공유합니다. 이 글은 인류학자이자 «피투자자의 시간» 출간을 결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주신 이승철 선생님께서 옮겨 주셨어요. 이 글은 시드니 대학에 기반을 둔 ‘정치 경제학의 진보'(Progress in Political Economy, PPE)에 게재되었고, 미셸 페어와 PPE의 허락을 얻어 번역문을 블로그에 올립니다.
원문 링크: Another Speculation is Possible: The Political Lesson of r/WallStreetBets
게임스탑 사태(본문에 세부 정황이 나와 있어요)는 레딧에 모인 아마추어 투자자들이 대형 헤지 펀드와 플랫폼을 한 방 먹인 통쾌한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지노 자본주의의 위험과 어리석음을 보여 주는 사례 이상으로 해석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반면 미셸 페어는 투기의 동학을 이제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이 사태가 증언하고 있다 말합니다. 그러곤 물어요. “콘솔 비디오 게임과 구식 휴대 전화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 행해진 이 같은 실천들을 다른 목적을 위해서도 활용할 수 있을까?”
«피투자자의 시간»에서도 강조하듯 페어는 약탈적인 기업과 금융 기관에 불리한 방향으로 대항 투기를 벌이려면 “정치적으로 활동적인 ‘도박 공동체들’과 대안적인 ‘평가 기관들’[신용 평가사]로 이루어진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그리고 플랫폼의 발달 덕분에 힘 없는 이들이 금융의 “자기 실현적 예언” 게임에 참가해 영향력을 발휘하기 수월해졌다고 말하면서 “이제 또 다른 투기가 가능해졌다”고 주장해요.
게임스탑 사태는 금융 자본주의에 의식적으로 도전한 사례는 아닐지라도 이런 전략들의 활용 가능성을 드러내 준 사건이라 할 만해요. 이런 가능성에 주목하다 보면 우리의 관심사도 어떤 액티비즘이 ‘정치적으로 순수하냐’에서 ‘다른 목적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느냐’로 옮겨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울러 게임스탑 사태에서 일반 투자자들이 “금융시장의 자기참조적 구조”를 간파해 활용했고, 이 ‘운동’이 포퓰리즘적 요소를 포함했음을 분석하는 이승철 선생님의 논문 <금융의 프랑스 혁명?: 게임스탑 사태와 투자자 포퓰리즘의 등장>(«문화연구» 10.1, 2022)도 함께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오픈 액세스라 무료로 다운받아 볼 수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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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투기는 가능하다
월스트리트베츠의 정치적 교훈
미셸 페어
이승철(서울대 인류학과) 옮김
게임스탑 사태를 둘러싸고 쏟아진 뜨거운 반응들을 보면 다음의 세 가지 공통점이 발견된다.[1] 첫째, 거의 모든 사람이 동의하겠지만 이 사태는 너무 재미있다! 아마추어 투자자로 이루어진 레딧Reddit 커뮤니티가 대형 헤지 펀드들을 한 방 먹이고 (적어도 일시적으로나마) 승리했다는 사실은 기쁨의 함성을 자아낸다. 둘째, 이에 대한 월스트리트의 반응과 (레딧터들에 의해 사용되었지만 결과적으로 이들의 승리를 앗아 간 투자 앱) 로빈후드Robinhood의 최근 대응은 모두에게 터무니없는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이 약탈자들은 다른 사람의 돈으로 도박을 벌이는 일이 전문가에게 맡겨져야 할 진지한 사업이라고 감히 주장하고 있으니 말이다. 상처받은 공매도 투자자들이 울음을 터뜨린 건 수십억 달러의 손해 때문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자신들이 금융계의 냉소적 천재가 아니라 신참자도 간파할 수 있는 그리 세련되지 못한 기술을 가진 야바위꾼임이 폭로됐다는 사실도 이들을 괴롭혔을 것이다. 셋째, 앞으로 이 글에서 설명하겠지만 불행히도 이 사태에 대한 대부분의 논평가—특히 좌파 논평가—는 이 레딧 봉기가 가진 정치적 의미를 과소평가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워런이나 알렉산드리아 오카시오-코르테즈 같은 쟁쟁한 진보주의자들은 분명히 멜빈 캐피털Melvin Capital을 포함한 헤지 펀드들의 고난에 즐거워했다. 오카시오-코르테즈는 금융 기관의 거래는 자유롭게 놔두면서 일반 유저들의 게임스탑 주식 추가 매수는 막아 버린 로빈후드의 결정에 대해 국회 청문회를 열 것을 재빠르게 요구했다. 그러나 매사추세츠 상원 의원(워렌)도, 뉴욕 하원 의원(오카시오-코르테즈)도 이 사태를 카지노 자본주의의 어리석음을 보여 주는 교훈적 우화 이상으로 여기지 않았다. 이들이 레딧터들의 반격에서 끌어낸 주된 정치적 교훈은 월스트리트가 세금이나 규제를 통해 약간의 이성을 배울 필요가 있다는 것뿐이었다.
표면적으로는 워런이나 오카시오-코르테즈, 그리고 두 사람과 의견을 같이하는 칼럼리스트들의 견해가 옳다. 레딧의 월스트리트베츠r/WallStreetBets 포럼에 모인 수많은 아마추어 투자자는 헤지 펀드에 한 방 먹이기를 간절히 원하기는 했지만 ‘월가 점령 운동’Occupy movement의 계승자는 아니다. 이들의 주된 목적은 돈을 버는 것이지 금융 자본주의에 도전하는 것이 아니다. 또한 게임스탑과 여타 소매 기업—예를 들어, AMC나 베드 배스 앤드 비욘드Bed Bath and Beyond, 블랙베리, 노키아 등—을 공매도 투자자로부터 구하는 일이 그린 뉴딜이나 인종 정의, 보편적 의료 보험과 같은 진보적 의제로 발전할 것 같지도 않다.[2] 하지만 이들의 대의나 의도와 상관없이 이들 레딧터의 행위는 오늘날 투기speculation가 우리가 생각해 온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사람에게 이용 가능해졌다는 사실을 증언하고 있다. 막대한 판돈이 걸린 도박이 더 이상 은행, 뮤츄얼 펀드, 연기금 펀드, 헤지 펀드의 전유물이 아니라는 사실은 다음과 같은 정치적 질문을 제기한다: 콘솔 비디오 게임과 구식 휴대 전화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 행해진 이 같은 실천들을 다른 목적을 위해서도 활용할 수 있을까?
좋든 나쁘든 (지금까지는 대체로 나쁜 쪽이었지만) 플랫폼은 우리의 ‘멋진 신세계’에서 핵심적인, 심지어 시장보다 더 중요한 제도가 되었다. 시장이 상품들이 교환되는 장소라면, 플랫폼은 기본적으로—이 단어의 소셜 미디어적 의미에서—‘공유’sharing를 위한 것이다. 플랫폼은 자원을 모으고 등급 평가rating를 통해 어떤 사람이나 물건에 귀속된 가치를 변화시킨다. 수요와 공급의 조정자로서 시장이 이윤의 실현을 가능케 한다면, 목적 공동체들의 안식처로서 플랫폼은 신용credit—금융적 신용뿐 아니라 도덕적 신용까지도—을 배분하는 데 있어 점점 더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다.
이를 보여 주는 예시로, 레딧 월스트리트베츠 커뮤니티는 단순히 게임스탑이나 멜빈 캐피털의 금융 등급에만 영향을 미친 것이 아니었다. 로빈후드가 앱 사용자들의 거래를 막았을 때 레딧터들은 도덕적 신용의 전선에서 반격을 가했다. 이들은 앱에 대한 수백만 건의 소비자 악평을 남겼고, 이에 따라 회사의 평판이 곤두박질치자 로빈후드는 그 결정을 철회할 수밖에 없었다.
중요한 것은 동일한 형태의 투기 테크닉이 매우 다른 관심을 가진 활동가 단체들에 의해서도 활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이미 정치화된 등급 평가 집단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를 상상하기가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니다. 예를 들어 트럼프 정부가 다코타 액세스 파이프라인Dakota Access Pipeline, DAPL 건설을 재승인했을 때 이 프로젝트에 반대해 온 시우족Sioux과 환경주의자 연합은 대중의 공감에 호소하고 법적 소송을 제기하는 것만으로는 자신의 대의를 발전시키는 데 충분치 않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이들은 2017년 ‘DAPL 투자 철회’Defund DAPL라는 캠페인을 시작했고, 개인 및 기관 투자자를 설득해 송유관 건설 비용을 대는 은행 및 송유관 건설에 관련된 회사 들에 제공된 수십억 달러의 투자금을 철회하는 데 성공을 거두었다. 이 활동가들이 간파한 것, 더 중요하게는 이들이 활동할 수 있었던 기반은 송유관들(DAPL뿐 아니라 키스톤 송유관Keystone XL Pipeline, 3라인 송유관Line3 Pipeline 같은)의 신용도creditworthiness와 미국 원주민 문화에 대한 가치 평가valuation 간의 부정적 상관 관계였다.[3] 다시 말해 시우족의 삶이 중요하게 여겨지기 위해서는 이 송유관 건설 프로젝트들에 대한 투자가 철회되어야 했다.
유사한 등식—‘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Black Lives Matter = 경찰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라Defund the Police’—이 2020년 여름 전례 없이 번져 나간 시위의 중심에 있었다. 여기서도 조지 플로이드와 브레오나 테일러의 살해 이후 행진한 수백만 명은, 인종적 정의를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여론전이나 법정 싸움에만 기댈 수 없다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4] 운동의 플랫폼이 명확히 밝혔듯 흑인의 삶을 지속적으로 가치 절하하는 기관들로—즉 경찰과 감옥 시스템으로—도덕적, 금융적 신용이 계속해 흘러들어 가는 한 흑인의 생명은 진정으로 중요해질 수 없다.
레딧 이용자들의 전략처럼, 투기적 액티비즘speculative activism은 신용도 추구를 부추기는 글로벌 금융과 디지털 플랫폼의 현저한 발달뿐 아니라, 다양한 신용 형태의 전환 가능성(몇몇 플랫폼은 투자를 유치하거나 철회시키기 위해 온라인 팔로워를 모으고, 다른 플랫폼들은 반대로 평판을 올리거나 낮추기 위해 자금을 조달한다) 및 다양한 자산 평가 간의 긍정적, 부정적 상관 관계에 기대고 있다. 이러한 운동이 번창하기 위해서는 정치적으로 활동적인 ‘도박 공동체들’과 대안적인 ‘평가 기관들’[신용 평가사]로 이루어진 생태계가 필요하다. 이러한 평가 기관들은 각종 조직과 캠페인의 사회적 임팩트와 환경적 영향, 윤리 위반 기록 등을 평가해, ‘도박 공동체들’이 자신의 대의를 결정하고 응원할 자와 반대할 자를 선정하는 데 도움을 주는 역할을 한다.
성공적인 투자 철회 캠페인에도 불구하고 투기는 특히 진보적 집단에서는 좋은 평가를 받는 행위가 아니다. 전통적으로 부유층의 전유물이었던 투기는 이익을 사유화하고 위기 때는 손실을 사회화하는 약탈적 속임수들과 연결되어 있다. 월스트리트베츠의 사례는 대중 역시 투기를 활용할 수 있음을 보여 주었지만, 경제를 카지노처럼 다루는 것에 대한 도덕적 거부감은 여전히 강하게 남아 있다.
웹사이트 인베스토피디아Investopedia에 따르면 ‘펀더멘털’에 기반해 투자 대상을 정하는 진지한 투자자investor와 장기적 고려 없이 변덕과 루머에 따라 행동하는 분별없는 투기꾼speculator을 구별해야 한다. 그러나 금융 분석가들의 세계를 벗어나면 이러한 구분은 매우 불분명해진다. 멜빈 캐피털의 관리자들은 분명히 스스로를 진지한 투자자라고 생각할 것이다. 이들이 게임스탑의 주식을 공매도하기로 결정한다면, 그것은 그 회사의 경제적 전망이 좋지 않다고 믿기 때문일 것이다. 하지만 동시에, 일단 결정이 내려지면, 이들은 금융의 마술사라는 자신의 명성을 활용해 그 전망이 자기 실현적 예언이 되도록 만든다. 결과적으로 이들의 평가가 투자자들이 가치라고 부르는 것을 ‘표현’하는지 아니면 실제로 ‘결정’하는지는 답하기 어려운 문제가 된다. 금융 자본주의의 지지자들은 우리에게 투기적 흐름은 일시적이고 시장은 궁극적으로 효율적이라고 강변한다. 반면 이단적 경제학자와 진보적 정치인 들은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 지난 수십 년은 후자의 입장이 옳다는 것을 보여 주었지만, 투자자들은 여전히 골드만 삭스의 전 CEO 로이드 블랭크페인이 “신의 일”God’s work이라고 부른 일들을 자유롭게 행하고 있다.[5]
가치화valuation의 영역에서 월스트리트에 도전하고 싶은 활동가들은 판사나 선출직 공무원, 규제 기관 혹은 총파업이 내재적 정의를 실현해 주기를 기다릴 수도 있다. 그러나 참을성이 바닥날 경우, 월스트리트베츠의 선례를 따라 금융 자본가들에게 그들 자신이 가진 약의 쓴맛을 맛보여 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들 활동가 중 일부는—비록 그들 자신은 스스로를 투기자로 부르기 싫어할지 몰라도—이미 이러한 일을 하고 있다. 예를 들어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는 구호는 단순한 사실 진술이 아니다. 이 구호는 경찰과 감옥 산업에서 경제적 자원과 사회적 서비스, 보건과 교육으로 신용 할당의 방향을 변경하는 것을 목표로 하는 하나의 투기 제안이기도 하다.
게임스탑 광풍에서 정치적으로 의미 있는 것은 힘없는 자들이 살찐 자본가들을 그들 자신의 게임을 통해 깨부수었다는 포퓰리즘적 이야기도(물론 이는 재밌는 이야기지만), 월스트리트가 제정신이 아님을 다시 한번 상기시켜 주었다는 것도 아니다(우리는 이 사실을 이미 잘 알고 있다). 이들 레딧터가 우리에게 전하는 중요한 메시지는, 월스트리베츠를 가능케 했던 공유 및 평가 플랫폼의 발달로 인해, 이제 또 다른 투기가 가능해졌다는 것이다.
[1] [옮긴이] 게임스탑 사태란 2021년 1월 마지막 주, 미국의 오프라인 비디오 게임 판매 업체 게임스탑의 주식 가격이 급격히 변동한 사건을 말한다. 이 사태는 1월 22일 멜빈 캐피털을 포함한 대형 헤지 펀드들이 게임스탑 주가가 하락할 것을 예상하고 주식을 대량으로 공매도(short selling)한 사실이 투자 커뮤니티 레딧 월스트리트베츠에 알려지면서 시작되었다. 소식을 접한 월스트리트베츠 회원은 자신들이 게임스탑 주식을 추가 매수해 주가를 유지시키면, 공매도를 위해 빌려 온 주식을 특정 일[특정일 or 특정한 날?]까지 되갚아야 하는 헤지 펀드 세력들이 필요한 주식을 구하기 힘들어짐에 따라 주가가 급격히 상승하는 ‘숏 스퀴즈’가 발생할 것으로 보고, 게임스탑 주식 구매 캠페인을 벌여 나갔다. 실제로 게임스탑 주가가 1월 22일 이후 급등해 40달러 선에서 1월 28일 장중에는 483달러까지 상승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주식 구매 앱 로빈후드는 게임스탑 주식 구매 버튼을 비활성화해 버렸고, 이에 따라 주식 구매 속도에 제동이 걸리면서 주가가 하루 만에 폭락하는 것으로 사태가 일단락되었다. 여러 보도에 따르면 게임스탑 사태로 인해 헤지 펀드 공매도 세력은 약 200억 달러의 손실을 본 것으로 추정된다. 특히 멜빈 캐피털은 이 손실을 극복하지 못하고 결국 2022년 5월 파산 절차를 밟았다. 게임스탑 사태의 자세한 전개 과정과 그 의의에 대해서는 이승철, <금융의 프랑스 혁명?: 게임스탑 사태와 투자자 포퓰리즘의 등장>, «문화연구» 10(1), 2022를 참고할 것.
[2] [옮긴이] 월스트리트베츠를 중심으로 한 온라인 투자자 커뮤니티들은 게임스탑뿐 아니라 미국 극장 체인 AMC나 생활 용품점 베드 배스 앤드 비욘드, 구형 휴대 전화 회사 블랙베리와 노키아 등의 주식 구매 운동을 벌이기도 했으며, 이에 따라 이들 회사의 주식 역시 상승했다. 언론에서는 이제는 경쟁력이 떨어졌지만 온라인 투자 커뮤니티에 의해 가격이 상승한 이들 주식을 일컬어 ‘밈 주식’meme stocks이라 이름 붙이기도 했다.
[3] [옮긴이] 다코타 액세스 파이프라인은 미국 노스다코타주의 바켄Bakken 유전에서 시작해 사우스다코타와 아이오와를 경유해 일리노이주에 이르는 1,800킬로미터 길이의 송유관이다. 이 송유관의 건설은 시우족을 포함한 여러 북미 원주민 부족의 생활 공간과 자연 환경을 파괴할 것으로 예상되었으며, 이에 따라 격렬한 반대 시위를 낳았다. 미 중서부를 가로질러 캐나다 앨버타주와 미국 텍사스주를 잇는 키스톤 송유관과 캐나다 앨버타주와 미국 위스콘신주를 잇는 3라인 송유관 역시 유사한 반대에 부딪혔다. 다코타 액세스 파이프라인 투자 철회 운동의 의의는 미셸 페어의 «피투자자의 시간» 1장에서도 설명되고 있다.
[4] [옮긴이] 2020년 3월 미국 켄터키주에서 경찰의 과잉 진압으로 발생한 브레오나 테일러 사망 사건과 2020년 5월 미네소타주에서 조지 플로이드가 경찰 진압 과정에서 질식사한 사건은 이후 미 전역에서 벌어진 ‘흑인의 생명은 중요하다’ 운동의 도화선이 되었다. 이 운동 과정에서 ‘경찰에 대한 투자를 철회하라’라는 구호가 제기되었다.
[5] [옮긴이]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가 한창이던 2009년에 위기를 야기한 월스트리트 투자 은행들이 자사 직원들에게 많은 보너스를 지급해 논란의 대상이 되었다. 당시 골드만 삭스의 CEO였던 블랭크페인은 한 인터뷰에서 이러한 보너스 지급 결정을 옹호하면서 금융이 하는 일은 사회적 부를 증진시키는 “신의 일”이라 말해 빈축을 산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