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광객의 철학» 증보판

2020년 한국어판 초판이 출간된 «관광객의 철학»의 증보판이다. 다방면에 걸쳐 이어 온 지은이의 작업을 종합하고 새로운 전개를 선언한 책에, 시간이 지나며 변화한 세계상과 다른 언어로 번역되는 과정에서 이해의 맥락을 보충한 글들이 덧대어졌다. 또 «정정 가능성의 철학» 등 후속 작업과의 연결성을 보강하는 글들을 추가해, 발전과 생성의 도상에 있는 철학자 아즈마 히로키의 대표작으로서 위상을 공고히 했다.

«관광객의 철학» 초판은 세계 시민의 이상이 흔들리고 새로운 내셔널리즘의 시대가 도래하고 있는지 모른다는 우려가 고개를 들던 2010년대 후반에 쓰였다. 이 위기를 타개할 단서를 타국과 자국을 오가며 우연한 만남을 발생시키는 ‘관광객’에서 찾는 정치 철학의 제기가 처음에는 사뭇 도발적으로 받아들여졌으나, 2019년 말부터 수년간 세계를 휩쓴 코로나 팬데믹,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같은 사건은 이 책이 경고한 내셔널리즘의 반동과 세계화의 위기를 절실한 현실 문제로 만들며 책에 새로운 의미 차원을 더했다.

추가로 수록된 글들 가운데 특히 ‘보론’은 현대 정보 기술 사회가 던지고 있는 시급한 철학적 문제를 그려 내며 책의 문맥을 확장한다. 9장 <촉시적 평면에 대하여>는 터치 패널과 인터페이스의 보급이 만들어 낸 ‘촉시적 평면’의 시대가 인간 주체와 인문 지식의 존재 방식에 초래하고 있는 변화를 살펴본다. 10장 <우편적 불안에 대하여>는 지은이가 30년 지적 이력 동안 천착해 온 확률적 불안의 문제를 불러와, 정보 기술의 발달과 함께 대두한 ‘알고리즘 통치성’이라는 과제를 명료화한다. 이렇듯 독창성과 현재성을 더한 «관광객의 철학» 증보판은 앞으로 더 많은 독자를 얻어 나갈 아즈마 히로키 철학의 입문서 역할을 톡톡히 할 것이다.

«관광객의 철학» 증보판

«나선형 상상력»

비평가 후쿠시마 료타가 지난 헤이세이 연간(1989~2019)의 일본 문학이 마주했던 과제와 그 유산을 결산한 책. 헤이세이는 냉전의 종식, 장기 불황의 시작, 소셜 미디어의 출현 등 일본 안팎에서 사회상의 급변이 일어난 시기다. 이 시기 문학계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 다와다 요코, 무라타 사야카 등이 세계적 인기를 얻은 반면, 국내적으로는 출판 시장이 급속히 위축되고 문학의 위상이 실추되었다.

이 책은 이런 배경 위에서 헤이세이 동안 일본 문학의 현장과 내용에 일어난 근본적 변화를 검토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가들로 구성된 헤이세이 문학을 포착하기 위해 여섯 개의 ‘문제군’을 제시한 다음 이들을 ‘나선형 상상력’이라는 하나의 형상으로 엮어 낸다.

급변하는 세계가 만들어 낸 나선형 운동에 끝없이 포획되면서도 이탈을 꾀했던 헤이세이 문학의 유산을 올바르게 상속하고 문학의 진지를 다시 세우려는 비평적 노력이 우리 자신의 과제 또한 일깨운다.

«나선형 상상력»

«쿠튀리에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

시몬 베유에게 신은 군림하며 명령하는 존재가 아니다. 신은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 포기와 사랑을 실천하는 존재다. 사망하기 직전인 1942~1943년에 집필한 종교사 및 유럽 문명 관련 글 여섯 편을 묶은 이 책은 독특한 신 개념에서 출발하는 베유의 신학적 확신과 물음을 최종적으로 담고 있다. 이 글들에서 베유는 그리스도교가 변질 또는 타락한 배경을 뒤쫓고 모두의 영성적 존엄성에 입각한 사회 질서를 스케치한다.

베유는 고등 사범 학교를 졸업한 뒤 한동안 노동 운동에 투신했고 스페인 내전에도 참여했다. 또 2차 대전이 발발한 다음에는 프랑스 망명 정부에 합류하는 한편 서양 세계가 맞이한 위기의 근원을 해명하고자 분투했다. 당시 서양은 의회 민주주의의 공허성, 권력자 신을 숭배하는 종교들의 타락, 파시즘의 독재 사이에서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런 경험들이 안긴 절망과 그로부터 피어난 새로운 비전이 이 글들에 새겨져 있다.

«쿠튀리에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은 집단 학살의 교과서적 사례다”
“금세기 어떤 전쟁도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자행하는 절멸 캠페인에 근접조차 하지 않는다”

2023년 10월 이래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의 민간인을 살상하고 도시를 파괴하며 인도적 구호를 차단해 왔다. 75년간 이스라엘에 지배당한 팔레스타인 인민은 수많은 공격과 탄압을 감내해야 했지만, 가자 지구를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이번 침공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참혹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책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음에도 태연히 집단 학살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번 학살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분석하려는 시도다. 반제국주의 시각에서 오랫동안 중동의 지정학적 현실을 연구해 온 질베르 아슈카르는 이전의 관찰과 사태의 추이에 기초해 작금의 학살을 이해할 실마리를 던져 준다.

번역은 한국에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을 알리고 BDS 운동에 힘써 온 ‘팔레스타인 평화 연대’가 맡았다. 번역에 더해 상세한 옮긴이 주와 해제로 팔레스타인 역사의 생소함을 완화한 이 책은 이번 학살 전쟁에 대한 시각과 통찰을 길러 주는 역할을 맡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자본주의 리얼리즘» 2판

2018년에 번역되어 한국 독자들에게 마크 피셔라는 비평가를 각인한 «자본주의 리얼리즘» 2판이 출간되었다. 2022년 영국에서 발표된 원서 2판에는 마크 피셔의 부인인 조이 피셔의 <서문>, 동료이자 비평가인 알렉스 니븐의 <서론>, 소설가로 피셔와 함께 제로 북스와 리피터 북스를 설립한 타리크 고더드의 <후기>가 수록되었다. 이번 한국어 2판에서도 이 글들을 번역해 실었고, 그 외에 본문 번역과 디자인을 소폭 손질했다.

자본주의는 우리의 사회적 상상력을 거의 완전히 잠식했다. 자본주의의 종말보다 세계의 종말을 상상하는 것이 더 쉬울 정도다. 자본주의가 우리의 삶뿐 아니라 생각의 지평까지 장악한 이런 상황을 이 책은 ‘자본주의 리얼리즘’이라는 개념으로 분석한다.

자본주의는 스스로를 유일하게 유지 가능한 체계로 내세우지만, 실제로는 모순과 비일관성으로 가득 차 있다. 이 책은 자본주의 리얼리즘의 지배에 균열을 낼 가능성을 모색하고자 한다. 달리 말해 자본주의가 자신이 약속하는 바를 결코 지킬 수 없는 실패한 체계임을 폭로하고 비판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기존의 이론적 개념들을 이용해 각종 문화 현상을 명민하게 분석하는 이 책으로 마크 피셔는 동시대 영국의 가장 중요한 이론가 대열에 속하게 되었고, 당시 새롭게 등장한 정치 운동과 호흡을 같이하며 젊은 세대 공중의 지지를 얻었다. 나아가 ‘개인화된 정신 건강’, ‘새로운 관료주의’, ‘참신함을 만들어 낼 수 없는 문화적 무능’ 등의 쟁점은 우리 사회로 가져와 다시 읽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자본주의 리얼리즘» 2판

«푸코: 그의 인격, 그의 사유»

폴 벤느는 1950년대 파리 고등 사범 학교에서 처음 푸코를 만나 그가 세상을 떠날 때까지 가까운 친구이자 지적 동지로 지냈다. 푸코주의를 역사학에 접목하는 한편 푸코 후기 작업이 고대사를 탐사하는 데 든든한 조언자 역할을 했던 벤느는 2008년 자신의 결정적 푸코론인 «푸코: 그의 인격, 그의 사유»를 펴내 오랜 벗에게 마지막 헌사를 바쳤다.

이 책에서 벤느는 푸코에 대한 오랜 오해를 교정하고 그의 유산이 가진 의미와 잠재력을 전하는 데 진력한다. 그에 따르면 푸코는 무엇보다도 회의주의 철학자였다. 이 책은 푸코 작업의 전반을 아우르며 푸코 사상에 대한 가장 일관되고 에두르지 않는 설명을 제공한다. 그 과정에서 교차하는 벤느의 기억 속 인간 푸코의 면모는 회의주의적 고고학자이자 전투적 행동주의자였던 푸코의 초상을 선연히 그려 낸다.

이 책은 «푸코, 사유와 인간»(이상길 옮김, 산책자, 2009)의 전면 개정판이다. 번역을 새롭게 가다듬고 주석의 보완 외에도 초판 부록이었던 푸코 연보와 저작 목록을 최신화했다. 더불어 2021년 ‘푸코 스캔들’의 전말과 함의를 담은 옮긴이 에세이 <푸코를 불태워야 하는가?>를 ‘개정판 후기’로 수록해 출간의 의의를 더했다.

«푸코: 그의 인격, 그의 사유»

«k-펑크» 1: 책, 영화, 텔레비전

영국 비평가 마크 피셔는 자본주의 리얼리즘, 유령론, 대중 모더니즘 같은 개념으로 새로움의 충격을 상실한 우리 문화를 독창적으로 진단하고, 과거와 현재의 문화 생산물에 여전히 남아 있는 잃어버린 미래의 흔적들을 면밀한 주의력으로 찾아냈다. 그는 컬트 인사가 되었고, 그런 뒤에는 21세기의 가장 흥미로운 영국 비평가 중 한 명이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것이 k-펑크라는 블로그에서 시작되었다.

2017년 피셔가 비극적으로 생을 마감한 후 그가 공동 설립한 리피터 북스에서는 2018년 블로그 게시물, 여러 잡지와 저널에 기고한 평론, 각종 매체와의 대담, 미발표/미완성 글 다수를 묶어 800여 쪽에 달하는 «k-펑크»를 펴냈다. 리시올 출판사에서는 10여 년의 시간과 방대한 영역을 아우른 «k-펑크»를 완역할 계획이며, 첫걸음으로 책, 영화, 텔레비전을 다루는 1~2부를 1권으로 선보인다.

«k-펑크» 1권은 밸러드, 버로스, 크로넨버그, 70~80년대 모더니즘 방송 체제, «샤이닝»과 «배트맨»과 «헝거 게임» 등 책과 영화, 텔레비전에서 피셔가 채굴한 가능성의 조각들을 담고 있다. 이 책에 수록된 글을 읽으며 우리는 불안과 권태가 공존하는 현실에 구멍을 내고자 한 어느 명민한 정신이 사고의 건축물을 쌓아 올린 과정을 들여다보게 된다. 날카로우면서도 정서적이고, 도발적이면서도 관대한 피셔의 비평은 읽기의 기쁨을 선사할 뿐 아니라 우리 자신의 현실을 진단하고 현재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다른 미래를 꿈꾸라고 부추긴다.

«k-펑크» 1: 책, 영화, 텔레비전

«피투자자의 시간»

«피투자자의 시간: 금융 자본주의 시대 새로운 주체성과 대항 투기»
미셸 페어 지음 | 조민서 옮김 | 364쪽 | 21,000원

2008년 금융 위기는 신자유주의를 넘어서야 한다는 열망을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그 뒤 신자유주의는 오히려 더 공고해졌으며, 특히 금융은 사회 전 분야에서 그 어느 때보다도 막강한 위력을 자랑한다. 이 책은 과거의 저항 방식을 고수하거나 ‘대안 없음’을 받아들이는 대신 금융 ‘내부’에서 금융에 맞서 도전을 제기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를 위해 금융화가 생산한 ‘피투자자’들이 자신의 주체성을 전유해 벌이는 ‘대항 투기’들에 주목한다.

신자유주의 이론과 정책은 개개인을 기업가적 주체로 만들고자 했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개혁의 결과 실제로 도래한 체제는 금융화였고, 막상 금융 권력이 헤게모니를 쥐고 나자 우리 대다수는 투자를 받기 위해 경제적, 비경제적 신용도를 끌어올리려 분투하는 피투자자가 되었다. 이 책은 우리가 피투자자라는 정체성을 전유해 반격을 가할 수 있다고 주장하며, 기업 경영, 국가 통치, 개인 품행이라는 세 영역에 초점을 맞춰 피투자자 액티비즘이 신용이라는 무기를 활용할 방안을 제시한다.

좌파가 현재 우울에 빠져 있는 것은 지난 수십 년간 신자유주의와 금융화의 공세에 패배를 거듭한 탓이다. 이 책은 우울을 우파 쪽으로 되돌리려면 익숙한 과거로 돌아가려 애쓰는 대신 현재의 조건을 포착하고 그 조건 안에 거주하면서 새로운 형태의 저항을 개시해야 한다고 말한다. 오늘날 좌파에게 필요한 것은 이 자기 실현적 예언 게임에 참가하는 것, 즉 주주와 채권자의 권력을 표적으로 삼아 신용이 할당되는 조건을 두고 당당하게 대항 투기를 벌이는 것이다.

«피투자자의 시간»

«읽기»

«읽기»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지음 | 안준범 옮김 | 224쪽 | 17,000원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은 전 세계 인문학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목소리 중 하나로, 그의 작업은 한국에도 다수가 소개되어 ‘서발턴’과 ‘포스트식민 페미니즘’ 같은 개념을 확고히 새겨 넣었다. 그렇지만 이들 개념이 너무나 강한 그림자를 드리운 탓에 그가 언제나 읽기의 책임을 요청하는 문학 비평가이자 교사로 쓰고 활동해 왔다는 사실은 제대로 환기되지 못했다.

«읽기»는 스피박이 2012년 5월에 인도의 푸네 대학에서 진행한 나흘간의 강연을 담은 책이다. 이 책에서 스피박은 읽기란 사회 정의를 향한 의지를 육성하는 행동이라는 자신의 오랜 지론을 다시 한번 역설한다. 그리고 그 정신에 입각해 프란츠 파농과 J. M. 쿳시, 엘리자베스 개스켈 등의 작품을, 그리고 자신의 과거 텍스트들을 읽는다.

«읽기»는 우리가 무엇을 위해 읽는지, 그 자신은 어떻게 읽는지를 일흔에 접어든 스피박이 우리에게 가르치는 책이다. 스피박의 문체는 난해하기로 유명하지만, 강의 형식을 취한 이 책은 스피박에 대한 이해를 가다듬을 기회를 마련해 준다. 또 문학적 훈련을 통해 상상력을 사용하라고 권하는 이 대가의 어조는 읽기가 사소해지고 있는 오늘날 특별히 감동적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요컨대 «읽기»는 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의 읽기들을 돌아보고 우리의 읽기를 위해 그의 읽기를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시키는 최상의 도구다.

«읽기»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시몬 베유 지음 | 이종영 옮김 | 124쪽 | 12,000원

1938년경 시몬 베유는 한 편의 글을 집필하기 시작한다. 유럽 대륙에 불길한 전쟁의 기운이 감돌던 시점에 쓴 이 글은 뜻밖에도 고대 그리스의 대표적인 서사시를 다루고 있다. 시몬 베유의 가장 중요하고 아름다운 논고 중 하나로 손꼽히는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가 바로 그 글이다.

리시올 출판사는 이제까지 국내에 번역된 적 없는 베유의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를 처음 번역 출간한다. 이 글에서 베유는 독창적인 방식으로 호메로스의 «일리아스»를 해석한다. 그가 보기에 이 서사시의 진짜 주인공이자 중심 주제는 위대한 영웅들이 아니라 힘이다. 베유는 힘의 논리에 입각해 «일리아스»를 읽고 이 서사시가 전쟁의 차가운 잔혹성과 공평성을 서구 역사상 그 어떤 작품보다도 선명하고 생생하게 드러낸다고 주장한다. 나아가 베유에게 이 시는 여러 형태의 순수한 사랑을 그림으로써 사람들이 힘의 포획에서 벗어나 영혼을 지니게 되는 “그 짧고 신적인 순간”을 묘사하고 있기도 하다.

이 책은 또 베유의 미완성 원고 <마르크스주의적 독트린은 존재하는가>를 함께 수록하고 있다. 중력과 은총의 대립으로 잘 알려진 베유의 사고 체계는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에서 힘과 거기서 빠져나오는 은총의 대립으로 형상화된다. 그리고 <마르크스주의적 독트린은 존재하는가>에서 이 대립은 베유가 마르크스주의 사고의 약점으로 지적하는 필연성과 초자연적인 것의 대립으로 이어진다. 이렇게 두 글은 «일리아스»와 마르크스라는 상이한 대상을 다루지만 힘과 필연성, 전쟁, 은총 등의 주제를 중심으로 동일한 짜임새를 갖추고 있다.

그 어느 때보다 힘과 권력이 숭배되고 힘의 격차는 나날이 벌어지는 오늘날 힘과 필연성, 불행, 선, 은총, 주의(관심), 교육 등에 대한 그의 성찰은 우리에게 사고와 태도의 방향을 제시해 준다. 이 새로운 번역을 통해 우리는 그동안 오해받았거나 잊혔던 시몬 베유의 생각들을 더 체계적으로 들여다볼 수 있을 뿐 아니라 우리 시대의 문제들에 그가 어떤 도전을 제기하는지도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일리아스 또는 힘의 시»

«커밍 업 쇼트»

«커밍 업 쇼트: 불확실한 시대 성인이 되지 못하는 청년들 이야기»
제니퍼 M. 실바 지음 | 문현아・박준규 옮김 | 352쪽 | 18,000원

«커밍 업 쇼트»는 신자유주의적 전환이 오늘날 ‘노동 계급 청년들’의 ‘성인기로의 이행’에 어떤 영향을 미쳤는지를 분석하는 사회학 저작이다. ‘선택의 부재’ 상황에 처해 있는 ‘노동 계급 청년’ 100명을 인터뷰해 이들의 가슴 아픈 이야기를 구체적이고도 생생하게 들려준다. 아울러 산업 노동을 대체한 서비스 경제에서 살아남고자 고투하는 여성과 비백인 청년의 현실을 함께 살펴봄으로써 신자유주의가 젠더와 인종의 선을 따라 어떻게 상이한 영향을 미치는지도 분석한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이런 상황에서 보수화된 청년들을 단순히 비난하는 것이 아니라, 이들이 신자유주의 담론을 스스로 재생산하게 되는 주체적 과정을 분석한다는 것이다. 성장하는 과정에서 배신과 좌절만을 경험한 청년들은 경쟁, 개인주의, 자립이라는 신자유주의의 문화적 각본을 받아들이고는 자립하지 못한 사람들을 배척한다. 또한 ‘무드 경제’의 명령에 붙들려 자아의 성장에 집중하는 탓에 시장과 국가 같은 강력한 제도들이 행사하는 힘을 시야에서 놓치게 된다.

이 책은 우리 자신과 타인, 공동체에 대한 이해 방식을 바꾸지 않는 한 불평등에 저항하는 연대를 수립하고 유지하기란 요원한 일이라는 메시지를 던진다. 그래야만 청년들이 성인이 된 이야기를 감정 관리로 환원하지 않고, ‘우리’라는 감각을 유지한 상태로 불안전 및 상실과 맞서 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커밍 업 쇼트»

«관광객의 철학»

«관광객의 철학»
아즈마 히로키 지음 | 안천 옮김 | 336쪽 | 18,000원

근대의 태동과 함께 출현한 세계 시민의 이상이 21세기 들어 흔들리고 있다. 배외주의적 정치 세력의 득세, 정치적 올바름에 대한 반발, 세계 각지에서 끊이지 않는 테러리즘. 세계는 새로운 내셔널리즘의 시대로 접어들고 있는 것일까? 그러나 이미 이루어진 지구화를 되돌리는 데는 많은 대가가 따른다. 무엇보다 우리 대부분은 그것을 원하지도 않을 것이다. 우리는 국민과 세계 시민 사이에서 분열되어 있다. «관광객의 철학»은 이 분열을 넘어서는 정치철학을 모색한다. 이때 관광객은 글로벌리즘과 내셔널리즘 사이에서 분열된 현대 세계를 다시 연결할 수 있는 정치적 주체의 상징이다.

«관광객의 철학»은 2000년대 정보 사회에 관한 독창적인 논점을 제기하며 일약 일본 비평계를 대표하는 인물로 떠올랐던 아즈마 히로키가 지난 20여 년의 활동을 결산해 “지금 시점에서 내린 결론”을 담은 책이다. 그는 이 책에서 칸트와 헤겔, 슈미트와 코제브 그리고 아렌트, 노직과 로티, 네그리와 하트 등 기존 정치철학을 대표하는 이론들을 면밀히 검토하고 또 비판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가다듬어진 ‘관광객의 철학’에 도스토옙스키부터 현대 SF에 이르는 문학이 보여 준 전망을 접목시킨다.

이 책은 흔하고 가까운 관광이라는 현상을 오늘날 우리가 처한 철학적 위기를 돌파할 실마리로 삼음으로써 진지함과 경박함, 공과 사 등 자유로운 사유를 가로막는 장벽들을 허물어뜨린다. 그리고 지금 이 시대에 필요한 철학이 무엇인지에 관한 생각을 솔직히 개진한다. ‘오배’, 즉 배송 사고를 목표로 하지만 누구에게나 ‘전달될 수 있는 언어’를 지향한다. 다방면에 걸쳐 이어져 온 지은이의 작업이 한 권의 책 안에서 유기적으로 맞물리며 하나의 문제의식으로 집약되는 것을 독자들은 직접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관광객의 철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