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융 자본에 맞서기 위한 실천 매뉴얼

인류학자 이승철 선생님께서 학술지 «문명과 경계» 7호(2023년 9월)에 «피투자자의 시간» 서평인 <금융 자본에 맞서기 위한 실천 매뉴얼>을 발표하셨습니다. 이승철 선생님의 허락을 구해 저희 블로그에도 게재합니다. 원문도 «문명과 경계» 홈페이지에서 자유롭게 다운받을 수 있으니 PDF로 보시고 싶으신 분은 아래 링크로 들어가 보세요.
원문: http://ricc.postech.ac.kr/bbs/board.php?tbl=journal&mode=VIEW&num=12&amp;

이승철 선생님은 일상 생활의 금융화와 포퓰리즘을 연구하고 있을 뿐 아니라 저희 블로그를 통해 페어의 글도 번역했을 정도로 미셸 페어의 작업을 꾸준히 살펴 오셨는데요. «피투자자의 시간»을 비평할 최적임자인 만큼 아주 명료하게 이 책의 장점과 약점을 짚어 주셨습니다.

“금융을 분석하고 문제 삼을 개념과 ‘가지성(intelligibility)’의 틀이 여전히 취약하고 부족하다”는 문제 의식을 밝히며 시작하는 이 서평은 «피투자자의 시간»을 이런 개념과 틀을 제공하는 작업으로 자리매김합니다.

서평에서 제시하는 이 책의 장점은 다음과 같습니다. 금융 자본주의를 비판하는 기존 논의들을 재배치한다는 것, 금융화와 관련된 동시대 사회과학 연구들과 긴밀히 연결되는 확장성을 지닌다는 것, 무엇보다도 금융 자본주의에 대응할 논쟁적이지만 일관된 전략을 제시한다는 것.

나아가 «피투자자의 시간»에서 제시하는 노동 운동과 피투자자 운동의 유비가 불완전하고, 금융 내부와 외부의 투쟁들 간 연결 고리가 부족하며, 투자/투기라는 인간 조건이 사물과 권리, 사회, 정치에 대한 상상과 어떤 관계를 맺는지는 다루지 못했다는 아쉬움을 드러내기도 합니다.

서평은 “앞선 논의들을 명쾌하고 비판적인 관점에서 정리하고, 이를 통해 기존의 현상을 새롭게 바라볼 수 있게 도우면서, 흥미로운 질문과 사유를 계속해서 자극하는 책”이라는 평가로 마무리됩니다.

«피투자자의 시간»의 의의와 미진한 점 모두를 명료하고 균형 감각 있게 짚어 주신 이승철 선생님께 감사드립니다. «피투자자의 시간»뿐 아니라 금융 자본주의에 대한 비판적 논의에 관심 있는 분들은 꼭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

금융 자본에 맞서기 위한 실천 매뉴얼

또 다른 투기는 가능하다

미셸 페어가 2021년 초 벌어진 ‘게임스탑 사태’를 다룬 글인 <또 다른 투기는 가능하다>를 번역해 공유합니다. 이 글은 인류학자이자 «피투자자의 시간» 출간을 결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해 주신 이승철 선생님께서 옮겨 주셨어요. 이 글은 시드니 대학에 기반을 둔 ‘정치 경제학의 진보'(Progress in Political Economy, PPE)에 게재되었고, 미셸 페어와 PPE의 허락을 얻어 번역문을 블로그에 올립니다.
원문 링크: Another Speculation is Possible: The Political Lesson of r/WallStreetBets

게임스탑 사태(본문에 세부 정황이 나와 있어요)는 레딧에 모인 아마추어 투자자들이 대형 헤지 펀드와 플랫폼을 한 방 먹인 통쾌한 사건으로 여겨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카지노 자본주의의 위험과 어리석음을 보여 주는 사례 이상으로 해석되는 경우는 많지 않은 것 같아요.

반면 미셸 페어는 투기의 동학을 이제 많은 사람이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는 것을 이 사태가 증언하고 있다 말합니다. 그러곤 물어요. “콘솔 비디오 게임과 구식 휴대 전화의 영광을 지키기 위해 행해진 이 같은 실천들을 다른 목적을 위해서도 활용할 수 있을까?”

«피투자자의 시간»에서도 강조하듯 페어는 약탈적인 기업과 금융 기관에 불리한 방향으로 대항 투기를 벌이려면 “정치적으로 활동적인 ‘도박 공동체들’과 대안적인 ‘평가 기관들’[신용 평가사]로 이루어진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역설합니다.

그리고 플랫폼의 발달 덕분에 힘 없는 이들이 금융의 “자기 실현적 예언” 게임에 참가해 영향력을 발휘하기 수월해졌다고 말하면서 “이제 또 다른 투기가 가능해졌다”고 주장해요.

게임스탑 사태는 금융 자본주의에 의식적으로 도전한 사례는 아닐지라도 이런 전략들의 활용 가능성을 드러내 준 사건이라 할 만해요. 이런 가능성에 주목하다 보면 우리의 관심사도 어떤 액티비즘이 ‘정치적으로 순수하냐’에서 ‘다른 목적을 위해 활용할 수 있느냐’로 옮겨 가지 않을까 싶습니다.

아울러 게임스탑 사태에서 일반 투자자들이 “금융시장의 자기참조적 구조”를 간파해 활용했고, 이 ‘운동’이 포퓰리즘적 요소를 포함했음을 분석하는 이승철 선생님의 논문 <금융의 프랑스 혁명?: 게임스탑 사태와 투자자 포퓰리즘의 등장>(«문화연구» 10.1, 2022)도 함께 읽어 보시면 좋겠습니다(오픈 액세스라 무료로 다운받아 볼 수 있어요).

또 다른 투기는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