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너무 슬픔»은 멀리사 브로더라는 여성이 살면서 겪은 정신적 고통과 중독, 로맨스와 섹스를 진솔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기록한 책입니다. 그중에서 솔직함이 특히 빛나는 대목은 여성인 자신에게 부과된 제약들에 대한 모순된 태도를 털어놓는 부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을 거부하고 싶은 한편으로 누구보다 거기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고픈 욕구, 다른 사람들은 다 잘 헤쳐 나가고 있고 나만 엉망진창인 것만 같은 불안 등 지은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이가 우리 대부분의 머릿속 생각을 대신 말해 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자신을 “심오하게 얄팍한 여자”라고 지칭하는 <온전하고도 깡마른 사람이 되고 싶어> 챕터 역시 그런 모순과 불만족스러움, 그럼에도 자신을 긍정하는 지은이의 태도가 잘 드러나는 글이고, 이 글이 독자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키길 기대하며 해당 챕터를 맛보기로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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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전하고도 깡마른 사람이 되고 싶어
나는 숫자를 먹는 먹보다. 나는 바코드가 찍혀 포장되어 나오는 식품을 선호한다. 그런 식품들은 칼로리를 계산하기가 편해서 내게 안정감을 주기 때문이다. 안정감이라 봤자 나 자신을 통제하고 있다는 환상에 불과하지만, 내게는 환상이야말로 세상에서 가장 중요하다. 환상을 얻으면 안전해지는 느낌이 든다. 마음에 평화가 생기는 것이다. 내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평화뿐이다.
나는 허영을 먹는 먹보고, 기계처럼 먹어 대는 먹보며, 내 기분을 억누르면서 먹는 먹보다. 나는 나중에 뭔가 달콤한 걸 한없이 먹을 즐거움을 손꼽아 기다리기 위해 온종일 칼로리를 제한한다. 영원히 계속될 듯한 내 허기를 채울 만한 음식은 이 우주 어디에서도 구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매일 밤 저칼로리 감미료를 여섯 봉지 쏟아부은 1파인트짜리 다이어트 아이스크림 한 통을 몽땅 먹어 치운다. 그러면 질릴 만큼 단 맛을 무한히 먹는 느낌이 드니까. 이 세상이나 하느님은 내게 그만한 달콤함을 줄 리가 없으니 내가 나 자신에게 대신 선사하는 것이다. 그렇게 나는 낮이 주지 못했던 달콤함을 끌어안고 잠든다. 다이어트 아이스크림으로 자연의 법칙을 거스르면서. 밤이면 나는 세상에 나와 있기보다는 다이어트 아이스크림이랑 단둘이 오붓하게 뒹굴거리고 싶다.
나는 잘 짜인 마술을 즐기는 먹보다. 나는 먹고 싶은 것을 마음대로 먹을 만큼 용감하지 못하다. 그런 짓을 했다가 나중에 내 마음이 내게 쏟아 낼 분노를 감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나는 상황을 내 뜻대로 통제하는 데 각별히 관심이 있다. 내가 통제력을 쥐고 있다는 환상이 깨지면 엄청나게 겁이 난다. 이 세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무서운 곳이다. 그냥 내가 이런 식으로 살게 내버려 둬라. 내가 나 자신에게 부과한 다이어트 아이스크림 체제를 준수하며 살게 해 달라. 이렇게 해야만 나는 어느 정도의 폭식을 즐길 수 있고, 폭식 이후에 내 마음이 나를 파괴하는 사태도 방지할 수 있다.
나는 나 자신을 믿지 못하는 먹보다. 나는 나 자신에게 형편없는 엄마고, 내 몸을 관리하는 솜씨가 형편없는 집사다. 나는 의례를 먹는 먹보고, 의례를 치르듯 먹는 먹보며, 그 짓이 어리석다는 것은 잘 알지만 그래도 지금의 내 체중을 유지하는 데 그럭저럭 효과가 있고 또 그래야만 안심이 되기 때문에 그 짓을 중단할 생각은 없는 먹보다.
나는 대체로 내 머릿속에만 존재하는, 하지만 한편으로는 우리 엄마를 비롯한 여러 타인이 보내 온 사회적 신호에 따라 짜인 게임을 하고 있는 먹보다.
나는 예정일보다 두 주 늦게, 평균 이상의 체중으로 태어난 먹보다. 우리 엄마는 내가 뚱뚱해질까 봐 공포에 질렸다(엄마는 소위 ‘정상’ 체중이었지만 엄마의 부모님은 두 분 다 비만이었다). 엄마는 내 옆에 있을 때면 내 입에 들어가는 모든 것을 제약하고 통제했고, 학교 선생님이나 캠핑 담당 선생님에게 내가 뭘 먹고 돌아다니더냐고 물어보겠다며 위협하기도 했다. “뚱녀가 될래, 남자애들이 좋아하는 여자애가 될래?” 엄마는 이렇게 물었다.
나는 생일 파티에서 케이크를 먹는 걸 금지당했던 먹보다. 나는 유대인 학교를 다녔지만 우리 집안의 종교는 음식이었다. 아빠는 내가 음식을 몰래 먹도록 도와주었다. 걸음마를 막 뗐던 나를 공원으로 데려가 내 인생 최초의 초대형 쿠키를 손에 쥐여 준 사람도 아빠였다. 비록 쿠키는 캐나다기러기 한 마리에게 빼앗겨 버렸지만. 아빠는 엄마를 빼놓고 나랑 내 여동생만 차에 태워 뒷좌석 가득히 정크 푸드를 싣고서 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우리 할머니(성함은 이브라고 한다)는 주말에 우리를 불러서 끊임없이 뭘 먹였다. 미니 베이글, 소시지 빵, 담배 모양 초콜릿, 담뱃대 모양 감초 사탕 등등. 학교에서 나는 점심시간에 다른 애들 도시락에 들어 있던 음식을 훔친 다음 그 애가 가진 다른 음식을 그것과 맞바꾸자며 거래하려 들었다.
나는 어렸을 때부터 규칙적으로 폭식했던 먹보다. 베이글에 마요네즈나 크림치즈를 바르고 치즈를 얹어서 녹인 걸 특히 좋아했다. 엄마의 ‘도서관 기금’(엄마는 슬럼가에 위치한 학교의 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었다)에서 잔돈을 빼돌려 피자나 샌드위치를 주문하기도 했다. 학교 근처 주유소에서 밀키웨이, 삼총사, 트위즐러, 히스바 같은 초콜릿 바도 사 먹었다. 포장지들은 다 모아 놨다가 화장실 변기에 한꺼번에 버리려고 했는데, 변기가 막히는 바람에 발각되고 말았다.
나는 여름을 맞아 여학생 캠핑을 떠났던 먹보다(이때까지 나는 여학교에 다니고 있었고, 우리 캠프에서 호수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남학생 캠프가 있었다). 남자애들이 주위에 있으니 다이어트하기가 더 쉬웠다. 곧바로 보상을 얻을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나는 음식물 섭취를 제한했다. 키가 8센티미터 자랐다. 선탠도 했다. 그때 나는 열네 살이었다. 입에서 보드카 냄새를 풍기는 열여섯 살짜리 남자애가 나한테 예쁘다고 했다. 우리는 딥 키스를 했고 그는 내 가슴을 만졌다. 그는 내 남자 친구였다. 밤이면 그는 캠핑 선생님하고 섹스했다. 남자애 여럿이 나한테 반했고, 나는 그중 다섯 명이랑 연달아 데이트했다. 학부모 면회일에 부모님이 나를 찾아왔을 때 엄마는 내가 야윈 걸 보고 까무러치게 기뻐했다. 나는 곧 생리를 시작했다. 가슴도 나왔다. 나를 좋아하는 남자애가 계속 생겼고, 나한테 다가왔다가 떠나가길 반복했다. 나는 다이어트와 폭식을 오가길 거듭했다.
나는 아빠 차를 몰면서 코티지치즈에 인공 감미료를 뿌리다가 빨간불을 못 보고 달리는 바람에 교통사고를 낸 먹보다. 에어백이 부풀어 나왔고, 나는 한쪽 팔이 부러졌다. 그때 나이가 열여섯이었다. 나는 음식물 섭취를 대폭 제한했다. 무지방 머핀 다이어트에 돌입했다. 아침에 머핀 한 개, 오후에 머핀 한 개, 저녁에는 닭고기만 먹었다. 꿈에 그리던 남자 친구가 생겼다.
나는 점차 심각한 거식증에 접어들었다. 급기야 머핀 대신 사과만 먹었다. 키가 168센티미터에 체중은 45킬로그램이었다. 생리가 멈췄다. 나는 공포에 휩싸였다. 혀에 설태가 꼈다. 아빠는 뭐라고 말할 엄두도 못 냈다. 선생님들은 걱정스러워했다. 엄마는 문제없다고 생각했지만, 내가 생리가 멈췄다고 털어놓자 겁을 먹었다(엄마도 언젠가는 손주를 얻고는 싶었으므로). 엄마는 나를 영양학자와 상담 치료사에게 데려갔다. 별 효과는 없었다. 나는 칼로리를 계산하기 위해 포장된 식품만 먹었다. 칼로리 섭취량을 늘렸더니 몸은 조금씩 나아졌다.
나는 심각한 저체중 상태로 대학에 들어간 먹보다. 이때부터 대마초와 술을 시작했다. 폭식도 시작했다. 멈출 수가 없었다. 거식증을 앓는 내내 먹지 못했던 모든 음식이 갑자기 내 것이 되었다. 팬케이크, 피자, 타코벨, 초콜릿, 젤리, 중국풍 간장 소스 치킨, 쿠키, 시리얼 올린 아이스크림, 나초. 살이 22킬로그램 쪘다.
나는 매일 암페타민을 먹었던 먹보다. 엑스터시도 했다. 엑스터시에 취한 상태로 달리기도 많이 하고 운동도 많이 했다. 완하제를 먹는 버릇도 들었다. 초콜릿 맛으로. 그렇게 해서 체중을 ‘조절’했다. 샌프란시스코로 이주한 뒤 주중에는 식단을 조절하고 매일 완하제를 먹었으며 주말에는 폭식했다. 이제는 토하려고 해도 더 이상 구토가 나오질 않았다. 한번은 구토제를 먹어서 마티니와 인도 요리를 밤새도록 게워 내기도 했다. 남자 친구의 고별 파티가 있던 날 밤이었다. 나는 파티에 가지 않았고, 문자메시지조차 보내지 않았다.
나는 어떻게 해서인지는 몰라도 스물다섯 살부터 스물아홉 살까지는 정상적인 식습관을 찾은 먹보다. 음식에 대한 생각과 몸무게 걱정은 여전히 많이 했다. 야구 선수는 은퇴하고 나서도 경기에 대한 생각을 놓지 못하는 법이다. 그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건강했던 시기였다. 이때 내 식생활이 ‘정상적’으로 돌아온 건 약과 술을 끊은 직후이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 더는 술에 취해 폭식하지 않았고, 안주 먹을 일도 없어졌다. 굶으려고 암페타민에 의지하는 짓도 그만뒀다. 과거에는 알코올로 섭취했던 칼로리를 이제는 진짜 음식으로 채웠다.
그리고 지금도 기억나는데, 술을 끊고 처음 몇 년 동안은 이 세상이 너무나 새롭게 보였다. 오랜 세월을 매일같이 개판으로 지냈으니 그럴 만도 했다. 뭐라고 할까,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고 내가 세상에 속해 있다는 게 어떤 기분인지 다시금 발견하는 경험이란, 마치 마법 같았다. 핼러윈 데이에는 호박밭에 나가고, 크리스마스에는 트리를 구해 온다는 게. 나는 일찍이 겪어 본 적 없는 방식으로 현실에 매혹되었다. 정말로 살아 있고 싶었다. 세상이 내게 주는 것들을 맛보고 싶었다. 음식도 그중 하나였다.
나는 ‘자제력을 잃는’ 부류의 여자가 되는 걸 질색하는 먹보다. 나는 스물아홉 살에 결혼했고, 몸무게가 좀 늘었다는 걸 깨닫고는 패닉에 빠졌다. 이러다가는 금세 내 형체가 무너지고, 독립성도 사라지고, 성적 매력도 고갈되고, 처녀 시절도 끝장난 신세로 전락할 것 같았다. 내 배와 허벅지에 붙은 살의 윤곽이 흐릿해져 가는 내 정체성의 경계선을 상징하는 것만 같았다. 내 존재를 규정해 주는 경계선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지는 대신 나는 ‘웨이트 워처스’Weight Watchers 체중 관리 프로그램에 등록했다.
웨이트 워처스에서 제공하는 영양 점수 체계는 음식에 아무 생각이 없는 사람이 쓸 경우엔 아름다운 시스템이다. 그러나 평생 섭식장애에 시달린 사람이 쓰기에는 그리 바람직하지 않다. 이 프로그램을 시작하니 또다시 온 세상이 숫자로 보였고, 그 어느 때보다도 더 계산을 많이 하게 되었다. 나는 웨이트 워처스를 그만두고 그냥 칼로리 계산 방식으로 되돌아갔다. 그러자 세상은 또 다른 종류의, 내가 오래전부터 사용해 온 친숙한 숫자 체계로 돌아왔다. 이게 현재 내 상태다. 세상은 여전히 숫자로 되어 있지만, 미적분은 아니고 대수학으로 계산된다.
나는 먹보면서 동시에 형편없는 페미니스트다. 아마도 그럴 거다. 만약 내가 남자였다면 여자일 때와는 판이하게 다른 방식으로 먹고 살았을 것 같다. 피자를 엄청 많이 먹었을 거다. 마운틴듀를 넘치도록 마셨을 테고, 다이어트도 안 했겠지. 그렇다면 나는 내가 여자기 때문에 피자를 먹을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는 건데, 다른 여자들을 보는 내 시선은 또 어떻겠는가? 내가 내 몸을 사랑하지 않는데 어떻게 다른 여자들의 몸을 사랑할 수 있나? 좋은 페미니스트로 행세하기 위해 “나는 내 몸을 사랑해”라고 말하고 다닐 수야 있다. 하지만 그건 내가 미워하는 무언가를 사랑하는 척 꾸미는 짓밖에 되지 않는다.
그런데 나는 먹보면서 좋은 페미니스트기도 하다. 아마도 그럴 거다. 그래도 솔직하기는 하니까. 지금 나는 당신에게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내 몸과 다른 여자들 몸을 보는 방식을 규정짓는 비틀린 도식들을 아직 부수지 못했다고. 그러니 당신도 당신만의 엿 같은 도식들을 얼마나, 어떻게 부수고 있는 중인지 내게 솔직하게 말해도 된다는 뜻이다. 당신이 뭔가를 꼭 부숴야만 한다는 얘기가 아니다. 다만 나와 함께하자는 뜻이다. 여기서 이렇게, 부수지 못한 채로 함께하면서, 바로 이것이 우리의 처지라는 사실을 받아들이자. 우리가 존재하는 바로 이곳에서 서로를 사랑하자. 심지어 우리가 서로를 비교하는 순간에도. 그래, 친구야, 힘든 일이라는 거 나도 알아.
하지만 나는 먹보면서 위선적인 페미니스트다. 나 자신에게는 허락하지 않는 몸을 욕망하기 때문이다. 나는 풍만한 여성의 몸을 욕망한다. 내가 성적으로 가장 끌리는 여자들은 오늘날의 기준에서(과거의 기준에서도) 비만으로 간주되는 체형이다. 포르노를 많이 보는 편은 아니지만, 포르노를 찾을 때 자주 입력하는 검색어는 ‘뚱뚱한 레즈비언들’이다. 얼마나 아름다운 판타지인가. 나의 가장 큰 자아가, 최대치의 나 자신이, 완전히 충만한 여성에게 받아들여지고 포옹받고 숭배받는다는 게. 한계를 정할 필요 없이 둘이서 함께 마구잡이로 퍼먹고, 그런 다음에는 서로를 게걸스럽게 탐식하면서 핥고 비비고, 가장 거대하게 실재하는 서로의 존재를 포용해 주면서 쉬는 것. 내게는 그런 게 바로 자유다. 절대적인 해방. 미치도록 섹시한. 그런 것만 보면 진짜로 꼴린다. 나도 그렇게 모든 걸 완전히 놔 버리고 싶다. 하지만 실생활에서는 내게 그런 자유를 허락할 수가 없다. 이건 페미니즘인가, 아니면 그저 타인에 대한 욕망과 대상화일 뿐인가?
아무래도 나는 먹보면서 최악의 페미니스트인 것 같다. 다른 여자들을 대상화하니까. 나는 내 몸을 다른 여자들 몸과 비교한다. 가끔은 내가 이긴다. 이긴다는 게 무슨 뜻인가? 그 여자보다는 내 몸이 내가 자라면서 본 잡지 속 모델들의 몸과 더 닮았다는 뜻이다. 즉 내가 그 여자보다 더 날씬하다는 거다. 나는 비난받을 여지가 없거나 더 적다는 뜻이다. 나는 비난을 엄청 무서워한다. 그런데 비난은 누가 하는 걸까? 우리를 비난하는 목소리는 누가 내는 것인가? 애초에 그런 목소리가 존재하기는 하나? 비난에서 완전히 자유로운 사람이 있기는 한가?
나는 내가 깡말라야 안전하다고 느끼는 먹보다. 나는 살이 찔 여지가 아주 많이 남아 있는, 살이 더 찐다 해도 통통함 근처에도 못 갈 만큼 마른 몸으로 살고 싶다. 나 자신의 몸에 한정해 말하자면, 뚱뚱함이라는 개념은 내게 끔찍한 느낌들을 불러일으킨다. 수치심, 파국, 자기혐오 등등. 이건 내가 어렸을 때 겪었던 감정들이고, 두 번 다시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도록 나 자신을 보호하고 싶다(물론 그건 불가능하고, 내 몸이 어떤 상태든 매일같이 그런 감정들을 느끼며 살고 있다).
나는 여전히 대판 폭식하고픈 충동에 사로잡히곤 하는 먹보다. 이제껏 살면서 폭식 도중에 나 자신에게로 귀환하는 듯한 아름다운 황홀경에 빠진 순간이 더러 있었다. 먹는 행위를 되풀이하는 흐름에, 아무 제한도 없고 억제도 불가능한 상황에서 비롯되는 순수한 기쁨에 너무나 몰입한 나머지 마치 언어가 존재하기 이전의 고요 속에 들어선 듯한 느낌이 드는 것이다. 하지만 언어는 반드시 돌아왔다. 언어는 내 머릿속에 들어 있었고, 그 말들이 내게 고함을 질러 댔다.
그 고요는 뭐였을까? 진정한 해방에서 비롯된 해탈의 경지였을까? 아니면 마약처럼 세상을 차단하기 위한 대응 기제에 불과했을까? 위장이 더 이상 음식을 받아들이지 못해서 음식을 보기만 해도 메스꺼워질 지경이 되어, 태아처럼 몸을 동그랗게 웅크리고 누운 채 끙끙거리는 것 외에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까지 먹어 대는 것이 과연 내 본성일까? 아니면 처음에는 남들이, 그다음에는 내가 부과한 규제들이 내 본성을 억압했고, 폭식은 그 규제들에 대응하기 위한 방편인 걸까? 내가 좋아하고 내 몸에도 좋은 음식을 충분히 먹을 줄 알고, 그게 너무 맛있어서 약간 과식하더라도 수치심이나 공포를 느끼지 않는 내가 내 안 어딘가에는 있을까? 그런 나는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고 새로 만들어 내야 하나? 아니면 동물들과 마찬가지로 내게도 그런 본능이 있었는데 살다 보니 묻혀 버린 걸까? 그걸 다시 파내려면 어디서부터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나는 자기통제가 환상이라는 사실을 머리로는 잘 아는 먹보다. 경험적으로도, 정신적으로도 잘 알고 있다. 온갖 극적인 경험과 무난한 경험, 사랑, 갑작스러운 고통, 비극을 거치면서 깨우쳤으니까. 하지만 내 마음에게 통제를 포기하라고 요청하는 것과 마음이 그 요청을 따르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문제다.
나는 내 마음이 그 요청을 따라 주지 않는 먹보다.
나는 궁극적으로 나를 책임지는 사람은 나 자신임을 아는 먹보며, 안전하다는 감각을 추구하는 것 외의 방법으로는 나 자신을 책임지기 싫어하는 먹보다.
나는 여기서 이렇게까지 솔직하게 이야기하기가 겁이 나는 먹보, 섭식장애 환자다.
나는 심오하게 얄팍한 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