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성-정병러’의 사적인 경험 말하기

맛보기 챕터에 이어 «오늘 너무 슬픔» 옮긴이 후기를 공개합니다. 본인 또한 트위터 유저로서, 자신의 불안과 슬픔을 바라보며 말하고 쓰는 사람으로서, 위안을 주는 농담과 웃음의 힘을 믿는 사람으로서, 옮긴이 김지현 선생님이 전하는 이야기를 읽어 주세요.

“내가 솔직해질수록 더욱 많은 사람이 공감했다”고 지은이 멀리사 브로더는 말합니다. 그리고 이 글은 그렇게 타인에게 공감받을 수 있을지 의심이 들 정도로 내밀하고 사적인 자기 이야기로 파고들었을 때 역설적으로 찾아지는 공감과 연대의  끈을 밝혀 줍니다. ‘여성-정병러’의 사적인 경험 말하기

온전하고도 깡마른 사람이 되고 싶어

«오늘 너무 슬픔»은 멀리사 브로더라는 여성이 살면서 겪은 정신적 고통과 중독, 로맨스와 섹스를 진솔하면서도 유머러스하게 기록한 책입니다. 그중에서 솔직함이 특히 빛나는 대목은 여성인 자신에게 부과된 제약들에 대한 모순된 태도를 털어놓는 부분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사회가 정해 놓은 기준을 거부하고 싶은 한편으로 누구보다 거기에 부합하는 사람이 되고픈 욕구, 다른 사람들은 다 잘 헤쳐 나가고 있고 나만 엉망진창인 것만 같은 불안 등 지은이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이이가 우리 대부분의 머릿속 생각을 대신 말해 주고 있다는 인상을 받게 됩니다. 자신을 “심오하게 얄팍한 여자”라고 지칭하는 <온전하고도 깡마른 사람이 되고 싶어> 챕터 역시 그런 모순과 불만족스러움, 그럼에도 자신을 긍정하는 지은이의 태도가 잘 드러나는 글이고, 이 글이 독자들에게도 공감을 불러일으키길 기대하며 해당 챕터를 맛보기로 공개합니다. 온전하고도 깡마른 사람이 되고 싶어

«오늘 너무 슬픔»

«오늘 너무 슬픔»
멀리사 브로더 지음 | 김지현 옮김 | 232쪽 | 13,000원

불안과 우울에 관한 트위터 퀸으로 등극한 멀리사 브로더의 자전적인 고백. 자신이 겪은 정신적 고통과 성적 판타지, 중독 성향, 연애 관계 등을 솔직하고도 유머러스하게 표현한 익명의 트위터 계정 @sosadtoday로 큰 반향을 불러일으킨 뒤 이 책으로 멀리사 브로더라는 구체적인 여성의 한층 더 내밀한 경험들을 털어놓았다. 한 매체는 이 책을 두고 “우리의 삶을 구해 줄 유일한 트위터 책”이라는 찬사를 보내기도 했다. «오늘 너무 슬픔»

거울 밖으로

1

2011년 봄, 바를 열었다. 여러 이유가 있었고 별다른 생각은 없었다. 작은 상가 건물의 한 층을 임대해 공사를 시작했다. 미용실을 거쳐 소줏집이 들어와 있던 자리다. 그때나 지금이나 돈이 별로 없었기에 최소한의 돈으로 어떻게 잘 꾸며 볼 수 없을까 고민했다. 그리고 그런 생각은 언제나 그렇듯 잘못된 생각이다. 미용실을 인수받아 소줏집을 운영하던 아주머니는 미용실 인테리어를 거의 그대로 사용해서 장사를 했고, 그렇게 다섯 달 만에 망했다. 매끈하게 빛나는 빨간 벽면에 미용실 거울이 여기저기 붙어 있는 소줏집에서 야채전을 먹는 걸 즐기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가게 이름도 제법 별로였는데, 지금은 전혀 기억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정말 꽤나 별로인 이름이었으리라 생각한다. 지금 내가 쓰고 있는 ‘틸트’Tilt라는 이름도 그리 좋은 이름은 아니겠지만. 거울 밖으로

부당 방위

들어가며

2017년 5월, 전 세계 23만 대 이상의 컴퓨터를 감염시킨 사상 최악의 랜섬웨어 워너크라이WannaCry(‘울고 싶지?’)가 컴퓨터 사용자들을 가히 공포의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영국의 국민건강서비스, 러시아 내무부와 방위부, 페덱스, 독일 철도가 최대 피해 기관으로 알려진 가운데 개인 사용자의 피해 사례도 속출했다. 한국에서도 CJ를 비롯한 기업들과 인터넷에 연결된 버스 정류장 컴퓨터들의 감염이 신고되었으며, 이에 청와대를 필두로 국정원, 미래창조과학부, 한국인터넷진흥원 등 관련 기관이 총동원되어 ‘국가 사이버 위기 경보’를 발령하고 대국민 행동 요령을 배포하는 등 국가 재난 수준의 대응이 전개되었다. 부당 방위

쓰레기와 나

유년기의 경우

쓰레기라는 단어를 생각하면 한 번에 여러 이미지가 떠오른다. 어린 시절의 대부분을 보냈던 대전의 작은 아파트 단지, 한 달에 한 번씩 학교에서 의무적으로 가져오라고 했던 재활용품들, 중학교 일 학년 때까지 겨울마다 교실에 놓였던 난로, 타고 남은 재, 쓰레기 컨테이너 바로 옆의 조개탄 창고. 대략 유년기라 명명될 수 있을 시기와 결부된 쓰레기들에는 어딘가 낭만적인 구석이 있었다. 아직 쓰레기의 영향력이 크게 체감되지 않았던 때였다. 내가 살던 저층 아파트 단지에는 정문 하나와 후문 두 개가 있었다. 엉뚱한 방향으로 튄 공을 쫓아 달려가다 보면 세상의 끝으로만 여겨졌던 후문 하나에 도달하고는 했다. 그곳에는 짐작컨대 세제 회사 협찬으로 세워졌을 표지판이 있었다. 이미 낡을 대로 낡아 군데군데 녹이 슬고 페인트 조각들이 떨어져 나간 표지판에는 ‘DO NOT WASTE WASTES’라는 문구가 적혀 있었다. 쓰레기와 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