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들게 하기’란 ‘돌보기’와 같은 것

‘시들게 하기’란 ‘돌보기’와 같은 것

야규 신고(원예가)

저는 어린 시절에 식물과 만나고 원예에 뜻을 품어 지금은 야쓰타케 구락부라는 곳에서 매일 식물과 함께 생활하고 있습니다. 오래 함께 지내며 알게 된 것은 식물이란 꽃을 피울 때만 좋은 게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싹 틀 때도 좋고 꽃이 진 다음도 좋습니다. 벌레가 잎사귀를 갉아먹어도, 그러다 급기야 시들어도 그렇습니다. 결코 화사할 때의 볼거리에 그치지 않습니다. 식물과 함께하는 삶은 마음이 덜컥 움직이는 시간의 연속입니다.

그 매력을 한 명이라도 더 많은 사람에게 알리고 싶어 원예가의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이어 가던 중에 원예에 두 갈래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는 꽃을 ‘잘 키우는’ 것입니다. 세상에 나와 있는 원예 책의 99%가 그런 내용을 다루는 이른바 ‘하우 투’How to 책입니다. 또 하나 다른 접근법이 있는데 그것이 제가 진정 하고 싶었던 일입니다. 그것은 식물과 더불어 일희일비하는 것입니다. “앗, 시들었잖아!”라거나 “늘어났다!”라거나 “말라죽었어!”같이, 또한 “벌레다!”나 “열매가 열렸어!”같이 말이죠. 식물과 함께 우왕좌왕하고 싶습니다. 딱히 멋은 없지만 비길 데 없는 즐거움이 있습니다. 여러 가지 미디어를 활용해 그런 우왕좌왕의 즐거움을 전하고 싶었습니다.

‘시들게 하기’란 ‘돌보기’와 같은 것

«내 맘대로 베란다 원예»

«내 맘대로 베란다 원예»
이토 세이코 지음 | 김효진 옮김 | 272쪽 | 15,000원

1988년 작가로 데뷔한 이래 문학만이 아니라 음악, 연극, 방송 등 다방면에서 활동을 벌여 온 작가 이토 세이코의 베란다 원예 에세이. 2004년 봄부터 2006년 봄까지 2년간 『아사히 신문』에 매주 연재한 일기를 묶었다.

십수 년의 아마추어 원예 경력을 가진 그이지만 원예의 무대는 도쿄 변두리 맨션의 좁은 베란다를 벗어나지 않는다. 번듯한 정원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베란다이기에 더욱 밀접하게 느낄 수 있는 식물의 세계가 있다. 도무지 성에 차지 않는 공간인 베란다에서, 계절과 함께 반복되는 식물들의 성장과 죽음에 항상 새롭다는 듯이 울고 웃은 기록이 이 책이다.

원예에 숙달하는 길을 알려 주기보다는 우왕좌왕 실패의 기록이 주를 이룬다. 하지만 이 기록을 읽어 나가며 우리는 자연스레 원예란 무엇인지, 왜 사람은 원예라는 행위에 그토록 이끌리는지를 묻게 된다.

이 책은 우리에게 식물과 함께하는 삶이 주는 충만감이란 무엇보다 거듭되는 실패 역시 원예 생활의 당연한 일부임을 받아들이는 데서 비롯하는 것이라고 알려준다. 기약 없는 기다림에 익숙해질 때쯤 불현듯 황홀이 찾아오곤 한다는 것도.

«내 맘대로 베란다 원예»

비평의 위기와 ‘모던 걸’

«현대비평» 2020년 겨울호에 발표되었던 문학평론가 안지영 선생님의 «관광객의 철학» 서평을 공유합니다. ‘일본 근대문학의 종언’을 말한 가라타니 고진에 의해 발탁되어 «관광객의 철학»에 이르기까지의 아즈마 히로키의 행보를 일본 비평사에 등장한 ‘비평의 위기’에 대한 대응이라는 맥락에서 파악하고, “아즈마가 미처 발화하지 못한 우글우글대는 무수한 가능성”에도 눈길을 주는 글입니다. 이 글과 함께 «관광객의 철학»이 더 많은 ‘오배’를 불러오기를 바랍니다.

비평의 위기와 ‘모던 걸’

1 빅 실버

«살림 비용»의 첫 장 <빅 실버>를 공유합니다. 앞으로 무엇을 써야 할지, 누구를 위해 쓸 건지에 관한 데버라 리비의 다짐을 엿볼 수 있는 챕터예요.

«살림 비용»은 길지 않은 열한 장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그중 특히 짤막한 이 장에서 리비는 묘하게도 자신의 경험이 아니라 자신이 목격한 한 장면을 묘사하고 있어요.

리비의 글로 전해진 이 일화는 «살림 비용» 전체의 무대를 설정하는 한편 몇몇 단어와 착상(폭풍과 보트, 빅 실버로 불리는 남성, 밝히지 않은 상처 등)은 반복되는 모티프로 활용되어 뒤에서도 거듭 모습을 드러냅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이 장의 배치가 조금 당황스러울 수 있지만 책을 읽어 갈수록 여기에 던져진 말들이 잔상처럼 남아 계속 곱씹게 돼요. 그뿐 아니라 그 자체로도 무척 강렬한 부분이기도 합니다. 이 특별한 장이 «살림 비용»이라는 책의 내부를 궁금해하고 상상해 보는 기회가 되길 바라 봅니다.

1 빅 실버

«살림 비용» 추천의 글

«알고 싶지 않은 것들»을 감명 깊게 읽은 분들이라면 책 말미에 수록되어 그의 글이 가진 섬세한 결을 서로 다른 조명으로 밝혀 보였던 세 편의 ‘추천의 글’도 여러 번 곱씹어 보셨으리라 생각합니다.

글을 쓰는 혹은 쓰기 시작하려는 여성, 그러기 위해 치러야 할 비용을 기꺼이 감수하기로 마음먹은 여성을 위한 책인 «살림 비용»을 준비하면서 이번에도 끊임없이 새로운 여성 등장 인물을 창조하며 한국 문학을 갱신하고 있는 세 작가께 추천의 글을 받았습니다.

항상 새로운 문체로 치열하게 여성 서사를 개척해 온 강영숙 선생님은 «살림 비용»의 요체를 선명하게 드러내는 추천사를 기고해 주셨고, 독립적인 여성이 마주하는 이 사회의 속내를 단단한 문장으로 그려 온 강화길 선생님은 리비의 문장을 통해 위 세대 여성 작가들을 다시 만나며 다진 각오를, 여러 작품을 통해 뭉클한 여성 연대로 독자들을 초대했던 최은미 선생님은 “시간과 공간을 넘어 공동의 장에서 맞닿”는 언어의 기쁨을 담은 추천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지금 여기에 발 딛고 활발한 창작을 이어 가고 있는 작가들의 문장이 이 책에 불어넣은 생생한 숨결을 느껴 보세요.

«살림 비용» 추천의 글

«살림 비용» 출간 기념 The Cost of Living 노트 이벤트

«살림 비용» 출간을 기념해 작은 선물을 준비했습니다. «살림 비용» 과 같은 판형에 커버와 속표지의 색을 반전한 유선 노트입니다. 『살림 비용』을 포함해 리시올/플레이타임의 책 2만 원 이상 구입하시면 받으실 수 있습니다(인터넷 서점에서는 마일리지 차감). 데버라 리비처럼 여러분도 나를 확보하고 삶을 꾸려 가는 나날을 기록해 보세요.

노트 입고 서점
온라인 서점  |  교보문고, 알라딘, 예스24
오프라인 서점 | 고요서사(서울), 달팽이책방(포항), 땡스북스(합정), 매일하나(서울), 무명서점(제주), 미묘북(부산), 번역가의 서재(서울), 별책부록(서울), 북스피리언스(서울), 스토리지북앤필름(강남점, 해방촌점)(서울), 스프링플레어(서울), 인덱스(서울), 책방이층(대구), 책봄(구미), 책자국(제주)




«살림 비용»

«살림 비용»
데버라 리비 지음 | 이예원 옮김 | 184쪽 | 14,000원

«알고 싶지 않은 것들»에 이은 데버라 리비의 자전적 에세이 3부작의 둘째 권. 50대에 들어선 지은이가 이혼한 시점을 배경으로 사회가 여성, 특히 어머니라는 존재를 두고 멋대로 품은 망상과 이들에게 가해 온 억압을 예리하게 파헤친다. 그 과정에서 문학과 영화, 조각 등 여러 분야에서 활약한 앞선 세대 여성 작가들과 교감하는 한편 젊은 여성 세대에 희망과 연대를 표한다.

이 자전적 이야기의 메시지는 “아직 쓰이지 않은 주연급 여성 캐릭터”를 발견해야 한다는 것이다. «살림 비용»은 그런 캐릭터를 작품에서 형상화하려는 작가의 고민을 공유하는 에세이며, 나아가 지은이 자신이 현실에서 그런 여성이 되고자 고군분투하는 과정을 담은 기록이다.

전작에 이어 번역가 이예원이 간결하면서도 암시적인 지은이의 산문을 생명력 넘치는 우리말로 재탄생시켰고, 책 말미에는 소설가 백수린의 ‘후기’ <나로 존재하는 수고로움>과 강영숙, 강화길, 최은미의 ‘추천의 글’을 수록해 한국어판에 생생한 숨결을 더했다.

«살림 비용»

«커밍 업 쇼트» 디자인 후기

‘또 하나의 세대론이 추가되는 걸까, 그래 뭐 의미 있는 일이니까. 이 책은 청년들을 호되게 비판하려나 아니면 감정적으로 위로하려나?’
출력해 둔 원고를 읽으려 책상 앞에 앉으면서 들었던 생각이다. 청년이라고 하기 애매한 나이 때문인지 요즘은 청년 관련 담론을 접하면 거기 등장하는 청년 세대 대부분이 나와 거리가 있다고 느낀다. 책의 주인공인 청년보다 청년들에 관해 진단을 내리고 있는 저자 세대에 더 가깝다고 느끼기도 한다. 아니, 둘 중 어느 쪽도 아니라고, 나는 그사이에 끼어 있는 제삼자라고 둘러대며 내 앞가림이나 신경 쓰는 게 속 편하기도 했다. 그렇게 나는 ‘요즘 세대가 좀 그렇긴 해’, ‘그들 나름대로 힘겨운 삶이긴 하겠지’같이 남 얘기하듯 얄미운 목소리나 보태는 무신경한 관조자였다. 그런데 «커밍 업 쇼트»에서 만난 청년들은 생계에 노심초사하거나 자포자기한 상태로 살아가는 ‘노동 계급’이었고, 그런 탓인지 이들과 거리를 유지하거나 나와 구분하기가 쉽지 않았다. 읽으면서 하나 둘 내 얘기인 것 같은 부분이 늘어났는데, 청년들이 가진 유일한 자원이자 리스크가 자기 자신이며, 또한 고통의 주범을 가족과 부모에서 찾고 거기에서 해방되려 애쓰며, 과거 중심의 치료 서사를 이야기하는 법을 터득한다는 대목에 가서는 마음속으로 처절하게 울부짖고 말았다. 나를 고스란히 옮겨다 무자비하게 파헤치는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커밍 업 쇼트» 디자인 후기

반-치료

오늘은 마크 피셔의 글 <반-치료>를 공유합니다. 제니퍼 M. 실바의 «커밍 업 쇼트»에 대한 일종의 서평이자 조금 더 확장된 논의를 펼치는 글이기도 해요. 번역은 «자본주의 리얼리즘»을 옮김 박진철 선생님이 맡아 주셨습니다.

«자본주의 리얼리즘»에서 마크 피셔는 현실의 기저에 있는 ‘실재’들을 환기하는 것이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대항하는 전략일 수 있다고 제안하면서 ‘정신 건강’이라는 쟁점을 그런 전략적 요충지 중 하나로 설정했습니다. 이런 그에게 무드 경제와 치료 담론을 주된 분석 대상으로 삼은 «커밍 업 쇼트»가 무척 인상적으로 다가왔던 것 같습니다. «커밍 업 쇼트»가 출간된 후 이 책을 소재로 몇 편의 글을 쓰거나 대담을 나누었으니까요. 오늘 번역해 블로그에 올리는 이 글도 그 결과물 중 하나입니다.

<반-치료>는 2015년에 진행한 한 대담을 전사한 것으로, 생전에는 출간된 적 없고 피셔의 유고집인 «K-Punk»에 수록되어 (영어로) 처음 공개된 글입니다. 여러 책에 대한 논평 형식을 취하는 이 글에서 피셔는 영국과 미국에서 감정 정치가 부상했다는 사실을 확인한 다음 이 현상이 초래한 두 가지 문화적 곤란을 ‘치료적 상상계의 이율 배반’으로 진단합니다. 마지막 부분에서는 감정에 대해 말하는 것이 이 이율 배반을 넘어 대항 정치적 행위가 될 수 있는 조건을 탐색합니다.

미국과 영국에 만연한 (하지만 한국도 예외가 아닌) 치료 문화에 대한 «커밍 업 쇼트»의 분석을 조금 더 폭넓은 문화 정치/이론 맥락에 두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더불어 피셔의 «K-Punk»를 박진철 선생님의 번역으로 2021년 하반기에는 출간하고자 준비 중이에요. 그의 더 많은 글을 기다리는 독자들께 이 글이 갈증을 조금 해소시켜 주는 기회가 되면 좋겠습니다.

반-치료

우리이지만 우리가 되지 못하는 우리가 ‘우리’라는 감각을 지니려면

작년에 «아빠의 아빠가 됐다»를 출간한 조기현 선생님의 «커밍 업 쇼트» 독후감을 공유합니다. «커밍 업 쇼트»를 읽은 걸 계기로 지난날 다른 청년들을 만나 벽을 느낀 경험을 돌아보는 글이에요. 짧은 에피소드를 통해 오늘날 청년의 단면들을 살짝 소묘하고 있습니다. 청년들이 ‘우리’라는 감각을 확보한 상태로 벽을 허물려면 우선 이 벽의 정체를 인식할 수 있어야 할 겁니다. 한국에서도 노동 계급 청년들이 성인으로 성장하는 방식이 급속해 변해 왔을 뿐 아니라 이들이 성인의 삶을 이해하는 방식도 크게 달라졌습니다. 이번 서평을 경유해 «커밍 업 쇼트»가 이 변화를 파악하는 첫 걸음이 될 수 있길 바랍니다.

우리이지만 우리가 되지 못하는 우리가 ‘우리’라는 감각을 지니려면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는 중입니다

문화연구자이자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회사가 괜찮으면 누가 퇴사해»의 저자인 천주희 선생님의 «커밍 업 쇼트» 서평을 공유합니다. 몇 년 동안 청년들을 만나 연구한 경험을 토대로 이 책의 핵심 주제인 ‘무드 경제에서 살아간다는 것’에 주목하고 있는 글이에요. 국내에도 청년의 감정 구조나 서사에 대해 연구하는 작업이 있지만 이제 시작하고 있는 분야임을 지적하고, 부족한 부분을 이 책이 메워 줄 수 있지 않을까 기대감도 표하고 있는데요. “무드 경제는 고통과 그에 대한 해결을 치료 서사로 환원하며, 사회적 문제를 개인의 감정 관리로 극복할 수 있다는 메시지를 전달한다”는 지적은 우리 사회에도 충분히 적용할 수 있는 변화 아닐까 싶습니다. 서평에서 권하는 것처럼 “연구자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을 이해하고 해석하려는 사람들”, “우리가 어떠한 방식으로 동시대를 살아가는지, 그 삶을 연구자는 어떻게 해석하려고 노력하는지 궁금한 이들”에게 «커밍 업 쇼트»가 다가가길 기대해 봅니다.

우리는 다른 방식으로 성장하는 중입니다

결론: 리스크의 감춰진 상처들

«커밍 업 쇼트»의 결론 장인 <리스크의 감춰진 상처들> 일부를 공유합니다(263~276쪽). 이 책의 분석을 ‘리스크의 감춰진 상처들’을 발견하려는 시도로 정의하고 본문에서 다룬 쟁점들을 정리하는 부분이에요.
신자유주의는 구조적 문제를 개인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리스크의 사유화’를 초래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성인이 된다는 것은 자기 자신 말고는 누구도 믿지 않음을” 뜻합니다. 그렇게 청년들은 자립, 개인주의, 능력주의라는 문화적 각본을 받아들여 배신의 아픔과 연결을 향한 갈망을 완화합니다.
나아가 성인기에 이르는 자원의 부재로 고통받는 노동 계급 청년들은 거의 유일하게 자신이 통제할 수 있는 ‘자아’의 성장을 통해 성숙을 이루고자 합니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개인의 의지’에 한층 집착하며 자아 변화에 성공하지 못한 사람들을 상대로 경계선을 긋게 됩니다.
구체적인 분석과 청년들 자신의 이야기는 본문에 풍부하게 담겨 있습니다. 결론 장을 읽으시면 전체적인 논의 방향을 파악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해요.

결론: 리스크의 감춰진 상처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