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쿠시마 료타, 헤이세이 문학의 부채와 비평가의 책무를 말하다

후쿠시마 료타가 문학, 음악 평론가이자 «디스토피아 픽션론» 등을 집필한 엔도 도시아키와 2021년 웹진 «리얼 사운드 북» 지면에서 나눈 대화를 번역해, «리얼 사운드 북»의 허가를 받아 블로그에 올립니다.

대화는 후쿠시마의 비평 경력 속에서 중요하게 등장하는 작가 마이조 오타로에 대한 생각으로 시작해, 책을 관통하는 문제의식이라 할 수 있는 헤이세이의 상징적 빈곤을 돌아보며 화제를 확장해 나갑니다. 후쿠시마의 현상학적 소설론, ‘근대 문학의 종언’ 이후의 비평론, 오늘날 문학의 소외를 “더 거시적이고 자유로운 시각을 취할 수 있는 기회”로 파악하는 시각 등 흥미로운 이야깃거리로 채워져 있습니다. 나아가 포스트 코로나의 2020년대에 일본 문학이 놓인 조건을 «나선형 상상력» 3장 논의를 되살리며 점검하고, 지금 자신의 시선이 향하고 있는 곳을 말합니다(여기서 언급되는 «헬로, 유라시아»는 2025~2026년 중에 리시올에서 출간될 예정입니다). 일본 문학 비평을 넘어 동시대와 호흡하고 고민한 결과물로서 «나선형 상상력»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유익한 글이에요. 후쿠시마 스스로도 이 책이 외국 독자나 업계에 관심이 없는 독자에게 도움이 되길 바랐다고 하니, 이 글이 조금 더 쉽게 책에 다가가는 계기가 되기를 바랍니다.

원문 링크: https://realsound.jp/book/2021/05/post-754213.html

… 후쿠시마 료타, 헤이세이 문학의 부채와 비평가의 책무를 말하다

«나선형 상상력»

비평가 후쿠시마 료타가 지난 헤이세이 연간(1989~2019)의 일본 문학이 마주했던 과제와 그 유산을 결산한 책. 헤이세이는 냉전의 종식, 장기 불황의 시작, 소셜 미디어의 출현 등 일본 안팎에서 사회상의 급변이 일어난 시기다. 이 시기 문학계에서는 무라카미 하루키, 다와다 요코, 무라타 사야카 등이 세계적 인기를 얻은 반면, 국내적으로는 출판 시장이 급속히 위축되고 문학의 위상이 실추되었다.

이 책은 이런 배경 위에서 헤이세이 동안 일본 문학의 현장과 내용에 일어난 근본적 변화를 검토하고, 다양한 스펙트럼의 작가들로 구성된 헤이세이 문학을 포착하기 위해 여섯 개의 ‘문제군’을 제시한 다음 이들을 ‘나선형 상상력’이라는 하나의 형상으로 엮어 낸다.

급변하는 세계가 만들어 낸 나선형 운동에 끝없이 포획되면서도 이탈을 꾀했던 헤이세이 문학의 유산을 올바르게 상속하고 문학의 진지를 다시 세우려는 비평적 노력이 우리 자신의 과제 또한 일깨운다.

… «나선형 상상력»

매기 넬슨과의 대화

매기 넬슨이 2015년 «북포럼» 지면에서 «어덜트» 매거진 편집장이자 인터뷰어와 작가로 활동하는 세라 니콜 프리켓Sarah Nicole Prickett과 나눈 대화를 번역해 블로그에 올립니다. 세라 니콜 프리켓의 허락을 받아 블로그에 게재합니다. 이 대화에서 두 사람은 수행적 글쓰기, 장르 구분, 폴 B. 프레시아도, 퀴어함과 급진, 글쓰기의 위험, 페미니즘적인 무심함, 여성에게 이기심을 덧씌우는 문화, 개개인이 처한 맥락의 중요성 등을 주제로 자유롭게 이야기를 주고받습니다. «아르고호의 선원들»을 쓰면서 넬슨이 무엇을 의도했고 무엇을 걱정했는지, 또 무엇을 피하고자 했는지가 이 인터뷰로 조금 더 분명히 드러나리라 생각해요. 그 자체로 흥미진진하고 재밌는 글이기도 하고요. «아르고호의 선원들»을 읽었거나 읽으려 하는 독자분들께 도움이 되는 글이 되길 희망합니다.

원문 링크: Bookforum talks with Maggie Nelson – Bookforum Magazin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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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호의 선원들≫이 인용한 문헌들

매기 넬슨이 ≪아르고호의 선원들≫에서 인용한 글과 책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책의 원서에는 인용 문헌의 출처를 밝힌 주석이나 참고 문헌이 없습니다. 저희는 이 결정이 인용된 텍스트와 넬슨 자신의 말을 뒤섞는 시도이자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하려는 (그리하여 직접 찾아보도록 우리를 꾀는) 전략이라고 이해했어요. 넬슨이 무엇을 염두에 뒀는지와는 별개로 그의 결정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한국어판에도 문헌 출처를 넣어 주지 않았는데요. 영어권 독자는 넬슨이 인용한 구절을 실마리 삼아 어렵지 않게 (대부분 영어인) 출처를 찾을 수 있는 반면, 번역본만으로는 그러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를 감안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끝내 확인하지 못한 문헌도 있습니다) 저희가 찾을 수 있는 한에서 참고 문헌을 재생해 보았습니다. 넬슨이 인용하는 문헌과 인용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낀 독자분들께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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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기와 보듬기

≪아르고호의 선원들≫ 해외 서평을 번역해 공유합니다. 조너선 파머가 2015년 9월 ≪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에 기고한 <쓰기와 보듬기>예요. ≪아르고호의 선원들≫을 읽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고 마음까지 보듬어 주는 글이에요. 이예원 번역가께서 옮겨 주셨고, ≪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의 허락을 받아 이 글을 블로그에 게재합니다. (Copyright © 2015 by Los Angeles Review of Books)

≪아르고호의 선원들≫을 작업하며 길을 잃은 기분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 몇 편의 서평과 인터뷰가 길을 밝혀 주었는데요. 그중 하나가 이 글이었습니다. 또한 가장 울림이 큰 글이었고요.

파머는 이 책의 표층 아래에서 흐르는 “괄목할 특징이자 묘하게 전복적인 저류”를 포착합니다. 그에게 ≪아르고호의 선원들≫의 호소력은 “건강만큼이나 지루하고 밋밋한 것을 귀하게 대하는 자세”와 우리를 초대하려는 이 책의 헌신에서 비롯합니다.

저희에게 이 서평은 “추상적이고 심지어는 난해한 언어를 거쳐 속 깊은 직언으로 다가오며 의외로 포괄적인 단어에 안착한다” 같은 문장으로 ≪아르고호의 선원들≫을 작업하는 내내 어렴풋이 머릿속을 맴돌았던 느낌과 생각을 언어화해 준 글입니다.

조너선 파머는 넬슨이 독자를 믿고 그들을 초대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그는 작가로서 넬슨을 믿으라고, 무엇보다도 독자인 우리 자신을 믿고 우리만의 읽기를 발전시켜 보라고 독려합니다. 우리가 넬슨과 그 가족을 바라보는 동시에 넬슨의 글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음을 유념하면서요.

원문 링크: https://lareviewofbooks.org/article/writing-and-hol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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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르고호의 선원들≫ 디자인 후기

나는 직업인으로서의 디자이너에 가깝다. 나만의 디자인 철학이랄 것도 없고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 같은 것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른 디자이너들이 이론적인 논의를 펼치거나 담론을 형성하려는 걸 볼 때면 자극을 느끼기도 하지만, 내 얕음이 들통날까 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더욱더 안쪽으로 숨어드는 편이다. 이제까지 쓴 디자인 후기들에서 작업을 맞닥뜨린 내 어리둥절함과 막막함 같은 솔직한 심정을 줄줄이 쓰긴 했지만 이것도 큰맘 먹고 용기를 낸 거고, 디자이너라는 멋진 직업이 내 삶을 작지 않은 무게로 억눌러 왔음을 느낀다. 게다가 성격 탓도 있어 좁디좁은 생활 반경과 대인 관계를 이어 오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스스로를 좀 더 내보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부족하거나 약점인 부분들까지도 겁내지 않고, 망설임 없이 새로운 관계에 뛰어들며. 몇몇 계기가 있었는데 ≪아르고호의 선원들≫을 읽고 작업한 것도 그중 하나다.

… ≪아르고호의 선원들≫ 디자인 후기

≪아르고호의 선원들≫

시, 회고록, 비평을 넘나들며 장르를 구부러뜨려 온 매기 넬슨의 대표작. 파트너 해리 도지와 사랑에 빠진 시점부터 해리 어머니의 사망과 넬슨 자신의 출산에 이르는 몇 년간을 소재로 퀴어함, 사랑, 트랜지션, 모성에 대한 문화적 가정들에 질문을 던지고 자신만의 답을 구하는 과정을 글쓰기로 재생한다.

이 책은 쾌락과 돌봄, 퀴어와 가족, 래디컬과 순응의 관계를 흩뜨리며 끊임없이 나와 우리를 다시 빚는 ‘되어 감’의 과정을 담고 있다. 문화적 이분법과 명명의 한계를 조심스럽게 피해 가며 파트너와 아이를 비롯한 타자들과의 마주침을, 그들이 가져다준 갖가지 쾌락을, 서로를 보듬는 보통의 헌신을 열렬하고도 진실하게 재현한다.

일반적인 회고록이나 자서전과 달리 삶의 내밀한 사건들을 (인용을 경유해) 이론적, 비평적 성찰과 긴밀하게 엮은 이 책은 출간 후 문화계 전반으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작품과 삶, 공과 사의 구분을 무너뜨린 오랜 페미니즘 전통을 잇는 한편 ‘자기 이론’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명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 ≪아르고호의 선원들≫

관리를 가속하라

≪자본주의 리얼리즘≫ 2판 2쇄를 찍은 기념으로 마크 피셔의 글 한 편을 번역해 블로그에 올립니다.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을 기반으로 한 예술 비평 저널인 ≪파스≫Parse(https://parsejournal.com/) 5호(2017년 봄)에 실린 <관리를 가속하라>Accelerate Management라는 글입니다. 번역 및 게재를 허락해 준 ≪파스≫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가속주의accelerationism는 좌우 정치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느슨한 사고 운동이고, 여러 전선에서 논쟁과 비판을 초래했습니다. 기계적인 으스스함 때문인지 때로는 곡해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요. 이 글에서 피셔는 가속주의의 세 물결을 구분하고 최근 흐름인 좌파 가속주의 입장 편에 섭니다. 알렉스 윌리엄스와 닉 서르닉, 그리고 이들이 쓴 <#가속하라: 가속주의 정치 선언>으로 대변되는 좌파 가속주의는 좌파 내부에 널리 퍼진 이른바 ‘통속 정치’folk politics 경향에 반대하는 움직임입니다. 통속 정치가 과거(이전 단계의 자본주의 혹은 자본주의 이전)나 바깥이라는 상상된 영토로 회귀하려 한다면, 좌파 가속주의는 새로운 것과 미래에 여전히 판돈을 거는 기획입니다. 이 입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자본주의가 생산한 것들에서 물러나는 대신 수중에 쥐고 이용할 것.

이 글에서 피셔는 좌파 가속주의 입장을 관리(혹은 경영)라는 쟁점과 연결합니다. 관리 문제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에서 식별한 새로운 관료주의(그리고 그것과 무관하지 않은 정신 건강) 문제의 다른 이름입니다. 신자유주의는 큰 국가를 몰아내면서 관료주의도 쫓아냈다고 자랑스레 외쳤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반대를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보여 주기식의 불필요한 관료주의 업무”가 노동 그 자체보다 중요시되며 우리를 질식시킬 지경인 현실을요. 그렇다면 이처럼 관료주의를 증식시킨다는 이유를 들어 관리 자체에 반대해야 할까요? 이에 피셔는 질문을 뒤집어 “너무 많은 관리가 아니라 너무 적은 관리가 동시대 자본주의의 문제”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좌파 가속주의 입장을 채택해 ‘다른 관리’를 상상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우리에게 너무 많은 노동을 부과하는―저 자신의 노동 중독을 본보기로 이용해―관리자 대신 우리를 과도 노동에서 보호하는 관리자를 상상할 수 있을까? 미세 요구들로 우리를 질식시키는 관리자가 아니라 우리에게 생각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이해하는 관리자를 상상할 수는 없을까?”

피셔의 정치적 입장이 늘 한결같은 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론 그도 반의회주의적인 태도를 취했고 정치 자체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인 적도 있습니다(그의 정치 관련 블로그 게시물을 모은 ≪k-펑크≫ 3권이 출간되면 전반적인 변화 과정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2009년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이르면 “지속적인 사회 변형에 꼭 필요한 (잠재적이고 실제적인) 하부 구조들을 중심에 두는 정치”를 명시적으로 지향하게 되고 이는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았습니다(이와 관련해서는 ≪자본주의 리얼리즘≫ 9장과 말미에 실린 조디 딘과의 대담, ≪#가속하라: 가속주의자 독본≫에 실린 <터미네이터 대 아바타>, 피셔와 동료 제러미 길버트가 나눈 대담,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집필한 팸플릿인 ≪현대성 되찾기≫ 등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사망하기 얼마 전에 썼을 것이라 추정되는 <관리를 가속하라>에서도 그는 이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관리와 가속주의라는 쟁점을 검토하며 그는 우리가 지향할 바는 신자유주의가 내걸었지만 지키지 못한 약속들을 정확히 타격하는 것이라고, 자본주의의 산물들을 단순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화하고 합리화하는 것이라고, 좌파가 그 주역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역설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간명하고 짜릿하며 도발적인 산문으로요. 최종적이지도 완벽하지도 않겠지만, 또 논쟁과 비판의 여지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그의 마지막 입장일 겁니다.

원문 링크: https://parsejournal.com/article/accelerate-managemen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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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레스타인인의 자결권을 위해, 중동에서 제국주의 세력의 철수를 위해

질베르 아슈카르의 인터뷰 한 편을 번역해 블로그에 게시합니다. 저항과 동원, 연대의 현황에 초점을 맞춘 인터뷰로 2월 8일 프랑스의 ≪앵프레코르≫ 지면에 게재되었고, ≪인터내셔널 뷰포인트≫에 영어로 번역되었습니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은 “집단 학살의 교과서적 사례”라 불릴 정도의 파괴를 자행했지만 초반에는 이에 대한 저항의 불길이 거세게 퍼져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전, 각국의 지원과 공모, 대중 운동의 침체 등이 동원과 연대를 움츠러들게 한 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아슈카르는 그 원인을 밝히고 그럼에도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저항의 물결을 조명합니다. 나아가 현 시점에 팔레스타인인의 저항과 연대 운동이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이 학살 전쟁의 원인과 실상을 분석하는 시도였다면, 이번 인터뷰는 저항과 대안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드러내 주는 자료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함께 읽기를 권하고 싶은 글입니다.

프랑스어판 링크: https://inprecor.fr/node/3815
영어판 링크: https://internationalviewpoint.org/spip.php?article8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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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에 대한 시몬 베유의 단편들

시몬 베유가 2차 대전 발발 초기인 1938과 1939년에 쓴 아주 짧은 단편 두 편을 번역해 블로그에 올립니다.

이 글들에서 베유는 유럽의 정치적인 파국을 정신적인 위기와 엮어 사고합니다. 그리고 권력을 추구하는 적에 맞서 싸우기 위해선 정반대되는 원칙, 즉 정의의 원칙이 인민의 정신에 스며들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어요.

≪쿠튀리에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에 수록한 마지막 두 글에 ‘이 전쟁은 종교 전쟁입니다’와 ‘우리는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을까요?’라는 제목이 달린 것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유의 진단과 제안을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분은 이 두 글을 꼭 읽어 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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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주에서

소설가 황정은 선생님의 신작 에세이 <파주에서>를 공유합니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출간을 기해 청탁드린 글로, 가자의 비극과 고립을 알리고 연대를 요청하는 뜻을 담아 이 글을 집필해 주셨습니다.

작년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향한 잔인한 보복에 나서는 한편, 전방위적 프로파간다로 세계의 눈과 입을 가리는 것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 책략의 효과로 이스라엘의 폭주를 제어해야 한다는 말을 꺼내기도, 그런 말이 전파되기도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던 것 같아요.

그런 답답함을 느끼던 중, 황정은 선생님이 팟캐스트 «책읽아웃: 황정은의 야심한 책»(367-2회, 2023년 11월 17일 자)[1]에서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를 경유해 이스라엘이 지금 벌이고 있는 일을 “대량 학살 제노사이드”로 명확히 언명하고 ‘한국 사회에 도착해야 할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를 요청한 것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출간도 이 일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겠고요.

편지 형식으로 쓰인 이 글은 고립된 ‘거기’와 우리의 ‘여기’들을 연결하려는 시도입니다. 우리가 가자와 하늘을 공유한 이상 누구도 이 학살과 무관할 수 없음을 일깨우는 글입니다. 21세기 최악의 대량 학살 범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 이 글과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 파주에서

«쿠튀리에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

시몬 베유에게 신은 군림하며 명령하는 존재가 아니다. 신은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 포기와 사랑을 실천하는 존재다. 사망하기 직전인 1942~1943년에 집필한 종교사 및 유럽 문명 관련 글 여섯 편을 묶은 이 책은 독특한 신 개념에서 출발하는 베유의 신학적 확신과 물음을 최종적으로 담고 있다. 이 글들에서 베유는 그리스도교가 변질 또는 타락한 배경을 뒤쫓고 모두의 영성적 존엄성에 입각한 사회 질서를 스케치한다.

베유는 고등 사범 학교를 졸업한 뒤 한동안 노동 운동에 투신했고 스페인 내전에도 참여했다. 또 2차 대전이 발발한 다음에는 프랑스 망명 정부에 합류하는 한편 서양 세계가 맞이한 위기의 근원을 해명하고자 분투했다. 당시 서양은 의회 민주주의의 공허성, 권력자 신을 숭배하는 종교들의 타락, 파시즘의 독재 사이에서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런 경험들이 안긴 절망과 그로부터 피어난 새로운 비전이 이 글들에 새겨져 있다.

… «쿠튀리에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