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트리 차크라보르티 스피박. 이름은 익숙하지만 그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다. 서발턴에 관한 글을 썼다는 것과(이렇게 말하지만 서발턴에 대해선 내가 또 뭘 알겠나..) 아주 박식한 사람들마저 진저리를 칠 만큼 어려워한다는 것 정도? 그렇지만 그가 대단한 사람이라는 건 알았다. 사진에서 풍기는 카리스마로도 예감할 수 있듯이 범상치 않은 사람이라는 것도. 그래서 벵골 출신의 이 노장 여성 학자의 책을 우리가 출간하기로 결정했을 때, 근거 없는 자부심이 나를 감쌌다. 스피박이라니! 하지만 스피박을 오랫동안 좋아한 옮긴이 선생님이 번역 원고를 보내시고 그와 함께 스피박을 오랫동안 흠모한 편집자가 1교, 2교를 거치며 교정지에 얼굴을 파묻고는 아직도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며 머리칼을 쥐어뜯는 걸 지켜보면서, 자부심과는 비교도 안 되는 불안이 나를 휩쌌다.

불안은 두려움으로, 두려움은 게으름으로 변모해 차일피일 작업을 미루던 어느 날 편집자가 이렇게 얘기했다. “이제 진짜 해야 돼요, 표지.” 정말로 더는 작업을 미룰 수 없는 시점에 이르러서야 원고를 집어 들고 읽기 시작했다. 일정상 원고에서 어떤 단서라도 발견해야 했기에 짐짓 매의 눈초리로 한 페이지 한 페이지 넘겼지만… 스피박은커녕 이 책에서 인용하고 있는 저작들조차 접해 본 적이 없는 나로선 내용을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다루는 텍스트를 구체적으로 인용하는 부분들에선 정신을 반쯤 놓기도 했다. 다 읽고서도 잘 모르겠는 부분은 편집자에게 세 줄 요약을 요구하기도 하고 그보다 훨씬 자세하고 친절한 설명을 듣기도 했지만 사실은 아직도 잘 모른다(이런 저라서 죄송해요..).
원고를 읽는 동안 대체로 이랬다. ‘음? 그…렇?군요… 네? 아~… 네…에??? 그런데 여기서 갑자기 왜 이 얘기를…’ 그렇지만 문외한인 나도 그가 얼마나 비범한 사람인지 어렴풋하게 눈치챌 수 있었다. 스피박을 처음 만나 보는 독자로서 어떻게 한 사람의 머릿속에 이렇게 방대한 지식이 들어가 있을 수 있는지 놀랐고, 이 모든 걸 강의로 전달하는 게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지 진심으로 궁금하기도 했다. 어느 한 분야에 정통한 사람이 아니라 모든 분야를 자신만의 방식으로 넘나드는 초월자 같은 느낌이랄까. 더 중요한 건 이 책 곳곳에 아주 강렬한 부분들, 나머지를 전혀 이해하지 못해도 괜찮다는 착각을 불러일으킬 만큼 정말로 환상적인 부분들이 있다는 것이다. 이 대가의 스케일에 압도되는 동시에 아주 구체적이고 섬세한 감동이 가슴에 전기를 보내는 부분들. 이런 부분들 덕분에 «읽기»는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혀 지루하지 않은 책이다. 이런 게 바로 전설의 레전드? 그래서 여전히 잘 모르지만 누구라도 붙들고 이 책이 정말 좋다고, 그러니 스피박이나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저작들을 읽어보지 않았더라도(나처럼^^) 겁내지 않고 «읽기»를 꼭 읽어 봐 달라고 말하고 싶기도 하다.
스피박은 J. M. 쿳시 읽기 말미에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에요. 젠더와 영토인 것이지요. 정치적 올바름 너머의 진실에 대한 관심으로 전위되는 자기-지시성이고요”라고 말한다(197쪽). 스피박만큼이나 쿳시도 생소하기 그지없는 나지만, 이 노벨상 수상자의 작품에서 “예술을 위한 예술”이 아니라 “젠더와 영토”를 읽어 내야 한다는 스피박의 주문이 아주 강렬하고 인상 깊게 다가왔다. 특히 계급이나 젠더가 조금 더 익숙한 반면 “영토”라는 말이 신선하게 느껴졌고, 스피박에게 문학의 영토성이 중요하다는 사실이 갑자기 환기되었다(그는 이 책을 ‘장벽’에 관한 논의로 시작한다).
여기서 표지 디자인 착상을 얻었다. 스피박이 이야기하는 영토성, 인도와 인도의 단일하지 않은 언어들, 식민주의의 상처, 제국의 언어인 영어에 대한 고민, 멀찍이 떨어져 있지만 비슷한 고민을 안고 있는 이곳에서 우리가 펴내려 하는 한국어판 «읽기», 이 장소들을 연결한다는 의미를 담아 일종의 지도 형식으로 표현하면 어떨까? 또 스피박은 “텍스트의 프로토콜에 들어가라”고 거듭거듭 강조한다. 이건 거리를 두고 내 입장에서 텍스트를 읽는 것이 아니라 텍스트 내부로 들어가 텍스트가 욕망하는 것을 섬세하게 읽어야 한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런 읽기를 위한 도구들이 일종의 지도 역할을 하는 게 아닐까? 아니 어쩌면 (스피박의 글이 그렇듯) 지도들 자체가 우선 해독의 대상인 것 아닐까? 이렇게 ‘영토와 해독’을 키워드로 삼아 표지를 구상하기 시작했다.
이 책이 «읽기»인 만큼 처음에는 문자들로 구성된 지도를 상상해 봤다. 그런데 어떤 언어여야 할지가 난감했다. 비록 스피박은 인도의 문학도들에게 영문학을 사용하라며 권하지만, 알파벳을 비롯해 특정 지역의 문자를 사용하는 건 이 책을 배반하는 일처럼 느껴졌다. 그렇다면 어느 지역의 문자도 아닌 기호들을 만들어 사용한다면? 좋아. 어쩌면 그것을 우리가 알지 못하는 미지의 문자라고, 스피박의 말대로라면 “결코 찾을 수 없는 유토피아”라고 우겨도 좋을 것 같았다. 어쩌면 유토피아를 찾는 것이야말로 지도의 과제 아닐까? 하지만 문자나 기호로 지도를 구성하는 것은 흔한 방법이기도 해서 어떤 방식으로 표현할지가 주요한 과제였다. 이 요소들이 지형도를 펼쳐놓은 듯 입체적인 느낌을 자아낸다면 어떨까? 그럴 수 있다면 이 표지만의 독특한 감각과 매력을 뽐낼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 생각과 고민이 머릿속을 배회하다 어느 순간 확신이 들었고, 하얀 도큐먼트를 펼쳐 기호들을 활용해 상상의 지도를 그리기 시작했다. 자잘한 기호 조각들을 하나하나 채워 넣어 지도를 완성하는 일은 그 자체로 빠져들어 장인적인 혼(@_@)을 불태우기 안성맞춤이었다. 그렇게 지도를 완성했고, 후속 작업을 거쳐 정말로 마음에 드는 표지가 나왔다.
완성한 지도에서 기호들의 흐름이 역동적으로 느껴지는 게 굉장히 마음에 든다. 한 친구에게 표지 시안을 보여 주었더니 “다양한 기호들이 모여 있지만 패턴화된 클러스터를 이루지 않고, 어떤 흐름을 만들면서도 카오스로 느껴지지 않아 무척 좋다”는 의견을 보태 주었다. 헐. 내 작업물이 이렇게 멋있는 말로 표현되어도 괜찮은 걸까?! 하지만 내가 이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던 이유들과 상통하는 것 같았고, 친구가 내 마음을 독해해 언어로 표현해 준 듯이 느껴졌다.
한편 해독의 모티프도 최대한 살려 보고 싶었다. 지도에 사용한 개별 기호들은 어떤 의미도 담고 있지 않은데, 우리가 만든 스토리상으로 이는 해독을 요구하는 텍스트인 셈이다. 더구나 이건 스피박 책이잖아. 그래서 카피나 소개글 같은 통상적인 요소로 뒤표지를 채우고 싶지 않았다. 본문에는 그 자체로 마음을 뒤흔드는 스피박의 문장과 번역이 가득했다. 그래서 뒤표지와 뒷날개로 이어지는 지도 위에 본문 인용구들을 배치해 해독의 의미를 좀 더 적극적으로 드러내보고자 했다. 지도 위에 지역명을 표기하듯이, 텍스트에 각주를 달 듯이. 뒷날개를 펼쳐 전체 모습을 보고 있으면 작게 접힌 지도를 펼쳐 넓은 지형을 보고 있는 것만 같다. 갑자기 시야가 트이는 기분도 들고, 뒤표지에 인용한 그의 말은 읽을 때마다 뭉클하다. 그래서 앞표지만 보는 것보다 책날개까지 포함한 이 전체 모습을 감상하는 게 더 좋다. (오늘도 나는 뒷날개를 펴…)
이미지를 초록색으로 지정한 특별한 이유는 없다. 영토성을 염두에 두어서인지, 지도에서 자주 접하는 색이어서인지, 아니면 원서 표지에서 영향을 받아서인지는 모르겠지만 처음부터 표지 이미지 색은 짙은 초록색이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흰색을 배경색으로 정했다. 초록색과 잘 어울릴뿐더러 지도든 책이든 흰 종이에 새겨 넣기 마련이니까. 뒤표지에 들어간 스피박 인용문들은 빨간색으로 배치했는데, 붉은 셀로판지를 갖다 대 원본을 해독하는 장면을 상상하며 시도해 본 것이기도 하고, 무엇보다 초록과 빨강이라는 두 보색의 조합이 풍기는 분위기가 보기 좋았다.
본문 디자인은 기존 리시올/플레이타임 책들을 거치며 수정/확립한 질서들을 조금씩 다듬어 적용했다. «읽기»는 이전보다 고딕체를 많이 사용한 것이 특징이다. 특히 고딕을 쓸 때 두 종류의 서체를 섞어 사용했는데 독자들은 눈치채지 못할 수도 있지만 개인적으로 아주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본문 속의 자잘한 요소들을 통해 완성도를 높이는 일이 재미있고 우리는 여기에 나름대로 자부심도 느낀다. «읽기»에는 빨간 색깔의 면지를 사용했다. 표지 디자인과 더없이 잘 어울리며 두말할 나위 없이 이 종이책의 킬링 포인트다! ( ͡° ͜ʖ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