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르고호의 선원들≫이 인용한 문헌들

매기 넬슨이 ≪아르고호의 선원들≫에서 인용한 글과 책을 정리해 보았습니다. 이 책의 원서에는 인용 문헌의 출처를 밝힌 주석이나 참고 문헌이 없습니다. 저희는 이 결정이 인용된 텍스트와 넬슨 자신의 말을 뒤섞는 시도이자 독자의 궁금증을 증폭하려는 (그리하여 직접 찾아보도록 우리를 꾀는) 전략이라고 이해했어요. 넬슨이 무엇을 염두에 뒀는지와는 별개로 그의 결정을 존중하는 차원에서 한국어판에도 문헌 출처를 넣어 주지 않았는데요. 영어권 독자는 넬슨이 인용한 구절을 실마리 삼아 어렵지 않게 (대부분 영어인) 출처를 찾을 수 있는 반면, 번역본만으로는 그러기가 거의 불가능합니다. 이를 감안해 완벽하지는 않더라도(끝내 확인하지 못한 문헌도 있습니다) 저희가 찾을 수 있는 한에서 참고 문헌을 재생해 보았습니다. 넬슨이 인용하는 문헌과 인용하는 방식에 흥미를 느낀 독자분들께 도움이 되길 희망합니다.

≪아르고호의 선원들≫이 인용한 문헌들

쓰기와 보듬기

≪아르고호의 선원들≫ 해외 서평을 번역해 공유합니다. 조너선 파머가 2015년 9월 ≪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에 기고한 <쓰기와 보듬기>예요. ≪아르고호의 선원들≫을 읽는 하나의 방법을 제시하고 마음까지 보듬어 주는 글이에요. 이예원 번역가께서 옮겨 주셨고, ≪로스앤젤레스 리뷰 오브 북스≫의 허락을 받아 이 글을 블로그에 게재합니다. (Copyright © 2015 by Los Angeles Review of Books)

≪아르고호의 선원들≫을 작업하며 길을 잃은 기분을 느낀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습니다. 그럴 때 몇 편의 서평과 인터뷰가 길을 밝혀 주었는데요. 그중 하나가 이 글이었습니다. 또한 가장 울림이 큰 글이었고요.

파머는 이 책의 표층 아래에서 흐르는 “괄목할 특징이자 묘하게 전복적인 저류”를 포착합니다. 그에게 ≪아르고호의 선원들≫의 호소력은 “건강만큼이나 지루하고 밋밋한 것을 귀하게 대하는 자세”와 우리를 초대하려는 이 책의 헌신에서 비롯합니다.

저희에게 이 서평은 “추상적이고 심지어는 난해한 언어를 거쳐 속 깊은 직언으로 다가오며 의외로 포괄적인 단어에 안착한다” 같은 문장으로 ≪아르고호의 선원들≫을 작업하는 내내 어렴풋이 머릿속을 맴돌았던 느낌과 생각을 언어화해 준 글입니다.

조너선 파머는 넬슨이 독자를 믿고 그들을 초대한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 글에서 그는 작가로서 넬슨을 믿으라고, 무엇보다도 독자인 우리 자신을 믿고 우리만의 읽기를 발전시켜 보라고 독려합니다. 우리가 넬슨과 그 가족을 바라보는 동시에 넬슨의 글이 우리를 바라보고 있음을 유념하면서요.

원문 링크: https://lareviewofbooks.org/article/writing-and-holding/

쓰기와 보듬기

≪아르고호의 선원들≫ 디자인 후기

나는 직업인으로서의 디자이너에 가깝다. 나만의 디자인 철학이랄 것도 없고 디자인의 사회적 역할 같은 것도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다. 다른 디자이너들이 이론적인 논의를 펼치거나 담론을 형성하려는 걸 볼 때면 자극을 느끼기도 하지만, 내 얕음이 들통날까 봐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더욱더 안쪽으로 숨어드는 편이다. 이제까지 쓴 디자인 후기들에서 작업을 맞닥뜨린 내 어리둥절함과 막막함 같은 솔직한 심정을 줄줄이 쓰긴 했지만 이것도 큰맘 먹고 용기를 낸 거고, 디자이너라는 멋진 직업이 내 삶을 작지 않은 무게로 억눌러 왔음을 느낀다. 게다가 성격 탓도 있어 좁디좁은 생활 반경과 대인 관계를 이어 오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스스로를 좀 더 내보이고 싶다는 마음을 먹게 됐다. 부족하거나 약점인 부분들까지도 겁내지 않고, 망설임 없이 새로운 관계에 뛰어들며. 몇몇 계기가 있었는데 ≪아르고호의 선원들≫을 읽고 작업한 것도 그중 하나다.

≪아르고호의 선원들≫ 디자인 후기

≪아르고호의 선원들≫

시, 회고록, 비평을 넘나들며 장르를 구부러뜨려 온 매기 넬슨의 대표작. 파트너 해리 도지와 사랑에 빠진 시점부터 해리 어머니의 사망과 넬슨 자신의 출산에 이르는 몇 년간을 소재로 퀴어함, 사랑, 트랜지션, 모성에 대한 문화적 가정들에 질문을 던지고 자신만의 답을 구하는 과정을 글쓰기로 재생한다.

이 책은 쾌락과 돌봄, 퀴어와 가족, 래디컬과 순응의 관계를 흩뜨리며 끊임없이 나와 우리를 다시 빚는 ‘되어 감’의 과정을 담고 있다. 문화적 이분법과 명명의 한계를 조심스럽게 피해 가며 파트너와 아이를 비롯한 타자들과의 마주침을, 그들이 가져다준 갖가지 쾌락을, 서로를 보듬는 보통의 헌신을 열렬하고도 진실하게 재현한다.

일반적인 회고록이나 자서전과 달리 삶의 내밀한 사건들을 (인용을 경유해) 이론적, 비평적 성찰과 긴밀하게 엮은 이 책은 출간 후 문화계 전반으로부터 찬사를 받았으며, 작품과 삶, 공과 사의 구분을 무너뜨린 오랜 페미니즘 전통을 잇는 한편 ‘자기 이론’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생명력을 확보하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아르고호의 선원들≫

관리를 가속하라

≪자본주의 리얼리즘≫ 2판 2쇄를 찍은 기념으로 마크 피셔의 글 한 편을 번역해 블로그에 올립니다. 스웨덴 예테보리 대학을 기반으로 한 예술 비평 저널인 ≪파스≫Parse(https://parsejournal.com/) 5호(2017년 봄)에 실린 <관리를 가속하라>Accelerate Management라는 글입니다. 번역 및 게재를 허락해 준 ≪파스≫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가속주의accelerationism는 좌우 정치 스펙트럼을 아우르는 느슨한 사고 운동이고, 여러 전선에서 논쟁과 비판을 초래했습니다. 기계적인 으스스함 때문인지 때로는 곡해의 대상이 되기도 했고요. 이 글에서 피셔는 가속주의의 세 물결을 구분하고 최근 흐름인 좌파 가속주의 입장 편에 섭니다. 알렉스 윌리엄스와 닉 서르닉, 그리고 이들이 쓴 <#가속하라: 가속주의 정치 선언>으로 대변되는 좌파 가속주의는 좌파 내부에 널리 퍼진 이른바 ‘통속 정치’folk politics 경향에 반대하는 움직임입니다. 통속 정치가 과거(이전 단계의 자본주의 혹은 자본주의 이전)나 바깥이라는 상상된 영토로 회귀하려 한다면, 좌파 가속주의는 새로운 것과 미래에 여전히 판돈을 거는 기획입니다. 이 입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이렇습니다. 자본주의가 생산한 것들에서 물러나는 대신 수중에 쥐고 이용할 것.

이 글에서 피셔는 좌파 가속주의 입장을 관리(혹은 경영)라는 쟁점과 연결합니다. 관리 문제는 ≪자본주의 리얼리즘≫에서 식별한 새로운 관료주의(그리고 그것과 무관하지 않은 정신 건강) 문제의 다른 이름입니다. 신자유주의는 큰 국가를 몰아내면서 관료주의도 쫓아냈다고 자랑스레 외쳤습니다. 하지만 우리는 정반대를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보여 주기식의 불필요한 관료주의 업무”가 노동 그 자체보다 중요시되며 우리를 질식시킬 지경인 현실을요. 그렇다면 이처럼 관료주의를 증식시킨다는 이유를 들어 관리 자체에 반대해야 할까요? 이에 피셔는 질문을 뒤집어 “너무 많은 관리가 아니라 너무 적은 관리가 동시대 자본주의의 문제” 아니냐고 묻습니다. 그리고 좌파 가속주의 입장을 채택해 ‘다른 관리’를 상상해 보자고 제안합니다. “우리에게 너무 많은 노동을 부과하는―저 자신의 노동 중독을 본보기로 이용해―관리자 대신 우리를 과도 노동에서 보호하는 관리자를 상상할 수 있을까? 미세 요구들로 우리를 질식시키는 관리자가 아니라 우리에게 생각의 공간을 제공하는 것을 자신의 역할로 이해하는 관리자를 상상할 수는 없을까?”

피셔의 정치적 입장이 늘 한결같은 건 아니었다고 생각합니다. 때론 그도 반의회주의적인 태도를 취했고 정치 자체에 반대하는 모습을 보인 적도 있습니다(그의 정치 관련 블로그 게시물을 모은 ≪k-펑크≫ 3권이 출간되면 전반적인 변화 과정을 뚜렷이 확인할 수 있으리라 기대합니다). 하지만 2009년의 ≪자본주의 리얼리즘≫에 이르면 “지속적인 사회 변형에 꼭 필요한 (잠재적이고 실제적인) 하부 구조들을 중심에 두는 정치”를 명시적으로 지향하게 되고 이는 마지막까지 변하지 않았습니다(이와 관련해서는 ≪자본주의 리얼리즘≫ 9장과 말미에 실린 조디 딘과의 대담, ≪#가속하라: 가속주의자 독본≫에 실린 <터미네이터 대 아바타>, 피셔와 동료 제러미 길버트가 나눈 대담, 그리고 두 사람이 함께 집필한 팸플릿인 ≪현대성 되찾기≫ 등을 참고할 수 있습니다). 사망하기 얼마 전에 썼을 것이라 추정되는 <관리를 가속하라>에서도 그는 이 입장을 견지하고 있습니다. 관리와 가속주의라는 쟁점을 검토하며 그는 우리가 지향할 바는 신자유주의가 내걸었지만 지키지 못한 약속들을 정확히 타격하는 것이라고, 자본주의의 산물들을 단순히 거부하는 것이 아니라 현대화하고 합리화하는 것이라고, 좌파가 그 주역이 될 수 있다고 믿는 것이라고 역설합니다. 언제나 그렇듯 간명하고 짜릿하며 도발적인 산문으로요. 최종적이지도 완벽하지도 않겠지만, 또 논쟁과 비판의 여지도 있겠지만, 아마도 이것이 우리가 확인할 수 있는 그의 마지막 입장일 겁니다.

원문 링크: https://parsejournal.com/article/accelerate-management/

관리를 가속하라

팔레스타인인의 자결권을 위해, 중동에서 제국주의 세력의 철수를 위해

질베르 아슈카르의 인터뷰 한 편을 번역해 블로그에 게시합니다. 저항과 동원, 연대의 현황에 초점을 맞춘 인터뷰로 2월 8일 프랑스의 ≪앵프레코르≫ 지면에 게재되었고, ≪인터내셔널 뷰포인트≫에 영어로 번역되었습니다.

2023년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은 “집단 학살의 교과서적 사례”라 불릴 정도의 파괴를 자행했지만 초반에는 이에 대한 저항의 불길이 거세게 퍼져 나가지 않았습니다. 이스라엘의 선전, 각국의 지원과 공모, 대중 운동의 침체 등이 동원과 연대를 움츠러들게 한 요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아슈카르는 그 원인을 밝히고 그럼에도 점점 더 확대되고 있는 저항의 물결을 조명합니다. 나아가 현 시점에 팔레스타인인의 저항과 연대 운동이 무엇을 요구해야 하는지에 대한 자신의 입장을 명확히 밝히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이 학살 전쟁의 원인과 실상을 분석하는 시도였다면, 이번 인터뷰는 저항과 대안에 대한 그의 견해를 드러내 주는 자료입니다. 절망적인 상황에서 어떻게 생각하고 무엇을 요구할 수 있을지 고민하는 분들에게 함께 읽기를 권하고 싶은 글입니다.

프랑스어판 링크: https://inprecor.fr/node/3815
영어판 링크: https://internationalviewpoint.org/spip.php?article8436

팔레스타인인의 자결권을 위해, 중동에서 제국주의 세력의 철수를 위해

전쟁에 대한 시몬 베유의 단편들

시몬 베유가 2차 대전 발발 초기인 1938과 1939년에 쓴 아주 짧은 단편 두 편을 번역해 블로그에 올립니다.

이 글들에서 베유는 유럽의 정치적인 파국을 정신적인 위기와 엮어 사고합니다. 그리고 권력을 추구하는 적에 맞서 싸우기 위해선 정반대되는 원칙, 즉 정의의 원칙이 인민의 정신에 스며들어야 함을 강조하고 있어요.

≪쿠튀리에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에 수록한 마지막 두 글에 ‘이 전쟁은 종교 전쟁입니다’와 ‘우리는 정의를 위해 싸우고 있을까요?’라는 제목이 달린 것도 이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베유의 진단과 제안을 더 구체적으로 확인하고 싶은 분은 이 두 글을 꼭 읽어 봐 주세요.

전쟁에 대한 시몬 베유의 단편들

파주에서

소설가 황정은 선생님의 신작 에세이 <파주에서>를 공유합니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출간을 기해 청탁드린 글로, 가자의 비극과 고립을 알리고 연대를 요청하는 뜻을 담아 이 글을 집필해 주셨습니다.

작년 10월 7일 이후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를 향한 잔인한 보복에 나서는 한편, 전방위적 프로파간다로 세계의 눈과 입을 가리는 것에 온 힘을 쏟았습니다. 그 책략의 효과로 이스라엘의 폭주를 제어해야 한다는 말을 꺼내기도, 그런 말이 전파되기도 어려운 분위기가 만들어졌던 것 같아요.

그런 답답함을 느끼던 중, 황정은 선생님이 팟캐스트 «책읽아웃: 황정은의 야심한 책»(367-2회, 2023년 11월 17일 자)[1]에서 프리모 레비의 «주기율표»를 경유해 이스라엘이 지금 벌이고 있는 일을 “대량 학살 제노사이드”로 명확히 언명하고 ‘한국 사회에 도착해야 할 팔레스타인의 이야기’를 요청한 것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출간도 이 일과 분리해서 생각할 수 없겠고요.

편지 형식으로 쓰인 이 글은 고립된 ‘거기’와 우리의 ‘여기’들을 연결하려는 시도입니다. 우리가 가자와 하늘을 공유한 이상 누구도 이 학살과 무관할 수 없음을 일깨우는 글입니다. 21세기 최악의 대량 학살 범죄에 종지부를 찍기 위해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지 이 글과 함께 고민해 보면 좋겠습니다.

파주에서

«쿠튀리에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

시몬 베유에게 신은 군림하며 명령하는 존재가 아니다. 신은 절대적으로 선한 존재, 포기와 사랑을 실천하는 존재다. 사망하기 직전인 1942~1943년에 집필한 종교사 및 유럽 문명 관련 글 여섯 편을 묶은 이 책은 독특한 신 개념에서 출발하는 베유의 신학적 확신과 물음을 최종적으로 담고 있다. 이 글들에서 베유는 그리스도교가 변질 또는 타락한 배경을 뒤쫓고 모두의 영성적 존엄성에 입각한 사회 질서를 스케치한다.

베유는 고등 사범 학교를 졸업한 뒤 한동안 노동 운동에 투신했고 스페인 내전에도 참여했다. 또 2차 대전이 발발한 다음에는 프랑스 망명 정부에 합류하는 한편 서양 세계가 맞이한 위기의 근원을 해명하고자 분투했다. 당시 서양은 의회 민주주의의 공허성, 권력자 신을 숭배하는 종교들의 타락, 파시즘의 독재 사이에서 파국으로 치닫고 있었다. 이런 경험들이 안긴 절망과 그로부터 피어난 새로운 비전이 이 글들에 새겨져 있다.

«쿠튀리에 신부에게 보내는 편지»

이스라엘의 학살 전쟁 넉 달 후

질베르 아슈카르가 런던에서 발행되는 아랍 일간지 «알-쿠드스 알-아라비»에 기고한 2월 6일 칼럼을 번역해 블로그에 올립니다. 이 글에서 아슈카르는 이스라엘의 학살 전쟁이 시작된 지 넉 달이 경과한 시점에 팔레스타인이 그동안 얼마나 파괴되었는지를 간명하게 밝히고 있습니다. 여기에는 끔찍한 제노사이드(집단 학살)에 더해 새롭게 조명받고 있는 범죄인 도미사이드(‘주거지 말살’)도 포함됩니다. 이어 그는 남부로 강제 추방당한 200만 명의 주민이 얼마나 불안정한 처지인지 언급하고, 미국을 비롯한 서양 정부들이 운위하는 ‘해법’들의 공허함과 위선을 지적하며 글을 마무리합니다. 아주 짧지만 왜 이번 전쟁이 학살로 불리는지, 1차 나크바를 능가하는 2차 나크바로 여겨지는지 여실히 드러내는 글이라 생각합니다. 이 글 이후로도 한 달 이상이 지났고 상황은 전혀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더 많은 관심과 지원, 항의가 절실합니다.

원문 링크: https://gilbert-achcar.net/gaza-after-4-months

이스라엘의 학살 전쟁 넉 달 후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이스라엘의 가자 지구 공격은 집단 학살의 교과서적 사례다”
“금세기 어떤 전쟁도 이스라엘이 가자 지구에서 자행하는 절멸 캠페인에 근접조차 하지 않는다”

2023년 10월 이래 이스라엘은 가자 지구의 민간인을 살상하고 도시를 파괴하며 인도적 구호를 차단해 왔다. 75년간 이스라엘에 지배당한 팔레스타인 인민은 수많은 공격과 탄압을 감내해야 했지만, 가자 지구를 완전히 제거하겠다는 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낸 이번 침공은 그 어느 때보다도 참혹한 양상을 보이고 있다.

이 책은 전 세계가 지켜보고 있음에도 태연히 집단 학살을 벌이고 있는 이스라엘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번 학살 전쟁이 어떻게 전개되었고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나아갈지, 팔레스타인의 해방을 위해 어떤 노력이 필요한지를 분석하려는 시도다. 반제국주의 시각에서 오랫동안 중동의 지정학적 현실을 연구해 온 질베르 아슈카르는 이전의 관찰과 사태의 추이에 기초해 작금의 학살을 이해할 실마리를 던져 준다.

번역은 한국에 팔레스타인에 대한 억압을 알리고 BDS 운동에 힘써 온 ‘팔레스타인 평화 연대’가 맡았다. 번역에 더해 상세한 옮긴이 주와 해제로 팔레스타인 역사의 생소함을 완화한 이 책은 이번 학살 전쟁에 대한 시각과 통찰을 길러 주는 역할을 맡을 것이다.

«이스라엘의 가자 학살»

가연성 희망

오랫동안 준비한 번역문 하나를 올립니다. 2019년 문화 비평가 토드 B. 그루얼이 «k-펑크» 엮은이 대런 앰브로즈와 «k-펑크» <서문>을 쓴 사이먼 레이놀즈를 각각 인터뷰한 <가연성 희망>이라는 글이에요. 번역 및 게재를 허락해 준 온라인 잡지 «팝매터즈»에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원문 링크: https://www.popmatters.com/mark-fisher-simon-reynolds-darren-ambrose

앰브로즈와 레이놀즈는 «k-펑크»의 <엮은이 서문>과 <서문>으로 마크 피셔에 대한 자신들의 기억을 전해 주었습니다. 이 인터뷰는 그 글들에서 못다 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자리라 할 수 있어요. «k-펑크»를 작업하면서 많은 도움을 받았던 자료라 독자 여러분과도 나누고 싶었습니다.

<서문>들보다 조금 더 비공식적인 이 인터뷰는 마크 피셔가 어떤 개성을 보유한 비평가였고 그의 사고가 어떤 변화를 거쳤는지 잘 드러내 줍니다. 특히 사이먼 레이놀즈는 피셔뿐 아니라 여러 사안에 대한 자신의 견해를 밝히고 있기도 해요.

이 인터뷰를 공유할 수 있게 되어 무척 기쁩니다. «k-펑크»를 읽는 데 도움이 되기를 바라고, 이 인터뷰(그리고 블로그에 올린 다른 여러 글)를 동행인 삼아 2024년에도 «k-펑크»와 최근 2판이 출간된 «자본주의 리얼리즘» 많이들 읽고 얘기해 주시면 좋겠습니다.

가연성 희망